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3-08-16 12:57
[2]기독교는 어떻게 유대교로부터 분리 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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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웹섬김이
조회 : 10,938  

것은 요 4장의 수가성 여인 이야기의 배경이 된다. 사마리아인들이 비록 유대인들에 의해 이방인 취급을 받았지만 메시아(타헤브)를 기다리고 있었으며, 그리스도가 구원하고자 하셨던 사람들이었다. 그리스도는 사마리아를 자주 왕래 하셨으며, 사마리아인들을 칭찬하셨고, 행 8장에는 성령이 사마리아에 내려온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

 

3) 신학 사상과 생활 방식 

① 쿰란 공동체가 보여주는 에세네파의 자기 이해는 이스라엘의 유일한 구원준비 공동체라는 것이다.

빛의 자녀인 그들 이외의 모든 유대인들은 어둠의 자식들이다. 그들의 문헌인 전쟁 두루마리에 의하면 최후의 날에 하나님이 빛의 아들들로 하여금 어둠의 자식들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게 하실 것을 믿는다. 그것은 그들의 이원론-세상은 선과 악의 투쟁 장소라는 것과 이중 예정론-악인은 악인의 길을 가며 의인은 의인의 길을 가도록 예정되어 있다는 설을 뒷받침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아직 구원받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② 쿰란 공동체는 이미 성령을 소유하고 있다고 믿었는데, 그 성령을 통하여 의롭게 살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들이 자체 제작한 감사시편(호다욧)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저는 당신께 감사하나이다. 당신께서 저를 당신의 힘으로 받쳐주시고, 당신의 성령을 저에게 부어주셨습니다. 저는 흔들리지 않습니다. 당신은 저를 악한 전쟁 앞에서 강하게 하셨습니다”(1QH 7:6)

 

③쿰란 공동체는 3 종류의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첫째는 종교적 지도자로 제사장인 아론의 메시아이며,

둘째는 정치적 지도자로 왕격인 이스라엘의 메시아이고,

셋째는 종말론적 존재로서 ‘그 예언자’로 소개되었는데 모세와 같은 대언자로서 율법을 보완하여 하나님의 새로운 뜻을 계시하게 된다는 것이다.

 

④ 성전에 대한 그들의 관점은 부정적이다.

즉, 사악한 제사장들로 인해 성전 제도가 오염되어 있다는 것이다. 쿰란의 성전 두루마리 문헌에는 최후의 날에 성결한 영역이 에스겔의 환상처럼 지극히 거룩한 성전 본체에서부터 동심원을 그리며 이스라엘 전역으로 확대될 것이 그려져 있다. 마지막 날에 성전이 정결케 되어 자신들이 제사장 직무를 맡게 될 것으로 기대했다. 그 날이 오기까지 그들은 오염된 성전에 가서 제사 드리는 대신 자체 제의 프로그램을 시행했다.

 

첫째는 매년 대속죄일과 비슷한 연례축제를 행했다.

둘째는 매일 아침 해뜰 무렵 동쪽을 향해 기도와 찬양을 드리는 것이다.

셋째는 매일 두 번 식사 전 정결 예식을 행하고, 공동 식사를 통해 정결 음식 섭취를 준수하고, 식사를 전후해서 하루 네 번 기도를 드렸다.

넷째는 개인 성서연구의 시간을 가졌다. 이것은 모두 성전 제의를 대신하는 종교적 행위였으며, 그들의 공동체를 임시적 성전으로 이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들이 기다리던 최후 승리의 날은 오지 않았고, 그들과 예루살렘 성전이 함께 사라졌다.

 

⑤ 결혼에 관한 관점은 근본주의적이다.

에세네파가 독신 남성으로 구성된 집단이라는 설은 분명히 잘못된 것이다. 알렉산드리아의 유대인 철학자 필로의 <유대인을 위한 변증서>에 에세네파를 독신 집단으로 기록한 것은 오류이다. 요세푸스도 유대 고대사에서 에세네파를 독신집단인 것처럼 묘사한 것을 전쟁사 2권에서 수정하여 그들의 혼인상태를 묘사했다. 혼인이 창조의 원리인 만큼 에세네파가 금욕주의를 채택한 것은 아니었다.

 

도시에서 살았던 에세네파는 결혼하여 자녀를 양육하고 살았다. 쿰란 공동체가 독신 남성 집단으로 비쳐진 것은 열악한 환경으로 인해 아내들이 25세를 넘기지 못하고 죽었거나, 이혼으로 인해 홀아비들이 많아졌기 때문인 것으로 학자들은 분석하고 있다. 거기에는 에세네파의 일생 한 번 결혼 원칙(재혼불가), 임신 확인 후 성교금지 원칙, 거룩한 도시 예루살렘에서의 부부간 성교금지 원칙, 성교로 인해 부정한 상태에서 정결 예식과 기도회 참여 금지 원칙이 작용했다.

 

⑥ 삶의 방식은 공동체 중심이었다.

그들은 모든 재물을 공동으로 소유했으며, 사유물을 숨기거나 거짓말을 했을 경우와 상급자에게 반항했을 경우 가혹한 벌을 받았다.

요세푸스에 의하면 집단에서 추방형을 받을 경우 아사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 이유는 그들이 일반인이 만든 부정한 음식을 먹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또한 죄를 범한 자는 회개하기 전 정결 예식을 행할 수 없었는데, 공동체의 정결한 물을 오염시켜서는 안 되기 때문이었다. 오직 의로운 영혼의 소유자만이 미크베(욕조)를 통과하여 의식상의 불결을 씻을 수 있었다. 또한 그들이 공동체 이외의 사람과 상종하지 않았던 이유도 불결과 죄악에 오염되지 않기 위해서였다. 오직 그들은 공동체 구성원들과 상종하며 함께 살았던 것이다.

 

⑦ 쿰란 공동체의 특징은 방대한 문헌의 수집과 필사에 있다.

쿰란 공동체가 소장했던 문서는 세 종류-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진 문서, 외부 종파의 문서(토비트, 희년서, 벤 시라, 레위의 증언, 에녹), 창작 종교문서(시편, 전쟁 두루마리, 성전 두루마리, 다메섹 계약서, 공동체 규범, 나훔 주석, 하박국 주석)이다.

 

이 중에서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진 문서에는 에스더를 뺀 구약 성서 전권이 들어 있는데, 에스더는 원래 소장되었으나 좀이 먹어 분실된 듯하다. 1947년부터 1956년까지 11 개의 동굴에서 발견된 900 여점의 문서는 일부 아람어와 헬라어로 기록된 것을 빼고는 모두 히브리어로 기록되었다. 쿰란에서 발견된 성서 두루마리가 가지는 가치는 말로 다할 수 없다. 그전까지 알레포 사본(주후 925년경)과 레닌그라드 사본(주후 1008년경)이 가장 오래된 사본이었다.

 

그런데 주전 2세기에 제작된 쿰란 사본이 발견됨으로써 늦게 잡아도 1000 년 이상 더 고대의 사본을 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동안 유대교와 기독교에서 표준으로 사용하던 맛소라 사본과 쿰란 사본이 거의 일치했다는 점이다. 쿰란 공동체 문헌 작업 중에 가장 인상적인 것은 페세르 방식으로 기록된 주석이다. 주제별 주석인 미드라쉬와 달리 장별 주석인 쿰란의 나훔과 하박국 페세르 주석은 구약 성서에 나오는 모든 메시아 예언이 에세네파의 시대에 성취되고 있다고 가정하는 해석 관점에 입각한 것이다.

 

4) 기독교와의 관계 

예수 그리스도나 사도들이 직접적으로 에세네파를 언급한 적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세네파의 조직이나 가르침은 초기 기독교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그리스도인의 공동체는 하나님의 성전, 교회는 성령 받은 집단, 부당한 이혼으로 인한 재혼 금지, 공동 식사와 성찬 예식, 입회 예식으로서의 세례, 빛과 어두움 혹은 멸망의 자녀와 구원의 자녀라는 용어 사용, 악인들과 신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절대적 예정, 몸으로 드리는 제사, 메시아 시대, 성서 연구, 죄 사함과 구원 등은 비록 에세네파와 기독교가 신학적 관점을 달리하지만 용어와 개념이 공유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스도는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눅 16:8)이라고 했고, 사도 바울도 다음과 같은 구절에서 에세네파의 용어와 개념을 사용하고 있다.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고후 6:14-16)

 

"누구든지 헛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니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불순종의 아들들에게 임하나니 그러므로 그들과 함께 하는 자가 되지 말라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주를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둠의 일에 참여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엡 5:6-11)

 

“만일 하나님이 그의 진노를 보이시고 그의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 또한 영광 받기로 예비하신바 긍휼의 그릇에 대하여 그 영광의 풍성함을 알게 하고자 하셨을 지라도”(롬 9:22-23)

 

“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이의 계획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엡 1:11-12)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골 1:12-13)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1-2)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전 6:19)

 

4. 젤롯파(열심당)

 

요세푸스가 제 4의 철학파라고 묘사한 젤롯파(카나임)는 혁신과 혁명의 방식이었다고 한다(유대 고대사 18권 11:9).

이 종파의 기본 주장은 “하나님 외의 왕이 없다”였다. 셀롯인들은 주후 6년 로마의 총독 퀴리니우스의 인구조사에 반발해서 갈릴리의 유다를 중심으로 항쟁을 일으켰다. 그들이 항쟁을 일으켰던 이유는 인구조사의 명령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다윗도 자의적으로 인구조사를 행하다가 하나님의 진노를 샀으므로 이방 정권의 인구조사는 거부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곧 진압되었지만(행 5:37) 새로운 사람들이 일어나 항쟁을 계속하면서 종파의 맥을 이어갔다. 이 종파를 젤롯파로 부르는 이유는 그들이 간음하던 모압 여인과 이스라엘 남자를 하나님의 질투(열심)로 죽인 것을 표방했기 때문이다(민 25:5-13). 그들은 외세와 연합한 유대인(부자, 귀족, 고위제사장)을 죽여야 참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들을 시카리라고 불렀는데, 그들이 품고 다니는 단도(시카르)에서 파생된 단어였다. 종종 그들은 강도와 혼동되었는데, 군자금 확보를 위해 마을들을 습격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주후 70년 예루살렘 함락 때 젤롯파들은 모두 죽었으며, 마사다에서 끝까지 항쟁한 자들은 일부 시카리들로 알려진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 젤롯파였던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눅 6:15). 야고보서에는 예루살렘이 패망하기 전 그들의 활동이 다음과 같이 그려져 있다.

“네가 비록 간음하지 아니하여도 살인하면 율법을 범한 자가 되느니라”(2:11)

 

“그러나 너희 마음속에 독한 시기(젤롯)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슬러 자랑하지 말라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땅 위의 것이요 정욕의 것이요 귀신의 것이니 시기(젤롯)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혼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라”(3:14-16)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부터 다툼이 어디로부터 나느냐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부터 나는 것

이 아니냐 너희는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여 살인하며 시기(젤롯)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므로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4:1-3)

 

“형제들아 서로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 네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요 재판관이로다 입법자와 재판관은 오직 한 분이시니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너는 누구이기에 이웃을 판단하느냐”(4:11-12)

   

5. 테라퓨타인(Therapeutae)

 

알렉산드리아의 유대인 철학자 필로에 의하면 이집트에는 테라퓨타인(치유자)으로 불리는 유대인 집단이 있었다. 그들은 엣세네파와 비슷한 유대인 공동체였다. 그들은 결혼을 금하는 등 극도의 금욕적인 생활을 했으며, 공동식사와 기도와 성서 연구를 주된 과업으로 삼았다.

 

그들은 매일 아침 기도를 드렸고, 안식일에는 찬송을 부르고, 공동식사를 하고, 탈혼적인 춤을 추고, 성서 연구 중심의 정교한 예배를 드렸다. 구성원들은 연령에 따라 구분되었고, 연장자를 공손히 대했으며, 하나님과 진리에 대해 명상(contemplation)하는데 전념했다. 그들이 에세네파와 달랐던 것은 식사에 고기와 포도주를 금한 것과 여자들도 의식에 참여시킨 것이다.

   

유대교와 기독교의 분리

 

기독교는 처음부터 새로운 종교로 출범하지 않았으며, 유대교의 한 종파로 받아들여졌다(행 2:14-47, 24:5, 28:22-23) 처음에 사도들이 대제사장들에 의해 박해를 받은 것은 정치적 이유였으며(행 4:1-22, 5:17-42, 12:1-4), 스데반 순교 사건으로 촉발된 박해는 헬라파 유대인들에 대한 히브리파 유대인들의 반감 때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행 6:1-7, 7:54-60, 8:2-4, 11:19-20)

 

그러나 주후 70년 예루살렘이 포위되기 시작할 때 나사렛파 유대인들이 펠라로 이주한 사건은 비 나사렛파 유대인들의 반감을 샀으며, 주후 80년대에 디베랴를 중심으로 포교 활동을 벌이기 시작하던 바리새파들이 이단에 대한 저주 기도문을 나사렛파에 적용시키면서 회복 불가능한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후 133-135년에 일어난 바르 코크바의 항쟁 때 예수 이외 누구도 메시아로 부르기를 거절한 나사렛파 유대인들이 동조하지 않으므로 유대 사회로부터 축출되면서 각자의 길을 걸어가게 되었다.

   

 

<더 읽으면 좋을 책들>

김창선, 한국성서학연구소, 쿰란문서와 유대교

마빈 윌슨, 기독교와 히브리 유산, 컨콜디아사

김판임, 비블리아아카데미아, 쿰란공동체

허셜 생크스, 한국신학연구소, 고대이스라엘

요세푸스, 생명의말씀사, 요세푸스 I, II, III

요아힘 예레미아스, 한국신학연구소, 예수시대의 예루살렘

샤이 코헨, 은성, 고대 유대교 역사

JC 판데어캄, 성서와 함께, 초기 유다이즘 입문

폴 존슨, 살림, 유대인의 역사 1

Judith Fain, Paul and the Hellenistic World, Jerusalem University College, Prototype Ver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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