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3-09-28 16:30
[1]예배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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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웹섬김이
조회 : 13,453  

 1. 예배에 대한 기초적인 이해

 

■ 들어가는 말

 

예배자가 예배에 대해 올바르게 이해하는 것을 의미 있는 예배를 드리게할 뿐만 아니라 예배자의 예배 자세를 결정하기 때문에 대단히 중요하다. 지나치게 개인주의적이며 감상주의적이거나 무속 신앙적인 예배의 현장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그러므로 예배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가질 때 감격적인 예배를 경험할 수 있으며 경건한 예배를 드릴 수 있다.

 

 

■ 예배의 용어적인 의미

 

1. 히브리어로 '예배하다'에 해당하는 단어는

'샤카(shachah)'와 '아바드(abadh)'인데 '샤카'는 엎드려 절하다 또는 경배하다라는 뜻이고(신 26:10 참조) '아바드'는 섬기다 또는 봉사하다(service)라는 뜻이다(출 8:1 참조). 즉 히브리인들에게 있어서 예배는 숭배, 순종, 봉사라는 개념을 가지고 있다.

 

2. 헬라어에서는 예배하다에 해당하는 단어는 셋이다.

(1) 프로스퀴네오(proskyneō): 존경의 표시로 "절하다" 또는 "굽혀 엎드리다", "입맞추다"라는 뜻으로, 지상의 통치자에게 신체적으로 굴복 또는 순종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2) 라트레이아(latreia): "하나님께 대한 봉사", "거룩한 예배의 수행" 등 이 단어는 예배에 있어 예배자의 봉사를 뜻하는데, 종으로서 자신의 상전을 섬겨야할 신분을 확인시켜 준다.

 

(3) 레이투르기아(leitourgia): 이는 예배의 의식과 관계 있는 말로 본래는 "백성을 위하여 일하다"의 뜻이나, 기독교에서는 성례전이나 특별한 의식이 행해질 때 예배자들이 믿음과 순종으로 하나님께 바치는 봉사라는 뜻을 가지게 되었다.

 

3. 요약

용어적인 의미에서 예배는 경배의 대상인 하나님께 대한 부복, 순종, 섬김, 봉사를 뜻한다.

 

 

■ 예배의 성경적인 의미

 

1. 구약성경- 구약성경에 나타난 이스라엘의 예배적 특징을 살펴보면,

(1) 한분이신 야웨 하나님께만 경배해야 한다(출 20:3).

(2)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은 어떠한 형상으로든지 표현해서는 안된다(출 20:4. 5).

(3) 예배에 대한 세심한 제의적 규례가 철저하였다.

(제사, 제사장, 장막에 대한 제사법)

(4) 제물을 가지고 제사를 드렸다(레 1-7장)

(5) 형식에만 치우친 제사를 드릴 때 예언자를 통해 호된 비판과 경고를 받았다(암 5:21-24).

 

2. 신약성경

(1) 예수님의 가르침(요 4:20-24)

① 특정 지역에서만 예배 드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요 4:21)

② 확실하게 아는(믿는) 하나님께 예배하라(요 4:22)

③ 하나님은 예배하는 자를 찾으신다(요 4:23)

④ □□ 과 □□으로 예배하라(요 4:24).

 

(2) 사도 바울의 가르침(롬 12:1-2)

① 몸으로 영적 예배를 드리라(롬 12:1-2).

②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제사를 드리라.

③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사를 드리라.

 

 

■ 예배의 신학적인 의미

 

1. 기독교 예배는 그 대상과 중심이 하나님이다.

그러므로 예배를 드리는 일차적인 목적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다(창 12:9). 은혜 받기 위해서 드리는 것은 예배에 대한 그릇된 이해에서 기인한다. 은혜 받기 위함은 예배의 동기나 예배의 결과일 수 있으나 예배의 목적일 수 없다. 은혜 받기 위함이 목적일 때 그것은 하나님 중심의 예배가 아니라 인간 위주의 예배이다. 은혜 받았기에 예배를 드리는 것이며 예배를 드리면 그 결과 하나님께서 예배자에게 은혜를 주시는 것이다.

 

2. 예배 시간에 하나님은 임재하신다.

예배는 예배 드리는 자와 예배를 받으시는 분이 함께 있을 때 가능하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예배 순서를 받으실 뿐 아니라 말씀으로 모든 예배자들에게 응답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예배 속에서 예배자와 인격적인 교제를 하고 영광을 받으신다.

 

3. 예배는 계시와 응답이 만나는 지점이다.

예배는 찾아오시는 하나님에 대한 예배자의 응답이다. 인간을 만드시고 타락한 죄인을 용서하시고 용서한 죄인과 만나 교제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돌림이 곧 예배이다. 인간을 찾아 오시는 하나님과 그 하나님을 사모하는 예배자의 만남이 예배요, 그 만남의 광장이 예배당이다.

 

4. 예배의 원동력은 성령이다.

예배의 현장에서 예배를 역동적으로 인도하는 것은 성령이시다. 하나님은 영이시기에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해야 한다. 성령의 역사가 없는 예배는 형식적인 의식에 불과하다. 성령의 교통과 역사 없이는 하나님과의 교제가 불가능하다.

 

5. 예배는 공동체적 행위이다.

예배의 공동체는 언제나 단수적인 개념보다는 복수적인 개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기독교 예배는 언제나 예배 공동체인 교회와의 관계에서 형성되었고 교회의 순수성은 예배의 순수성에서 보존되었다.

 

6. 예배는 순환 구조를 갖는다.

예배의 완성은 축도가 아니라 선교적인 삶 속으로 연장되며 선교적인 삶의 열매를 가지고 다시 예배 드리러 나오는 순환 구조를 갖는다. 예배자는 선교의 사명을 띠고 세상에 파송되며 그 선교의 열매를 가지고 다시금 하나님께 예배 드리게 되는 것이다.

 

 

■ 맺는 말

 

위에서 살펴 보았듯이 예배란 그리스도인들의 삶 중에서 가장 기본적인 직무로서 마음과 말과 행위와 물질을 통하여 창조주 하나님께 대한 경배와 감사와 찬양을 드리는 섬김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룩된 구원 사역에 대한 거듭된 발견으로 인한 감격적인 응답이 곧 예배이다. 그러므로 예배하는 자는 하나님이 인간을 위하여 무엇을 하셨으며 지금 무엇을 하고 계시는지를 깨닫고 앞으로 무엇을 하실 것인가를 기대해야 한다. 그럴 때 예배자의 미래가 오늘처럼 내일도 하나님에 의해 지켜질 것이기에 더욱 기쁨에 찬 감사와 평안의 찬미를 드릴 수 있으며 희망찬 내일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2. 예배의 정의 

 

 

들어가는 말

 

우리는 교회를 여러 각도에서 정의하고 있다. 종교개혁의 선봉 자였던 마틴 루터는 성도의 교제(communio sanctorum)로서의 교회를 말하고 있다. 또한 종교개혁 제 2세대인 요한 칼빈은 교회를 "하나님의 선택받은 성도들의 공동체"로서 또한 "그리스도의 몸"으로 정의하고 있다. 이러한 정의에 따라 칼빈은 참된 교회는 그리스도가 나타나시고 그의 살아있는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곳에 있다고 서술하고 있다. 이런 참된 교회에서 중요시 해야할 것은 바로 말씀과 성례전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므로 어디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발견하고 거기서 그 말씀이 순수하게 전파되고 들을 수 있으며 성례전이 그리스도의 지시대로 실행되는 곳에 하나님의 교회가 있다는 것을 의심할 수는 없다." 결국 교회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받으실만한 신령한 제사를 드리고, 그의 은혜의 놀라운 사역을 알리기 위해 부름 받은 하나님의 백성인 것이다(벧전 2:5-9). 이러한 하나님의 백성사이에는 이미 구약시대부터 예배라 불릴 수 있는 여러 가지 모습이 있어왔다. 본 입문서에서는 그리스도인들이 알아야 할 예배에 대한 기본적인 점들에 대해서 기술하여 보고자 한다.

 

 

 

예배의 의미

 

사전(事典)적인 의미

 

a. Worship

 

예배라는 말의 영어단어인 Worship은 원래 앵글로색스어의 weorthscipe, wyrthscipe (worth, weorth, wurth: 가치, 존경 + scipe: 어떤 상황 등을 유발시키다, 만들다)에서 유래하였는데 이것이 Worthship으로 되었다가 다시 Worship이란 단어로 변화되었다. 이 말의 단어적 의미는 "가치를 돌린다, 어떤 사람에게 가치 혹은 존경을 주다"라는 것이다. 이 말은 간혹 영국에서 여러 시장들이 연설할 때 사용하곤 하였다. 1549년부터 영국국교도의 결혼식에서 "나는 그대를 내 몸으로 존경(worship)합니?quot;라는 맹세를 했다. 이 경우에는 한 사람이 몸으로 다른 사람을 존경하고, 가치를 높인다는 의미이다. 이런 맹세를 한국에서는 하지를 않고 있고, 생략되어지고 있다. 어째든 이 worship라는 단어의 기본 개념은 "가치를 드린다, 혹은 존경을 표한다"라는 의미이다. 즉 인간이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은 그에게 최상의 가치를 돌린다는 것이다.

 

 

 

b. Gottesdienst

 

예배라는 말의 독일에 단어는 Gottesdienst인데 이 단어는 Gott와 Dienst의 합성어이다. 이 단어는 영어로 표현하려면 7개의 단어가 필요하다: Gods service and our service to God(하나님의 인간에 대한 은혜적 봉사와, 그리고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봉사). 그러므로 이 단어는 우리에게 주신 그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하나님께 봉사한다, 드린다, 헌신한다는 의미로 해석되어진다. 즉 이 단어는 예배의 다른 면인 인간의 하나님에 대한 응답, 곧 하나님의 역사에 대한 답변을 나타내고 있다. 곧 예배란 하나님의 역사 하심에 대한 인간의 헌신적인 대답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구약에서의 의미

 

a."굴복하는 것, 자신을 엎드리는 것

 

엎드린다, 따른다"는 뜻으로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완전히 복종해야할 존재임을 나타내는 말이다. 이 단어는 숭배, 순종, 봉사의 종교적 개념을 가지고 있다. 이 개념은 예배드리는 사람들이 마음과 몸을 가지고 최대한으로 존경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표현은 "머리를 숙여 경배했다"라든가 "엎드려 경배했다"라고 번역되어져 있다. 성서구절은 창 24:26, 출 4:31, 34:8, 역대하 29장 30절 등이다.

 

b. (에바드) "봉사, 섬긴다"는 뜻으로 모든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자주성을 버리고 그의 뜻을 따르며 섬기는 존재라는 의미이다. 영어의 Service가 여가서 유래되었다. 이사야 19장 21절 등에서 이 단어는 나타나고 있다.

 

이상의 2가지 어휘에서 나타나는 뜻은 다음과 같다: 모든 寬@?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그의 뜻을 따르며 섬겨야 할 존재라는 사실과, 경배와 복종의 생활이 예배 자들의 주요한 삶의 근본이 되어져야 한다는 사실이다.

 

신약에서의 의미

 

A. (고뉘페테오; kneel down) : 무릎을 꿇을 때나 완전히 부복하여 엎드렸을 때에 사용하는 말인데 겸손과 자기의 부족감과 존경과 복종과 숭배의 표현이다. 이 단어는 마태 17:17, 막 1:40, 10:17등에서 나타나고 있다.

 

B. (프로스퀴네인; worship of the idol, worship of polytheism) : 어원적인 의미는 우상의 형상에 절하는 것이다. 이 단어는 행 7:43 (...이것은 너희가 절하고자 하여 만든 형상이로다...)에 나타나고 있고 또한 예수님께서 유혹을 받으셨을 때 "주 너희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마태 4:10)" 라는 말씀 속에서 나타나고 있다. 낯선 구절이지만 요한계시록 5장 14절에서 24장로가 엎드려 경배했다는 구절에서도 사용되고 있다. 이 단어는 신약 안에서 24회 정도 사용되는 것으로 보아서 가장 보편적으로 헬라인들이 사용하였던 말이었다.

 

C. (라트레아; in religious usage Service of Worship of Gott) : 이 단어는 종교적으로 사용되어서 주로 신에 대한 예배숭배, 제사예배에 사용되었다. 원어적인 의미는 "삶, 일이나 보상, 일반적인 봉사"의 뜻인데 그 일에 대한 대가를 바라는 개념은 전혀 없고 노예의 일에 비하여 보다 포괄적인 뜻을 띠고 있다. 이것은 예수께서 "다만 그분만을 섬기라"고 유혹하는 사탄에게 최종적으로 선언할 때 사용된 단어이다. 이것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는 종으로서 자신의 상전만을 섬겨야 할 신분을 확신시키는데 사용되었다. 이 단어에서 성직자들을 가리켜 "주의 종"이라고 하는 표현의 언어적 근원을 찾아볼 수 있다.

 

D. (레이투르기아) : 이 단어의 기원은 일(ergon)과 사람(laos)의 합성어이다. 고대 그리스에서 예식은 도시와 국가의 유익을 위한 공적인 행사였다. 그 원리는 세금을 지불하는 것과 동일한 것이었다. 즉 국민은 세금을 내고 이에 대한 것으로서 국가는 봉사를 하는 것이었다. 바울은 로마위정자들을 "하나님의 일군(롬 13:6)"으로 말하고 그 스스로도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의 일군(롬 15:16)"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 단어는 크게 두 가지로 그 의미가 나뉘고 있다.

 

ㄱ. 제의적이고 제사적인 봉사, 경배를 의미(Of ritual and cultic services). 누가복음 1장 23절에서는 제사장의 직무와 관련되고 있다.

 

ㄴ. 대제사장적인 직무수행(Of the high priests service)에 관련되고 있다. 이 단어는 어원적으로 백성이나 국가에 대한 봉사와 관련하고 있다. 정치적 공동체에서의 봉사를 의미하는데 예배는 전체 회중의 일이요, 회중의 참여와 모인 회중에 의해서 행해진다는 뜻이다.

 

E. (호모로기아; confession as an action) : 어원적으로는 행위로서의 고백의 의미하고 있다. 그 예가 고후 9장 13절(the subjection of your confession to the gospel: 그리스도의 복음을 진실히 믿고 복종하는 것과... )에 나타나고 있다. 그 기본적인 뜻이 "똑같은 것을 말하거나 또는 어떤 말에 동의한다"는 뜻인데 일반적으로 많이 쓰인 것은 죄의 고백이란 의미이다. 자신의 죄를 시인하는 데서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의 인정상태로 나아간다. 이때의 고백은 하나님께 대한 찬양고백의 의미가 있다. 그 외에 선포와 기도의 의미를 이 단어는 포함하는데 예수 그리스도를 고백하는 것은 회중 안에서 하건 세계를 향하여 하건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다. "상호관계-상동관계(양쪽 동등한 관계)"로도 번역할 수 있는 이 단어는 다방면에서 하나님께 대한 숭배의 뜻으로 사용된 모든 용어 중 가장 포괄적이고 심각한 의미가 있다.

 

이상 성서에서 다루어진 예배에 관한 단어들의 공통점은 예배의 대상 앞에서 한 인간은 자신의 인간적인 요소를 다 버리고 그 대상의 뜻을 따른다는 것과 그를 경외하고 그 앞에 섬기는 존재라는 것이다.

 

 

 

 

 

3. 예배의 역사

 

예배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가는 참으로 이야기하기가 어렵다. 종교사의 관점에서 보면 예배의 개념은 신을 숭상하는 모든 형태와 관련되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문자가 있기 이전부터 분명히 예배라 불릴 수 있는 것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는 메소포타미아의 한 문헌을 보면 다음과 같은 문장을 볼 수 있다. 이 문장은 창조에 대한 기사 중에서 신의 어머니(G ttermuter) Nammu가 그의 아들 Enki에게 하는 이야기이다: "너 잠자는 아들아, 너는 잠을 극복하였었는데... 그러나 네가 만들어내었던 신들을 사람들이 맨몸으로 도전하고 ..... 신이 할 일을 할 수 있는 이러 저러한 자들을 창조한다. 그래서 부담감을 내던져 버릴 수 있도록 한다." 이 문장에서 보면 신들을 위한 예전적인 행위를 위해서 어떤 인간들이 정하여진다는 것이다. 고대의 이런 한 예전적 행위들은 주로 희생(Opfer)제물을 동반한 제사형식이었던 것을 우리는 자료를 통해서 알 수 있다.

 

기독교예배에 관해서는 우리는 그 근원을 성서에서 볼 수 있다. 여기서는 우선 성서시대에서 시작하여 종교개혁시대까지의 예배의 역사적 측면을 간략히 다루어 보고자한다.

 

 

 

구약시대

 

구약에 나타나는 예배의 역사를 여러 시대로 구분할 수 있겠으나 여기서는 크게 족장시대와 율법시대 그리고 포로기 이후 시대로 나누어 약술하고자 한다.

 

 

 

족장시대의 예배

 

우리는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족장과 그의 가족과 계약을 맺으셨음을 구약을 통해서 볼 수 있다. 그 예를 창세기 18장 19절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이는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말한 일을 이루려 함이니라".

 

가장 최초의 집단예배는 가족이나 부족의 대표 - 즉 가장이나 족장 -가 제사장 자격으로 활동했을 것으로 보인다. 기록에 의하면 초기의 예배 형태는 어떤 장소에서 우연히 하나님을 만나는 경험과 함께 제단을 쌓는 것이었는데, 그들이 신을 경험한 장소는 대개 돌이나 나무 또는 샘과 같은 자연물이었다. 그 예로 아브라함의 예배는 나무와 이삭이나 이스마엘의 예배는 우물이나 샘과, 그리고 야곱의 예배는 돌과 관계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들 족장은 예언자, 제사(祭祀), 왕으로 불리었고, 이들이 공적인 예배에서 사회를 담당하였고 예배를 집행하였다. 죤 칼빈은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향한 제단을 가슴속에 간직하고 어디든지 다녔다"라고 말하였듯이, 옛날 이스라엘의 족장들은 그 가족과 더불어 삶의 자리를 이동할 때마다 제단을 쌓고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일을 하였다. 이렇게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제단을 쌓고 예배를 드릴 때에 하나님께서 응답을 하셨음을 우리는 성서를 통해서 볼 수 있다.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그가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를 위하여 그 곳에 단을 쌓고..."(창 12장 7절),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고 그 나타나신 곳에서 제단을 쌓았다는 것은 예배에 있어서 하나님의 임재의 원리를 분명하게 해 주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임재가 없는 제단은 제단이 아니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 하나님은 자기를 찾으시는 자에게 오시고 예배 드리는 자 마음속에서, 그 자리에 임재 해 계시는 것이다.

 

이 족장시대의 예배에 있어서의 특징을 간략히 보면 먼저는 인간의 간절한 부르짖음이 있었고 여기에 하나님의 임재가 있었다는 것이다. 또한 예배의 제단에는 희생의 제물이 그 중심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위하여 3년 된 암소와 3년 된 암염소와 3년 된 수양과 산비들기와 집비둘기 새끼를 취할지니라. 아브람이 그 모든 것을 취하여 그 중간을 쪼개고 그 쪼갠 것을 마주 대하여 놓고..."(창 15장 9-10절). 그리고 이 시대의 예배는 언제나 가족 중심적이었다는 것을 우리는 성서를 통해 알 수 있다.

 

 

 

율법시대의 예배

 

모세에게 나타나셨던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서 성막을 통해 예배가 지속되게 하셨고, 또한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제의(cultus)와 도덕법(moral law)을 계시함으로써 자신을 나타내셨음을 볼 수 있다. 또한 솔로몬의 성전 건축을 통해서 점차적으로 예배가 성전중심으로 그 모습을 자리잡게 되었다. 율법시대의 예배는 가족적 예배의 성격을 계속 지속하기는 하였으나 공적 예배의 장소는 성전을 중심하여 거행된 것을 알 수 있다.

이새대의 공적 예배의 특색을 보면 다음과 같다.

 

⑴ 이스라엘 백성은 성전 이외에 어느 곳에서도 희생의 제물을 드리는 일은 허락되지 않았다.

 

⑵ 예배의 규정들이 세부적인 것까지 세칙화 되었다. 즉 성전을 시설하는 방법, 제사(祭司)의 예복, 희생제물의 종류와 방법 등이 자세하게 규정되고 있다. 이러한 것들을 우리는 레위기에서 자세하게 볼 수 있다.

 

⑶ 율법시대의 예배는 대리적, 위탁적이었다. 족장시대는 누구나 제단을 쌓을 수가 있었으나 이 시대의 예배는 제사(祭司)와 특히 레위인들 만이 예배의식을 집행할 수가 있었다. 12세 이상의 남자는 연 3회 -무교절, 맥추절, 장막절(참고, 출 2장 14-17절)-를 제외하고는 모두 성전에 나와서 예배를 드려야했었다.

 

⑷ 이 시대의 예배는 의식적(儀式的)이었다.

 

⑸ 제단과 기둥, 벽에 장식되어진 주제들과 또한 촛불과 진설병, 물두멍 및 놋바다 등을 통해서 예배는 가시적(可視的)이었으며 상징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또한 이 시대의 예배는 음악, 축송, 춤, 기도, 행렬, 단순한 설교, 선조들에 대한 회상, 고백 등과 함께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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