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3-08-22 21:26
[2]칼빈&웨슬리 신학의 구원론 비교
인쇄
 글쓴이 : 웹섬김이
조회 : 10,081  

Ⅲ.칼빈과 웨슬레의 구원관 이해

A.칼빈의 구원이해

   앞장에서 살펴본 바대로 칼빈의 여러 신학적 특징을 살폈으나 사실상 특징은 칼빈의 예정론 사상에 있다. 칼빈신학은 한마디로 하나님의 은총의 신학이라 할 수 있는데 칼빈의 은총의 표현은 예정론이라 하겠기 때문이다.1) 그는 은총을 회심사건에서 체험하였다. 칼빈신학에서 일관하여 나타나는 것은 하나님이 저항하는 자까지도 복종시키는 힘으로 나타난 은총의 사실이다. 칼빈은 바울 처럼 회심에서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체험하였고 그에 따라 그는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응답한 것이다.2)

 

 1.칼빈의 예정론

   (1)예정론의 위치

   칼빈이 예정론을 취급한 형식과 기독교강요의 구조에서 보면 예정론이 그의 신학적 중심적 가르침이라 볼 수 없다. 강요 초판에서는3) 예정론의 항목이 없고 단지 은총으로 선택받은 무리 공동체로서의 교회론 안에서 취급되었다.4)  예정론은 1537년"신앙의훈련" (Instruction in Faith) 의 제 13장 "선택과 예정"에서 처음 별도의 취급을 받았고 "제네바 신앙문답"5) 에서도 독립된 항목으로 다뤄졌다. 1539년에 강요2판에서는 전 17장 중 제 8장에서 예정을 논술하였고, 1559년 라틴어 기독교강요 결정판에서는 예정론을 제 3권의 성령론 속에 마지막 부분인 종말론과 소명론 사이에서 다뤘다.6)  구조와 형식으로 보면 예정론은 칼빈신학에서 기독교강요의 일부분으로 다루며 전체를 결정하는 예정론신학으로 취급된 것이 아니다.7)

   연구가들은 칼빈신학의 체계가 예정사상에 기초를 두었는가 하였으나 예정사상은 칼빈사상의 출발점이 아니고 그가 은총을 말할 때에 논리적으로 도달한 귀결점이다.8)  구조와 형식상 예정론은 일부분이지만 칼빈신학 전체에서 예정론의 정신과 성서의 근본적으로 이해된 주제, 하나님의 선한 뜻과 그의 자유를 표현하였으므로 칼빈신학에서의 예정론 위치는 부분이 아니라 전체적이라 하겠다. 칼빈신학은 하나님의 절대적 은총을 종합적으로 표현한 예정론 신학이다.9)

   (2)이중 예정

   이중예정론은 칼빈만이 했는 얘기는 아니다. 칼빈보다 1,000년이나 앞선 어거스틴(Augustinus)에 의해서 확립된 것인데 칼빈이 이를 더 체계화 시킨 것이다.10) 이중예정이란 유기(reprobation)를 포함한다. 그래서 이중예정이란 한다.11) 즉 어떤 사람은 구원으로 어떤 사람은 멸망으로 예정되었다는 것이다.

   칼빈은 복음이 모두에게 동일하게 전해지지 않고 받아들여지지도 않는 경험적 사실을 지적하면서 예정론을 언급한다.12) 예정론은 반대가 거세었기에 칼빈은 그의 주장을 방어하려고 오랜 연구, 발전시켜 그의 특유의 교리형태로까지 형성하여 결국 이중예정 이론에 도달했다.13)  하나님이 어떤 사람은 생명의 소망으로 받아들이고, 어떤 사람은 죽음으로 선고하는 것이 하나님의 영원한 선택에 의해 결정된다. 하나님의 심판은 다양성 가운데 놀라운 깊이가 드러난다.14)  이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인 예정에 대한 무지가 하나님의 영광을 훼손하며 참된 겸손을 무시하는 것이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행위를 완전 무시하고 자기 안에서 작정하신 자를 선택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은혜는 은혜가 되지 못한다고 한다.15)(롬11:5,6)

   칼빈은 이중교예정에 대한 많은 반대에 대해서 "선택이란 것 자체가 유기와 대치되지 않으면 존립되지 못한다"고 주장했다.16) 또한 예정 교리를 성경에서만 찾아야 하며 말씀이 허용하는 외에 예정에 대해 알려고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 한다.17)  아브라함과 이스라엘 민족의 선택은 하나님의 사랑에 의한 선택이며18) 하나님은 원하시는 자에게 은혜주심에 있어서 자유하시다는 것이다.19)

   이중예정 교리는 하나님의 뜻의 절대성을 적극 긍정하는 것이며,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함과 하나님의 은총의 철저성을 설명하는 것이다.20)

   (3)예정론과 예지

   칼빈은 예지를 예정의 원인으로 생각하는 자들을 적으로 규정하며 그들의 하챦은 이론도전을 비방한다.21) 경건한 사람은 하나님의 예정을 감히 부정하지 못한다고 일축한다.22) 그러면서도 그는 분명히 예지와 예정이 하나님 안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편 다른편에 종속시킴은 불합리하다고 본다, 하나님의 지식에는 과거,미래,없이 모두 현재로서 그의 앞에 놓여있는 것으로 실제 바라보고 식별하시는 것과 같은 현재이다.23)

   선택은 공로의 예지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 목적에서 오는 것이다.24) 예지의 근거로 칼빈은 엡1:4을 제시한다. 아담의 자손 전체를 통해서도 선택할 만한 가치가 되는 것은 하나도 없으므로 하나님은 생명에 참여토록 미리 정하신 자들을 위해 그리스도를 세우셨다.25) 하나님은 인간구원을 자신 안에서만 세우시며 우리 구원은 하나님의 자유한 사랑의 샘에서 나온 것이다.26)

   예정론은 선택과 함께 거부를 포함하며 거부, 영원한 포기도 행위에 근거하지 않고 하나님 뜻안에서 일어난다.27) 아담의 타락 역시 예정에 포함되어 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 계획에 의한 것이다.28)  하나님은 인간창조 이전에 첫사람의 타락을 예지하시고 아담안에서 그 자손들의 파멸을 예지하셨는데 그것은 그의 영원한 결단에 의한 규정이다.  이것은 무서운 예정이다.29)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인간의 구원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서 나오는 하나님 자신의 업적이다.30) 따라서 선택의 본래 동기는 하나님 자신 안에 있다.31)  칼빈은 철저히 인간공로의 예지를 배격하며 인간의 공로와 타협하지 않는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에 의한 예정을 강조한다.

 

   (4)예정과 자유의지

   칼빈은 어거스틴의 견해를 인용하여,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있으나 자유하지 못하며 의에 대해 자유하지만 죄에 대해서는 노예라 한다.32)  어거스틴은 자유의지를 이성과 의지의 기능으로 보며 은혜의 도움을 받아 선을 택하고 은혜가 없으면 악을 택하게 된다고 한다.33)  인간 의지는 성령이 없으면 속박된 것이고 속박자인 정욕에 예속되어 있으므로 자유하지 못하다.34)  인간은 자유의지의 남용으로 자신과 의지도 잃었고, 자유의지는 노예로 속박되어 의를 위해 무엇을 할 힘도 없다.35)  이제 자유의지는 옹호하는 것 자체가 그것을 짓밟는 것이며36) 타락한 인간의 어떤 공로도 하나님께 온전할 수 없고, 인간은 스스로 회복할 수 없는 부패한 존재이다.

   칼빈은 어거스틴의 주장을 인정하면서 자유의지가 전적 하나님의 은혜에 의존함을 주장하며 이는 교만한 자를 물리치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 주시는 하나님 앞에서 인간은 자신의 어떤 힘이나 의견을 주장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37) 인간은 타락으로 초자연적 은사는 박탈되고 자연적 은사는 부패되었으나 짐승과 구별되는 이성은 남아있다고 칼빈은 인정하나 그 이성과 자유의지가 있어도 인간은 선행을 못하며 오직 은혜로만 가능하다고 한다.38)

   자유의지는 선행하는 하나님의 은혜로 지도를 받는다.39)  인간의지는 은혜로 자유를 얻어 선으로 전향되며 계속 선하게 나아간다. 하나님의 뜻에만 절대의존하는 것이다.40)

   이상에서 자유의지는 하나님의 은혜로 선을 행하게 된다. 하나님의 절대은총의 표현인 예정에 의해 선택받은 자의 자유의지가 회복되며 은총으로만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5)그리스도안에서의 예정

   칼빈은 선택이 그리스도안에서만 이해되고 인정되어야만 함을 주장하지만, 영원한 하나님의 결단에 따르는 절대이중예정의 무서운 교리에 비해 그리스도안에서의 선택에 대해서는 적게 취급한다.  기독교강요 제24장 5절에서 이를 진술하는데, 이 때문에 예정론은 결정론적이고 숙명론적이며, 무자비한 교리라는 의심을 사고 적잖은 반론을 받게 되었다. 그것은 칼빈이 예정론을 은헤론이라 하면서도 실제 예정론을 그리스도론적으로 전개시키지 못한 때문이다.41)  그리고 적게 취급되었어도 그리스도안에서의 은총의 선택은 칼빈신학의 구조에서 매우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칼빈은 가장 명확한 예정과 은총의 예증이 그리스도이며 그는 미연의 행위나 신앙의 공로없이 그 인간성 안에 이 자격을 얻은 것이라42) 한다. 하나님의 자녀는 그가 저희를 본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택한 것이며, 저희를 사랑함도 그리스도께 의거해야만 한다. 따라서 선택을 생각할 때 반드시 비춰볼 거울은 그리스도이다.43) 그것은 그리스도가 그의 몸 안에서 하나님이 영원 전에 택한 자들을 그의 몸에 결합하는 인격이시므로,  또 아들에 속한 모든 사람들을 그 안에서 아들들로 인정되므로 그리스도와 교제에 있는 사람은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다는 확증을 갖는 것을44)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창조 이전에 은총으로 결단된 우리의 구원과 선택의 근거인 것이다.45) 선택은 오직 그리스도안에서만 이해되고 인식되어야 한다.46)

 

   (6)예정론이 의미하는 것

   칼빈은 강요 3권 제23장 6-13절에서 예정론의 반론들과 답변을 진술한다.  반론들은 선택론이 하나님을 폭군으로 만들고47) 인간에게서 죄와 책임을 빼앗고48) 하나님이 인간에게 편견되다는 견해로 인도하며49) 삶에 대한 정열을 파괴하고50) 모든 설교를 무의미하게 한다는 것51) 등이다.  칼빈은 이에대해 강력히 반박한다.

   칼빈은 궁극적인 하나님의 결단 속에 있는 예정의 근거가 성서의 증언을 받은 것으로 보고, 말씀에 복종해야 한다고 여겨 말씀에 대한 충성으로 선택론을 전개한 것이다.  그는 여기에서 결정적인 것을 의미하려고 하였다.52)  첫째 선택론은 복음적 은혜론의 궁극적이고 본질적인 표현으로 구원의 근거는 오직 하나님안에만 있다는 사실의 예리한 진술이다.53)  둘째, 선택론만이 구원의 확실성에 효과적인 현실을 준다. 우리 구원은 하나님의 순전한 사랑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54)

   이상에서 칼빈은 예정론을 신론이 아니라 성령론에서 다뤘는데 그것은 예정론이 신앙과 삶,희망,성도의 인내 등 성령의 활동과 하나님 은총에 의한 확증속에 있다는 고백이기 때문이다.55)

 

2.구원의 단계

   칼빈의 구원론은 예정론의 맥락에 놓여 있으므로 구원단계가 애매하다. 그러나 구원단계는 그리스도께서 완성하신 구원역사를 인간의 마음에 적용시키는 순서로써56) 하나님의 은총에 의한 것이므로 칼빈의 기독교강요에 나타난 것을 중심으로 연구한다.

   칼빈신학의 구원단계 근거는 롬9:29-30으로 정하시고,부르시고,의롭다하시고,영화롭게 하셨다는 것이다. 이 사상을 논리적을 발전시켜 칼빈신학에서 세부적으로 단계 순서를 규정하는데 ① 예정, ② 소명, ③ 중생, ④ 믿음, ⑤ 회개, ⑥ 칭의, ⑦ 성화, ⑧ 견인, (⑨ 영화)이다.57)

 

   (1)유효한 부름 (소명)

   칼빈의 구원단계가 예정론을 기초로 함으로 예정 다음에는 자연히 택한 자를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소명이 온다. 이 부르심은 선택의 증거이다.58)  하나님이 자신 안에 숨겨두었던 선택을 부르심으로 표명함은 하나님이 이 순서를 택하신 때문이다. 하나님이 자기에게 속한 자들을 이미 아들의 위치에 택하셨으나 칼빈은 부르심 받은 자만이 이 위대한 긍휼을 소유하게 된다고 본다.59)  하나님은 택한자들을 자녀로 하고 그들의 아버지가 되신다. 또 부르심으로 그들을 가족 가운데 받아들이고 자신을 그들에게 결합시켜 하나가 되게 하신다.  성서는 선택에 부르심을 결부시켜 말하면서 거기에는 하나님의 값없이 주시는 긍휼 외에 아무것도 구해서는 안됨을 충분히 시사해 준다.60) 부르심의 방법은 은혜에만 의존하는 것이다.

   부르심은 말씀의 들음과 성령의 조명이 있을 때 성립된다.61)  말씀의 빛은 값없이 비추이나 하나님의 긍휼은 모든 사람을 위함이 아니다. 그것은 버려진 자들은 하나님의 사랑의 증거를 거절하는 것이므로 무거운 심판이 그들에게 남아 있기 때문이며 하나님은 영광을 빛나게 하시려고 성령의 효과를 그들에게서 취해 가시기 때문이다.62)

 따라서 택한자들에게 내면적 부르심은 거짓없는 구원의 보증이 된다.63)  칼빈은 예정에 대한 연구를 오직 부르심으로 시작되고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끝나게하자고 주장한다.64)

   부르심은 보편적 소명과 특별소명이 있는데 보편적 소명은 하나님께서 이것으로 외적 말씀전파를 통해 모든 사람을 부르시지만 이것은 사망에 이르는 향기와 무거운 단죄의 기연이 되는 부르심이다. 특별소명은 하나님께서 신자에게만 주시는 것으로 전파된 말씀을 그들의 마음에 뿌리내리도록 성령의 조명을 실현하시는 경우이다. 때로는 일시적 조명을 받은 자도 이에 참여하게 되나 후에 그들은 배신의 연고로 버려지게 된다.65)

 

   (2)중 생

   소명과 중생은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66) 중생 없이는 전체 구원론은 업급할 수 없다.  중생은 하나님께서 인간이 의식하는 것과 무관하게 성령으로 직접 나게 하시는 것이다. 인간의 의식 밖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이뤄지므로 중생은 인간이 거절하거나 용납할 수 없다. 즉 하나님의 절대은총에 의한 예정, 불가항력적인 하나님의 주권에 의존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칼빈주의 5대 강령 중의 하나인 불가항력적 은혜를67) 이해해야 할 것이다.

   본질상 죽은 자연인이 생명을 되찾을 수 있음은 하나님께서 자신에 대한 지식으로 우리에게 비춰주실 때에만 가능하다. 그때 인간은 죽음에서 살아나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이다.68)  중생전의 모든 사람은 죄로 죽은 자들이기 때문이다.  중생은 그리스도의 은혜를 통해 이뤄지며 아담 안에서 타락하여 상실한 하나님의 의 가운데로 회복되는 것으로69) 말살된 하나님의 형상을70) 우리 속에 다시 회복시키는 것이 그 목적이다.71)

   엄밀한 의미로 중생은 새생명의 원리를 인간 속에 주시고 영혼의 지배적 성향을 거룩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행위로 정의할 수 있다. 중생은 인간의 근본적 변화로 전인격에 형향을 미친다. 이것은 성화와 같이 점진적 과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순간적으로 완성되어지는 것이다.72)  중생으로 그리스도는 우리 것이 되시며, 우리는 그의 몸에 접붙힘 받아 그의 영을 통해서 살고 그의 통치를 받게 된다.  또 중생은 그리스도의 죽음에 동참하므로 예사람이 그의 능력으로 십자가에서 못박혀 죄의 몸이 죽어 타락한 성품이 힘을 못쓰게 된 사건이다.  이후에야 우리는 그리스도와 교제하게 된다.73)  그것은 그리스도안에서 우리와 교제를 추구하시는데, 죄된 우리를 그냥 두지 않으시고 죄를 해결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이다.74)  이런 중생의 목표는 신자의 생활 중에 하나님의 의와 신자의 순종과의 조화 및 일치를 나타내는데 있고, 그들이 자녀로 영접되었음을 확신케 하는 것이다.75)

 

   (3)믿 음(신앙)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원의 은사가 우리에게 적용되어 우리가 구원에 참여하게 되는 것은 성령의 역사로, 우리가 복음을 믿게 조명하고 새로운 새피조물로 나게 하시며 부패와 더러움에서 씻어주심으로 가능한 것이다.76)  우리가 이를 얻고 구원을 소유함은 신앙에 의해서이고77) 그것은 바로 성령의 역사이며78) 하나님의 은사이다.

   칼빈은 신앙을 정의하여, "신앙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자비에 대한 확실한 인식이며 그것은 그리스도안에 있는 값없이 주시는 진리의 약속에 기초를 두고 있으며 성령을 통해 우리 심정 위에 인치시는 것이다." 79) 라고 한다.

   신앙의 대상은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다. 하나님은 신앙의 목적지이며 그리스도는 그 나아갈 길이다.80)  또 신앙은 근거가 의존하고 있는 하나님의 자비를 분명히 진술함에 있지 무조건적인 맹종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81)  신앙의 인식은 논증으로 가르쳐지는 것이 아니며, 사람에게 어느 정도 파악되고 어느 한도를 넘어서는 이해되지 않는 것을 납득하는 것이다.82)  신앙은 인간이해가 아니라 확실성에 의존하는 것이다.

   칼빈은 신앙의 열매를 화평으로 보며 신앙의 처음, 아주 적은 것이라도 마음속에 떨어지면 벌써 우리는 은혜로우신 하나님의 얼굴을 보기 시작하는 것이라 한다.  아무리 약한 신앙도 신앙으로서 확실성을 갖는 것이다.83)  그는 예정론에 입각하여, 신앙으로 신자는 궁극적 승리를 하며 불신앙이 신자의 마음을 결코 점령할 수 없다고 본다.84)  신앙으로 승리의 확실성은 신자가 그리스도와 한 몸되는데 있다.85)

 

   (4)회 개

   회개는 언제나 신앙에 따라서 올뿐만 아니라 신앙으로부터 나온다. 그것은 죄인이 사탄의 전제와 죄의 멍에와 죄악의 비참한 예속에서 해방되어 하나님 나라로 옮겨가기 위하여 죄사함과 번제가 복음의 선교를 통해 제물되었기 때문에 누구도 과거 잘못에서부터 정로로 돌아서지 않으면 복음의 은총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86)

   회개는 단순히 잘못을 뉘우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말씀을 따르려고 생을 돌이키는 것이며, 그것은 바르고 거짓없는 하나님 경외에서 나오고 육과 낡은 자아를 죽이며 영이 소생하는 데서 나타난다.87)  회개는 양면성이 있다.  죄를 인식하는 것과 그 받을 심판을 의식하고 영혼의 슬픔과 고통으로 낙담하는 것이 회개의 첫째 부분으로 통회라 부르는 것이며,  새로 사는 것은 신앙에서 일어나는 위로를 말하는데 이는 사람이 죄를 인식하므로 좌절되고 두려움에서 하나님의 자비를, 그리스도를 통해 오는 긍휼과 구원을 보게 되어 자신을 분기시켜 용기를 되찾아 사망에서 생명으로 되돌아가는 것을 말한다.88)  즉 회개는 죽이는 것과 새로 사는 것이 있는 것이다.

   칼빈은 회개를 율법적 회개와 복음적 회개의 두형태로 본다. 율법적 회개는 그것으로 죄인은 뼈아프게 생각하나 거기에 머물지 않고 더나아가 자기 상처를 위한 약으로, 공포에 대한 위로로 그리스도를 붙드는 것이다.89)

   회개와 신앙은 불가분리의 관계가 있으나 칼빈은 구분시킨다. 회개의 뜻은 신자의 생활이 전적으로 하나님께 전향하는 것이며, 그 전향은 하나님을 진심으로 경외할 때 일어난다.  그것은 옛사람과 육신이 죽는 것과 성령에 의해 새로 사는 것이다.90)  이 갱생은 순간의 사업이 아니라 죄와의 투쟁에 있어서 신자의 지상생활 중 계속하는 것이다.  비록 허물은 씻겼으나 죄의 사실이 정욕 가운데 남아 있기 때문이다.91)

   회개의 열매는 하나님께 대한 경건의 의무와 사람에게 대한 사랑의 의무이며,중생,성결,순결 등으로 나타나야 한다.92) 이것은 자기 생활을 하나님의 법에 표준하여 회개한 증거를 분명히 보이는 것으로 성령께서 지적하는 마음의 근원적 불결을 정죄하는 내적 회개에서부터 진정한 회개를 나타내는 외적회개로 나가는 것을 의미한다.93)

   이 회개는 인간이 하는 것 같으나, 하나님이 하게 해주셔야 가능하므로 회개 역시 하나님의 독자적 행동에 기인하는 것이다. 회개는 지정의의 요소를 포함해야 하며 회개의 지(知)는 죄를 깨닫는 것이다.94)  회개는 지적수준에서 정적 수준으로 향상되어야 하며 완숙한 회개는 의지적 단계까지 이르러야 한다. 이것은 과거지향적이 아니라 앞으로 삶을 결단하는 것이다.95)

 

   (5) 칭 의

   예정하사 택하고 부르신 자를 거듭나게 하시고 믿음을 주셔서 회개하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는 신앙은 칭의에서도 유효하다.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보내주심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무죄함을 통해 하나님과 화해되어 하나님을 심판주가 아니라 자비로운 아버지로 모시게 하심과 그리스도의 영으로 성화되어  삶의 결백과 순결을 향해 전심하게 하심인 것을 중생에서 언급하였는데, 칭의를 언급함은 하나님의긍휼로 값없이 의를 얻는 신앙이 선행을 결여하지 않으며 성도에게 선행이 무엇인가를 이해시키고,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파악하고 구원을 확립해 주는 기초가 됨을 강조하기 위함이다.96)

   칭의의 개념은 사람이 하나님의 심판에서 의로 간주되고 용납되는 것이다.97)  이 칭의 교리는 개신교 신학의출발점이며, 교리이기 이전에 체험이다.  칼빈은 이것을 강요에서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말한 다음 기독교의 제일되는 요지로 의인을 설명한다.98) 칭의는 의의 전가이며 그리스도를 통해 믿음으로 의롭게 되고 죄사함을 받음을 말한다.99)  칼빈은 스콜라주의의 선행 즉 행함으로 얻는 의를 반박하며, 거듭난 자의 선행도 의를 가져올 수 없고 오직 믿음으로만 의인됨을 주장한다.100) 칭의는 선행에 대한 값이 아니고 값없는 은혜인 것이다.101)  칭의는 근거가 우리 밖에 있다. 오직 그리스도안에서만 의롭기 때문이다.102) 이 칭의의 방법은 놀라운 것이며 그리스도의의로 옷입고, 심판대에서 두렵지 않으며, 인간 스스로는 정죄하지만 외부에서 의롭다함을 선고받는 것이다.103)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보시고 의롭다하시므로 칭의를 원하는 자는 자신 안에 있는 조그만 의도 거절하고 우리 밖에 있는 의 그리스도에게 도피해야만 한다.104)  이것으로 칼빈의 칭의는 "오직 우리 밖에" 즉 "그리스도안에서만" 발견될 수 있음을 지적하므로 중생교리만 아니라 칭의 교리에서도 계시신학을 추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105)

   칼빈은 유죄한 인간을 무죄하다고 하는 칭의가 법적관계로 전환이 이뤄짐을 강조한다.106) 곧 심판자 하나님이 유죄 고소받은 자를 용서하는 사법행위이다. 의인과정은 최고 재판자로 말미암은 은혜의 용서에서 이뤄지는 것이다.107)

   칭의의 목적은 하나님만이 의로우시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함이다.  자기 의를 자랑하는 자는 하나님의 영광을 훼손하는 것이다.108)  자기 의를 생각하는 한 양심의 평안은 있을 수 없고 값없는 하나님의 의가 선물로 부여될 때 양심의 평안을 얻을 수 있다.109)  칭의에서 신앙은 전혀 수동적이므로 우리가 갖고 있는 무엇으로도 하나님의 은혜를 얻을 수 없고 오직 그리스도에게서 우리에게 없는 의를 받는 것이다.110)

   이상에서 칭의는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 종의 형상을 취하시고 성부께 복종하신 그 순종을 믿음으로 그 의를 옷입는 죄인이 하나님께 의롭다고 인정받는 것이다. 그것은 무죄하기 때문이 아니고 은혜스러운 전가로 그리스도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6)성 화

   칭의의 상태는 하나님께 헌신된 성화의 생활을 요청한다. 성화란 죄인을 순결하게 하시며 죄인의 전성질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새롭게하여 선행하도록 하시는 성령의 계속적이고 은혜로운 작용이다.111)

   칼빈에 의하면,  죄용서와 성화 또는 의인과 중생은 우리가 그리스도와의 합일로 얻게 되는 최상의 두선물이다. 칼빈은 강요에서 하나님이 그리스도께 부여하신 은총과 그리스도가 가지는 모든 것을 우리의 것이 되게 하는 그리스도와의 합일112) 즉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내주는 신앙을 통해 성령께서 이루심인 것을 말한 뒤에 먼저 성화를 말하고 의인교리를 발전시키는 것은 칼빈의 특수한 면으로 성화가 바로 이해될 때 의인론이 잘 이해되기 때문이다.113)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합일되고 접붙임을 받는 것은 그의 영으로 사는 것이며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내주할 뿐아니라 우리 전존재를 소유함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와 합일되고 그의 영으로 사는 것이 성화의 삶이다.114)  칼빈은 단순히 회개를 성화로 설명하여 성화의 목표는 아담의 범죄로 더러워지고 상실된 하나님의 형상을 우리 안에 다시 회복하는 것이라 한다.115)

   그런데 칼빈은 재침례파가 주장하는 기독자의 완전 즉,  하나님의 자녀들은 무죄한 상태로 회복되었으므로 더 이상 육신의 정욕을 억제할 필요가 없고, 성령을 따라 행동하면 미로에 빠질 우려가 없다는 사상을 신랄하게 비판한다.116)  그는 신자들도 범죄하며,  그것은 중생한 사람 속에 나타남은 악의 부싯개가 있기 때문에 불같은 정욕이 솟아나와 범죄하도록 자극하는 것이라 한다.117)  칼빈은 어거스틴의 신자들의 죄악성에 대한 견해를 따르되,118)  어거스틴은 죄악성을 연약이라한 대신에 그는 그것을 죄라고 지적한다.119) 그는 신자들에게 죄는 지배력을 상실하였어도 내주한다고120) 보며, 우리는 성령의 성켤케 하심으로 정화되나 죽을 육체에 거하는 한 많은 죄와 연약으로 쌓여 있으므로 완전을 향해 꾸준히 전진하며 얽매이기 쉬운 죄를 날마다 대적해야 한다고121) 주장한다. 이처럼 칼빈은 순식간에 성화되는 것이 아니라 점진적 성화과정을 말하며 그동안에도 여전히 죄인이므로 평생 회개해야 함을 말한다.122)

   칼빈에 있어서 성화가 일어나는 근거는 하나님의 선택과 소명에 의존하며 그의 은총에 근거하지 우리 자신의 노력,선행,의에 의존하지 않는다.123)

 



 
 

일반형 뉴스형 사진형 Total 3,387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2587 거듭난 자의 6가지 징표 웹섬김이 08-16 11097
2586 한국교회 목사들은 무당인가? 웹섬김이 08-16 8914
2585 한국교회가 회복하여야 할 것들 웹섬김이 08-16 7718
2584 죽은 자를 위해서 세례[침례] 받을 수 있는가? 웹섬김이 08-16 12712
2583 부흥하는 개척교회 10가지 특징 웹섬김이 08-16 6736
2582 목회자들이 꼽는 개척교회의 실패이유 중 일… 웹섬김이 08-16 8272
2581 천주교의 성경73권과 개신교의 성경66권 웹섬김이 08-22 8853
2580 [1]로마서를 통해 본 바울의 율법관 웹섬김이 08-22 14192
2579 [2]로마서를 통해 본 바울의 율법관 웹섬김이 08-22 7794
2578 구약성경에 나오는 고대국가 바벨론 웹섬김이 08-22 12456
2577 [1]칼빈& 웨슬리 신학의 구원론 비교 웹섬김이 08-22 12577
2576 [2]칼빈&웨슬리 신학의 구원론 비교 웹섬김이 08-22 10082
2575 [3]칼빈&웨슬리 신학의 구원론 비교 웹섬김이 08-22 9255
2574 [4]칼빈&웨슬리 신학의 구원론 비교 웹섬김이 08-22 13691
2573 칼 바르트의 생애와 신학 웹섬김이 08-22 8776
2572 사탄의 용어 웹섬김이 08-25 7391
   51  52  53  54  55  56  57  58  59  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