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3-08-16 12:46
[3]기독교 교리사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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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웹섬김이
조회 : 9,496  

8) 그리스도의 사역에 관한 가르침 - 클레멘스는 그리스도가 대속물로서 자신을 내어주었다고 말하지만 인류의 죄를 위한 화목제였다는 것을 강조하지 않는다. 그는 입법자이자 교사, 영생에 이르는 길로서의 그리스도에 훨씬 더 강조점을 둔다. 구속은 인간을 타락 이전보다 더 높은 상태로 끌어 올리는 것이다. 오리겐은 그리스도가 죄인을 고치는 의사, 깨끗하게 된 자들의 교사, 자기 백성에게 하나님에 대한 순종과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요구하는 법을 주신 입법자, 제자들에게 덕있는 삶의 완전한 모범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그리스도는 신자들이 신의 본성에 참여하게 한다. 구원은 그리스도가 사탄을 보기 좋게 속임으로써 이루어졌다. 그리스도는 신자들의 죄를 위한 대속물로 자신을 사탄에게 바치고 사탄은 자기가 죄 없으신 분이신 그리스도를 붙잡아 둘 수 없을 것임을 깨닫지 못한 채 대속물을 받는다. 이것을 사탄 배상설이라고 부른다. 로고스에 의한 구속의 효력은 현세를 너머서 과거와 미래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오리겐은 이 세상에서 죽은 자들 만이 아니라 모든 타락한 영들, 사탄과 그의 악령들조차도 구속의 효력아래 있고 만물도 다 회복될 것이라는 주장을 했다. 이 주장을 만유회복설이라고 한다. 그러나 오리겐의 주장은 비성경적이다.

9) 구원론 - 클레멘스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인정한다. 이 자유의지로 선을 지향하고 복음을 받아들일 수 있다. 알미니우스와 웨슬리는 이런 견해의 영향을 받은 것 같다. 오리겐은 믿음을 인간의 행위라고 설명하면서도 믿음이 은혜의 결과라고도 했다. 믿음은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들이는 최초의 행위일 뿐이기에 반드시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깨달음으로 승화되어야 하고 선행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했다. 구원을 가져다 주는 믿음은 선한 행위를 낳는 믿음이다. 이 견해는 성경적이다. 오리겐은 두 가지 구원의 길을 말했는데 하나는 믿음에 의한 구원이고 다른 하나는 지식에 의한 구원이다. 믿음보다 더 필수적인 것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죄를 고백하는 회개이다. 오리겐은 오직 믿음에 의한 칭의의 수준에 이르지는 못했다. 그러나 회개하고 주 예수를 믿는 것은 베드로가 사도행전에서 한 전도의 핵심으로 틀렸다고 할 수 없다.

10) 교회론 - 오리겐은 교회를 신자들의 회중이라고 보고, 교회밖에는 구원이 없다고 한다. 본래의 교회와 경험상의 교회를 구별한다. 모든 신자들이 제사장이라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별개의 사제단이 특별한 권한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오리겐과 클레멘스는 둘 다 세례를 통해서 교회 안에서의 새로운 삶이 시작되고 죄사함이 주어진다고 가르친다. 클레멘스는 그리스도인의 낮은 삶에서 인간은 두려움과 소망으로 인해서 거룩함에 도달하지만, 높은 단계에서는 두려움은 완전한 사랑에 의해서 쫓겨난다. 후자는 신비들을 계시받은 자가 누리는 참된 지식의 삶이다. 성찬은 신자들을 영생에 참여하게 해준다. 성찬을 통해서 그리스도와 성령과의 교제 속으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오리겐은 성례들은 성령의 은혜로운 역사들을 나타내는 것이며 신적인 감화력을 상징한다고 해석했다.

11) 종말론 - 오리겐과 클레멘스는 죄인의 삶 속에서 정화의 과정은 죽음이후에도 계속된다고 보았다. 오리겐은 죽어서 선한자들은 낙원에서 추가적인 교육이 이루어진다고 보았고 악인들은 심판의 불을 경험한다고 가르친다. 클레멘스는 불신자들은 음부에서 회개할 기회를 갖게 되고 그들에 대한 시험은 심판의 날까지 끝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오직 소수의 신자들만 죽어서 곧장 하나님을 뵙는 지복의 삶으로 들어가고 대다수의 신자들은 죽은 후에도 정화의 과정을 통과해야 한다. 이것은 후에 연옥교리의 기반이 된다. 두 교부는 천년왕국설을 반대했다. 오리겐은 부활을 영적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지만 몸의 부활을 믿었다. 영혼이 선하냐 악하냐에 따라서 거기에 맞는 몸을 갖게 된다.

 

7. 군주신론

이 이론은 주후 3세기의 두드러진 이단이다.

1) 역동적 군주신론 - 에비온주의나 유니테리언주의와 전적으로 맥을 같이 한다. 이 주장을 최초로 한 사람은 로마의 감독인 빅토르에 의해 출교되었던 비잔티움의 데오도투스였을 가능성이 높다. 이 주장은 안디옥의 감독 사모사타의 바울에 의해서 부활했다. 그는 로고스는 성부하나님과 동일본질(호모우시오스)지만 신격 안에서 하나의 구별되는 위격은 아니다. 로고스는 인간의 이성이 인간 속에 존재하는 것처럼 하나님 안에 존재하였기 때문에 하나님과 동일시될 수 있었다. 로고스는 단지 모든 사람들 속에 현존하고 특히 인간 예수 안에서 활동했던 비인격적인 힘이다. 로고스는 예수와 관련해서는 점차 그 인성에 침부하였고 인성을 점차 신적인 것으로 바꿨다. 그래서 인간 예수는 신적인 존재가 되었고 공경을 받을 자격이 생겼지만 엄밀히 말하면 하나님은 아니다. 로고스와 성령은 하나님의 비인격적인 속성들일 뿐이다. 즉 로고스는 하나님의 이성이고, 성령은 하나님의 능력이나 영향력으로 보았다. 참 하나님은 본성과 위격에 있어서 성부 하나님뿐이다. 예수님은 진정한 인간일 뿐이다.

2) 양태론적 군주신론

a. 사벨리우스주의 - 사벨리우스는 반대로 그리스도의 신성을 보전하는데 관심이 있었다. 삼위일체 하나님이 세 위격을 하나님이 세 가지 양태로 나타난 것으로 이해했기 때문에 양태적 군주신론이라고 불렸다. 성부 자신이 그리스도 안에서 성육신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고난을 당하셨다고 주장하였기 때문에 성부수난설로 알려졌고, 동방에서는 사벨리우스주의로 지칭되었다.

b. 프락세아스와 노이투스 - 프락세아스는 성부 하나님이 고난을 당하였다고 단언하는 것을 피하였지만 노이투스는 그리스도가 성부 하나님이고 성부 하나님이 태어나서 고난을 받고 죽은 것이라고 말했다. 성부하나님은 자신의 존재 양태를 바꿔서 문자 그대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고 말했다. 성부가 태어나지 않았을 때 성부라고 부르는 것은 옳다. 그러나 성부가 이 땅에 태어났을 때 그는 성자, 곧 자기 자신의 아들이 되었다.

c. 사벨리우스 - 그는 위격이라는 말을 드라마에서 배우가 맡은 역할 또는 현현의 양태를 가리키는 의미로 사용하였다. 성부, 성자, 성령은 단지 하나님의 한 본질이 나타난 세 가지 서로 다른 양태를 가리키는 명칭일 뿐이라고 하였다. 하나님은 창조와 율법을 주실 때에는 성부로서 자신을 계시하였고, 성육신에서는 성자로, 중생과 성화에서는 성령으로 계시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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