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3-08-16 13:46
죽은 자를 위해서 세례[침례] 받을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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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웹섬김이
조회 : 12,712  

죽은 자를 위해서 세례[침례] 받을 수 있는가?

본문: 고린도전서 15:29-34

 

 그렇지 아니하여 만일 죽은 자들이 결코 일어나지 아니한다면 죽은 자들을 대신하여 침례를 받는 자들이 무엇을 하겠느냐? 그러할진대 그들이 어찌하여 죽은 자들을 대신하여 沈禮를 받느냐? 또 우리가 어찌하여 매시간 위험 속에 서 있느냐?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주 안에서 가진바 너희로 인한 기쁨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내가 사람들의 방법대로 에베소에서 짐승들과 싸웠을진대 만일 죽은 자들이 일어나지 아니한다면 그것이 내게 무슨 유익을 주겠느냐? 내일 우리가 죽을 터이니 우리가 먹고 마시자. 속지 말라. 악한 사귐은 선한 습성을 부패시키느니라. 의에 대하여 깨어 있고 죄를 짓지 말라. 어떤 자들에게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없으므로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고 이 말을 하노라.[고전 15:29-34 킹제임스(흠정역]

 

 1.고린도전서 15장 29절을 어떻게 볼 것인가?

  회원분들 중에 몇 분이 가끔 이 난해 구절을 문의해 오는 경우가 있기에 오늘은 그 뜻을 분명히 알아 보고 싶어서 29장에 대한  해석을 시작하였습니다. 이 글을 해석하기 위해 조언을 구하였을 때 선뜻 해석하는일에 도움을 주신 선배님들의 가르침에 감사드립니다. 그러면 먼저 죽은자를 위하여 침례를 받을 수 있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죽은 자에게는 침례나 세례를 받는 일이 실제 있었거나 그것을 인정하는 성경은 없음으로 사람들마다 난해하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고린도전서 15장 29절외  다른 성경 절에 죽은 자들을 위하여 침례 또는 세례를 받을 수 있다고 해석한다면 사실 두 가지 심각한 문제가 발생합니다. 첫째는, 죽은 자들을 위하여 대리침례를 받을 수 있느냐 하는 것이고,  둘째는 죽은 자들에게도 두 번째 구원의 기회가 올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두 가지 모두 기독교 정통 교리에서는 인정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이 성경 구절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의 문제가 생깁니다.

 

,초대교회는 침례(沈禮)를 행하였기에 이하 침례로 표기합니다. 지금도 침례를 꼭 받아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2.해석방법

  성경은 다른 사람의 구원을 위하여 대신 浸禮를 받거나 어떤 공로를 끼쳐 주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로마카톧릭이나 이단들이  자기 주장이나 교주의 말을 성경보다 우선권을 두고 주장하는 경우는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 어디에도 죽은 사람을 대신하여 어떠한 것을 할찌라도 죽은 사람과 산 사람과의 관계는 이루어질 수도 없고 자기 자신부터 돌아 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죽은 사람을 위한 침례나 헌금이나 죽은 사람을 위해 (殉葬{순장}따라서 죽는일)을 대신할찌라도 죽은자와는 다른 길로 갈 것입니다.

 

 당시의 시각으로 보면... 그 당시 실제로 죽은 자들을 위해서 浸禮(침례)를 받은 사람들이 있었다는 주장입니다. 바울은 그 관습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단지 부활의 확실성을 증명하기 위하여 그 당시 사람들의 관습을 이용하여 설명하였던 것입니다. 지금 시대처럼 이단들이 행하던 사교적인 행위들을 보면서 이 시대에 신천지를 믿으면 육체가 죽지않고 영원히 산다는 헛소리하는 것과 같이 당시에도 邪敎(사교)들이 난립했음을 증명 해 줍니다. 즉 예수를 믿지않고 사교에서 원하는 행위적인 예식만 있으면 죽은자의 부활이 이루어진다고 가르치는 관습을 따르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방인만 그런 것이 아니고 예수를 믿는 자들의 공동체에도 파고 들어 왔다는 것입니다. 요즘 시대에는 교인들이 무당집이나 점집을 많이 찾는다고하니 가히 초대교회 시대나 지금이나 별반 차이가 없는 것 같습니다.

 

 바울은 그런 일을 보고 이렇게 말을했습니다. “너희들은 죽은 사람을 위하여 浸禮(침례)를 받고 있지?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면 너희들은 무엇 때문에 죽은 자를 위하여 浸禮를 받느냐? 그러므로 너희들도 부활을 확실히 믿고 있는 것이 아니냐?"  당시에 죽은자가 부활 하려면 산 가족이 대신 沈禮를 받아야 부활 할 수 있다고 하는 사교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런 설명의 난점은 그 당시 고린도에 그런 관습이 있었다는 어떤 증거도 확보할 수 없고, 단지 전해 내려오는 구전이 있을 뿐 입니다. 그런까닭에 부활의 확실성을 드러 내려는 목적으로 바울이 그런 잘못된 관습을 예로 들어 부활을 설명 할 이유는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고린도전서 15장 33절에 "속지 말라. 악한 사귐은 선한 습성을 부패시키느니라." 라는 당시에 유명한 명언을 인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그리스 작가 "메난데리이"의 명언이고 그리스, 로마인, 유대인등이 잘 아는 말이었다고 합니다. 사도바울은 그 때 그 시절에 그 지방이나 복음 전하는 곳에 문제를 들어서 알기쉽게 설명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고린도 지역에서 있었던 일을 2천년이 지난 시각에서 보려니 자연적으로 난해구절이 되었습니다. 난해(難解) 어려울-난  풀-해 성경은 지식으로 푸는 것이 아니고 말씀을 보고 성령님을 통해 그 때 그 상황으로 가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을 나누어서 쪽으로 보지말고 통(通)으로 보는 것입니다. 신천지가 이 시대의 이단(異端)인것 같이 고린도교회 시대의 이단들이 지금까지 이어오지 못하고 소멸하여 난해구절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3. 산 사람의 부활

  요한복음 11장 25절-26절 말씀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하셨습니다. 부활의 문제는 살아서 예수님을 믿으면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린도전서 15장의 부활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난해구절인 29절 말씀은 沈禮를 받아야 부활이 된다는 것이 아니고, 너희들도 부활을 안 믿는다고 하지만 사실은 부활를 믿고 있지 않는냐?라고 사도바울이 그 시대 사람들에게 반문하는 말씀입니다.

 

 

고린도전서 10장 1절4절에는 "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다 같은 신령한 식물을 먹으며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하신 말씀은 꼭  침례를 받아야한다는 문제는 아닌 것 입니다. 믿음으로 세례나 침례가 문제는 아닙니다. 고린도전서 10장2절에는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침례)를 받고"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홍해 바다를 지날 때 세례나 침례를 행한 것으로 인정한다는 것입니다. 실제 상황에서 물에 빠진 것은 아니지만 그 물을 건넌 것을 집단 세례로 인정하셨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방식은 헬라어를 살펴보는 것입니다. 죽은 자를 위하여 沈禮를 받는다. 라는 “위하여”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휘폐르(huper)인데 이 전치사는 “위하여, 대신하여, 때문에, 등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만일 휘페르를 ”대신하여“라고 해석하면 죽은 사람을 위하여 침례 받는 것이 되어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때문에“라고 해석하면 해결의 실마리가 풀립니다. 즉 이 문장을 ”때문에“를 사용하여 다시 해석하면 다음과 같은 뜻이 됩니다.”죽은 자들 때문에 침례를 받은 자들 즉 죽은 자들을 다시 만나고 싶은 이유 때문에 침례를 받는 자들이 만일 부활이 없다면 그 소망이 무엇이 되겠느냐? 헛된 것이 되지 않겠느냐“ 라는 것입니다.

 

 4.끝맺음의 말

  성경에는 죽은 자들은 이미 영원히 운명이 결정되었고 다시 회개 할 기회가 없다고 선언하기 때문에 죽은 자를 대신하여 하는 어떤 행위도 인정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고린도전서 15장 성경구절에서 “죽은 자를 위하여”라는 말은 “죽은 자 때문에” 혹은 “죽은 자들을 다시 만나려는 소망 때문에”로 해석해야 합니다. 또한 그 시대 당시 상황의 이단들의 문제는 지금도 흔적이 남아 있어서 로마카톧릭은 예식을 중요시 하는 것을 볼 수있습니다. 그곳은 아직도 죽은 자를 위한 기도나 헌금, 예식등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은 난해가 없습니다. 다만 그 말씀을 쓴 배경을 모를 뿐입니다.

 

 지금의 세례의식은 전도하다가 물이 없는 곳에서 침례를 베풀 수 없는 상황에서 발전 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다른 배경은 전쟁 시기에 집단으로 세례를 주기 위한 것과 사막지역에서 발전하였다고 합니다. 세례나 침례도 중요하지만 실상은 믿음이 가장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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