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4-08-31 15:19
[1]이슬람교의 기원과 실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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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웹섬김이
조회 : 6,967  

이슬람교 기원과 실상을 밝힌다 

글 / 노 우 호

주후 64년부터 311년까지 박해시대에 오히려 순수했던 기독교가 311년 기독교에 대한 박해가 끝나고 바로 2년 후 313년 콘스탄니누스 황제에 의하여 교회의 자유가 선포되자 지하에 있다가 지상으로 올라오면서 오래지 않아 교회는 교리적인 논쟁에 휘말리게 되었다.

 


325년 니케아 공의회 : 주후 325년 비두니아 주(州) 니케아에서 동서 교회가 함께 모여 개최한 제1차 니케아 공의회 : 325년 로마황제 콘스탄티누스 1세가 소집하였다. 회의의 동기는 아리우스 논쟁 즉, 그리스도의 신성(神性)을 부정하는 아리우스파(派)를 이단(異端)으로 단죄하여 분열된 교회를 통일시키고, 로마제국의 안정을 이루기 위한 것이었다.

 

 

 

참석자는 318명이라고 하나 분명치 않다. 공의회에서는 2편의 신경(信經)이 제출되었는데, 아리우스파인 니코메디아의 유세비우스가 제출한 것은 폐기되고, 팔레스티나 공동체의 ‘세례신경’을 기초로 ‘동질(同質)’이라는 용어를 보완한 가이사랴의 유세비우스 신경이 채택되어 이것을 기준으로 하여 ‘니케아신경’이 공포되었다. 그 결과 4명의 아리우스파가 파문(破門), 유형당했다. 이 밖에도 부활제의 시기, 이단자에 대한 세례, 속죄 및 사제제도 등을 제정, 결의하였다.

 


381년 콘스탄티노플 공의회 : 고대 그리스도교회의 공의회 가운데 콘스탄티노플(현, 이스탄불)에서 개최된 공의회. 381년 제2회 세계 공의회 : 테오도시우스 1세가 소집, 안티오키아의 주교 멜리티우스가 주재했다. 150명의 동방정교회 정통파와 36명의 이단 주교들이 참가했다. 삼위일체의 교의(敎義)에 관하여 논의되었으며, 특히 성령의 신성함을 옹호하였다. 325년에 있었던 니케아공의회의 합의를 공인하였다.

 

 

 

397년 카르타고 회의 397년 카르타고에서 열린 교회회의 오늘날에는 성경 가운데서 최초부터 교회가 “성령(聖靈)의 감동으로 쓰여진 책”으로 인정한 것을 ‘제1정경(Libri Prodocanonci)’이라고 하고, 일부 교회(특히 프로테스탄트)에서는 정경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을 ‘제2정경(Libri Deuterocanonci)’이라고 한다.

 

 

 

구약성서의 《토비트》 《유딧》 등 7서와 《에스델서》의 일부분 등 몇몇 부분이 그러한데, 프로테스탄트 측에서는 이것들은 ‘외경(外經)’으로 여기는 데 반하여, 가톨릭에서는 ‘제2정경’(7권)이라 하여 이것들도 정경으로 삼고 있다.

 

 

 

구약성서의 정경이 지금의 39권(원전에서는 24권)으로 정해진 것은 BC 90년경의 야무니야 회의에서였고, 신약성서의 정경이 현재의 것처럼 27권으로 결정된 것은 397년 카르타고에서 열린 교회회의에서 였다. 즉 신 ·구약성서를 말하며 정전(正典)이라고도 한다. 본래 그리스어(語)의 kanon에서 유래한 말로서, 라틴어 ‘카논’은 ‘표준 ·척도 ·모델’을 뜻한다. 사도 바울로는 이 말을 ‘인간행위의 기준’이라는 뜻으로 썼으며(갈라 6:16), 초대 교회의 교부(敎父)들은 ‘그리스도 교도의 신앙과 행동의 모범’이라는 뜻으로 썼다.

 


431년 에페소 공의회 : 431년 소아시아 서해안의 에페소스(에페소)에서 개최된 종교회의. 그리스도의 품격(品格)을 둘러싼 논란이 신학문제의 초점이 되어 테오도시우스 2세가 소집한 3차 공의회이다. 안티오키아학파 출신의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總大主敎) 네스토리우스는 그리스도의 인성(人性)을 강조하는 학파의 입장에서 마리아에 대한 ‘신(神)의 어머니’라는 칭호를 부정하였다.

 

 

 

그리스도의 신성(神性)을 강조하는 알렉산드리아학파가 이에 이견을 제시하자, 네스토리우스가 황제 테오도시우스 2세에게 강요하여 이 공의회가 개최되었다. 네스토리우스의 주장에 동조하는 안티오키아의 요한을 추종하는 시리아의 주교들과 교황 셀레스티누스 1세측의 대표자들의 참석을 기다리지 않고, 에페소스의 주교 멤논의 지지를 받는, 네스토리우스의 적수인 알렉산드리아의 키릴루스가 그들의 도착 전에 개회를 하였다. 그

 

 

 

래서 네스토리우스는 콘스탄티노플 총주교직에서 해임되고, 파문(破門)을 당하였으며 그의 교구는 단죄되었다. 그리고 이 회의에서 ‘니케아 신경(信經)’이 재확인되었다. 결국은 이 에베소에서 마리아를 그리스도 예수의 어머니가 아니라 하나님의 어머니로 결정하면서 결국은 그리스도교에서 변질되어 로마교 혹은 마리아교로 변질될 기초를 만들었다. 마리아를 신격화 하여 하나님의 어머니로 재확인한 것은 그로부터 1500년이 지나 1931년에 확정 발표했다. (이 에베소 회의는 도적회의 혹은 날치기 회의로 불려지게 되었고 교리적으로 변질을 가져와 오늘날 로만 카톨릭이란 초대형 이단이 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카톨릭을 기독교로 부를 수가 없다.)

 


이렇게 타락하고 변질된 카톨릭 교회가 항상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은 예루살렘을 탈환하려는 것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십자군전쟁 때부터 예루살렘을 탈환하려 했던 것으로 알고 있지만 실상은 3세기 말부터 이미 예루살렘을 탈환하기 위하여 방법을 찾고 있었다고 전한다.
한편 박해 중에서도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목숨을 걸고 복음을 전하면서 교회는 지하에서도 성장하고 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리스도인들을 참소하여 괴롭혔던 사람들은 유대인들과 로마인들이었다.

 

 

 

사탄은 매우 교활하게 유대인들을 통하여 그리스도인들을 참소하고 로마를 통하여 기독교를 심하게 박해하는 한편 기독교를 변질시키는 작업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영지주의라는 이단을 만들어 교회를 심히 혼란스럽게 했었다. 그러한 방법이 통하지 않게 되자 그 다음 방법으로 교회를 지상을 나오게 하여 교리 논쟁으로 싸우게 만들고 그리고는 변질되게 만들었다.

 


여기까지는 교회사를 공부하신 분들이면 누구나 다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내용이다. 그러나 사탄은 그보다 훨씬 강력한 음모를 꾸미고 있었는데 이 사실은 지금까지 교회에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

 


변질된 기독교는 마침내 로마교 즉 예수님보다는 마리아를 더 숭배하는 종교로 변질되어갔고 이들이 로마에 있으면 그야말로 로마교가 되고 말 것이 분명해지자 어떻게 해서든지 예루살렘을 탈환하여 교황청을 예루살렘으로 옮겨서 세계 모든 종교의 통합을 이루려고 준비하고 있었다.

 


그 목표는 로마 교황으로 하여금 모든 이방종교들을 총체적으로 관장하는 승원장 즉 법황(法皇)이 되는 것이었다. 
이러한 목적으로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북아프리카 지방에 수도원들을 세우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이 수도원이란 장자 성직자가 될 사람들이 수도하는 곳으로 순진하게 알고 있지만 사실은 로마교가 전 세계 지배를 위하여 만들어 낸 로마교회의 정보 수집을 위한 지부였다.

 


한편 4세기 중반에 북아프리카에 성자가 있다는 소문이 전파되어 나갔는데 그 사람이 바로 어거스틴이었다. 그는 로마 교회로부터 그 공로를 인정받아 성자로 불려졌다. 그는 저 유명한 참회록(Confession)이란 책과 신의 도성(The City of God)이란 책을 쓴 사람이다.

 


어거스틴의 탁월한 학문과 노력에도 아랍의 부족들은 좀처럼 잘 개종하지 않았다. 어거스틴이 죽고 나자 로마는 다른 방법을 준비하고 이를 추진해 나갔다. 당시에 로마교에서는 큰 도시에서 동떨어진 작은 부족들의 마을에 스파이들을 침투시켜서 이상한 예언들을 하고 다니게 했다.

 

 

 

그 예언이라 다름이 아니라 장차 한 위대한 지도자가 나타나 아랍의 부족들을 하나로 통일시켜서 서로 싸우지 않는 나라를 건설할 것이라고 예언을 하고 다니게 했다. 이러한 예언들은 입에서 입으로 전파되어갔다. 그러한 예언이 퍼져 나간 후로는 부족들 간에 전쟁이 있을 때 마다 언제 그러한 지도자가 나타날 것인지 고대하게 되었다.

 


마침내 주후 570년경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에서 한 사람이 태어났는데 그가 바로 마호메드였다.
후일에 그는 마침내 세계 역사를 바꾸어 놓은 인물이 되었다.

 


이슬람교가 출발한 아라비아 땅은 그 옛날 아브라함과 하갈 사이에서 태어난 이스마엘 자손들이 살아온 땅이었다. 그들이 믿고 있는 전설은 하갈과 이스마엘이 사라의 핍박을 피하여 아브라함의 집을 나온 후에 목이 말라 부르짖었더니 하나님께서 우묵한 것을 터치시니 거기서 물이 나와서 마시고 소생했다는 성경의 이야기를 따라 한 우물 곁에다 신의 집이라는 집을 지었다고 전한다. 오늘날 그 곳에는 카바신전이라는 신전이 세워져 있고 해마다 수백만의 순례자들이 찾는 곳으로 이슬람교의 최대 성지라 불려진다.

 


옛날부터 전해지는 전설에 의하면 그 우물을 차지하기 위하여 암투가 벌어졌던 것으로 보이는 이야기가 있다. 오랫동안 그 우물을 지켜 오던 사람들은 예멘의 부족들 중에 예루마이트 부족이었는데 이들을 몰아내고 우물을 차지하려는 세력들이 몰려오자 예루마이트 부족들은 그 동안 그 우물신전에 예배하려고 왔던 사람들이 가져다 신에게 바쳤던 보물들을 어떤 우물 속에 파 묻어 놓고 모래로 덮어서 아무도 찾을 수 없게 만들어 버렸다고 한다.

 


예루마이트 족을 몰아내고 그 우물신전을 차지한 사람들은 쿠자이트 부족이었다. 이들이 들어 와서 섬겼던 신은 모압 사람들이 섬겼던 후발(훗날 이 후발신이 변하여 알라가 되었다)이라는 신을 섬겼다.

 


그 후로도 이 우물을 차지하려는 도전은 계속되었고 마침내 이스마엘 직계자손 중에 쿠라이슈 부족이 존경하는 한 인물이 나타났는데 그 이름이 압둘 무타리부라는 사람이었다. 이 무타리부는 마호메드의 할아버지 되는 사람이었다. 그는 메카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다.

 


어느날 압둘 무타리부는 환상을 보았는데 에루마이트 부족이 보물들을 감춘 그 우물의 위치를 가르치는 계시적 환상을 보았다고 전한다. 어떤 천사가 와서 계시하기를 "핏자국, 배설물, 개미알과 모이를 쪼는 새를 찾으라"는 계시를 받았다고 전한다.

 


마침내 압둘 무타리부는 쿠라이슈 부족들이 희생제사를 드리는 두 우상이 있는 자리라는 것을 깨달아서 그 보물을 감추어 둔 우물을 찾아내게 되었다. 그로부터 그는 메가의 영웅이 되었다.

 


이 압둘 무타리부는 신에게 기도하기를 만약 신께서 열 명의 아들을 주신다면 그 중에 한 아들을 카바에서 희생제물로 바치겠다고 서원을 했다. 수년 후에 그 응답으로 그는 열 명의 아들을 얻게 되었고 그 중에 압둘라라는 막내아들이 영리하고 총명하여 그를 특별히 사랑했다고 한다.

 


신에게 서원을 지켜야 할 때가 되자 그는 열 명의 아들을 데리고 후발신에게 갔는데 놀랍게도 제일 사랑하는 막내아들 압둘라를 바치는 것이었다. 그러자 압둘라의 어머니와 형들이 이를 적극적으로 반대하게 되었다. 그래서 어찌할 바를 알아 보기 위하여 무타리부가 한 무당을 찾아가서 물었다.

 


그랬더니 그 무당의 신탁은 아들 대신에 약대를 바치면 아들이 속량될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무타리부는 약대 100 마리를 바치고 아들을 속량 해 내었다. 이렇게 약대 100마리로 속량 된 사람이 바로 마호메드의 아버지가 되는 압둘라였다.

 


그 압둘라는 주후 569년에 아미나라는 여성과 결혼하였다. 압둘라는 아미나와 결혼하고 오래지 않아서 대상들과 함께 상업차 길을 떠났는데 그는 도중에 병을 얻어서 돌아오지 못했고 그 때 아미나는 마호메드를 임신하고 있었다. 아이가 태어나자 압둘 무타리부라는 그의 할아버지가 그를 메카로 데리고 갔다.
그는 아들을 잃었지만 대신 손자를 얻은 것을 신께 감사드렸다고 전한다.

 


그 당시 아랍의 부유한 집안에서 아들이 태어나면 그 아이를 강하게 기르기 위하여 베두인 천막에 보내서 야성을 기르며 연단을 받게 했다. 마호메드 역시 그렇게 훈련을 받았는데 불행은 겹쳐서 오는 법인지 마호메드의 7 살 되던 해에 그의 어머니 아미나 마저 죽고 마호메드는 고아처럼 되었다.

 


그 후 2년 뒤 그러니까 마호메드 9살 되던 해에는 그의 후견인으로 돌보아 주던 압둘 무타리부도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9살 되던 해부터 삼촌들을 따라서 낙타상인들과 동행하면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떤 카톨릭 수도사가 나타나 마호메드라는 소년의 등을 보여 달라고 해서 마호메드의 등을 보여 주었더니 그 수도사가 하는 말이 "이 표시는 예언자의 인"이라고 했다.

 


그 수도사가 남긴 말은 "당신들은 이 아이를 잘 보호하시오 특별히 유대인들이 이 아이의 생명을 빼앗으려 할 터이니 신의 일을 하게 될 이 아이의 생명을 잘 지키도록 하시오! 이 아이는 장차 위대한 일을 하게 될 것이오 !" 하고 사라졌다고 전한다.

 


로마 수도사가 남긴 이 말 한마디가 훗날 마호메드 추종자들로 하여금 유대인 대학살을 자행하게 만들었다.
그 후 마호메드가 25세 되던 해 당시 40나 되는 하디자라는 과부와 결혼을 하게 되었다. 이 두 사람 사이에서는 두 아들이 태어났으나 둘 다 어려서 죽었고 딸만 넷이 있었는데 그 중에 파티마라는 딸이 마호메드의 사촌 알리와 결혼하여서 대체로 널리 알려졌다. 한편 이 파티마와 결혼한 알리의 추종자들이 훗날 이슬람교의 시아파를 이루었다.

 


서기 610년 마호메드는 환상을 보았는데 가브리엘 천사로부터 다음과 같은 계시를 받았다고 전한다.
그 가브리엘 천사가 말하기를 "너는 이제부터 알라 신의 사자이니라 ! "하는 사명을 받았다고 전한다.

 


그 후로도 마호메드는 여러 차례 계시를 받았는데 그 모든 계시를 해석해 준 사람은 카톨릭 신자였던 바라카라는 사람이었다.

 

이 바라카는 마호메드의 아내 하디자의 사촌 오라비였다.

 


그리고 그 바라카는 다니면서 마호메드는 우리 민족의 예언자라고 선전하고 다녔다고 한다.
그런데 자기 아내 하디자와 그의 사촌 오라비 바라카의 도움을 입어서 마호메드가 포교를 시작한지 약 5년 되던 해부터 마호메드에 대하여 반대하는 사람들과 박해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게 되었다.

 


그 발단은 그의 추종자들이 하나같이 그 동안 그들이 섬겨 왔던 그 여러 신들을 다 버리고 섬기지 않을 뿐만 아니라 알라신만 섬겨야 한다고 주장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마호메드는 할 수 없이 자기를 따르는 추종자들과 함께 아비시나의 네거스 왕에게로 망명을 가게 되었는데 그 때 그 망명을 주선했던 것도 아마 바라카와 하디자의 중재였을 것으로 보인다. 아비시나의 네거스 왕은 카톨릭 신자였는데 마호메드의 가르침 속에 마리아에 대한 이론이 거의 일치가 된다고 하여 마호메드의 망명을 받아들였다.

 


어느 날 마호메드는 꿈을 꾸게 되었는데 천사 가브리엘이 나타나 그를 깨우면서 부라크라는 천마를 그 앞으로 데리고 와서 그 말의 등에 태우고는 예루살렘으로 가서 파괴된 유대성전 터를 보여 주었다고 한다.

 


거기서 마호메드는 아브라함과 모세와 예수님과 그 많은 성인들을 만났다고 한다. 그는 다시 그 부라크라는 천마를 타고 천국으로 올라가서 선지자들을 만났고 마침내 알라를 만나게 되었는데 그 알라로부터 이슬람교위 교리를 받게 되었다고 5일 동안 기도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전한다.

 


그 동안 아비시나에 머물렀던 마호메드는 이내 그 곳을 떠나 메디나로 옮겨 갔다. 그 메디나는 메카에서 약 200마일이나 떨어진 곳이었다. 거기서부터 마호메드는 라지아(메카에서 오는 낙타상을 약탈하는 군대)의 통솔자가 되었다. 그는 작은 전쟁에서 승리하면서 힘을 길러 갔다. 그리고 그를 반대하는 사람이 있으면 가차없이 암살하였다. 이러한 암살은 마호메드가 지시한 것인지 측근들의 만행인지 알 수가 없다.

 


마호메드는 유대인 정착촌들을 공격하기도 하고 다른 부족과의 유대를 공고히 하면서 힘을 길러 갔다. 그리고 정략적인 결혼이었지만 여러 여인들과 결혼을 했다. 그에게는 9명의 아내가 있었고 그 중에 한 여인이 바로 카토릭 신자였던 하디자가 항상 그의 곁에 있었다.

 


위협을 느껴 오던 메카에서 약 10000명의 군대를 파견하여 마호메드를 잡으려 했지만 그들은 마호메드의 군대를 당하지 못했다. 
서기 630년에 마호메드는 약 10000명의 군대를 거느리고 메카를 향하여 진군해 들어갔고 메카는 지난번 전쟁에서 패배한 후로 약해져서 결국은 마호메드에게 항복하고 말았다.

 


메카에 들어오자 마호메드가 처음 한 일이 그 때까지 메카 사람들이 섬겨왔던 여러 신들의 우상을 제거하는 일이었다. 마호메드는 메카를 점령하면서 강해져 갔고 그를 두려워하는 주변의 여러 부적들이 마호메드의 교리를 받아들였다. 

 

 

 

이러한 정도로 아는 것이 일반적으로 알려진 이슬람교의 기원이다.
그러나 이상의 이야기는 꾸며 낸 이야기에 불과하고 역사적 사실은 다르다 . 

 


로만 카톨릭이 하디자와 바라카를 보내어 공작한 것은 일반 사람들에게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교황청의 한결같은 소원은 예루살렘 솔로몬 성전 터에 교황청을 세우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사업을 추진하는 데 걸림돌이 될 사람들이 첫째는 정통파 유대인들이었다.
한편 여러 지방에 세워 놓은 수도원으로부터 많은 정보가 교황청에 전달되어 갔다.

 


로만 카톨릭은 일차적으로 이 세상에서 없애야 할 사람들 중에 일차적으로 정통파 유대인들과 카톨릭 교리를 반대하는 기독교인들이었다. 이러한 사람들을 제거하는데 직접 나서서 피를 흘리게 되면 로만 카톨릭의 모양이 좋지 않으니까 그 일을 대신해 줄 인물을 구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 악한 일을 맡을 사람으로 마호메드라는 인물을 만들어 낸 것이다.

 


전 아랍사람들을 한데 묶어 교황청에 복종하게 할 영웅이 필요하였던 것이다.
그 영웅으로 하여금 무력으로라도 우상을 없애고 전 아랍을 하나로 묶어서 교황에게 순복하게 하고 또 예루살렘을 교황청에 바칠만한 인물을 만들어 낸 것이다.

 


교황청에는 이 모든 일을 추진할 한 여인을 택하였는데 그녀가 바로 40대 돈 많은 과부로서 마호메드의 아내가 된 여인이었고 그녀의 사촌 오라버니 되는 바라카였다.

 

 

 

처음에 그녀는 자신의 모든 재산을 카톨릭 교회에 헌납하고 수녀원에서 은둔 생활을 하면서 기도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던 그녀가 어느 날 특수 임무를 받아서 세상으로 나오게 되었고 자금지원은 교황청이 책임지기로 하고 하디자와 바라카가 특수 임무를 수행하게 된 것이다. 마호메드가 하디자와 바라카의 지도를 받는 중에 특별히 어거스틴의 책을 많이 읽으면서 철저한 훈련을 받게 했다.

 


사탄은 이러한 작업으로 통하여 이스마엘 자손들에게 복음이 들어가지 못하게 공작하고 있었고 카토릭은 정통파 유대인들을 제거하는 일과 카톨릭 교리를 반대하는 기독교인들을 제거하는 꿈을 꾸었고 마호메드는 아무 것도 모르고 이용당하고 있었다.

 

 

 

이러한 일들이 준비되고 진행되는 동안에도 카톨릭의 수도사들은 끊임없이 북아프리카와 중동에서 위대한 지도자가 나타날 것이라고 사전 풍문을 퍼뜨리고 있었다. 이러한 일련의 풍문이 지금까지도 그 순진한 이스마엘 자손들에게는 사실인 것처럼 왜곡되어 수많은 선교사들이 노력을 헛 수고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어느 날 마호메드가 메카 외각에 있는 히라산의 어느 동굴에서 성스러운 환상을 보았다고 하는데 그 모든 환상은 언제나 바라카가 해석해주는 대로만 기록된 것이다.
이 때 보았다는 환상들을 기초로 하여 오늘날 코란이란 책이 만들어졌다.

 


마호메드가 보았다는 마리아에 대한 환상과 교리로 인하여 카톨릭을 신봉하는 왕들로부터 이슬람은 보호를 받았다. 그러나 그 외에 마호메드가 쓴 다른 문서는 단 한 페이지도 출판된 것이 없다.

 


혹 있다면 오늘 날 이슬람 최고 지도자(아야톨라)들의 손에 있다고 보고 있다.
이 문서에는 이슬람 교리를 만들어 가는데 교황청이 무슨 역할을 했는지가 소상하게 나와 있어서 일반인들에게는 절대 비밀에 붙여진 것이라고 한다. 물론 교황청 비밀문서 보관소에도 있고 이슬람 최고지도자들의 손에도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이러한 문서에는 이 땅에서 어떻게 하면 정통파 유대교와 카톨릭 교리를 반대하는 기독교를 말살할 것인가 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어서 이 문서가 외부에 유출되면 두 종교는 다 큰 타격을 입을 수 있기 때문에 서로 견제하면서 서로 조심하고 있는 것이다.

 


마호메드는 632년에 죽었고 그가 죽고 나자 이슬람교는 오히려 더 번창하게 되었다.
교황청의 목적대로 아랍의 모든 유목민 부족들이 알라 신과 그의 선지자 마호메드의 이름 아래 통일되어 갔다.

 

 

 

그 때까지 아랍 사람들의 속내를 알지 못한 교황청은 이슬람교가 북아프리카 지역을 침략하여 통일시키는 일까지 승인하여 주었고 심지어 자금까지 대어 주었다고 한다. 
이러한 일이 진행될 때 교황청에서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조건을 약속받고 재정을 지원했다고 한다.

 


첫째 정통파 유대인들과 카톨릭 교리를 반대하는 기독교인들을 제거할 것
둘째 어거스틴 수도사들과 로마 카톨릭 교회는 항상 보호할 것
셋째 교황청을 위하여 예루살렘을 정복하여 카톨릭에 돌릴 것 등이었다.

 


이러한 조약이 체결되고 자금이 지원되자 이슬람교는 북 아프리카 전역을 다 쓸어서 통일시켰다.
성지를 순례하면서 시내산 밑에 있는 성 카타리나 수도원 안에 들어가서 불타는 떨기나무 있는 곳에서 잘 살피면 그 곳 수도원 첨탑에 기독교의 십자가와 이슬람교 반월 표지가 함께 어우러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사람들이 무심코 그냥 지나 올 수도 있고 자세히 보면 거기서 이슬람과 카톨릭이 화해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로만 카톨릭과 이슬람은 불가침 조약이 있고 화평하게 잘 지내고 있으면서 그들의 공동의 적은 여전히 정통파 유대인들과 카톨릭 교리를 반대하는 기독교인들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세월이 흘러가면서 로만 카톨릭은 종교재판이라는 무시무시한 방법으로 사방에서 기독교인들을 학살하였고 이슬람은 동방에서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을 무차별 죽여 없앴다.

 


세월이 흘러서 아랍사람들의 이슬람 군대는 마침내 로만 카톨릭에 진 빚을 갚아야 할 때가 도래하였다.
그러나 가는 곳마다 승리를 맛 본 아랍 사람들은 교황청의 군사력이 별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아랍의 군대를 막아 낼 어떤 군대도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따라서 교황청의 교활하고 악한 계획도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교황청에서는 아랍 사람들이 더 이상 교황의 말을 따르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이슬람지도자들은 교황청이 그렇게 손에 넣고 싶었던 예루살렘의 중요성을 깨닫고는 성전 산을 자신들이 차지하게 되었다.

 


그러고 보면 예루살렘이란 도시는 참으로 파란 만장의 역사를 가진 도시였다.
아라비아인은 이 도시를 쿠드스(신성한 도시)라고 부른다. 예루살렘은 BC 3000년대 말경에 여부스라는 가나안인(人)의 한 부족이 차지하고 있다가 이스라엘 왕 다윗이 탈환하여 예루살렘이리고 했다.

 

 

 

여부스 사람들이 차지하고 있을 당시의 이 도시는 우루살림이라고 불렀는데, ‘평화의 도시’라는 의미이다. 다윗 왕이 여부스인을 쫓아내어 이스라엘 왕국의 수도로 삼았다. 다음에는 솔로몬왕이 궁전과 성전을 지었고, 일찍이 다윗이 건립한 이스라엘의 하느님 제단 앞에 야훼의 성전을 건립하였다. 이 무렵에는 주민들도 늘어났고, 도시 둘레에 성벽도 만들었다.

 


BC 935년 왕국이 이스라엘과 유대로 양분되자 예루살렘은 남방 유다의 중심지가 되었다. BC 586년 신(新)바빌론의 네부카드네자르 2세(느부갓네살)가 예루살렘을 파괴하였으며, 시민들을 바빌론으로 끌고 가서 BC 538년까지 억류하였다(바빌론의 포로).

 

 

 

그 후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이 이들을 석방해 줌으로써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야훼의 성전도 재건하였으나, 옛날의 번영을 되찾을 수는 없었다. 그 후 여러 차례 파란을 겪은 끝에 BC 63년 폼페이우스가 거느린 로마 군이 성벽을 파괴하고 이 도시를 점령하였다. 이때부터 예루살렘은 로마의 지배하에 들어갔으나, BC 37년부터 헤롯 왕이 이 곳을 점령하고 야훼의 성전을 재건함으로써 솔로몬 왕 이후의 번영을 되찾았다.

 


그러나 헬레니즘 문화의 색채가 농후한 것이 옛날과 다른 점이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혔을 무렵(AD 30년 4월)에는 처형장인 골고다 언덕과 매장지가 북서부의 성벽 밖에 있었는데, 10여 년 후에는 이 지역을 둘러싼 새 성벽이 만들어졌다.

 

 

 

로마 황제 베스파시아누스의 아들 티투스가 70∼71년에 이 도시를 공격함으로써 헤롯 시대의 번영은 사라졌다. 유대교도들은 헤롯이 지은 성전의 벽, 나중에는 그 성벽을 ‘통곡의 벽’이라 이름짓고 이곳을 찾아가서 통탄하는 풍습이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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