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3-07-21 12:43
[7]십계명 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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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웹섬김이
조회 : 7,624  

제7계명

"간음하지 말지니다"(출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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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생명의 신성함을 밝힌 제6계명 다음에 즉시 세상에서의 가장 고귀한 부부 관계를 고호하고, 생명 출산이라고 하는 거룩한 직무에 필요한 조건을 도의심과 순결이라고 규정하는 계명이 나온다. 하나님께서 맨 처음 창조하신 사회는 가정이며 하나님이 목적하신 이 가정은 남자와 여자의 신성한 결합으로 시작된다. 피조물인 인간 생활의 첫번째 원리는 창조주이신 하나님과의 관계이다. 그리고 두번째 원리는 하나님 형상대로 지음받은 사람들간의 상호 관계이다. 이 두번째 영역에서 발생하는 모든 관계의 전형과 기원은 가정이다. 그러므로 어떤 것도, 후속적인 모든 인간 관계의 기초가 되는 부부 관계만큼 사회의 질서를 이루는 데 근본적인 것은 없다. 따라서 부부 관계는 인간 관계의 기초를 허물려는 어떠한 형태의 공격으로부터 정신을 차리고 지켜야 한다. 실로 인류의 화합은 하나님의 죄하시는 것으로 이는 남편과 아내의 화합에서 나온다고 할 수 있다. 남편과 아내의 결합은 시대적인 산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 섭리와 관계되여 결코 변질될 수 없는 본질적인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기"(창 1:27)때문이다. 그러므로 남편과 아내의 화합은 하나님의 형상을 표현하는 화합이다. 그러므로 남편과 아내 두 사람은 다 같이 협력하여 반드시 하나님을 온전히 나타내야 한다. 그러므로 남성과 여성이라는 양성 (duality)은 거룩한 출산 능력의 이중적인 표현일 뿐 하나님의 형상을 나타내는데는 차이가 있을 수 없다.


이와 같은 고찰은 이 일곱째 계명이 지니는 중요한 의의를 보여 주며, 이 계명이 모든 시대 모든 곳에 있는 인류에게 구속력이 있음을 분명히 보여 준다. 이 계명이 실제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는 부부관계의 신성한 권리를 더럽히는 부정의 죄를 범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 계명의 정신은 명백하게 모든 형태의 부정을 금지한다. 그 이유는, 결혼에서의 한 남자와 한 여자의 화합이라는 본질적인 의미의 결합을 승인한다면 그리고 생활의 연합은 언제나 하나님의 계획과 통치에 들어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그 즉시, 남자든 여자든 결혼 전의 부정 행위는 앞으로의 결혼 생활에 잘못을 범하는 것이라는 사실이 명백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결혼 전의 부정은 결혼 후의 부정과 마찬가지로 간음이다. 아마도 이 주제만큼 충실하게 다루기 어려운 주제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또 이 주제만큼 정직하고 대담한 취급을 요하는 주제도 없다.


그러면 우선 이 명령 자체를 생각해 보고 다음에는 이 계명이 현대 생활에서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주의해 보자.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주제를 다루는 아주 엄격한 기독교 윤리를 살펴보자.

일곱째 계명의 이해

일곱째 계명 가운데 내포된 명령은 간단하고 무조건적이며 변경할 수 없는 금지를 나타낸다. "하지 말지니다!" 여기에는 어떠한 논증이나 이유가 전혀 제시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간음 죄가 가지고 있는 파괴적이고 저주적인 성격 자체만으로도 이 죄를 엄격하게 금지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계명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서는 단지 이 계명이 금하고 있는 죄를 생각해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부정 행위라는 이 죄는 개인과 가정과 사회와 국가와 인류와 우주와 하나님께 대해 죄를 짓든 일곱 겹의 악이다.


☛먼저 이 죄는 개인에 대하여 짓는 죄이다.

이 사실은 증명이 전혀 필요 없다. 이 죄를 범하는 사람은 모든 면에서 아주 무거운 여러 가지 형벌을 천벌로 받는다. 순전히 육체적인 면에서도 부정한 생활의 끔찍한 여러 결과는 여기서 일일이 지적할 수 없을 정도이다. 그 결과들은 너무나 잘 알려져 있는 것들이다. 과학자마다 자연은 순결을 굉장히 요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증거하려고 하며, 자연은 부정한 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전혀 동정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려고 한다. 또한 정신 이상에 대한 세계 각국의 통계 자료를 보면 부정한 생활이 사람의 정신적인 면에 얼마나 두려운 영향을 끼치고 있는가를 알 수 있다. 아주 고도의 정신 문화와 물질 문화를 향유하던 나라가 하나님의 창조 원리에 위배되는 불법적인 성행위의 죄 때문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었을 뿐 아니라 결국 소멸되었다는 것을 입증하는 슬픈 여러 가지 역사적 사례들이 있다. 영과 혼과 육체의 완전한 통일과 조화가 이 간음의 범죄에 의해 파괴된다. 그래서 부정한 생활과 습관에 빠져 행하는 사람은 남녀를 불문하고 많은 사람들이 자살을 한다.


☛ 또한 이 죄는 가정에 대하여 짓는 죄이다.

어머니의 숭고한 역할과 어린 시절의 신성함 그리고 어린 아이들에게 반드시 요구되는 모든 보호와 사랑스러운 관심은 결혼이라는 신성한 하나님의 제도를 통해 확보되고 충족된다. 따라서 결혼 관계의 여러 가지 권리가 침해당하고 무시될 때는 언제든지 부부와 자녀에 대한 하나님의 축복은 멀어지고 가정이라는 축복받은 집단은 붕괴라는 비참한 결과가 발생한다. 사회적 동물인 사람은 집단 속에서 훈련을 받게 되어 있다. 그리고 그런 훈련을 할 수 있는 능력과 준비는 부모의 근본적인 사랑에 의한 지 배에서 시작된다. 다섯째 계명이 분명히 가르치고 있듯이 어린 아이를 양육시키는 데에는 부모 양편의 관심이 반드시 필요하다. 따라서 가정이 부정의 죄로 말미암아 파괴되면 자녀들에게 이루 다 셀 수 없는 많은 해가 돌아간다. 이혼 판결에 뒤따르는 결정으로서 자녀들의 양육 책임을 부모 중 한 사람이 맡았다고 밝히는 기사만큼 가슴을 아프게 하는 것은 없다. 그것은 하나님의 방법을 따라 만들어진 가정이 파괴되어 가족들의 결속이 깨어졌다는 사실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실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가정의 파괴를 가져오는 이 죄가 무서운 것이다.


☛또한 이 죄는 사회에 대하여 짓는 죄이다.

이 사실은 앞의 고찰로부터도 유추될 수 있는 것이다. 가정이란 공동 생활을 영위하며 공동의 사랑에 의해 지배되는 개인들의 연합체이다. 그리고 사회는 이런 가정들이 모여 이루어진 것이다. 이 외의 다른 어떤 기초 위에 사회를 건설하려고 하는 시도는 다 악하며 큰 불행으로 끝난다. 수도원 사회의 역사가 이 사실을 분명하게 증명하고 있다. 사업에 대한 공동 관심사가 공동의 지적 추구라는 기초 위에 가정을 배제하고 사회를 조직하려는 시도는 조만간에 다 무너지고 만다. 사회는 많은 가정이 모여서 이루어진 집단이다. 따라서 재산이나 명성, 사람에 대한 모든 인간 상호 관계는 가정의 파괴와 함께 붕괴한다. 부부 관계를 방해하고 가정을 파괴하는 죄는 진정한 모든 사회의 적이다. 성에 있어서만큼은 모든 것을 공유한다는 이념으로 세워진 공산주의적 발상이 가장 저주스런 죄라는 사실을 알 때에만이 비로소 다른 것을 진정으로 공유할 수도 있다.

☛ 또한 이 죄는 국가에 대하여 짓는 죄이다.

이 사실 또한 앞의 고찰로부터 나온 자연스러운 논리적인 귀결이다. 간음하는 자는 국가의 적이다. 그러므로 그런 자들은 먼저 이혼 판결을 통해 이혼시킨 후 형사 판결을 내려 투옥시켜야 한다. 어떤 교파의 목사에게도 이 죄 때문에 부부 관계가 끊어진 사람을 재혼시킬 권리가 없다. 그런 사람들을 마음대로 재혼하도록 허락하는 것은 국가에 반역하는 행위이다. 이들은 투옥시켜서 죽을 때까지 이성(the other sex)으로부터 격리시키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그들은 부정 행위로써 가정에 타격을 줌으로써 국가에 끼친 잘못을 씻을 수 있는 기회를 갖지 못한다는 문제는 있다. 한 국민의 위대함은 그 국민의 순결과 도의심에 달려 있다. 따라서 부부 관계가 더럽혀져도 처벌하지 않는 나라는 모두 그 속에 사회와 국가를 죽음으로 몰아넣는 병원체가 활동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이 점은 앗시리아, 그리이스, 로마 그리고 우리 시대에서는 프랑스의 쇠망의 역사에서 나타나는 무서운 사실들에 의해 너무나 명화하게 입증된다.

이 점에서, "의는 나라로 영화롭게 하고 죄는 백성을 욕되게 하느니라"(잠 14:34)는 말씀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 죄는 인류에 대하여 짓는 죄이다. 인류의 발전이나 파멸이 그 구성원의 하나인 자신과는 무관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인류의 연대 책임은 공상가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욱 깊다. 이것은 논의의 여지가 없는 명백한 사실이다. 각 사람의 생활은 인류의 발전을 돕거나 방해하는 세력에 그 나름대로 힘을 보태고 있는 것이다. 모든 사람은 인류의 그 이상적인 날이 오는 것을 방해하고 있거나 재촉하고 있는 것이다. 인류에게 고통과 슬픔을 연장시키는 죄는 부도덕한 모든 사람에게 그 책임이 있다. 타락한 인류가 겪고 있는 고통과 악은 과거 세대의 부정 때문에 내려지는 저주이다. 따라서 음란하여 짐승 같이 무절제하며 비도덕적인 모든 남녀는 지금 현 세대에 뿐만 아니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미래 세대에도 새로운 상처를 입히고 있다. 그러므로 "간음하지 말라"은 하나님의 명령은 우리 역시 끊임없이 큰 소리로 외치고 마음에 새겨야 하는 절대적인 도덕율이다.


☛ 또한 이 죄는 만물에 대하여 짓는 죄이다.

만물의 생명력은 사랑에서 나온다. 만물의 기원 역시 사랑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이다. 만물의 증식 원리도 사랑이다. 결혼 관계와 같은 가장 고귀한 형태의 화합으로부터 시작하여 보다 낮은 차원의 모든 일상 행동 영역에 이르기까지 사랑이 성장의 법칙이다. 야수들은 신성하게 여기는 자기의 잠자리에 대한 사랑 때문에 목숨을 걸고 그 자리를 지킨다. 새들이 둥우리를 짓는 행위는 모든 피조물 속에서 고동 치고 있는 성생활(love-life)에 대한 충동을 보여 주는 증거이다. 이 꽃에서 저 꽃으로 꽃가루를 날라다 주는 벌 역시 같은 본능을 지닌 심부름꾼이다. 사랑은 하나님께서 지으신 우주 만물의 도처에 있다. 음탕한 부정 행위의 죄는 이러한 사랑의 위대한 법칙을 위반하는 것으로서 점차 사랑을 메마르게 하고 파괴시킨다. 간음을 행한 모든 남녀는, 그들의 부정 행위가 만물의 모든 천성에 어긋나는 행위라는 사실을 깊이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그들이 들으려고만 한다면, 남녀의 순결하고 거룩한 모든 사랑, 짐승들의 자기 짝에 대한 헌신, 새들의 짝을 찾는 노래 소리, 여름 벌들의 윙윙거리는 소리, 이 모든 것이 모든 피조물을 거스리는 간음한 자들의 죄의 가증함을 선언하고 있음을 들어야 한다.


☛결과적으로 이 죄는 하나님에 대하여 짓는 죄이다.

이 점은 사실상 앞에서 계속해온 모든 논의를 통해서 이미 언급한 셈이다. 사람은 모두 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졌다. 하나님은 모든 가정의 참된 아버지이시다. 하나님은 모든 사회의 목자이시다. 하나님은 모든 국가를 다스리는 왕이시다. 인류는 한 사람도 빼놓지 않고 다 하나님의 소유이다. 만물의 사랑의 법칙은 만물에게 바라시는 하나님의 뜻이다. 이렇게 해서 마지막으로 그리고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부정 행위와 부정한 사람은 모두 다 바로 하마님의 마음에 상처를 입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영구히 하나님께서 친히 다스리시는 그 나라를 성결케 하시기 위한 필요성 때문에 새 하늘과 새 땅에서 "...행음자들을"(계 21:8) 쫓아내시고 그들로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여케 하실 것인데 이것이 둘째 사망이다."


이와 같이 일곱째 계명이 구속력이 있고 엄격하게 시행되어야 하는 것은, 피조물이 하나님의 모든 사랑을 이해하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단계에까지 이르기를 하나님이 바라시기 때문이다. 부정 행위를 금지하는 이 법을 무시하는 것은 바로 사랑의 가치를 부인하는 태도이다.

일곱째 계명의 현대적 적용

오늘날에는 일곱째 계명을 재 진술하며 다시 한번 강조할 필요성을 보이는 시대적인 징조들이 있다. 이 징조들 중 첫번째의 것은 우리 주위에서도 아주 명백하게 보이는 현상으로서 부부 관계의 결합을 느슨하게 하려는 경향이다. 결혼 관계란 문명 사회에 있어서는 다양한 관계들 가운데 단지 한 관계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점차로 유행하고 있는 것 같다. 이것은 결정적으로 잘못된 생각이다. 결혼 관계란 다른 어떤 관계와도 나란히 놓을 수 없는 전적으로 신성한 것이며 독특한 관계이다. 결혼 상태의 합법성은 성(sex)이라는 지극히 중요한 매개체를 가졌다는 사실에 있다. 결혼 제도도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이다. 이렇게 결혼을 제정하신 하나님이 연합의 법칙도 결정하셨다. 그러므로 모든 결혼은 다 하나님의 계획의 일부이다.


슬프게도 사람들은 거의 하나님을 전혀 인정하지 않은 채 결혼 관계를 시작하는데, 그 결과로서 끔찍한 불행이 자주 발생한다. 그 이유는 사람이 신성한 문제를 함부로 다룰 때는 반드시 상처를 입기 때문이다. 일단 그 결합이 이루어지면 결혼 관계는 일생 동안 지속되어야 한다.


일생 동안에 결혼 관계를 취소할 수 있는 이유는 단 한 가지밖에 없는데, 그것은 죽음보다 훨씬 더 무서운 사실로서 간음이라는 것이다. 성격의 차이가 이혼의 충분한 사유가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은 하나님의 왕권에 정면으로 반항하는 것이며 그러므로 또한 인간 복지의 기초를 파괴하는 것이다. 결혼 생활의 순결을 위해서는 성격 차이가 이혼의 충분한 사유가 된다는 등의 결혼을 다른 인위적인 관계처럼 취급하려는 그릇된 생각과 어떠한 형태로든지 이러한 사고를 은근히 장려할 때 이를 완강히 거절해야 한다.


결혼 생활의 신성함을 파괴하는 시대적인 또 하나의 징조는 최근에 문학계를 더럽혀 온 추잡한 소설이 난무한다는 점이다. 그 소설들은 결혼 관계를 유감스러운 것으로 다루며, 호색한과 간통하는 남자들을 옹호하지는 않는다 할지라도 동정하며 변명해 주고 있다. 그런 문학은 출판의 자유를 악용하여 생겨난 아주 유해한 퇴폐 행위인데, 어떤 나라든지 출판의 자유를 허락하면 이러한 상처를 입을 가능성에 노출되어 있다. 절대적인 순결의 필요성을 경시하는 책이나 논문을 출판하는 작가는 그 행동이 두고 두고 많은 사람들을 퇴폐하게 만들게 되므로 이에 책임을 지고 스스로 문화계에서 물러나는 것이 좋다. 국민의 상당수의 사람들이 부정하며 인간의 죄악된 심성이 사라지지 않는 한, 그런 책은 계속 나오고 또 읽혀질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교회의 신자라면 누구나 다 반드시 이 일곱째 계명에 나타난 변경할 수 없는 사랑의 법을 충실히 지켜야 하되 자신들의 개인 생활에서 뿐만 아니라 외부에 끼치는 자신들의 영향력에서도 그렇게 해야 한다. 또한 교회는 그런 비윤리적인 저자나 퇴폐적인 책에 대해서는 조금이라도 장려하는 빛을 비쳐서는 안된다.


다음에는, 적은 임금을 주고서 남자들 틈에 끼어 일하도록 시키는 모든 방면의 여성 직업에는 부정 행위를 유발시키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오늘날 영국의 젊은이들에게 아주 심각한 저주거리들 중의 하나는 젊은 여자들을 호텔이나 담배 가게에 고용하는 일이다. 이점에서 나는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으로 취급받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건전한 정신이 점차 힘을 잃어 가고 재물 숭배가 많은 사람들의 정신을 오염시키는 이 시대에 우리의 딸들이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결국은 집을 나갈 수밖에 없게 된 것은 너무도 유감스러운 일이다. 일이 이렇게 될 수밖에 없는 바에야, 적어도 우리 딸들이 함께 뒤섞여 일하면서 날마다 접촉하게 되는 남자들에 대해 신앙적으로 주의하도록 가르쳐야 한다. 부정은 흔히, 정직하고 아주 순수한 것처럼 보이는 상태에서부터 시작되나 그 감정이 비뚤게 발산되어 잘못된 결과에 이르는 일이 많으므로 신앙을 가진 젊은이로 하여금 감정의 폭풍우에 휩쓸리지 않도록 훈련시키는 일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 다음에, 나는 이 나라의 여자들에게 복장에 관해서 몇 마디 말을 하고자 한다. 사교계 여성들이 즐겨 입는, 몸을 많이 노출시키는 복장은 확실히 의상 유형에 대한 돌연변이의 징조이다. 또한 그러한 의상에는 과거 오랫동안 부부 관계에 있어 저주거리였던 소욕주의(animalism:기성의 도덕 윤리를 배척하고 관능에 따라 동물적 욕망만을 채우려는 주의)에 영합하려는 저의가 깃들어 있다. 게다가 도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상한 여러 가지 형태의 여성 복장은 진정한 아름다움과 선함을 모욕하는 것이며 따라서 하나님을 모욕하는 것이다. 나는 지금 구세군 전도자들의 제복을 입으라거나 오순절파 사람들이 쓰고 다니는 모자를 쓰라고 호소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다만 잘 어울리고 아름다우며 정숙하게 보이는 옷을 입으라는 것이다. 그런 옷들은 남자들이 늘 여성에게 표시해야 하는 경의에 어긋나는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을 것이다. 이 문제가 어떤 사람들에게는 아주 하찮게 보일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딸들은 혼자서 그리스도와 함께 이 문제를 깊이 생각해 보라. 그러면 내가 마저 다 얘기하지 못한 점을 깨닫게 될 것이다.


아직도 한 가지 더 남아 있는 문제가 있다. 부정 행위라는 이 문제에 있어서 남자와 여자의 죄책을 구별하는 데서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변칙적인 것이 있다. 부드(Booth)는 "암울한 영국"(Darkest England) 이라는 주목할 만한 책을 펴내면서 자신이 "간음"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을 설명하는 중에 이렇게 말했다.


"왜 매음이라고 말하지 않는가? 그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다. 매음이란 그 악을 행하는 한 쪽 편에게만 즉 몸을 파는 불우한 여인에게만 해당되는 말이다. 그러나 간음이란 두 사람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말이다."


이 말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성적인 죄를 짓는 남자가 여자가 받는 만큼 치욕적인 오명을 뒤집어 쓰기 전까지 그 남자를 두둔하는 대중의 견해는 실제적으로는 치명적이고 저주스러운 이 악을 공모하는 죄를 짓는 것이다.

일곱째 계명과 관련된 그리스도인의 윤리

지금까지 해 온 모든 말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말을 무색하게 만드는 아주 호된 말씀이 아직 남아 있다. 그 말씀은 성육신하신 순결한 그리스도의 입에서 나온 말씀으로, 그가 공생애 동안에 제자들에게 선포한 하나님 나라의 성명서 가운데 들어 있다. 이제 그분이 선언하신 말씀을 읽어 보자,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만일 쩨 오른눈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네 온 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또한 만일 네 오른손이 너를 실족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네 온 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 또 일렀으되 누구든지 아내를 버리거든 이혼 증서를 줄 것이라 하였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연고 없이 아내를 버리면 이는 저로 간음하게 함이요 또 누구든지 버린 여자에게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니라"(마 5:28-32).

만일 이 법이 지켜진다면 부정 행위는 영원히 방지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윤리 규범은 구체적인 행위를 지나 마음속에 품은 생각에까지 미치기 때문이다. 이 가르침대로 하자면, 마음의 소원은 행위를 범할 수 있는 가능성을 입증하는 것이며 따라서 마음의 소원도 행위와 꼭같이 정죄되어야 한다. 부정한 생각과 욕망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손발을 끊어 비록 병신이 될지라도 그것이 오히려 유익하다는 것이다. 눈과 손이 귀중하나 마음의 순결만큼 중요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가르침으로 볼 때 아무리 혹독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사랑의 법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주님은, 부정한 생각과 행위가 영적인 발전을 가로막는다는 것을 아셨다. 그래서 옛 계명을 되풀이하시되 거기에 새로운 의미를 덧붙여 다시 강조하여 말씀하셨던 것이다. 이러한 주님의 말씀은 지금까지 진술한 그 어떠한 다른 모든 말보다 더욱 엄격하다. 그래서 마음이 깨끗해지지 않고서는 그 말씀에 온전히 복종할 수가 없다. 주께서 순결한 마음으로 자기에게 복종하는 자들에게 자신의 의로움을 전가시켜 주시고, 그렇게 해서 그런 모든 사람들이 더이상 부정한 행위로 사악하고 더럽혀지지 않도록 구원하신다는 사실에 하나님 나라의 신비로운 은혜가 나타난다.


주님의 이 말씀을 생각해 볼 때 그리스도인 각자의 의무와 교회의 의무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물론 첫째, 완전히 의로우신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는 부정의 문제를 소홀히 여겨서는 안된다. 그리고 교회 내에서 부정한 자에 대해서 징계를 실시해야 한다. 사람들이 분명히 알고 있는 잘못을 징계하지 않고 계속 행하도록 내버려둔다는 것은 진정 의로우신 주님을 모욕하는 행위이며 순결을 증거해야 하는 교회의 능력을 스스로 잃는 처사이다. 또한 신자가 불신자와 결혼해서는 안된다. 신약에서 가르치고 있는 가정의 높은 이상은 남편과 아내가 다 같이 예수 그리스도께 충성하는 가운데서 부부 관계가 굳어지고 칭찬을 받을 때에야 비로소 실현될 수 있다. 교회가 이 시대에 평화와 능력을 전달하는 심부름꾼이 되려면, 조금이라도 말이나 행동이 부정한 사람들하고는 교제를 갖지 않는 것이 마땅하다.


이 교훈은 특히 하나님의 뜻을 가르치는 신성한 사역을 맡은 자들에게 해당된다. 그들은 "간음하지 말지니다",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는 말씀에 들어 있는 하나님의 위대한 순결의 법을 교훈과 생활로써 전해야 하는 자들이다. 이처럼 복음 전파자가 먼저 순결함을 갖고 순결의 복음을 전할 때 비로소 그가 선포하는 말씀은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생명력을 갖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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