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3-08-16 12:51
[7]기독교 교리사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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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웹섬김이
조회 : 13,078  

제 6장 속죄론 혹은 그리스도 사역론

 

제 1절 안셀무스 이전의 속죄론

1.헬라 교부신학의 속죄론

⑴속사도 교부들의 구속 사역론 - 속사도 교부들은 그리스도의 사역에 대하여 대체로 성경적인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중요한 표현을 디오그네투스에게 보내는 서신에서 볼 수 있는데, 인간의 죄는 형벌을 받아 마땅하지만 하나님께서 그 죄를 사해 주시기 위해 그리스도를 속상물로 주셨고, 그 결과 그리스도의 의로 인간의 죄는 사함을 받는하고 하였다.

⑵이레네우스의 속죄론 - 동방교회와 서방교회의 중간 입장에 섰던 이레네우스는 그리스도가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켰으므로 인간을 해방시켰다는게 그의 견해였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에게 연합자들에게 영생을 주시며, 그가 순종하심으로 아담의 불순종을 배상하셨다.

⑶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와 오리겐의 속죄론 - 클레멘트는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인간의 부채를 배상하시는 속상물로 나타내고 있다. 그에 반에 오리겐은 몇가지 다른 견해를 보이고 있는데, 그리스도는 성육신을 통하여 자기 희생의 최고의 모범을 보이셨으며, 그로인해 인간을 죄에서 구원하셨다.

*오리겐의 새로운 설 - 사단이 계약에 속았다는 것, 그리스도의 인성을 미끼를 삼키고 신성의 갈고리에 걸려 들었다는 것, 그 때문에 지옥에 있는 영혼들까지도 모든 영혼들이 자유함을 얻었다는 것.

⑷아다나시우스이 속죄론 - 속죄사역에 관한 최초의 논문은 아다나시우스의 성육신론이었다. 로고스는 죄로 인해 잃어버렸던 하나님께 대한 참 지식을 일깨워 주기 위해서 성육신하였다. 죄의 형벌을 참으심으로 인간의 빚을 갚으신 대속자로 표현되었다. 그리스도는 인간의 마음속에서 말씀과 모범으로 역사하신다.

⑸닛시의 그레고리와 나지안제의 그레고리의 속죄론 -닛시의 그레고리는 그리스도의 사역에 관한 논문 대요리 문답의 저자이며, 사단이 기만당했다는 설을 주장하였고, 그 근거로 두가지를 제시하였다. 첫째로 기만자가 기만당하는 것은 당연한 보응이며, 둘째로 사단 자신을 그 기만으로 자신이 구원 받는 유익을 얻었다는 것이다. 한편 나지안제의 그레고리는 속상설을 거부하였으며, 성부 하나님께서 속상을 요구하셨다는 설도 부인하였다. 그 외에 사상들은 사실상 아다나시우스의 사상을 되풀이 하였다.

⑹다메섹사람 요한의 속죄사역론 - 요한은 이미 있던 사상들을 종합적으로 정리하였고 자신의 독창적인 어떠한 사상을 이룬 것은 없다. 그리스도 사역론이 헬라신학에서 두 가지 중요한 관점에서 나타나고 있다.

①구원이 성육신의 직접적인 결과이며, 부활하심으로 온 인류에게 새 생명을 부여해 주셨다.

②구원은 어떤 객관적인 조건을 성취하는데서 오는 결과인데 그 조건은 하나님께 드리는 희생, 신적공의 만족케 하는 것이라는 것, 사단에게 지불하는 속상과 같은 조건을 의미한다.

2.라틴 교부신학의 속죄론

⑴터툴리안의 구속관 - 라틴 신학은 터툴리안으로부터 시작이 되었다. 그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을 선교의 정점이요, 참된 종결로 봄으로 이레네우스보다 그 중심적인 의미를 강조하였다. 그의 공헌은 그리스도의 사역론에 대한 신학에 큰 역할을 하였던. “유죄” “속상” “공로”등의 법률적 명사들을 소개하였다는 것에 있다.

⑵힐라리와 암부로스의 구속관 - 헬라사상을 서방에 전해준 힐라리와 암브로스, 힐라리는 인간성이 성육신으로 말미암아 회복되었다는 헤라사상을 강조하였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하나님께 드리는 속상이며, 그리스도는 그 형벌의 의무를 만족시키기 위해 자발적으로 죽으셨음을 말하고 있다. 한편 암부로스는 그리스도가 사단에게 속가를 지불하고 사단을 속였다는 오리겐의 사상을 되풀이 했다. 동시에 그는 그리스도의 죽음이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이었다로 말하고 있다.

⑶어거스틴의 구속관 -서방교회 위해 일했던 교부 어거스틴 그리스도의 사역론에서는 크게 기여하지를 못했다. 이미 있던 사상들을 총괄하여 다양한 견해들을 나타냈다. 성육신을 통하여 인성인 신화(神化)하였다는 관점을 가졌다. 사단은 인간에게 대해서 주장권을 가졌으나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무효화 되었다는 생각을 가졌다. 그의 사상은 헬라 신학과는 거리가 멀다. 그의 중심사상은 원죄, 은혜로 말미암은 칭의, 그리스도의 희생에서 오는 화목등의 관념이다.

⑷대 그레고리의 구속관 - 어거스틴의 신학에 강하게 감화를 받은 대그레고리는 인간은 자발적으로 죄와 죽음의 지배하에 떨어졌으니 오직 제사만이 그 죄를 소멸할 수 있다. 오직 죄없는 인간만이 할 수있는데 그리스도인 것이다. 그의 인성 때문에 죽을 수 있었고, 그의 의 때문에 정결케 하실 수 있었다.

제2절 안셂으로부터 종교개혁까지의 속죄론

1.안셂의 속죄론 - 켄터베리의 안셂(1033-1109)은 속죄교리를 일관성있게 설명하려고 했던 최초의 인물이었다. 그의 저서『왜 하나님은 사람이 되셨나?』신학연구에 획기적인 것이었으며, 형이상학적이 깊이의 표현과 명료성이 함께 갖추어져 있다. 안셂은 인간이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속죄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안셂의 명확한 입장은 그의 죄와 속상의 개념을 통해서만 이해 할 수 있다. 하나님의 피조물인 인간은 그의 의지를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의무하에 있지만, 인간이 반역하여 거절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의 명예를 더럽혔으며, 죄의 부채를 지게 되었다. 인간이 실패하여 하나님께 순종하지 못했던 것을 신인(神人)으로서는 행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스도는 성부에게 그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여 쓰디쓴 수난과 수치스러운 죽음을 당함으로 하나님께 무한한 영광을 돌렸던 것이다.

그것은 인간이 죄를 상쇄하고도 남음이 있는 여분의 사역이었다. 값없이 주시는 은사는 보상되어야 한다는 것을 공의는 요구하였다. 이러한 안셂의 이론은 속죄론의 발전에 중요한 진전을 가져다 주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아베랄드의 속죄론 - 아베랄드의 이론은 사단 배상설을 부인한 것외에는 안셂의 이론과 공통되는 것이 없다. 그리스도의 죽음을 속상물로 여기지 않았으며, 하나님께 드리는 속상으로도 여기지 않았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어떠한 속상도 받지 않으시고 용서하시기를 기뻐하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죄인들의 회개이다. 사죄는 우리의 가슴속에 불붙는 사랑이 직접적인 결과이며 그리스도의 죽음의 간접적인 결실인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사죄는 가슴속에 불타는 사랑과 아무 관계가 없다는 것을 아베랄드는 인정해야 하는 것이다. 안셂의 속죄 교리와는 달리 아베랄드의 교리는 철저히 주관적다. 오늘날 도덕적 속죄론, 또는 도덕적 감화설의 전형적인 표현을 볼 수 있다. 하나님에게는 사랑만이 중심적이며, 사랑만이 모든 속성의 근원이 된다는 잘못된 원리에서 출발하였다. 만일 하나님께서 속상을 요구하지 않고도 죄를 사해 주실 수 있었다면 왜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수난을 당하게 하셨는가? 아베랄드의 이론은 그리스도의 수난의 구속적 의미를 박탈하고, 인간에게 교훈과 모범을 통하여 감화를 주는 단순한 교사로 전락시켜 버렸다.

3.아베랄드에 대한 버나드의 반동 - 버나드는 아베랄드가 기독교를 이성적으로 해석하였다고 비난하였으며, 그리스도의 모범이 우리를 성도로 만든 것을 아담의 모범이 우리를 죄인으로 만든 것과 같이 적다고 주장했다. 그는 그리스도의 계시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신성과 구원적 현현도 보았다. 버나드의 이 사상은 성육신은 하나님께서 변형하시어 인간성 속에 들어옴을 의미하는 것이다.

4.혼합적 속죄관 - 롬바드 피터나 보나벤튜라와 토마스 아퀴나스와 같은 학자들은 안셂과 아벨랄드로부터 영향을 받았음을 알게 된다. 두 사람의 사상적 요소룰 취했으나, 그것을 결합시켜 내적 통일을 이루는 데는 성공하지 못했다.

*피터의 속죄관 - 그리스도의 속죄론의 출발을 그의 공로에 두고 있다. 고난을 받으시고 죽으신 것은 그리스도께서 자 원적으로 하셨으며, 죄인을 위하여 하셨다. 그리하여 죄와 형벌로부터 인간들을 구출하시어 낙원에 들어가게 하였다.

*보나벤튜라의 속죄관- 그리스도의 성육신은 강요 된 속상이라는 것이다. 단순한 피조물은 속상물이 될 수 없고 이 속상을 행하는 것은 신이며 인간이어야 했다. 이 속상은 실천과 수난에서 얻어진 그리스도의 공로로 되어졌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속죄론 - 스콜라 신학자들 중에서 가장 위대한 신학자인 아퀴나스는 중세기의 어느 신학자들보다 선배들의 사상을 완전히 흡수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사역론에서 통일성이 없음을 보게 된다. 이레네우스와 아베랄드를 연상케하는 표현들을 그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그는 구속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을 통해서 온전한 구속을 이루신 것은 특별한 이유가 있으니 이 일을 통해서 하나님의 자비와 공의를 이루시고 최대의 가능한 효과를 보증하는데 있다 는 것이다.

제3절 종교 개혁기의 속죄론

1. 안셂의 교리를 수정한 개혁자들 - 개혁자들과 안셂 사이에는 사상의 일치점이 있다. 속죄의 객관성을 주장했고, 그것을 필요한 것으로 보았다. 개혁자들이 발전시킨 속죄론은 하나님의 율법의 위범(違犯)으로 보았으며, 형벌을 받아야 할 죄책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한 속죄는 형벌을 통하여 이루어진 속상이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신인(神人)은 고난과 죽음을 통해서 언약적인 면에서 순종하심으로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켜 드렸다. 마지막 아담으로서 최초의 아담이 하지 못한 것을 그리스도는 하셨다.

2. 소씨니안파의 속죄론 - 소씨누스는 개혁자들의 교리에 관하여 공격을 가하였다. 그는 하나님 안에 “죄는 절대적으로 형벌을 받아야한다”는 공의가 있다는 것을 부정하였다. 하나님의 특성이신 영구적이고 불변적인 공의는 단적으로 그의 도덕적 공평과 정직은 나타내는 것으로, 이것 때문에 하나님의 사역에는 어떠한 부패나 불의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소씨누스는 사죄가 단순히 회개와 순종에 기초를 둔 자비의 행위라고 거듭 강조하였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죽으신 후에 즉시 믿는 자들에게 영생을 줄 수 있는 권세를 받았기 때문에 이 죽음이 우리를 죄에서 구속하였다고 주장할 수 있다고 하였다.

3. 알미니안파의 속죄론 - 그리스도의 죽음을 희생 제물로 보면서도 이 희생이 부채의 지불로서나 공의의 완전한 속상으로 보아서는 안된다는 것이 알미니안 견해의 특색이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속죄를 일반적 혹은 보편적인 것으로 보았는데 그것은 그가 인류의 죄를 일반적으로 속하셨다는 것과 개인의 죄를 특수적으로 속하셨다는 것이다.

**도르트대회의 제한 속죄론- 알미니안파의 잘못을 반대하여 도르트 대회에서는 그리스도의 구원이 효과적으로 적용된 사람들 즉 선택된 자들만을 위하여 의도되었다는 입장을 취하였다. 속죄의 효과적인 적용은 죄인들의 결정이 아닌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결정되어 진다고 주장하였다.

제 4절 종교개혁 이후의 속죄론

1.스코틀랜드의 매로우 논쟁 -18세기 초에 신율법주의가 스코틀랜드에 그 모습을 나타냈다. 그들의 견해에 따르면 그리스도는 모든 사람들의 구원을 가능케 하여 그들을 모두 구원 얻을 만한 상태로 이끌어 오셨다는 의미에서 모든 사람을 속하셨다는 것이다. 그는 행위언약의 모든 조건에 응하시고 신율법 즉 신앙과 회심을 요구하는 복음을 소개하셨다는 것이다.

이것은 이름만 바꾼 알미니안주의에 불과한 주장이었다. 매로우인의 속죄론은 그리스도가 선택 된 자들을 위해 죽으셨다는 칼빈주의를 시인하면서도 그리스도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으셨다는 구원의 보편성을 주장하였다. 그들의 주장은 1720년에 이단의 정죄를 받고 1733년에 분리 되었다.

2.슐라이막허와 릿츌의 속죄론

*슐라이막허- 형벌적 속죄교리를 전적으로 부정하였다. 성육신을 그리스도의 대 구속적 행위로 보았던 초대교부들의 사상을 어느 정도 반영하고 있지만, 그는 그리스도를 인간성의 완전한 모본인 원형적 인간으로 보고, 하나님과 연합의식을 소유하였으며, 무죄 완전한 성격으로 인하여 인간의 운명을 만족히 실현시켰다는 의미에서 그리스도의 특수성을 찾았다.

*릿츌-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의 가치를 소유하였던 한 인간이었으며, 그의 사역으로 인해서 그에게 신격이 주어졌다고 하였다. 그는 대리속죄의 사실과 그 가능성도 부인하고, 화목은 전적으로 죄인의 태도 변화에서 생겨진다고 하였다. 릿츌은 도덕적 감화설과 달리하여 사죄의 객관적 근거를 가정하였다.

제 7장 은혜의 적용론 (구원론)

제1절 교부시대의 구원론

*1.초기 3세기 동안의 구원론 - 초대교부들에게서 공통적이이며, 명확하고, 체계화된 구속사역의 적용론을 찾는다는 것은 무리이다. 그들의 표현은 불확실하고 불완전하며 불충분하였다. 초대교부들의 신앙관은 믿음이란 그리스도의 공로를 받아들이기에 탁월한 기구이며 때때로 구원의 유일한 수단으로 여겨졌다. 율법의 일보다 칭의의 수단으로 간주되었다. 이 관념들은 속사도교부들에 의해 거듭 강조되었다. 이레네우스와 오리겐과 같은 후대 교부들은 인간은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견해에 공감하였고, 래틴의 교부들은 인간의전적 부패와 이신칭의의 필요성을 강조함으로써 전자들을 더 능가했다.

*2.3세기 이후의 구원론

⑴펠라기우스의 은혜관 - 펠라기우스는 다른 초대교회 교부들보다 구속의 적용을 표현함에 있어서 성경적 입장에서 탈선하였다. 초대교부들이 신성하게 보았던 성경적 기초를 버리고 이교 철학의 “자아충족원리”를 재주장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하시는 하나님 은혜의 절대성을 부인하고 율법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전적으로 생각하였다. 자연의 은혜는 보편적이며 절대적으로 보질적이며 필연적인 것이다. 복음의 은혜는 보편적인것도 필요한것도 아니며 다만 인간이 구원을 얻는데 쉬울 뿐이라는 것이다. 그 은혜가 주어질 때 조명하여 주는 것을 인간이 이해 할 때만 작용하는데 인간은 이 은혜의 역사를 거절 할 수 있다. 하였다.

⑵어거스틴의 은혜관 - 그는 자연인은 전적으로 부패하여서 영적 선을 전혀 행할 수가 없다고 보았다. 그는 또 은혜를 객관적 의미에서 말하고 복음과 세례와 용사(容赦) 등으로 구성되었다고 하였다. 하나님의 예정의 열매인 이 은혜는 하나님의 주관적 선에 따라 대가 없이 주어지며 인간의 어떤 공로에 따르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 은혜는 불가항력적이어서 인간을 강제로 반대하는 그런 의미에서가 아닌 인간의 마음을 새롭게 변화시키는 것이다.

⑶어거스틴의 신앙관 - 그는 신앙이 죄인의 칭의를 가져오는 것으로 보았다. 인간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워진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어거스틴은 칭의와 성화를 명확하게 구별하지 못하였고 성화를 칭의에 속하게 하였다. 어거스틴의 교리 체계에 있어서 주목할 것은 그가 모든 것을 하나님의 은혜로 돌린다는 것이다.

제2절 스콜라 시대의 구원론

1.스콜라 신학의 은혜관 - 스콜라 신학자들 사이에 널리 유행했던 견해는 어거스틴주의에 일치하였다. 일반적으로 인간으로서는 충족한 은혜의 도움 없이는 신앙을 자라게 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2.스콜라 신학의 신앙관 - 스콜라 신학 시대의 일반적인 경향은 신앙을 진리에 대한 단순한 동의인 지식의 한 형식으로서의 신앙과 선행을 하게 하며 영적인 감동으로서의 신앙으로 구별하는 것이었다.

3.스콜라 신학의 칭의관과 공로관 - 어거스틴이 칭의와 성화를 혼동한 것은 스콜라 신학자들에 의해서 수정되지 않고 오히려 더 강화되었다. 그들의 고통적이 사상은 칭의는 하나님께서 성화의 은혜를 인간의 영혼 속에 주입함으로써 발효되는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칭의를 단순히 그리스도의 의가 죄인에게 전가되는 것으로는 생각하지 않았다. 스콜라 신학자들의 공로관은 무상 은혜의 교리와 함께 칭의의 교리와 관련하여 공로의 교리가 표면에 나타나게 되었다. 사람은 칭의 후에 하나님의 은혜의 도움으로 당연한 공로를 받을 수 있다.

제3절 종교 개혁기와 종교개혁 후기의 구원론

1.루터가 본 구원의 순서 - 처음에는 삼요소만으로 되어 있던 루터파의 구원의 순서가 17세기의 루터파의 대신학자들에 의해 다듬어지게 되었다. 소명, 계발, 회심, 중생, 칭의, 정화, 영화 등의 순서로 만들어 졌다. 복음하에 사는 모든 사람은 누구나 세례를 받거나 말씀의 선교를 통하여 충만한 은혜를 받기 때문에 그들은 중생에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를 거부할 수 없다는 것이다.

2.개혁파의 구원의 순서 -개혁파신학에 있어서 구원의 순서는 좀 다르다 그것은 칼빈이 일관하게 그의 출발점을 영원한 선택과 구원의 약속에서 설정된 신비적인 연합에다가 두었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그이 기본적인 입장은 그리스도와 연합하지 않고서는 그리스도의 축복에 참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칼빈은 회개를 신앙보다 앞서는 것으로 보았지만 이 회개가 필연적으로 신앙으로 인도하지는 못하며 신앙의 본질적인 준비로서도 생각 될 수 없는 법적 회개와 최초의 공포만이 있을 뿐이라고 하였다. 구원의 순서는 루터파와 다르지만 이신득의의 교리의 성질과 중요성에 대해서는 일치하고 있다.

3.알미니안파의 구원의 순서 - 알미니안파는 하나님의 일반적인 은혜를 주셨다고 가르쳤는데 이 은혜는 죄인으로 하여금 믿게 하며, 복음을 순종케 하는데 충분하다고 하였다. 쏘우물학파의 견해는 중생과 회심에 있어서 요구되고 또 실제로 일어나는 것은 마음의 효과적인 계발뿐이라고 하였다. 여기에 인간의 의지에 일하는 성령의 초자연적 공작은 없다는 것이다.

신율법주의의 견해는 그리스도는 온 인류릐 죄를 속하였는데 모든 사람의 구원을 가능케 하였으며 그들을 구원 얻을 수 있는 상대로 인도하셨다는 것이다. 웨슬레파의 견해는 율법의 가르침으로 죄인을 넘어뜨려 절망의 벼랑으로 몰고가 공포와 불안에 떨게 하다가 갑자기 영광스런 구속의 복음 앞으로 인도해 내어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영원한 멸망에서 구원을 받도록 호소한다는 것이다.

4.군소파들의 구원의 순서의 개념 - 신앙지상론자들은 구원적 은혜의 축복을 얻게 하는 그리스도의 사역과 그것을 적용시키는 성령의 사역을 구별하지 않았다. 그리스도의 구원으로 우리가 마치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하게 된다는 것이다. 신비주의파들의 구원론은 사람은 먼저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라고 믿기 전에 먼저 율법의 공포 밑에 들어가서 영적고투를 하며 가슴을 찢는 통회가 있어야 하며 처절한 고통을 체험하여야 한다. 그들은 어떤 성령의 특별한 보증이 없이는 믿음을 허락 받지를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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