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3-08-22 21:20
[2]로마서를 통해 본 바울의 율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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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웹섬김이
조회 : 7,794  
(3) 로마서 7:21-25

여기서 바울은 의욕하는 "나"와 행위하는 "나"와의 모순을 종합하고 그런 다음 은혜 아래 있는 그 자신의 현재 상태를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부르짖으면서 그 자신의 결론을 내린다. 
21절의 한 법을 깨달았다( )에서 는 다음 문장을 이끌면서 진술의 결론을 유도하는 단어이다. 여기서 바울이 의미하는 법은 무엇인가? 바울이 깨달은 법은 선을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다는 것이다( , ). 이것은 여기서 말하는 법은 '구약의 율법'이 아니라 '보편적인 규범' 내지 '원칙'을 의미하고 있음을 지적해 준다. 여기서 '선을 행하기를 원하는 것'( )은 22절의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는 것'과 상응하며, 16절의 '율법의 선한 것을 시인한다'는 구절과도 일치하는 것이다. 그런데 바울에 의하면 이러한 법을 즐거워하는( ) 자는 하나님의 율법 편에 서있는 '나'인데, 22절에서는 '속 사람'( )으로, 23절에서는 '마음'( )으로 표현하고 있다. 반면에 21절의 '악'( )은 23절의 '다른 법'( )과 상응하는데, 이것은 다름아닌 '죄의 법'( )이다. 그리고 이러한 법을 행하는 '나'는 '육'( )으로 표현되고 있다. 따라서 바울이 볼 때 23절은 본질적으로 14절과 일치하는데, 이는 23절의 '나를 사로잡아 온다'( )는 구절의 의미는 바로 14절의 '죄 아래 팔렸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24절에서는 죄 아래 팔린 '나'의 전 존재가 구원자를 갈망하게 된다( . ). 이것은 죄와 '나' 사이에 있는, 그리고 율법과 '나' 사이에 있는 분리가 가져오는 결과이다. 24절의 절규는 육의 속박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자 하는 모든 피조물의 탄식이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사망'( )은 14-23절에서 묘사된 죄의 사슬이다. 결국 지금까지의 논의를 통해 드러나는 것은 우리는 더 이상 우리 자신의 주인이 아니라는 사실과 그로 인해 오직 구원자와 그의 도움을 바랄 수 밖에 없는 인간의 타락의 깊이이다. 
한편, 24절의 절규는 비록 타락한 상태에 있지만 사람이 아직도 하나님을 바라고 있다는 사실을 증언해 준다. 따라서 바울은 25절 상반절을 통해서 죄의 세력 아래 있음으로 절망 가운데 있는 모든 인간들에게 일종의 기독교적 답변을 제시해 주고 있다. 이 단락을 중생 이후의 크리스챤의 경험으로 해석하는 학자들은 자신의 비참 때문에 절규하는 인간이 왜 감사의 탄사를 외치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적절하게 설명하지 못한다. 이 부분은 크리스챤이 궁극적으로 사망의 몸에서 구원받게 될 미래 종말론적인 소망에 대한 언급이라고 주장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는 잘못된 것이다. 왜냐하면 죄와 율법의 세력에서 현재적으로 해방받는 것이 롬6:11-8:10절의 시종일관한 관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의 문구는 죄의 권세 앞에서 아무런 소망없이 절망적 상황 아래 놓여 있는 모든 인간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8:1, ... )있는 성령의 현재적 구원을 통해서만 문제 해결을 받을 수 있다는 8장의 논의를 미리 앞서 보여줌으로써 유일한 소망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바울은 25절 상반절의 찬양을 통해 8장을 위한 분명한 도입문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런 다음 25절 하반절에서는 지금까지의 모든 논의를 총괄하면서 7장을 맺고 있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
결국 바울은 지금까지의 논의를 통해 율법에 대한 유대교적 교리와 관련하여 죄의 권세 아래 놓여 있는 인간을 도울 수 없는 율법의 총체적인 무능력을 분명하게 보여 준다. 바울은 여기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성령의 능력 밖에 있는 인간에 대한 모든 낙관적인 견해를 거부한다. 그는 이 사실을 그리스도인의 전망으로부터 유대인을 포함한 모든 자연인에 대한 심원한 인간학적 분석을 통하여 밝히고 있다. 바울에 따르면 인간은 누구도 율법을 통하여 그 자신을 의롭게 하거나 거룩하게 할 수 없다(3:20절). 오히려 인간은 율법을 통하여 죄인으로서의 자신의 구체적인 정체를 발견한다. 율법에 의해 의에 도달하려는 유대인의 얼마나 헛된 일인가를 바울은 죄와 죽음과 율법과의 상관관계를 통해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바울은 자신이 한때 유대인으로서 죄와 율법과 사망 아래 있었던 자신의 비참한 이전 상태에 관한 기독교적 고백을 통하여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아래서만(25절 상반절 참조) 참된 인간의 상태가 회복될 수 있음을 강조한다. 그리스도인의 자기 이해와 죄인으로서의 자기 이해는 너무나도 밀접하게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바울은 로마서의 중심장인 8장 바로 앞에 이 로마서 7장을 두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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