작성일 : 13-09-28 16:43
[10]예배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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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웹섬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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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예배의 요소와 순서

 

 예배는 예배 공동체의 행위이기 때문에 하나의 공통된 순서를 따라 진행되어야 한다. 공통된 예배 순서를 따라 어떻게 드리느냐에 따라 예배에 대한 우리의 생각과 우리가 믿고 있는 것을 더욱 정확하게 표현하고 많이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공통된 예배 순서가 어떤 요소들로 이루어져야 하는지를 결정하는 것은 쉽지 않다. 어떤 예배의 요소가 절대적인 것이며 상대적인 것인지를 구분하고 그 요소들을 어떻게 배열할 것인지를 결정하기 위해 성경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

 우리가 초대교회의 예배로부터 회복할 수 있는 것은 사도행전 2:42-47에 나오는 예배의 4중 구조--날마다 모여, 사도의 가르침을 받고, 떡을 떼고,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세상으로 나가는--이다. 초대 교회는 예배를 하나님에 의해 부름을 받은 공동체의 모임으로 이해하였다. 첫째, 그들은 예배를 드리기 위해 함께 모일 때 하나님의 백성들로 아버지의 집에 초청되었다. 둘째,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함께 행할 것을 깨달았다. 셋째, 그들은 함께 떡을 뗌으로 서로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와 자매로 연결됨을 경험하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들은 예배를 통해 최고의 사도 공동체가 되어 성령의 능력을 받아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도록 세상으로 보내졌다.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예배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나는 경험으로부터 그리고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들로서 그의 증인이 될 것을 다짐하였다. 이처럼 예배는 다양한 사람들을 한 곳에 모아 그리스도의 지체로 변화시켜 공동체를 만든다.

 다음에 소개하는 예배의 요소와 순서는 예배의 4중 구조--모이는 공동체, 말씀 듣는 공동체, 응답하는 공동체, 파송 받는 공동체--에 기초한다. 예배 공동체는 예배의 4중 구조의 각 부분으로부터 예배자들이 기대하는 경험과 분위기는 다음과 같다: 1) 기쁨으로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공동체, 2) 묵상하는 자세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공동체, 3) 성만찬을 통하여 축제를 경험하는 공동체, 그리고 4) 세상으로 파송되는 공동체. 이 기본적 예배 구조는 다양한 예배들 배후에 있는 공통성을 보여준다. 이 기본적인 예배 구조를 중심으로 개 교회의 특성에 맞는 예배 형태를 제시할 수 있다.

모이는 예배(The Gathering)

 "모이는 예배"는 하나님이 계신 곳으로 올라가는 예배의 시작 부분으로 우리의 개인적인 생활로써의 예배로부터 공동체(교회) 생활로써의 예배로 넘어가는 문지방과 같다. 우리가 모일 때, 우리의 개인적인 예배가 공동체 예배로 바뀌면서 자기 중심으로부터 하나님 중심으로 옮겨간다. 결국, 모임의 예배 성격은 지상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늘의 보좌, 영원한 예배의 장소, 하나님 나라의 영역, 하나님이 계신 곳의 영광을 향하여 여행하는 것처럼 위를 향한 움직임으로 나타난다. 물론, 하나님은 우리가 사는 곳에 항상 계신다. 그러나 예배를 드리는 동안 그 하나님의 임재를 강하게 느끼게 된다. 그래서 예수는 약속하셨다: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마태 18:20). 이런 이유로, 우리는 하나님이 계신 곳에로 들어가는 내적 경험을 일으키는 "모이는 예배" 부분의 내용과 구조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모임의 예배가 넓게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예배를 드리기 위해 하나님의 백성들을 모으는 기능을 가지며, 좁게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도록 준비시키는 기능을 가진다. 모임의 예배에서 개인적으로 모인 자들은 자신들이 더 큰 공동체에 속해 있다는 정체성을 경험하는 기회를 가진다. 모임의 예배에서 회중들은 자신들이 세례를 받았을 때 그리스도의 몸인 신앙 공동체의 일원(교회의 지체)이 된 정체성을 다시 경험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임의 예배를 위해 필요한 순서들은 기본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나누는 인사, 경배찬양, 그리고 기도이다. 이 기도는 죄를 고백하고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치료와 용서의 말씀을 듣는 예배 행위를 포함하여 종종 다음 단계인 "말씀 받는 예배"의 순서에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어떤 교회들은 찬양 전에 고백 순서를 둔다).

1. 모임 찬양(Gathering Songs)

 예배는 항상 하나님이 계신 곳으로 올라감을 경험하는 "모임 찬양"으로 시작한다. 예배에서 올라간다는 예배 형식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성전으로 올라갈 때 부른 시편 찬송에서 표현된 것처럼 예루살렘에로 들어간다는 구약성경의 형식에서 유래한다. 세상에서 지내다가 하나님의 자녀들의 공동체로 한 곳에 모여 그 분으로부터 오는 위대한 힘을 재발견하여 새로워지려는 성도들에게는 시편 95편이 모이는 교회를 위한 한 본보기가 된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 노래하며 우리 구원의 반석을 향하여 즐거이 부르자" (시편 95:1). 이 시편 기자가 말하듯이, 모이는 교회(구원받은 자들의 공동체)는 각자의 삶의 현장으로부터 자신이 구원받은 것에 대한 기쁨과 즐거움을 노래부르며 한 곳에 함께 모인다. 예배를 드리기 위해 모인 예배자들은 구원받은 자들로서의 기쁨을 서로 나누며 여호와께 노래할 수 있다.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 변화된 생활을 보여주는 하나님 백성들의 "즐거운 함성"은 같은 성도들뿐만 아니라 처음 만나는 자들에게도 즐겁게 감염될 수 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모임 찬양의 중요성이 결코 간과될 수 없다.

 이런 의미에서 시편 찬송은 모임 찬양으로 매우 적합하다. 많은 시편들은 성전에 올라갈 때 부른 신앙인들의 찬송이었기 때문이다. 각자 세상에서 흩어져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다가 하나님의 부름에 의해 예배를 드리기 위해 성전으로 함께 모이는 백성들이 한 마음으로 시편을 읽거나 시편송을 부르는 것은 예배의 축제 분위기를 고조시키며 자연스러운 예배 준비가 될 수 있다. 이 때 교회력에 맞춘 성서일과로부터 시편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그러므로 "모이는 예배"에서 모임 찬양을 위해 시편을 사용하기 때문에 "말씀 듣는 예배"에서 시편봉독은 생략할 수 있다.

 예배를 준비하는 시간은 10-15분이 적절하다. 모임 찬양의 순서를 인도하는 자는 먼저 시편을 읽고 그 주일 예배의 주제를 설명하면서 하나님의 초청을 받아 다양한 삶의 현장으로부터 한 곳에 모인 회중이 서로 하나님의 가족으로 느끼도록 한다. 시편은 세상과 교회를 연결하며 회중이 같은 목적을 가지고 모인 것을 경험하도록 한다. 시편의 주제, 즉 예배의 주제를 살리는 찬송이나 복음송을 부름으로 자연스럽게 예배안내를 한다. 모임 찬양을 진행하는 동안 그 주일 예배의 필요에 따라 교회소식, 인사, 환영사, 묵상기도, 그리고 찬송 미리 부르기 등을 함께 진행할 수 있다. 모임 찬양의 분위기는 성도의 교제와 환영과 같은 순서들로 밝고 명랑하게 시작하여 전주나 침묵기도와 같은 순서들로 예배 준비를 마무리한다. 모임의 찬양을 마침과 동시에 다음과 같은 말로 예배의 시작을 선언할 수도 있다: "이제 우리의 마음과 뜻과 정성을 모아 우리의 하나님께 예배를 시작하겠습니다."

 모임송들은 회중이 성전에 들어와 자리를 잡고 예배를 준비하는 동안 불려진다. 회중이 들어올 때 자동적으로 모임송을 부를 수 있도록 분위기가 이루어져야 한다. 이런 이유로 모임송은 누구나 외워서 부를 수 있는 쉬운 곡이어야 한다. 이 때 간단한 움직임과 함께 다양한 악기를 사용하여 찬양할 수 있다. OHP 또는 액정 비디오 등을 사용할 수도 있다.

 1) 인사와 환영(The Greeting & Welcome): 하나님의 이름으로 서로를 환영하는 것이 우리가 드리는 예배의 중요한 부분이다. 우리가 영적인 집(교회)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녀, 그리고 하나님에게 찬양의 제사를 드리려는 예배자들이라면, 서로에 대한 그리스도인들의 환대는 필수적이다. 그래서 세상에 흩어져 있던 하나님의 백성들이 아버지의 집에 즐겁게 모이는 경험을 시편 기자는 다음과 같이 표현하였다: "우리가 감사함으로 그 앞에 나아가며 시로 그를 향하여 즐거이 부르자" (시편 95:2).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인사하고 환영하는 시간은 논리적으로 그리고 자연스럽게 감사와 찬양하는 시간으로 흘러갈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우리가 예배를 드리기 위하여 교회에 모이는 것은 위대하신 권능자 하나님이 계신 곳으로 서로가 사람들을 초대하는 것이다.

 2) 전주(Prelude): 우리는 이미 예배를 시작할 때의 전주에 익숙하다. 그러나 예배 장소로 모여들며 서로 인사를 나누는 자들의 대화가 종종 전주에 방해가 된다. 이것은 우리가 전주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일어난다. 전주(prelude)는 예배 도입부를 위한 연주, 행위 또는 사건임으로 예배 시작 전에 추가된 준비 찬송과는 매우 다르다. 전주는 그 주일의 주제나 분위기에 맞는 곡으로 약 2분 정도의 짧은 것이 가장 좋다. 전주는 예배에서 첫 번째 말이나 첫 번째 찬송 직전에 진행된다. 또는 교회소식이 예배 시작 전에 진행된다면, 예배를 조용히 준비하는 시간과 연결되거나 그 대신으로 사용될 수 있다.

 전주를 효과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몇 가지 방법들이 있다. 전주에 사용되는 곡이 그 주일 예배의 중심이 될 찬송들 중의 하나가 될 수 있으며, 전주와 함께 중세기의 채색 유리창과 같은 시각 자료를 사용하여 예배에서 무엇이 진행될 것인지에 관심을 갖고 묵상할 기회를 주거나, 짧은 드라마를 전주와 같이 보여 주거나, 어린이들의 노래, 또는 리듬 악기를 연주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와 같은 전주를 통해 회중은 가장 의미 깊고 조용한 시간을 가지며 엄숙히 제단 앞으로 나아가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품안에 있는 어린아이와 같은 자신의 모습을 체험할 수 있다. 입례 순서가 없는 경우에는 예배위원이나 성가대가 전주하기 전이나 또는 전주를 하는 동안 조용하게 그리고 눈에 거슬리지 않도록 옆쪽으로부터 들어가서 의자에 앉는다.

2. 입례 찬송(The Entrance Hymn with Procession)

 많은 교회들의 경우 예배위원과 성가대원이 전주와 함께 또는 전주에 이어 첫 찬송을 부르며 입례송 순서를 가진다. 입례송의 역사적 기원은 주후 5세기에 로마의 시민관들이 법정 안으로 들어갈 때 취한 예식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교회는 이 예식을 채택하여 성직자가 성경을 봉독대(lectern)에로 가져가는 데에 사용하였다. 성직자가 성가대원과 함께 입례하는 의식은 19세기 영국교회에서 시작되었다. 입례 순서가 예배에 강한 영향을 줄 수 있지만, 매 주일 진행할 필요는 없으며 특별한 예배를 위해 적절하게 사용될 수 있다.

 축제적인 입례 순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함께 모인 공동체로서 우리가 누구인가를 선언하는 다양한 기독교의 상징을 나타낸다. 예로, 잘 준비된다면 축제적인 입례 순서로 십자가, 예배의 주제에 따른 기, 세상의 빛인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촛불, 성가대, 성경(바로 세워서 성경이 읽혀질 강단이나 봉독대에로 들고 들어가지만 성찬상 위에 올려놓으면 안 된다) 등의 순서로 담당자들이 앞서 입장하고, 그 다음에 성경 봉독자와 예배위원이,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회자가 따라서 입장한다. 어린이가 십자가, 기, 또는 성경 등을 들고 입장하게 할 수도 있다. 입례 순서를 맡은 자들은 군인같이 절도 있는 입장을 흉내낼 필요는 없지만 똑같은 거리를 두고 같은 속도로 들어감으로 그들이 전하고자 하는 진리에 어울리는 품위와 은혜를 표현한다. 입례 순서가 없다고 해도 예배를 시작하기 직전에 성경을 봉독대에로 가져갈 수도 있다. 입례 순서는 여러 차례에 걸쳐 준비와 연습을 필요로 한다.

 교회력에 따라 특별한 주일이나 절기에는 다양하게 입례순서를 진행할 수도 있다. 예로, 성탄절 전야에는 촛불로 입장하는 예배를, 사순절 첫 번째 주일에는 침묵의 입장으로, 종려주일이나 교회의 중요 기념일에는 회중들이 함께 교회 밖 한 곳에 모여 있다가 그리스도의 한 몸으로서 예배 장소에로 입장할 수도 있다.

 입례찬송은 예배위원들의 입례행렬과 함께 진행됨으로 본 예배의 시작을 알리는 역할을 한다. 입례찬송은 하나님의 임재에로 나아가는 내적 경험을 제공하기 때문에 그와 같은 무게와 내용이 있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합창곡이나 복음송은 입례행진을 위해 사용되지 않는다. 그런 곡들은 찬송의 무게와 내용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입례찬송은 다음과 같이 찬송가에서 선택하는 것이 좋다: 9장(거룩 거룩 거룩), 21장(다 찬양하여라), 29장(성도여 다 함께). 그러나 하나님이 계신 곳으로 나아감을 충분하게 표현한 것이라면 현대의 곡(복음송)들도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3. 인사(The Greeting)

 최근에는 예배에로의 부름 순서가 인사(예배 인도자가 회중에게 하는)와 함께 이루어진다. 이것은 초대교회가 예배 부름과 같은 성격으로 진행한 인사(Greeting; Salutation)에 근거한다. 그러나 항상 인사가 예배에로의 부름보다 앞서 진행된다. 많은 교회들이 종종 인도자와 회중 사이의 간단한 대화 인사 직후 회중을 예배에로 부르거나 그 주일에 적절한 성경을 읽는다.

 하나님에게 드리는 예배에서 인사는 하나님이 계심을 인정하는 첫 번째 순서이다. 사회적인 모임이 시작될 때 자연스럽게 인사하는 관습을 가진 시대에서는 더욱 형식을 갖추어 예배를 여는 인사순서가 예배의 독특한 성격을 강조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안녕하세요"와 같은 일상적인 인사는 교회 소식이나 예배 안내와 준비를 시작할 때에 적절할 것이다.

 예배 인사는 서로가 이해할 수 있도록 짧고 단순한 형식을 취한다. 이 때 인도자가 성경 구절을 읽거나 성가대가 입당송(introit; 첫 송영)을 부르는 것으로 대신할 수도 있다. 예배에로의 부름은 간단하게 회중을 향하여 "우리 함께 하나님에게 예배를 드립시다" 또는 "이제 우리 마음과 뜻과 정성을 모아 우리 하나님에게 예배를 드립시다"라고 초청하거나 적절한 성경 구절을 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인사와 예배에로의 부름 순서는 인도자와 회중 사이의 대화로 진행되었다.

 모든 회중이 착석한 뒤 예배 인도자와 회중이 서로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따뜻하고 생동감이 넘치도록 그러나 자연스럽게 환영하면서 대화로 주고받는 인사가 이루어진다. 많은 사람들이 참석하는 예배에서 인도자는 여러 다양한 구슬들을 하나같이 이어주는 줄처럼 예배의 일치감을 주어야 한다. 이런 인도자의 역할은 많은 사람들이 참석하는 예배일수록 더욱 중요하게 된다. 예배를 드리는 동안 나누는 인사는 예배 인도자와 회중이 서로 인사를 교환하는 순서이기 때문에 예배 준비를 위한 모임 찬양에서 회중들의 인사 교환과는 다르다. 이 인사 교환은 인도자와 회중이 서로 일어서서 간단한 인사말을 나눌 수도 있으나 친숙한 말들을 적절하게 상호 교환할 수도 있다. 모임의 예배 순서 전체와 함께 인사는 간단하면서도 가능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직접 인도하는 것이 좋다.

 입례송을 부르면서 입례를 한 후, 예배 인도자는 회중을 바라보면서 강단 중앙, 설교단, 성경 봉독대, 또는 성찬상에서 인사한다. 인도자는 마치 회중을 감싸듯이 손바닥을 편 채로 회중을 향하여 두 팔을 벌리면 더욱 온화한 분위기를 자아낼 수 있다. 대화식 인사에서 회중이 응답할 때에는 사회자는 두 팔을 접는다. 인사는 여러 가지의 형식으로 진행될 수 있다. (1) 인도자는 회중을 예배에로 부르면서 "우리 모두 하나님께 예배를 드립시다"라는 말과 함께 적절한 성경구절을 사용한다. (2) 인사나 예배에로의 부름 순서가 없을 때는 시편이나 찬송으로 시작한다. (3) 전주에 이어 예배에로의 부름을 진행할 때는 적절한 전주가 자연스런 예배에로의 부름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입례 순서가 없을 때는 예배 인도자와 성가대는 눈에 거슬리지 않게 조용히 옆 통로를 통해 들어가서 전주가 끝나기 전에 자리를 잡는다. 인도자가 회중에게 인사하기 위해 일어설 때까지는 회중이 일어 설 필요는 없다. 서로가 일어서서 인사를 나누는 행위에서 이 인사 순서는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게 만든다. 인도자와 회중이 서로 서서 인사를 나누는 것은 새로운 손님이 방에 들어온 것을 맞이하는 것처럼 그리고 순서 진행에 대한 존경을 표하는 것처럼 서로의 예배 참석을 인식하는 것이며 예의와 환대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를 위한 성경의 보기(겔 2:1, 신 18:5)는 서 있는 것이 다양한 목회를 인정하는 한 방법으로 제시한다. 회중이 일어서는 순서를 위해 주보에 표시를 한다. 인도자가 회중에게 일어서기를 요구하는 행위는 하나님에 대한 인격적인 경의를 요청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예배에서 사용되는 첫 대화(opening dialogue)로 불리는 인사는 모든 회중에게 예배에서 자신들의 다양한 역할을 확인하는 기회를 준다. 고대 교회에서 사용된 사도들의 인사에서 사회자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하나님의 사랑, 그리고 성령의 교제가 여러분 모두와 함께 하기를 기원합니다." 이 때 회중은 "주의 종(목사님)과도 함께 하기를 기원합니다."라고 응답한다. 이와 같이 기독교의 유산인 고대 교회의 인사를 사용하는 것은 우리들의 예배 이해를 확대시킬 수 있다. 우리가 확신하는 바는, 예배에 참여한 우리는 우리 이전에 참석하여 여러 세기를 통해 신앙의 증언을 제공해 온 신앙인들과 함께 모이는 것이다.

 인사는 교회력이나 그 주일의 주제에 따라 다양할 수 있다. 부활절의 인사로 할렐루야를 말할 수 있다 (전통적으로는 사순절에 할렐루야를 후렴 즉, 인사에 대한 회중의 응답으로 사용하였다). 그러나 이처럼 다양한 인사를 주보에 실어 너무 문자에 의존하는 것은 눈과 눈이 마주치는 자연스럽고 생동감 있는 인사를 상실할 수 있는 단점이 있다. 인사가 매 주일 동일할 때 암기된 회중의 응답은 서로를 공동체로 묶어 주는 증거가 되며 다양한 연령층의 참석자들을 확보할 수 있게 한다.

4. 예배 부름(The Call to Worship)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부름에 응답하기 위해 모인다. 교회사를 통해 모임의 예배 순서들이 주기적으로 변화되어 왔으나 항상 하나님의 임재에로 들어가는 특징으로 이해되었다. 하나님 앞으로 나오는 행위는 인간의 의도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에 의한 것이다. 하나님의 임재는 예배 공동체에 의해 주문되거나 만들어질 수 없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늘 보좌에로 부르시고 하나님의 초월적 타자성의 눈부신 빛 속으로의 여행을 명령하신다. 여기에서 예배 공동체는 영원히 하나님을 찬양하는 천사들에 둘러 싸여 있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초월적 타자성을 깨닫게 된다. 그때 그리고 그때만이 모인 예배 공동체가 하늘의 무리들과 합하여 삼위일체 하나님의 위엄을 잘 나타내는 찬양을 부른다.

 예배 부름은 예배 공동체를 부르는 행위이다. 이 부름은 하나님의 임재에로 이끌림을 받는 행위를 표현한다. 그래서 예배 부름은 예배자들의 경험 속에 예배 공동체 안에 계신 하나님을 강하게 느끼게 한다. 예배 부름을 위한 말은 모임송들과 관련되어 사용될 수도 있다. 또는 단순히 회중이 예배를 드리기 위해 모인 것을 선언할 수도 있다. 때로 모임송을 합창으로 부를 때는 합창 부분은 후렴 같이 같은 구절이 되어야 한다. 예배 인도자는 예배 부름의 말을 읽기보다는 외울 필요가 있다. 또한 예배 부름을 OHP나 슬라이드 등으로 나타낼 수도 있다.

(1) 인도자: 저와 함께 주께 영광을 돌립시다.

 회 중: 우리 함께 하나님의 이름을 높입시다.(시 34:3)

(2) 인도자: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회 중: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인도자: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함 께: 여호와에게서로다. (시 121:1-2)

(이 예배 부름 후에 찬송 23장[만 입이 내게 있으면]을 부를 수도 있다.)

 1) 예배 부름을 준비할 때: 예배 부름은 익숙한 노래나 그 주일의 성경 본문, 특별히 시편과 같은 자료들로부터 선택하여 주보나 OPH에 적을 수 있다. 예배 부름을 준비할 때 다음의 지침이 도움이 될 것이다: 1) 예배 부름은 부름과 응답의 구조를 가져야 한다. 2) 간단한 형식으로 준비하되 지시가 아니라 환호가 되도록 한다. 3) 창조적인 예배 부름이 되도록 찬송이나 복음송, 또는 합창곡 등을 같이 사용한다.

 2) 예배 부름을 노래로 진행할 때: 성가대나 찬양팀이 하나님의 임재를 향한 간구를 노래할 수도 있다. 그런 간구가 회중에 의해 불려질 수도 있다.

5. 기원(The Invocation of Gathering Prayer)

 예배 인도자가 드리는 기원은 일반 기도와는 성격과 내용이 다르다. 이 기원은 예배 속에 성령으로 임재하시는 하나님의 권능과 현존으로 예배에 임하는 성도들을 성결하게 해 달라는 것과 우리의 부족한 백성들이 드리는 예배를 통하여 영광을 받아 달라는 매우 짧은 기도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예배를 드리기 위한 기원의 내용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하나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드리는 예배를 받아주옵소서라는 기원이며, 다른 하나는 우리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성령께서 오셔서 우리를 정결하게 하옵소서라는 기원이다.

6. 경배찬송(Hymn of Praise)

 일반적으로 입례송이 없다면 경배찬양은 집례자의 인사나 예배 부름 다음에 위치한다. 이 때 회중이 부르는 경배찬송(Sursum Corda; "마음을 드높이는" 찬송)은 예배 부름에 대한 응답을 나타낸다. 경배찬송은 첫 번째의 찬양 행위로 참석자 모두를 더욱 하나로 묶는 역할을 한다. 이 찬양은 하나님에게 드리는 인사말로서 이해되기 때문에 이 찬양으로 우리는 하나님에게 인사와 경배할 뿐 아니라 교회력의 계절까지 적절하게 반영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우리의 개인적인 것들에 집중하기보다 찬양과 감사를 불러일으키는 하나님의 품성에 집중한다. 이 첫 찬송은 가사와 곡이 모두 강하고 쉽게 불려지는 곡으로 회중이 하나님에게로 "함께 나오는 것"을 돕는다.

 찬송 번호가 주보에나 찬송가 번호 판에 적혀있다면 사회자가 그 번호를 말할 필요는 없다. 부를 찬송을 말로 알리는 것은 예배의 흐름을 방해하는 경향이 있다. 부를 찬송은 충분한 전주와 주보를 참고로 간단히 알려질 수 있다. 잘 알려진 곡을 위한 전주는 전 곡을 다 연주할 필요는 없다. 회중이 부를 곡의 전주는 자유로운 형식으로 그 곡의 멜로디 부분을 소개하고 곡의 정신을 알릴 수 있다. 전주곡의 빠르기에 관한 두 가지 주장들이 있다. 한 쪽은 곡의 빠르기가 원래의 속도와 같아야 한다고 주장하며, 또 다른 한 쪽은 찬송의 속도를 자유롭게 바꿀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전주곡의 빠르기가 회중으로 하여금 함께 찬송을 부르게 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고 해도 찬송의 속도를 의심 없이 따를 때 우리는 찬송을 가장 잘 부른다.

7. 고백과 용서(Confession and Forgiveness)

 하나님이 계신 곳에서 예배자는 눈부시고 신비로운 빛에 의해 비춰진 자신이 의존적인 피조물, 창조주를 거슬리는 자녀, 상처받고 깨지고 죄 많은 인간임을 발견한다. 이 때 유일하게 적절한 반응은 전능하신 분을 거슬린 피조물로서의 겸손한 고백뿐이다. 그 이후에 하나님은 말씀을 들으려는 마음에 용서와 치료에 관한 위로의 말씀을 주신다. 이런 행위들이 한번 일어나면 기도(Opening Prayer)가 모임의 예배로부터 말씀을 듣는 예배에로 적절하게 넘어가도록 한다.

 모임의 예배에서 드리는 기도는 이 부분을 결론짓고 말씀의 예배에로 직접 인도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많은 교회들이 죄의 고백과 용서의 확인을 개회기도의 한 부분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이 기도 순서는 권면, 참회, 용서, 그리고 영광송으로 이어짐으로 길어지거나 복잡하여 말씀을 듣는 순서에로 자연스럽게 넘어가는데 방해가 될 수도 있다.

 1) 권면과 침묵회개(Call to & Silent Confession): 죄의 고백은 다음과 같은 순서들과 함께 연결성을 가진 예배 행위로 이해된다: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를 우리에게 확인시키는 말들을 근거로 고백하기를 권면하는 형식의 초청; 그 다음 예배자들에 의한 고백기도; 개인적 고백을 위한 침묵; 자비송; 용서의 확인; 그리고 찬양이나 영광송. 소리를 내어 함께 고백하는 기도에는 특정한 죄들을 누군가에게 책임을 전가하지 않고 개인적 실수들을 들어내지 않는 일반적인 내용이 가장 적합하다. 특정한 죄들은 우리가 예배를 드릴 때 완전히 깨달아진다고 생각할 수 있는 어떤 것이 아니라, 선포된 말씀을 통해 밝혀지는 어떤 것들이다. 그러므로 이 기도는 교회와 세계의 죄들에 대한 후회를 표현한다; 용서를 구한다; 그리고 새로운 생활로 인도하는 은혜를 요청한다. 개인적 죄들을 침묵으로 고백할 수도 있다. 고백 순서의 길이 때문에 예배자들이 앉아서 진행하고 찬양을 위해서는 일어선다. 각자가 약 1분 정도의 회개의 기도를 할 때는 침묵으로 진행하여 직접 하나님에게 고백하는데 어떤 소리(사회자나 악기연주까지도)도 방해가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좋다.

 매 주일 고백기도를 모임의 예배 순서에 넣을 필요는 없다. 고백기도가 참회하는 기분으로 하나님 앞으로 나가는데 적절하지만 꼭 그렇게 할 필요는 없다. 시편기자가 말하듯, "이 날은 주가 지으신 날일세; 그 날에 기뻐하고 즐거워하세." 또는 "사람이 네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 할 때에 내가 기뻐하였도다" (시편 122:1). 고백기도는 주일 예배의 다른 순서에서 진행할 수도 있다. 목회기도에서 그리고 설교 후에 고백 순서를 포함하거나 봉헌하기 전에 고백하고 바로 후에 서로에게 용서와 화해의 행위로 평화의 인사를 교환한다.

 참회의 계절인 대림절과 사순절에는 고백기도를 특별히 고백적인 행위와 함께 예배를 시작하는 것이 적절하다. 성탄절과 부활절(그 후의 주일)의 주된 분위기가 찬양임으로 고백은 다른 예배에 포함시킬 수도 있다.

 2) 자비를 구하는 기도(Kyrie): 자비를 구하는 기도 "끼리에"(Kyrie)는 다음과 같이 전통적으로 연도(連禱; litany)나 응답기도(responsive prayer)로 이루어졌다:

 인도자: 주여, 자비를 베푸소서.

 회 중: 그리스도여, 자비를 베푸소서.

 인도자: 주여, 자비를 베푸소서.

자비를 구하는 기도는 고대 유대인의 예배 형식에서 나왔다. 그 이름 Kyrie는 "주는 자비로우시다."를 의미하는 헬라어 "Kyrie eleison"의 줄인 말이다. 문둥병자들을 고치는 누가복음의 이야기에서 문둥병자들이 멀리 떨어져 서서 예수에게 "주여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라고 외친다(누가 17:12이하). 이 말은 "지금 우리를 구하소서"를 의미하는 아람어의 "Hosanna"와 비교된다. 끼리에는 4세기 예루살렘에서 주기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으며 교회를 통하여 중보기도의 간구에 대한 하나의 응답으로 급속히 퍼져나갔다. 이 기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에게 드려진 일반적인 기도라기보다는 예수에게 직접 드려진 특별한 기도이다. 그 기도는 다양하게 3회, 6회 그리고 9회 반복되는 형식의 기도이다.

 끼리에는 말로나 노래(자비송)로 표현할 수 있다. 자비송은 교회와 회중에 따라 다양하다. 집례자가 "자비를 구하는 기도"를 한 후 곧 이어 자비송을 부르도록 소개한다. 자비송은 성가대, 회중, 또는 독창이나 회중과 함께 교창으로 부를 수도 있다.

 3) 용서의 확인(Assurance of Pardon): 사회자와 회중이 기도를 하는 동안 머리를 숙이는 반면, 사죄의 확인을 위해서는 서로의 눈과 눈이 마주치는 것이 좋다. 사회자는 전체 회중을 대신하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용서를 선언한다. 확인의 말씀은 사회자와 회중이 함께 제창이나 대화 형식으로 표현할 수도 있다.

 예배에서 우리가 말하는 사죄의 확인은 우리가 먼저 행한 것에 따르는 조건적인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항상 우리의 의지보다 이전에 먼저 존재한다. 용서의 말씀은 기꺼이 용서하시려는 하나님의 의지에 관한 성경적 확인에 주로 의존하거나 기도의 형식이 될 수도 있다. 그 후에 회중이 용서받았음을 선언한다. 조건적인 은혜에 관한 한 예를 포함하여 용서에 관한 확신들은 많다: "그리스도 예수는 죄인들을 구하러 세상에 오셨습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죄를 자백하면 저[하나님]는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요일 1:9)." 또는 다른 가능성도 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형제 자매 여러분, 복음의 기쁜 소식을 믿으세요."

8. 찬양(Acts of Praise)

 고백기도와 용서의 확신 뒤에 나오는 찬양의 순서로는 영광송, 찬송, 또는 성가대의 찬양이 불려질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영광" 또는 "찬양"이라는 말들은 노래 가사에 나오는 단어들이었을 것이다. 이 때의 찬양으로는 하나님의 존귀와 영광을 찬양하는 (누가복음 2:14에 나오는 천사의 노래와 같은) 곡들이 회중에 의해 불려지거나 성가대의 영광송이나 찬양으로 대치할 수도 있다.

 특별한 예배에서는 이 찬양 순서 다음에 행사에 대한 설명이나 손님 소개가 진행될 수도 있을 것이다. 안수, 취임, 추대, 장립 등의 예식에서는 후보자를 소개하는 시간이다.

9. 기도 또는 목회기도(Opening Prayer; Prayer for Illumination)

 예배행위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모임으로부터 하나님이 계신 곳으로 이동하기 때문에 음악도 찬양으로 소리를 내는 목소리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주의 깊게 듣도록 만드는 쪽으로 변해야 한다. 이런 분위기 변화는 회중이 말씀 듣는 것을 돕는 묵상 분위기가 되어야 한다.

 말씀의 예배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들로 한 곳에 모인 예배 공동체의 일원이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다시 한번 경험하게 된다. 어떤 까다로운 문제들이 예배자들 각자를 갈라놓을 수 있다 하더라도 그것들은 하나님을 예배하려는 우리의 공동 목적에 의해 부차적인 것이 된다. 전자 올갠의 익숙한 소리와 삐걱거리는 의자, 설교단, 세례반, 성만찬상, 십자가와 같은 상징물들, 사회자와 다른 예배위원들의 말들과 우리의 찬송 소리, 위엄 있는 행동과 따뜻한 기도 등에 의해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연합된다. 이제 우리는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말씀에 초점을 모을 준비가 되어 있다.

 설교 전에 하는 기도는 성경봉독과 설교를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듣기 위해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열어주도록 간구하는 기도이다. 시편 19:14은 설교하기 전의 기도로 적절하다: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

말씀 듣는 예배(The Hearing)

 예배의 4중 구조에서 두 번째 부분인 "말씀 듣는 예배"는 첫 번째 부분인 "모이는 예배"와 매우 다르다. 이 두 번째 부분에서 예배는 하나님의 임재에로 들어가는 단계로부터 그의 임재 가운데 머무는 단계로 옮겨진다.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 로비(lobby; 현관의 홀)에서 그 분의 거실로 들어가는 것이다. 여기에서 사용되는 주된 예배행위는 대화로 하나님께서 설교(말씀)를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시며 그 다음 그 주신 말씀에 대해 우리가 응답한다. 하나님과 예배자 사이의 대화 내용은 성경 자체로부터 나온다.

 말씀의 예배가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이야기(말씀)를 선포하는 것이기 때문에 여기에서의 예배 구조는 모임의 예배에서와 같은 과정이나 여행이 아니라 말씀선포와 응답의 신학에 근거한 대화이다. 또한 이 구조는 마치 거실에서 나누는 주인과 손님들 사이의 대화처럼 하나님과 예배자 사이의 대화 나눔이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고 사람들이 응답한다. 그러므로 말씀의 예배는 수세기 동안 말씀을 선포하고 이에 응답하는 구조로 이루어졌다. 말씀 선포와 응답의 구조는 다음과 같이 짝을 이룬다:

말씀선포 응답

1. 구약성경 봉독 2. 시편송(또는 말씀송)

3. 서신서 봉독 4. 할렐루야송(또는 말씀송)

5. 복음서 봉독 6. 찬양(성가대)

7. 설교 8. 응답송(결단찬송 또는 사도신경)

 9. 응답기도(또는 묵상기도)

 10. 평화의 인사

(성만찬이 없을 때는 8, 9. 10은 응답/감사하는 예배 속에 포함된다)

 예배를 이루는 두 가지 중요한 부분들 중 첫 번째가 성경을 봉독하고 해석하는 것이다(두 번째 부분은 성만찬 예식이다). 고대 유대인 회당에서 진행된 안식일 예배는 성경, 시편, 성경에 대한 해석과 기도 형식을 가진 응답으로 구성되었다. 예수는 이런 예배 중의 하나에 참석하여 누가복음 4장에 나타나는 대로 성경을 읽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초대 기독교인들이 안식일 말씀 중심의 회당예배를 성만찬 중심의 주일예배와 결합시켰을 때, 각 예배가 본질적으로 손상되지 않고 보존되었다. 그러므로 이 두 가지 중 첫 번째를 말씀 예배라고 부른다.

 말씀 예배는 성경봉독, 성경을 해석하는 설교, 그리고 설교에 대한 응답을 포함한다. 우리에게 설교만이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사실은 성경봉독도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것이다. 그 두 순서 모두 하나님에게 찬양하고 섬기는 행위이다. 그 두 순서 모두에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말씀 예배는 성경봉독으로부터 설교에로 자연스럽게 움직인다. 성경봉독은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에게 표현하고 설교는 우리의 상황과 시대를 위해 그 읽은 성경을 해석한다. 전체 예배 순서에서 성경봉독이 중간에 위치하고 설교가 마지막에 위치하면 이와 같은 자연스런 예배의 흐름을 경험하지 못한다. 이 두 순서를 서로 멀리 위치시키는 것은 고속도로를 가운데 두고 두 쪽으로 나누어진 공원의 이 쪽에서 다른 반쪽을 즐기기 위해 복잡한 고속도로를 건너가는 것과 같을 수 있다. 이처럼 간격이 넓은 두 순서 사이에서 말씀을 해석하는 시간이 되면 이미 앞에서 읽은 성경말씀은 종종 잊혀지게 된다 (때로는 설교자가 노력함에도 불구하고). 성경봉독과 설교는 하나의 흐름을 형성할 수 있다. 그래서 예배 순서상 서로가 가까이 위치하는 것이 가장 좋다. 두 순서 모두 함께 우리의 삶을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하게 하며 그래서 하나님 자신의 성품과 의지가 우리에게 나타난다.

 예수 당시 회당 예배는 성경봉독과 설교 다음에 청중의 응답이 따랐다. 이와 비슷하게 오늘날 말씀의 예배는 응답 순서를 가질 수 있으며 들은 말씀에 대한 응답은 뒤에 진행되는 성만찬 예배에 대한 응답과 매우 다르다. 설교는 이미 우리의 삶에 관련된 문제들에 대해 응답을 요구하기 시작하였다. 그 응답은 다양한 형식을 취하여 (예로, 세례예식) 필히 설교와 대화를 해야하는 목회기도(설교자의)에서 결론이 난다. 이 기도는 우리가 들어 온 복음("기쁜 소식")의 빛에 비추어 우리의 상황을 보며 세계, 교회, 지역사회와 개인적인 요구들에 대한 우리의 관심을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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