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3-07-21 12:46
[9]십계명 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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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웹섬김이
조회 : 7,791  

제9계명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지니다"(출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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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흡째 계명이 주어진 것에는 두 가지 목적이 있다.

첫째는 선량한 사람의 평판을 보호하는 것이요,

둘째는 거짓 증거를 하려고 애쓰는 무가치한 자들에게 범죄의 기회를 주지 않으려는 것이다.


평판은 하나님의 공의로우신 통치를 받으며 지내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귀중한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사물의 본래 성격을 알고 사람이 지닐 수 있는 유일한 수치란 죄의 수치라는 사실을 깨달은 지혜로운 자들이다. 하나님의 통치를 받지 않는 자들은 자기들이 실패한 것을 부끄럽게 여기고 또한 가난을 수치스럽게 여긴다. 세상의 일반적인 사람들은 이름이 알려지지 않거나 영향력이 없는 사람이 되거나 가난해지면 두려워하고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힌다. 그러나 거룩한 사상을 품고서 행하는 사람들은 비록 타인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는 단계에 있는 것이 늘 영광스런 정점을 향해 이끄시는 하나님의 목적의 일부분일 수도 있으며, 가난해지는 것은 하나님을 향해 부요해지기 위한 한 가씨 조건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사람들이 유일하게 두려워하는 일은 죄이며 가장 귀하게 여기는 것은 악한 행실로 더럽혀지지 않은 평판이다. 실제적으로 다른 사람들이 그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는 것은 사실 전혀 중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하나님께 올바르다고 인정을 받는 것은 그 자신의 인격에 달렸으며 크 인격은 세평에 영향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인격은 사람이라는 존재에 또한 그 자신에 관한 참된 사실들 위에 새겨지는 조각이다. 평판이란 다른 사람들이 그에 대해서 매기는 평가이다. 평판은 늘 인격에 의해 좌우되게 마련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고 하는 사람 들은 사람들이 성공과 위대함에 대한 가치 기준의 혼단으로 여러 가지로 잘못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며, 죄에 대한 일반 대중의 천박한 평가와 세상 사람들의 올바름에 대한 잘못된 경멸 때문이다. 비록 세상에서는 유죄 판결을 받았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흠이 없다는 판결을 받은 사람들이 많다. 완전하신 자 곧 인간의 몸을 입으신 하나님이신 그리스도께서 이 사실에 대반 최상의 본보기라고 겸손히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순전히 인간적인 입장에서 주님의 일생을 보면 그는 바로 아홉째 계명이 금하고 있는 죄 곧 거짓 증거의 죄 때문에 고난을 받으시고 목숨을 잃으셨다. 타인에게 무고하게 비방을 받은 적이 있는 사람들은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버린바 되었다"은 말씀을 늘 기억하고 위로를 받으라. 또한 주께서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다"고 말씀하신 사실을 기억하라. 그러나 공의로우신 하나님은 자기 백성의 평판을 결코 소홀히 여김 받는 것을 기뻐하시지 않으신다. 결국에 가서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을 변호하실 것이다. 그러나 우선 하나님은 아주 엄격한 요구, 바로 아홉째 계명에 의해서 백성들의 평판을 보호하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법을 사랑하는 자들은 늘 이 말씀을 기억하고 누구에게 의해서든 그 사람의 평판을 빼앗지 않도록 항상 주의를 기울일 것이다.


이 아홉째 계명을 주신데에는 또한 다른 취지도 있다. 그 취지란 악한 사람의 거짓 증거를 믿고서 보잘것없는 사람들을 인정해 줌으로써 발생하는 악으로부터 의인들을 보호하려는 것이다. 스스로 나서서 불량배를 인품이 훌륭하다고 속여 어떤 지위에 오르게 하는 사람은 그 불량배와 함께 못된 일을 도모하는 악한 자이며 그 불량배에게 속은 사람들을 모욕하는 것이다. 여기서 마음의 생각을 말로 표현했을 때 그 말이 미치는 교묘하고 광범위한 영향을 일일이 고찰해 볼 필요는 없다. 이 사실과 관련해서 자연스럽게 야고보의 말이 떠오른다.

"혀는 곧 불이요 불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생의 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불에서 나느니라"(약 3:6).

거짓 증거로 말미암아 인간사회에 발생해 온 해악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많다. 그러므로 이 아홉째 계명을 주의 깊게 살펴보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이 명령의 단순한 의도를 알아보고 다음에는 어떻게 하면 이 계명을 범하는 것인가를 살펴보겠다. 그리고나서 마지막으로 이 명령을 오늘날의 여러 가지 문제에 적용시켜 볼 것이다. 이제 아홉번째 계명을 검토함으로 나 자신이 진정 이웃을 사랑하고 있는지 점검해 보자.

아흡째 계명의 이해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지니다"는 이 말씀은 직접 간접으로 사람이 타인에 대해 말할 때 진실만을 말할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 십계명 가운데 셋째 계명은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것을 금함으로써 사람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진실할 것을 명령하였다. 이와 유사하게 아홉째 계명은 사람 상호간의 관계에서도 바로 셋째 계명과 동일한 원칙에 의해 진실하게 행동하고 그 노선을 따라 바르게 행동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 창조주 하나님은 언제나 피조물 인간에 대한 정확하고 완전한 지식에 의거하여 사람을 다루신다. 전지하신 하나님이 사람을 대하시는 태도나 사람을 다루시는 방법은 사람들의 외모나 이웃 사람들의 평판에 좌우되지 않는다. 시편 기자가 시 139:1에서 하나님의 지식에 대해 기술한 것만큼 바르고 설득력 있는 말은 없다.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감찰하시고 아셨나이다 주께서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며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통촉하시나이다."


하나님은 바로 그와 같이 깊고 절대적인 지식에 의거해서 사람들을 다루신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사람 상호간의 관계에서 사람에게 바라시는 의도도 그와 같은 것이다. 사람의 지식은 당연히 한계가 있는 법이다. 그러나 아무리 제한된 지식이라도 그 지식이 미치는 범위가 있는 법이다. 따라서 그 지식이 미치는 범위 내에서 만큼은 믿을 수 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람은 누구나 다 같은 형제인 사람에 대해서 말하거나 대할 때 진실해야 한다고 하신다. 사람 상호 간의 교제는 그 사람의 인격과 행위와 역량에 대한 실제적인 사실들에 의해 좌우되어야 한다. 그러나 사회 전체 구조는 한 사람이다른 사람에 대해 말하는 증언에 기초를 두고 있다. 따라서 사회 구조가 진실과 의로 확립되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증언이 진실되어야 한다. 허위 진술에 의해서 도움을 받거나 해를 입는 사람이 있어서는 안된다. 그러므로 허위 증거를 해서는 안되며 정당한 것과 그른 것을 판결하는 법정에서 증언을 할 때는 판결을 바꿀지도 모르는 사실들을 빼먹어서는 안된다. 사람들이 타인에 대한 태도에서, 사람을 대하시는 하나님의 태도의 특징인 정직의 법에 가까와지려면 다른 사람에게 제 삼 자에 대해 하는 말이 순전하며 정확하고 진실해야 한다. 이처럼 눈에 보이는 사람에게 충실할 때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에 대한 충실함이 증거 된다.

어떻게 하면 이 계명을 범하게 되는가?

아홉째 계명을 가장 간단하게 먼저 적용시킬 수 있는 것은 진실을 가리는 법정에서 제시되는 증거이다. 증거를 제시한다는 것은 법정 본래의 직무를 바로 행하기 위한 중요한 방편이다. 법정은 정의를 실행하기 뛰해 재판을 시행하는 곳이다. 정의는 진실에 기초한다. 따라서 거짓 증거는 어떤 것이든지 진실을 위반하는 것이며 잘못된 재판을 낳는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위증이 심각한 범죄가 되는데, 위증으로 말미암아 마땅히 처벌되어야 할 죄들이 처벌되지 않을 수 있고 무고한 사람이 고통을 받을 수가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그러나 여기서 논의를 그친다면 그것은 아홉째 계명의 보다 깊은 뜻을 거의 잃어버리는 것이 될 것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일생 동안 한번도 법정에서 증언하지 않을 수가 있지만 그럴지라도 매일 이 하나님의 법을 어길 수 있는 위험이 있기 때문에, 자칫하면 거짓 증거가 될 수 있는 몇 가지 경우들을 보다 자세히 살펴보는 것이 좋다.


☛ 그 첫번째로 이러한 것에 해당하는 아주 노골적이며 뻔뻔스런 형태의 죄는 타인에 대한 무고한 비방 이다.

즉 악의를 가지고 꾸며내어 퍼뜨리는 거짓말이다. 아마도 사람이 사람에게 끼치는 해 가운데서 이것만큼 야비한 형태의 죄는 없을 것이다. 악의를 가지고 비방을 하는 사람과 비교해 볼 때 차라리 노상 강도는 신사에 속하고 암살자는 친절한 편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노상 강도는 가졌다가도 되돌려 줄 수 있는 물건을 빼앗는다. 암살자는 재빠르게 혹은 갑작스럽게 공격 하여 거의 고통을 주지 않고서 목숨을 끊는다. 그러나 거짓말을 꾸며내어 퍼뜨리는 비방자는 상대로 하여금 평판을 잃게 해서 도저히 그것을 되찾을 수 없게 만드는 무기를 쓰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대부 분의 경우 비방자 자신은 들키지 않고 처벌되지도 않은 채 지내는 반면에 종종 죄 없는 사람은 그 무기로 인한 치명적인 공격 때문에 오래도록 말로 다할 수 없는 고통을 겪는다.


☛ 둘째, 어떤 소문을 자세히 조사해 보지도 않고 소문을 퍼뜨리는 과정에서 거짓 증거가 생겨난다.

정당성의 여부에 대해서는 다소 논란이 있지만 명예 훼손에 관한 법이, 비록 사실일지라도 누구에겐가 해를 입히는 경우에는 그것을 퍼뜨려서는 안된다고까지 규정하고 있다. 여하튼 어떤 얘기가 누군가의 명예나 평판에 영향을 미친다면 철저하게 조사도 해보지 않고 그 얘기를 퍼뜨리는 것은 이 계명을 위반하는 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세히 조사해 보지 않고 소문을 퍼뜨린다. 그래서 항상 소문을 퍼뜨리는 사람은, 자신에게는 본래 속이려는 뜻이 없었으며 다만 그 소문이 틀림없다고 사람들이 말했다고 함으로써 자신의 행동을 변명한다. 그러나 그렇게 변명한다고 해서 그 행동이 정당화되지는 않는다. 말한 내용이 확인된 바 사실 그대로의 진술이지 않는 한, 해를 끼칠 수 있는 그런 방법으로 이웃에 대해 말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악한 일이다. 자기가 퍼뜨린 얘기 때문에 일어나는 엄청난 파괴적인 결과를 보고 좋아하면서 이런 무법한 일을 즐기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은 진실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이웃을 아프게 하는 범죄자로 정죄되어야 한다.


☛ 셋째, 암시나 시사 혹은 교묘한 질문에 의해서 상대방에게 타인에 대해 그릇된 인상을 심어줄 때 이것 역시 일종의 거짓 증거라고 볼 수 있다.

"모씨에 관해서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라는 식의 질문에 의해서 많은 사람들의 훌륭한 명성이 실추되는 일들이 있어 왔다. 대답하는 사람이 부정적인 말을 하면, 질문한 사람은 "자, 말은 적을수록 좋지요"라고 말한다. 이렇게 하면, 그 사람에게 더 이상 말을 시키지 않아도 이미 부정적인 인상을 갖게 만든다. 따라서 풍자하는 그 사람의 말은 결과적으로 거짓 증거의 속이는 효과를 십분 발휘한 셈이다.


☛넷째, 거짓 증거는 부당한 침묵에 의해서도 생겨날 수 있다.

다른 사람을 비방하는 말을 할 때 듣고 있던 옆의 사람이 그 진술이 비방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개인적인 어떤 이유나 말하기 싫다는 이유 때문에 혹은 말했다가는 말썽이 날지도 모른다는 이유 때문에 잠자코 있으면 그 사람은 부당하게 비방하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아흡째 계명을 어기는 죄를 짓는 것이다.


☛다섯째, 동기에 대한 비방도 많은 악을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

사람들은 어떤 사람의 행위나 구제를 의심하는데, 이것은 그 일들 자체가 잘못되었기 때문이 아니다 그 일을 하는 데에는 표면적인 이유 말고 다른 어떤 이유 즉 이기적이고 치사스러운 동기가 이면에 있었다는 암시를 받기 때문이다. 만약 어떤 사람의 선량한 행동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면 그사람의 선행은 오히려 파렴치한 행동으로 매도당하고 만다. "아, 그래 그 사람은 자기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다 알고 있어." "그까짓 선물은 한 밑천 잡으려는 미끼에 불과해." "그는 제 잇속은 반드시 챙기는 사람이야." 따라서 사람들은 타인에 대해 얘기할 때 그것이 직접적인 인격 침해는 아니다 할지라도 간접적으로라도 그 사람의 인격을 손상시키는 것이 아닌지에 대해서 많은 주의를 기울려야 한다.


☛ 여섯째, 아첨도 거짓 증거의 한 형태이다.

다른 사람에게 얘기할 때 순전히 그를 기쁘게 하며 그의 허영심을 만족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사실이 아닌 얘기들을 하는 것은 그 사람에게 거짓 증거하는 것이며 따라서 그에게 결코 유익을 줄 수 없다. 또한 그 사람이 자격이 불충분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순전히 그와의 친분만을 생각하고 그에 대하여 부당한 칭찬을 한다거나 그 사람에 대한 증명서를 써준다거나 혹은 그를 추천하는 일 역시 그를 추천받는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거짓 증거의 한 유형인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이런 식의 거짓 증거가 지닌 위험은 아주 교묘하며, 이런 방법에 의해 다른 사람에 대한 잘못된 인상은 매우 쉽게 그리고 거의 알아차릴 수 없게 생겨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십계명 중 이 아홉째 계명만큼 자주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범 하게 되는 계명은 없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항시 이렇게 기도할 필요가 있다.


"

여호와여 내 입 앞에 파수꾼을 세우소서 내 입술의 문을 지키소서."

아홉째 계명의 현대적 적용

거짓 증거하는 이 죄는 오늘날 사람들 사이에 더욱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오후 다과회나 도르카스회(Dorcas meetings:빈민에게 줄 옷을 만드는 모임) 또는 여자들이 모이는 모든 단체에서 나누는 대화를 전부 기록해서 볼 수 있다면 아주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남자들도 역시 이런 식의 잘못을 많이 저지르나 특히 여자들이 이런 일을 더 자주 범하는 것처럼 보인다. 어떤 사람의 일을 얘기하면서 그 일과 관계없는 다른 사람에 관한 얘기하는 버릇은 얘기하는 사람 자신이나 화제에 오른 사람 모두에게 아주 유해한 일이다. 이런 일은 대개가 전념할 수 있는 건전한 일이 없고 정신적인 교양이 부족한 이유 때문에 생기게 되는데, 말을 많이 한다고 할 때는 거의가 이런 일이 부수적으로 따른다. 사람들은 종종 이것을 무해한 악습이라고 말하는데, 이러한 표현은 오직 악습은 악습인데 결코 해가 없다고 말할 수 있는 경우에만 해당되는 말이다.

귓속말이 공중에 퍼지네.

부드럽고 경쾌하며 나즈막하지만

수치와 고통의 가시가 돋힌 말이,

그 말이 공중에서 사라지기만 한다면

더 멀리 퍼지지는 않으련만.

불행하게도 재빠른 귀가

그 하찮은 소리를 들었고,

또 다른 입이 그것을 퍼뜨려

귀에서 입으로 입에서 귀로

그 소리가 두루 두루 돌아다니네

온순한 마음에 이르러

그 마음을 깨뜨리기까지.

또한 오늘날에는 결과적으로 언제나 해를 더 많이 끼치는 그릇된 자선 행위가 성행하고 있다. 무능력한 사람이 당장 겪고 있는 딱한 사정을 보고 동정해서 그를 추천하여 그에게 맞지 않는 자리에 앉혀 놓으면 결국 그가 실패할 것은 틀림없고, 그가 맡은 일조차도 망치게 된다. 이런 일은 경제, 문화, 정치, 종교 활동에서 다 일어난다.

개인 뿐 아니다 국가나 사회도 거짓 증거의 죄를 범할 수 있다. 오늘날의 거짓 증거는, 부정적인 일을 야기시키는 동기를 다른 나라에 뒤집어 씌우는 보도 기관을 소유한 어떤 단체나 자기 정적에게 욕지거리와 모욕적인 언동을 마구 퍼붓는 정치인들이 늘상 범하는 악한 습성인 것 같다. 유럽에 만연해 있는 불안의 절반은 보도 기관을 통한 국가간의 거짓 증거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의 많은 정치인들과 언론인들이 삼십 분간만이라도 비판의 눈초리를 버리고 편견 없이 '자유 기고가'(The Free Lance)라는 책에 수록된 마리에 꼬렐리(Marie Corelli)의 "예절과 신사"라는 글을 읽어 본다면 좋을 것이다.


세상은 온통 의심으로 가득차 있다. 그래서 투옥과 고문에 의한 옛날의 박해 방법은 사라졌지만 오늘날에도 거짓 증거라는 방법에 의해 여전히 희생자는 생겨나고 있다. 이러는 동안에도 내내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지니라"는 하나님의 호통 소리는 울려 퍼지고 있으며 이 시대가 끝날 때까지도 여전히 그러할 것이다. 다음에 나오는 주님의 말씀을 유의하여 보라.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

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보라에 눈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속에서 티를 빼리라."


진리를 위반하는 것은 모두 다 십계명을 어기는 것이다. 그렇지만 다른 사람들의 마음에 사실과 다른 인상을 심어 주는 것만큼 비열하게 하나님을 거역하고 동료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일은 없다. 이 계명을 깨뜨리는 자는 곧 도둑이요 비겁자요 거짓말장이다. 거짓말장이라 함은 거짓 증거가 진리와 반대되기 때문이고, 비겁자라 함은 일단 거짓 말을 시작했으면 끝까지 거짓말을 밀고 나가며, 한번도 상대방에게 사실을 바르게 가르쳐 주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도둑이라고 함은 세익스피어가 말한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이다.

내 돈지갑을 훔치는 자는 쓰레기를 흠치는 자일세.

.............

그러나 내 명성을 훔치는 자는

자신을 부유하게 하지도 못하면서 다만 나를 불행하게

만드는 것을 훔치는 자라네.


아홉째 계명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개선책이란 진리와 사랑의 구현자이신 그리스도에게 자신을 모두 드리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통치하시는 곳에서는 사랑이 모든 행동의 동기이며 사랑은 언제나 진리 안에서 나타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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