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위일체(Trinity)라는 용어는 터툴리안이 가장 먼저 사용하였으며, 초대교회는 용어적인 혼란으로 인하여 교회는 용어적인 개념을 정립시킬 필요를 갖게 된다. 그래서 칼케톤 회의에서 헬라어 휘포스타시스는 라틴어 페르소나와 동의어라는 결정을 하게 된다. 즉 한 본질(우시아, esence), 세 인격(페르소나, person)이라는 용어가 정립되어진 것이다. 즉 영어로 표현하자면 Three persons with One essence로 표현되기도 하였고 Three persons with One substance 라고 표현되기도 한다.
“교회가 휘포스타시스와 페르소나는 동의어라고 공식적으로 선언하게 된 것은, 어거스틴이 죽은지 반세대가 지난 451년의 칼케톤 공의회에서였다. 이리하여 페르소나에 대한 정의에 휘포스타시스의 객관적이며 절대적인 성격을 포함시키는 길을 열게 되었다. 어거스틴이 이 위격들을 ‘존재양식’이라고 말하면서 강조하고자 했던 것은 정확히 바로 이러한 절대적인 영구성이었다. 우리는 어거스틴의 어휘선택에 대해 의문을 표시할 수 있다. 그가 선택한 어휘는 그를 사벨리우스주의로 몰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이것은 페르소나라는 단어가 얼굴이나 가면을 뜻하기 때문에 삼위가 한분 하나님의 세 얼굴로 이해되어 결국 양태론적 오류를 포함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말이다-역주)” (제럴드 브레이의 신론. 198쪽)
물론 성부와 성자와 성령을 한 인격의 세 양태로 이해하는 양태론은 이단적인 주장이었으며 2000년 교회사를 통하여 단 한번도 정통신학이었던 적이 없었다. 단일신론 역시 초대교회부터 이단적인 주장이었다.
교회사를 통하여 살펴 보면, 정통신학은 항상 이단들의 주장이 먼저 나타났고, 그들을 반박하기 위한 과정에서 정통신학이 정립되었다. 초대교회 교부들은 이단들과 성경적인 근거로 토론을 했고, 토론에서 패한 자들은 이단으로 정죄되어 도태되어 간 것이다. 정통신학은 인위적인 탁상공론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며, 목숨을 걸고 이단에 대항하고 토론을 하여 어랜 시간을 통하여 정립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