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3-08-22 21:35
칼 바르트의 생애와 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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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웹섬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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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rth, Karl] - 칼 바르트의 생애와 신학  

 

칼 바르트 생애 바르트는 1886년 스위스의 바젤에서 태어났다. 그는 1902년 견진례(장로교의 입교식)를 받기 전날 밤 신학자가 될 것을 결심하게 되었다. 그는 베른, 베를린, 튜빙겐, 말부르크 등의 대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하였으며 리츨 학파의 사상을 따르게 되었다. 베를린에서는 하르낙의 영향을 받았고, 말부르크에서는 리츨 학파의 신학자였던 빌헬름 헤르만의 제자가 되었다. 후에 그는 이 신학을 철저하게 거부함으로써 그의 스승들을 크게 당황시켰다. 바르트가 자유주의 신학과 급진적인 결별을 하게 된 데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었다.

 

그 중 두 가지가 특별히 주목할 만하다.

첫째, 바르트는 자펜빌의 사람들에게 매주 설교를 해야 하는 그의 일에서 자유주의 신학이 쓸모 없는 것임을 발견했다. 결과적으로 그는 심혈을 기울여 성경을 조심스럽게 연구해 나갔고 그것을 통하여, '성경 안에 이상한 새로운 세계'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성경 내용을 구성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사람들의 올바른 사상이 아니라,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의 지당하신 생각이다" 바르트는 그 동안 몸 담았던 자유주의 학파의 철학에서가 아니라, 성경에 있는 초월적 말씀 안에서 그의 교인들을 위한 적절한 메시지를 찾았던 것이다. 바르트를 자유주의 신학으로부터 등을 돌리게 한 두 번째 요인은 하나의 사건이었다.

 

1914년 8월 그는 카이저 빌헬름의 전쟁 정책을 지지하는 93인의 독일 지식인들이 낸 지지 성명을 읽었다. 그들 가운데 신앙적으로 존경하던 많은 신학 은사들이 거의 모두 포함되어 있었다. 그는 그들의 신학이 그렇게 쉽게 전쟁의 이데올로기에 타협될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인가 잘못된 것임에 틀림없다고 믿게 되었다. 그는 자신의 선생들에게 환멸을 느끼고 "그들의 윤리학, 교의학, 또 그들의 성경 주해, 역사 해석 등을 더 이상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는 그의 신학적 재능을 사용하여 자유주의 신학을 파괴하게 된다. 전쟁 중 바르트는 바울의 로마서에 대한 주석을 쓰는 작업에 착수했다.

 

1919년 주석이 출판되자 예상치 못했던 열광을 불러일으켰다. 카톨릭 신학자의 말에 의하면 "로마서 주석은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놀던 놀이터에 떨어진 폭탄과 같았다"고 말했다. 이 책에서 바르트는 성경 연구에 적용된 역사-비평 방법도 옳고 축자 영감도 옳다고 말하며 그 둘 가운데 선택을 하게 된다면 후자를 택할 것이라고 말했다(로마서 주석, 1). 바르트는 자유주의 신학이 사람들로 하여금 복음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케 하는, 즉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과 전혀 다른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케 하는, 즉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과 전혀 다른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기 때문에 인간들이 그들 스스로의 힘으로 얘기하거나 이해할 수 없는 메시지로 인정케 하기는커녕, 복음을 하나의 종교적인 메시지로 바꾸어 인간들에게 자신들이 신이라고 말하는 결과가 되었다고 비판했다.

 

바르트는 신학적 방법론에서 '아래로부터' 라는 인간 중심적 신학을 대신할 '위로부터'의 신학을 요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주석 전반을 통하여 하나님의 전적 타자성, 복음, 영원, 구원 등을 강조했다. 그의 [로마서]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대면에 대하여 강조하는 것 때문에 '변증법적 신학' 이라든지 '위기의 신학'이라는 꼬리표를 안겨 주었다. 변증법적이라는 말은 바르트를 헤겔보다는 키에르케골의 철학적 방법의 영역에 위치하도록 하였다. 하나님의 자기 계시의 역설적 진리들은 유한한 인간의 지성으로는 신앙의 도약을 통해서만 포용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바르트는 로마서 주석 제2판(1922)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가 만일 어떤 체계를 가지고 있다면, 키에르케골이 말했던 시간과 영원 사이의 '무한한 질적 차이'에 대한 인정과, 그 차이는 긍정적인 의미뿐 아니라 부정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보는 것에 국한되어 있다. 곧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당신은 땅 위에 있다.' 그러한 하나님과 그러한 인간의 관계, 그러한 인간과 그러한 하나님의 관계가 내가 보기에는 성경의 테마이며, 철학의 정수이다(로마서 주석, 10)." 로마서의 영향은 19세기 신학의 종말과 20세기 신학의 출발 연대를 1919년으로 이 책의 출간에 맞추게 되었다.

 

로마서 주석으로 인해 바르트는 1921년 독일 괴팅겐대학교의 신학 교수가 되었다. 그는 여기서 리츨주의자들과 갈등에 빠졌으며, 계속 신앙을 이성 위에 두는 글을 쓰며 자유주의적 개신교는 계몽주의 시대의 합리주의 문화에 굴복했다고 비난했다. 1925년 바르트는 뮌스터대학교로부터 교수직을 제의받았고 거기서 5년을 머물다가 1930년에는 본대학교로 옮겨갔다. 이 기간 동안 그의 저술에는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지난 10년 동안 언명해 오던 '아니오'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예'를 더 강조하기 시작했다. 바르트는 조직신학을 위한 첫 번째 시도를 포기했다. 그는 조직 신학이 실존주의 철학에 의하여 지나치게 부패되었다고 보았다. 그는 어떤 인간적 사상 체계에도 의존하지 않는 절대적으로 신학적이고 그러므로 전적으로 성경적인 신학을 창출하고 싶었다. 더욱이 그는 인간이 가지는 신앙의 주관성보다는 하나님의 계시의 객관성을 강조하기를 원했다.

 

1931년 바르트는 신학적 방법론에 관하여 [이해를 추구하는 신앙]으로 안셈에 관한 연구를 하였다. 신 존재에 대한 안셈의 존재론적 논증은 하나님을 신앙과는 별개로 입증하려 했던 시도가 아니라 신앙으로 이미 믿어진 바를 이성적으로 이해하려던 시도였다는 것이다. 바르트가 안셈에 대한 논문을 쓰기 전까지는 하나님과 인간이 만난다는 것에 대하여 부정성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이 책으로부터 시작하여 그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자기 계시라는 범위 안에서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가능하다는 것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모든 형태의 자연 신학, 곧 자연, 문화, 철학 등으로부터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얻으려 하는 시도에 대하여 그가 항상 반대하였다는 면에서 부정적인 요소는 남아 있었다. 그러나 이제 그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으로 하나님에 대한 진정한 지식이 얻어질 수 있다고 그 가능성을 강조하는 쪽으로 옮겨갔다. 안셈에 대한 책을 완성한 지 얼마 안 되어 바르트는 [교회교의학]이라는 조직 신학서의 집필 작업에 착수했다.

 

이 책은 그가 1968년에 죽기까지 13권까지 쓰다가 미완으로 끝났다. 이 책의 특징은 전통적 서설이나 철학적 서론 같은 것이 빠져 있다는 것이다. 바르트는 의식적으로 생략했는데, 진정한 신학은 하나님의 말씀만을 해설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바르트가 [교회교의학]에서 노력한 것은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과 인간 사이에 일종의 유비를 설정하고 계시다는 것이다. 바르트는 여기서 '믿음의 유비'를 '존재의 유비'라는 개념과 대비시켰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인간의 본성이나 경험 안에 내재되어 있는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나님이며 동시에 인간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것을 은혜로 허락하시기 때문에 비로소 가능한 것이다.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길과 진리 그리고 생명으로 볼(하나님의 은혜로 깨닫게 된다는 뜻)수도 있고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 진리는 입증할 수 없는 것이다. 사실 그리스도를 입증하려는 모든 시도는 우상 숭배에 가깝다.

 

그것은 하나님과 그의 계시를 인간 이성이라는 심판대로 불러내기 때문이다. 1930년 초 바르트는 반나치적인 독일 고백 교회에 깊이 참여했다. 1934년 그는 예수 그리스도만이 그리스도인들의 주님이라고 언명한 바르멘 선언(Barmen Declaration)을 작성하도록 도움으로 히틀러를 하나의 메시아적 위치로 높였던 독일 그리스도인들에 대하여 암암리 비판을 가했다. 바르트는 독일 그리스도인들이 나치 이데올로기를 받아들이는 것을 문화 기독교의 모습, 즉 자연 신학이 이를 수 있는 정상적인 결과로 보고, 국가 교회 내에 있으면서 나치에 대항했던 반체제 인사들을 격려했다. 그가 강의 서두에 히틀러에 대한 경례를 거부하고 히틀러에 대한 충성을 맹세하는 서약에 서명하기를 거부하자, 독일 정부는 1935년 6월 바르트를 본대학 교수직으로부터 즉각 해임하였다.

그는 바젤대학교에서 교수 자리를 부여받고 그가 태어난 도시로 돌아와 거기서 살면서 여생 동안 가르쳤다. 그의 생애 마지막 몇 년은 극히 어려운 시기였다. 건강의 악화와 더불어 보수 진보 양 진영의 가혹한 비난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세속신학과 사신신학이 등장하는 것을 보면서 당황스러워 어쩔 줄을 몰랐다. 단지 로만 카톨릭 교회의 변화들을 보면서 위로삼고 1968년 12월 9일 바젤의 자택에서 생을 마감했다. 바르트의 신학방법론 부정적인 면에서 바르트는 자연 신학이라면 어떠한 형태의 것이든지 피했다. "기독교의 자연 신학을 매우 정중하게 그리고 아주 겸손한 모습으로 계시를, 그들이 고안해 낸 새로운 형태의 그 무엇으로 개작한다.

 

그러나 그 모습이 그렇게 정중하고 관용적인 것 같아도, 또 스스로를 의식적으로 그리고 일관성 있게 굽히고 들어가는 것 같아도, 자연 신학은 이미 초전에 그것을 정복해 버렸다. 즉 계시를 비계시로 바꾸어 버린 것이다. 이것은 자연 신학이 흡수해서 길들여 놓은 계시에 대하여 어떻게 하는가를 보면 훨씬 분명하게 드러난다(교의학 II-1, 149-50)." 바르트는 고전적 로마 카톨릭 신학이나 개신교의 고전적 자유주의 신학 그리고 심지어 독일 그리스도인들의 나치주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개방성 등에서 어떻게 복음의 파괴가 일어났는가를 보여 주고자 했다. 바르트는 이렇게 결론을 맺고 있다. "문제의 논리는 우리가 자연 신학에 새끼 손가락 하나를 양보해 줄지라도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결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계시를 부정하는 것이다. 유일무이한 주인으로서 행세하려고 하지 않는 자연 신학이 있다면 그것은 자연 신학이 아니다. 그러므로 그것에서 여하한 자리라도 내어주는 것은, 비록 부지불식간에 한 일일지언정, 그것으로 하여금 독점적 주권을 휘두르도록 자신을 내어주는 것이 된다(교의학 II-1, 173)." 바르트의 입장은 "하나님의 말씀을 알 수 있는 가능성은 하나님의 말씀 외에는 어느 곳에도 있지 않다(교의학 I-1, 222)"는 것이다.

 

인간이 하나님에 대하여 준비되지 않았고 이성, 자연, 문화를 통하여 하나님에 대한 진정한 지식을 가질 수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의 주권적인 자유와 은혜 안에서 자신을 인간의 역사 속에 계시하셨고 그를 알 수 있는 기적이 가능하도록 하셨다. 바르트에 따르면, 역사 속에서 하나님이 계시된 유일한 사건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단순한 정보나 삶의 방식 같은 것이 아니라, 바로 자신을 계시하신다. 바르트의 이 말은 "영원하신 하나님은 다른 곳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알 수 있음(교의학 II-2, 190-91)"을 의미한다. 이것이 진실하다는 것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가?

 

바르트는 "신앙의 증거는 신앙의 선포에 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지식의 증거는 그것을 고백하는데 있다"고 답했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자기 계시적 진리라고 믿는 믿음은 스스로 그 진실성을 입증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에게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며 모든 것의 근거가 된다. 그러나 믿음은 다른 어떤 것에도 의거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말씀과 성경 바르트에게 기독교 신학의 근거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이 말씀은 세 가지 형태 쪼는 양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주된 형태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생애, 죽음 그리고 부활에 이르기까지의 그리고 그 사건들 주변에 있었던 하나님의 행동들을 망라하는 모든 역사이다. 이것은 계시 자체, 곧 복음 자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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