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3-07-21 12:26
목회자의 경건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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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웹섬김이
조회 : 8,963  

목회자의 경건생활(배영준목사)

Ⅰ. 서 론

기독교 영성의 출발점은 하나님과 사람 그리고 그 인격이 실존하는 이 세계
의 한 가운데에서 시작된다. 영성을 정의 하자면, "영성은 우리 안에, 그리고 성령의 성전인 교회 안에 살아 계신 성령의 현존에서 나오는 생활 양식"이라고 말할 수 있다. 기독교적 영성은 바로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성을 통해 형성되며 그 방법은 하나님과의 깊은 대화인 기도에서 출발한다. 그러므로 보나벤투라는 기도에 대해 말하기를 "기도는 모든 영혼을 고양시키는 어머니와 근원이다."라고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성은 균형이 잡혀야 한다. 영성은 신중심적 경향에 치우치게 되면 신비주의적 요소가 강조되어 결국 비사회적인 영성이 되어버리고, 또한 상황에 충실하다 보면 영적 능력과 체험을 무시하는 경향으로 치우치게 된다.

그러므로 목회자의 경건생활에 있어서 가장 중요시되는 영성은 모세가 그의 후계자인 여호수와에게 말한 바 대로 균형 잡힌 영성이 되어져야 하며, 이 를 촉진하는 영성 즉 내적인 변화와 외적인 성장을 성취하는 영성을 갖추어야 목회자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올바로 서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목회자는 이러한 영성을 갖추기 위해 자신의 경건 생활을 충실하게 해야 하며, 성령의 임재와 그리스도인의 완전의 표지로써 사랑을 통해 그 사명을 완수 해야 한다. 특히 도어는 이러한 방면을 신중하게 제시하고 있다.

영성은 물위에 뜬 빙산과 같다. 바로 위에 나온 부분은 얼마 안되지만 그 물 속에는 엄청난 크기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영성은 보이지 않지만 드러나야 한다. 드러나지 않는 영성, 혹은 무덤덤한 영성은 참된 영성이 되어질 수 없다. 또한 성령은 진리의 영이며, 위로의 영이며, 감동감화의 영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깊이 상고해 보아야 한다. 우리는 그 동안 너무나 단순하게 영성을 생각하지 않았는가? 우리는 이 소고에서 먼저 영성에 대한 성서적 고찰을 통하여 우리의 영성에 대한 성서적 기초를 튼튼히 하고, 이에 따라 교회와 성도들이 어떻게 적용시켜 왔는지 교회사의 역사를 통해 살펴보고 나서 오늘날 우리 목회자의 경건 생활의 방법과 실제를 제시해 보려고 한다.



Ⅱ. 영성생활의 성서적 고찰


1. 구약의 영성

구약의 영성은 바로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 체험에서 출발한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바로 영에 대한 이해인데 구약 신학의 관점에서 살펴보도록 하겠다.

영(???)은 하나님이 임의로 모든 육체에게 할애, 분배하시는 활력소와 생명력이 되는 비상한 선물, 특출한 권위를 의미하며, 가장 보편적인 인식은 하나님이 인간을 향하신 의사소통의 방편형식으로 보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영이 평범한 현상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간에게 내리시는 은혜로운, 그러나 자유로운 선물로 이해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의 영은 인간 밖에서 오는 것으로 온전한 영은 하나님 만이 소유하시고, 그 하나님의 영이 언급될 때에는 강조점이 능력에 있고 하나님의 영이 인간 내면에 침투하면, 각양각도의 세력으로 표현되는 것으로 이해한다.

결국 이러한 하나님의 영을 받은 이상적인 존재들은 사사, 예언자, 왕들로써 이들은 하나님에 대한 무저항으로 하나님의 영을 수용하거나, 특별한 소명의식 혹은 기름부음이라는 특별한 형식을 통해 하나님의 영을 받아들이고, 그 영에 사로 잡혀 활동을 하였다. 성령은 사람의 내면 속에서 창조적인 능력을 발휘하는 하나님의 힘이라고 생각할 수 있으며, 이 영을 받은 사람이란 하나님 안에서 사는 자이며, 하나님의 의지에 자신을 헌신하는 인격 존재로 바뀐다. 성령을 받은 사람의 표는 위로부터 오는 고상한 견해가 마음과 몸에 조화를 창조하고, 인간 전신과 육체를 개발하는 것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영의 작용 분석해 보면 6가지의 특징을 가지는데, 첫째, 사람을 황홀상태로 몰아넣는 작용을 한다. 민수기 11:25-29에 보면, 모세와 70 장로가 모두 신을 받고 예언을 했다는 것인데 이는 일종의 신들린 현상으로 황홀한 상태에서의 예언 행위를 말해주고 있다. 둘째로 말씀을 주기도 한다. 민수기 24:2-9절에 보면, 발람이 발락으로부터 이스라엘의 저주를 부탁하지만 발람 예언자는 자기 의사나 요청 받은 것과는 무관하게 이스라엘을 향해 복을 선포한다. 셋째로, 각종 능력을 주는 영이기도 하다. 사사들은 이 영을 받고 전술능력이나 행정 및 경영상의 수완을 발휘하기도 하며, 장차 올 평화의 왕은 영을 받아서 여호와의 종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이사야42장) 넷째로 기술을 주는 영으로 출애굽기의 특별한 기술이 하나님의 영을 받고 감당해 냈다는 것인데, 특히 금은 세공, 수예, 직조, 목각 및 건축기술, 의복만듬, 향로제작 등의 일을 감당해 내었다는 것이다. 다섯째로 창조하는 영으로 창조과정에 수면에 운행하시는 하나님의 기운을 살필 수가 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이 부리시는 악한 영이다. 바로 모든 영의 출처는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가르쳐 주고 있다. 사무엘상16:14-16에 의하면 하나님이 부리시는 악령으로 되어 있는데 바로 이 영이 악한 영으로 하나님으로부터 근거한 것이다. 하나님의 영은 위 첫째와 둘째는 종교적 경험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셋째와 넷째는 세속적인 생활과 관련된다. 그러나 이것 역시 하나님의 영역 안에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그러므로 구약의 영과 관련된 영성은 종교적인 경험으로서의 성령보다는 단지 인간학적인 면에서의 성령, 자연계에서의 어떤 바람으로서의 영, 그리고 우리 생활 분야에서 삶과 슬기와 관련되는 영이해가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결국 구약에서의 영성은 하나님 앞에 사로잡힌 목회자의 영성이 강조되고 있으며, 예언자들에 의해 말씀 선포를 중심으로 한 회개와 정의의 영성이 강조되고 있으며, 후기 예언서에서 '만민을 향한 영성'*(요엘2:28)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의 영성으로 확대되어 진다.



2. 신약의 영성

신약에서의 영성은 주로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중심으로 한 기도와 생활 실천의 근본적인 변화를 촉구함으로써 하나님 나라와 관련된 영성이 강조가 되고 있다. 특히 누가의 문서로 알려진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에는 기도와 관련된 단어가 가장 빈번하게 사용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성령 혹은 영에 대한 표현이 가장 많이 발견되는 것이 바로 누가 문서이다.

성령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 구약과 신약은 많은 차이를 가진다. 성령이라는
단어가 구약에 비해서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전혀 새로운 단어로 사용되기도 한다. 즉 아들의 영, 예수의 영, 그리스도의 영과 같이 불리며 , 나아가서는 인격적인 이름을 부여받는 데, 보혜사, 혹은 위로자로 불린다.(요14:16-26) 특히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치유 사역, 그리고 제자들 안에, 그리고 오순절 사건을 통하여 성령은 교회를 지도하고 통제하는 힘으로 나타났다. 성령은 빌립을 인도하여 에티오피아의 내시에게로 보내졌으며, 성령은 안디옥 교회에게 바울과 바나바를 선교 사업을 위해 구별하도록 명령했다.(행13:1-3)

특히 누가에게 있어서 기도의 근본적 목적은 성령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누가는 성령을 기도의 일차적 대상으로 생각한다. 누가는 어떤 성서 기자보다도 기도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으며, 기도를 강조하고 있다. 그의 신학적 의도를 살펴보면, 첫째로 누가는 "기도하는 예수"를 강조함으로써 그를 기도하는 자의 본보기로 제시하려고 한다. 둘째로 복음서에서 예수는 구원사의 중요 시기마다 기도했음을 강조함으로써 기도를 통해 구원사가 진행됨을 강조한다. 셋째로, 기도를 통해 성령을 받게 되는 중요한 수단임을 강조함으로써 기도는 하나님과의 관계성을 맺고 그 뜻을 성취해 나가는 중요한 영성 생활임을 독자들에게 가르쳐주고 있는 것이다.

특별히 바울은 그의 신앙 체험을 통해 성령의 역할을 강조하는 데, 은사체험이 두드러지게 나오는 고린도 교회에 대한 가르침에서 그의 영적인 경험에 대한 이해를 잘 반영해 주고 있다. 특히 하나님의 성령을 통해 주어진 은사를 어떻게 행하느냐가 상당한 관건이 될 수 밖에 없었다. 방언과 예언은 바울 역시 성령의 임재로 확신했고, 자신 역시 많은 은사 체험을 하였다고 확신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체험과 은사가 과연 교회의 질서와 하나님의 은혜로운 활동에 저해가 되는지를 기준으로 판단하게 되었고, 이것이 성령을 통해 온 것인지 자제해야 할 것인지를 인식할 수 있도록 고린도 교회를 가르쳤다. 바로 은사는 하나님의 은혜의 全표현이 아니라 특별한 표현이다. 은사는 인간을 통한 하나님의 은혜로운 활동으로 주어지며, 은사를 행하는 것은 은혜의 상태를 전제하거나 카리스마가 부여되는 사람은 반드시 거룩한 사람은 아니라는 결론을 가지게 되었다. 바로 은사는 그의 경건 생활이 밑거름이 되어지며, 그것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 출처는 하나님에게서가 아니라 자신에게서 기원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결국 바울은 고전12:7을 통해 "상호 유익을 위한 성령의 은사"를 강조하고 있다.

신약의 영성은 주로 기도와 은사를 중심으로 드러나는 그리스도인의 신앙적 실천과 관계되어지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의 영에 사로잡힌 자의 삶의 방식은 신앙의 열매, 즉 성령의 열매를 맺어 살아가는 경건하고도 복음적인 삶의 가치를 가장 중요시하게 생각한다.



Ⅲ. 영성 생활에 대한 역사적 고찰


1. 초대 교회의 영성

초대 교회에는 플라톤 철학의 영향으로 지상의 궁극적인 가치의 부정이 나타났는데, 이는 영혼이 일시적으로 또한 임시적으로 육체 안에 깃들어있다가 영원한 자신의 세계로 돌아간다는 사유가 지배적으로 이끌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플라톤 철학이 신 플라톤 주의로 발전되면서 일종의 종교운동으로 변화하였다. 물론 플라톤적 경향이 기독교의 영성과 유사한 점은 이 땅에서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인데 이를 위해 금욕과 정신적인 고양의 삶을 추구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근본적으로 기독교 정신이 아니다. 기독교는 하나님의 창조를 고백하며, 역사 가운데 임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공고히 했기 때문이다. 즉 구원의 가능성은 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은총에 의한 것임을 강조하면서, 그들과 대화하며 기독교의 영성을 지키고자 노력하였는데 이는 주로 신학적 논쟁을 통해 완성되어 갔다.

또한 영지주의와의 투쟁으로 인해 악의 문제로 인해 발생한 이원론을 극복하고, 철저한 금욕정신이 기독교의 본질인 신앙 보다는 실천으로 강조함으로써 구원의 비밀을 가르쳐 구원받는다는 영지교리를 주장하기도 하였는데 이로 인해 기독교는 금욕적인 색채를 가지게 되었다. 나아가서 몬타누스에 의해 발생한 성령운동은 성부시대, 성자시대, 성령시대로 구분하면서 몬타누스 자신이 이 성령시대의 주역임을 자처하며 나서게 되었다. 이에 대해 제도화된 교회는 계시에 대한 개방성을 상실해 갈 때 이러한 운동에 직면하여 교회 자신을 갱신하는 방향으로 이끌어 가게 되었다.

수도원 운동은 기독교의 사회적, 정치적 적응 시기에 일어났는데, 이 운동의 원인은 크게 세 가지로 기독교의 본래적 신앙전통의 회복, 순교자적 희생정신의 고취, 특별한 소수의 기도자로서의 봉사를 위해서 였다. 그들은 운둔 생활이나 공동체 생활을 통해 영성을 수련하였다. 그들은 세속과 분명하게 구별되어 영성 생활을 체계화하였다. 특히 성만찬 중심의 예배와 노동을 통해 그리스도에 대한 온전한 신앙과 하나님께로 나아간다고 보았다.


2. 중세 교회의 영성

수도원 운동의 발전은 중세의 영성을 대표하였다고 볼 수 있다. 수도사들은 단지 자신 뿐만 아니라 사회의 지도층으로 소도시에서는 수도원이 일종의 교육 기관으로서 지도적 역할을 감당해 내었다. 이들이 발전시킨 영성은 먼저 명상이었다(contemplatio). 그들은 명상의 자세와 그 방법을 추구하였다. 궁극적인 목표는 하나님을 보는 것이 목적이었다(visio Dei). 즉 정화와 계몽, 그리고 조명과 신비적 연합을 강조하였다. 또한 영성 생활의 요소로써 봉사와 빈곤의 방법을 통하여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진리를 드러내는 사랑의 삶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방식을 강조한 이가 바로 마이스터 에크하르트라는 수도사였다. 그는 "무사무욕"의 정신을 가르치면서 모든 세상적이고, 현세적이고, 감각적인 사랑을 비우고 그 심령이 순결해 지도록 노력해야 하며, " 아무것도 의도하지 않고,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아무것도 알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고 가르치면서 초연함의 신비적 의식을 가르쳤다. 그는 그의 사명이 전적으로 교회의 법이나 수도원 제도를 파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 안에 내적인 순결의 정신을 고취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중세는 로마카톨릭에 의해 점차 변질되었다. 모든 표준이 교리화되고, 전통에 얽매이기 시작하면서 율법주의적이고 공로주의적 경향을 가지게 되었다. 구원론에 있어서 선행은 하나님 앞에서 의인이 되기 위한 필요 조건으로 강조되었다. 특히 이러한 중세의 대표적 운동인 광야의 교부운동, 베네딕트 수도운동, 프란시스코 수도운동, 도미니크 수도운동, 동방교회 수도운동, 영국교회 수도운동, 예수회 수도 운동, 최근의 것으로는 떼제의 수도운동을 살펴보아야 한다.


3. 종교 개혁과 근세의 기독교 영성

이러한 시기에 기독교적 영성은 르네상스 휴머니즘의 영향으로 인간의 존엄성은 고양되었으나 희랍로마 문명에로의 복귀를 주장한 그들의 영향으로 중세적 봉건 사회가 무너지고, 도시국가가 발생하며, 왕권이 약화되면서 종교 개혁의 전조를 보이기 시작하였다. 종교 개혁자들은 인간의 유한성과 피조성 그리고 죄성을 강조함으로써 하나님의 은총과 은총에 의한 믿음을 강조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세속에서의 교회의 역할은 강조되었으나 영적인 훈련은 약화되었다.

루터와 칼빈의 두 왕국 사상은 교회와 세속이라는 두 기둥을 하나님이 유지하신다는 확고한 믿음을 가지면서 세속적인 직업에 대한 신학적 정당화가 이루어 졌다. 그러나 여기에서 루터와 칼빈은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해 약간의 차이를 가진다. 즉 루터에게서 새로운 삶이란 신과의 즐거운 재결합이지만 칼빈에게 있어서 새로운 삶이란,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신의 법을 성취하려는 노력이다. 바로 구원을 받은 그리스도인은 역사와 사회 즉 세속에서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바로 이러한 세속적 가치와 의미에 대한 적극적 의미가 부여된 것이 프로테스탄트의 영성이었다.

그러나 칼빈의 교회 중심적 질서와 법이 시민정부에 지나치게 참여함으로써 신정 국가적 체제를 고수하고자 하였다. 칼빈에게서 찾아보는 독특한 영성은 금욕에 대한 가르침인데, 이는 세계 내적 금욕이라고 불리는 것으로 이 금욕이 추구한 것은 깨끗함과 노동의 성과에 대한 물질적 이익이다. 바로 깨끗함을 통해 비도취적인 것, 순결한 것, 절제하는 것으로 국민생활에 도덕적 이상을 제시했으며, 또한 금욕은 이 세상에서의 생산적인 활동 곧 생산 수단을 산출케 하는 자본주의의 정신을 소유함으로써 실제적인 번영을 이루게 하였던 것이다.

17세기 후반 30년전쟁의 결과로 피폐해진 정신과 도덕적 타락은 경건주의
를 태동하게 하였다. 이러한 경건주의의 개혁은 신학과 교회 그리고 윤리의 개혁을 추구하였으며, 그들의 주요 관심사는 삶의 성화에 있었다. 또한 경건주의 신학은 먼저 실천적인 훈련이었으며, 진정한 신학의 전제는 신앙이었다. 그들에게 가장 주요한 것은 성서에 대한 우선성이었으며, 평신도의 역할은 더욱 강조되었다. 이러한 경건주의는 얼어 붙은 정통주의 사상의 체계를 깨뜨려 버렸다.


4. 감리교회의 영성

특히 우리 감리교회의 전통에 있어서 영성은 초대 교회의 이상과 영국 성공
회 전통 그리고 경건주의의 영향으로 말미암아 복음적 경건주의 경향으로 흐르게 되었다. 복음적인 설교와 성서 연구, 속회라는 작은 공동체 운동, 그리고 의화와 성화에 대한 치우치지 않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태도 등은 여타 개신교회와는 독특한 영성을 키워왔다. 뿐만 아니라 사회에 대한 실제적 관심을 통해 프랑스와 같은 피의 혁명이 아닌 영적 갱신이 일어나는 등 18세기의 영국에서의 감리교회는 하나의 영적 부흥 운동이었다.

특히 그리스도인의 완전에 대한 신앙 고백은 교회를 새롭게 하고 사회를 변
혁시키는 원동력이 되어졌다. 그리스도인이 안전해져야 할 필요성과 생활이 도덕적으로 성결해져야 할 필요성은 오늘날 단순히 개인의 자아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경제와 문화의 개혁의 실천에도 적용되었다. 굶주린 자를 먹이고 이방인을 환영하고 헐벗은 자를 입히고. 병자와 갇힌 자를 방문하는 자선의 훈련은 참된 회심에 대한 증거로서 절실히 요구되는 것이었다. 이러한 감리교회의 영성은 영적 능력과 말씀으로 무장된 사회의 개혁자로 등장하는 영성을 갖추게 되는 것이다.

존 웨슬리는 성령의 일반적인 역사를 영감(Inspiration)이라 하였다.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고, 이해시키며, 촉진시키며, 우리의 뜻을 바로 잡으며, 거룩하고 성결케 하시는 우리 안에서의 성령의 내적인 도우심, 즉 성령의 역사를 강조하였다. 선한 나무가 선한 열매를 맺을 것이라는 루터의 입장을 뛰어넘어 존 웨슬리는 선한 나무란 가능성을 보고 그 열매를 맺기 위한 끈질긴 노력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존 웨슬리가 성화를 강조함으로써 관심의 초점을 의화된 자기의 삶 속에서 성령의 변화시키는 삶 속에로 옮겨가도록 요청하고 있다. 여기에서 나타나는 은총의 낙관주의(Optimism of Grace)는 강력한 윤리의식과 도덕적 행동을 자극한다. 그러나 이것이 인본주의적이면 의화이전 상태로 되돌아가고 이것이 성령의 역사이기에 은총의 낙관주의가 된다.

존 웨슬리의 성화에 기초한 사랑의 윤리는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는 성령의
능력과 권능을 가장 강력하게 인정하는 성령론적 윤리이다. 성화의 윤리는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개인의 변화와 끊임없는 노력을 통하여 완전 성화를 목표로 삼는 발전과 성장의 윤리이다. 그러므로 성령의 역사를 통한 그리스도인의 성화, 나아가서 완전 성화는 주체적 자율도 아니며, 객관적 타율도 아닌 하나님의 영이 그리스도 안에서 작용하시고 역사하시는 신율(神律:Theonomy)이다.

결국 그리스도인의 성화를 추구하는 영성은 하나님 안에서의 윤리적인 삶, 도덕적인 삶이며 이로써 정치적, 자연적 형상을 되찾는 그리스도의 재연이며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순수한 사랑으로 실천하는 것이다. 바로 감리교의 영성은 "본질적으로 사회적 종교"의 기능을 감당하는 영성으로써 존 웨슬리의 말대로 선(善)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다른 사람들과 섞여 살게 하신 목적은 우리가 하나님
께로서 받은 은혜를 우리를 통하여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여 우리의 거룩한 성품과 말과 행동으로 저들에게 감화를 주게 하려 하심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방법으로 이 세상의 부패를 어느 정도라도 방지하여 다만 일부라도 그 부패된 상태에서 건져 하나님 앞에 거룩하고 순결한 인간으로 드리게 하고자 하심이다"


5. 영성에 대한 평가

이제까지 영성에 대한 성서적 고찰과 교회사적 평가를 통해 목회자가 품어야할 영성과 경건 생활의 근저를 살펴보았다. 이제 이를 창조론적 관점에서와 기독론적 관점 그리고 성령의 빛으로 재조명하여 영성의 의미를 세 방면에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이는 영성의 창조자로서의 하나님께서 우리가 지향해야 할 바를 제공하고 있으며, 하나님의 피조물로써의 인간이 충만한 하나님의 계시자로서의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가르침 안에서 영성의 내용을 발견하게 될 것이고, 창조와 그리스도 안에서 계시되고 보증된 영성이 우리 각자의 현실 속에서 성취케 하시고 힘이 되시며 열매맺게 하시는 성령의 역사를 재고하게 될 것이다.

영성은 먼저 하나님의 나라를 향한 지향성으로서의 영성이다. 하나님 나라를 지향하는 영성은 하나님을 바라봄이라는 초대교회의 신앙을 되살리는 것이며, 하나님의 주권과 의지에 순종하는 것이며,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에 대한 긍정적 의식과 관계성을 소유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영성은 그리스도 안에서 보증된 참된 본래적 인간성으로서의 영성이다. 그러나 영성은 영성으로서 영에만 관계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은혜 가운데 그의 계시와 모범을 통해 형성되는 새로운 피조물로서 삶의 관심과 활동을 이루어 나아감으로써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행함으로써 '하나님을 기쁘시게 함'과 '사회적 책임성'을 부정하지 않는 은혜 안에서 사는 본성을 소유하는 것이다. 나아가서 영성은 성령 안에서 누리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삶의 능력이 되어지는 것으로서의 영성이다. 이러한 영성은 진리에 대한 인식능력과 그 인식된 진리를 행하는 실천 그리고 십자가의 삶을 인내하면서 삶의 평안과 기쁨을 누리는 능력을 의미한다.

이러한 영성은 인생의 가치관과 인식에 관련되며, 삶의 이해뿐만 아니라 구체적인 실천과 관련되고, 그러한 삶의 이해와 실천 속에서 누리는 감격과 기쁨 그리고 평안을 누릴 수 있는 능력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영성은 "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졌고, 그리스도 안에서 보증되고, 확증되었으며, 복음 안에서 열매맺는 하나님의 나라를 향해 열려진 참 인간적 삶의 능력"이라고 요약될 수 있다.



Ⅳ. 경건 생활과 목회


1. 목회자와 영성

목회자 자신을 위한 영적 기준을 정하는 데에는 어떤 정해진 규칙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우리는 초대 교회와 수도원 운동에서 나타나는 그리스도인의 영성을 기준 잡으면 다음과 같은 10가지의 영성으로 자신을 검사해 볼 수 있다.

A. 그리스도인의 영성은 전인적인 것이다.
B. 그리스도인의 영성은 타자 지향적인 것이다.
C. 그리스도인의 영성은 다원적인 것이다.
D. 그리스도인의 영성은 인간적인 것이다.
E. 그리스도인의 영성은 삼위일체적인 것이다.
F. 그리스도인의 영성은 거룩한 일(聖事)이다.
G. 그리스도인의 영성은 하늘 나라 지향적인 것이다.
H. 그리스도인의 영성은 희생적인 것이다.
I. 그리스도인의 영성은 교회 지향적인 것이다.
J. 그리스도인의 영성은 모든 그리스도인을 위한 것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이와 반대되는 개념들로서 이원론적인 것, 이기주의적 것, 획일적인 것, 반인간적인 것, 비관계성의 것, 표면적인 것, 종교 지향적인 것, 자기 도취적, 개인주의적인 것, 목회자 만을 위한 것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 목회자는 이러한 영성을 성장시켜 나가면서 신앙 안에서의 거룩함을 체험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목회자는 의사 소통의 기술, 신학적 능력 그리고 사회적 의식을 통해 자신의 영성을 고양시키고, 인간적 자질을 갖추게 되며 영적 지도력을 겸비할 수 있는 목회자가 될 수 있다. 바로 영성은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고, 그 은혜를 따라 살아가며 부단한 노력을 통해 영적인 성장을 성취해 나아가는 것이다.

또한 목회자의 영적 성장의 길에는 항상 평안함과 기쁨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적 고독과 직업적 고독을 느낄 수 밖에 없다. 헨리 나웬은 이름하여 목회자를 "상처 입은 치료자"라고 하였다. 이러한 상처 입은 치료자는 개인적 고독 가운데에서 이를 귀중한 선물로 인식하고 극복할 수 있는 직관적 체험을 가지게 되며, 직업적인 고독을 통해서 자신의 상처를 싸맬 뿐만 아니라 나아가서 치유하는 목회자로써 타인을 환대하고 그들과 더불어 만들어 나아가는 공동체를 추구해야 하는 일을 감당해 내야 한다고 말하였다.

목회자는 고독한 영성 속에서 공동체를 발견하게 되고,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성으로 진리를 선포하며, 이를 행함으로 그리스도의 모범에 참여하고 성도의 귀감이 되는 덕성을 소유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영성은 자기 자신에 대한 철저한 부정과 소유욕의 절제 그리고 경건 생활을 통해 만들어져 가는 것이다. 자신의 영성을 실험해 보기 위해서 스스로에게 인격 명세서를 만들어 가면서 그 누구도 손댈 수 없는 자기 영역이 있는지를 발견해 보고, 포기할 수 없는 것들이 너무도 많지 않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아마도 잃고 싶지 않은 것들의 우선 순위대로 적는다 할 때 정신적, 정서적 건강이라든지, 신체적 건강, 신앙의 의미와 목회에 참여하는 것 그리고 교회 안에서의 일체감, 신뢰할 수 있는 친구 등 여러 가지의 것을 손곱을 수 있겠지만 과연 우리는 주님께서 그것을 붙잡지 말고 포기하라고 했을 때에 과연 몇 가지나 놓을 수 있으며, 과연 그 안에서 순수한 신앙의 목록이 얼마나 남아있는지 세어 볼 때 자신을 다시 한번 평가하게 될 것이다.


2. 목회자의 경건 생활

'바른 영성 훈련'은 신앙적이고 영성적인 건강이 공동체 생활이나 개인 생활에 있어서 망가지지 않도록 예방하는 예방적인 기능을 갖는다. 바로 그리스도인의 신앙 생활은 개인적이지만 사적인 삶으로 한계 지을 수 없으며, 그 생활은 어떤 특권이나 권리보다 책임성과 관계성이 우선하는 삶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영성훈련이 포괄해야 할 중요한 것들은 (1) 개인 생활에 있어서 예배에 규칙적으로 참여하는 일과 (2) 개인적으로나 혹은 그룹으로 성서를 규칙적으로 읽는 일, (3) 주님의 사업을 위해 헌금하는 일, (4) 교회의 선교 사업에 협조하는 일, (5) 교회의 책임으로서 사회에 대한 공헌과 지원, (6) 개인적인 문제와 갈등을 교우와 함께 나누는 일 등으로서 목회자는 이러한 일들을 포괄적으로 이해하고 용납하며, 협조하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철저한 자기 훈련 없이는 이러한 일을 감당해 나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교회의 영성에 대한 전통과 교훈을 새롭게
배우고 정리하면서 독서, 기도, 성서연구, 명상의 기회를 가져야 한다. 특히 수도원 운동의 역사나 역대 기독교 영성의 고전인 어거스틴의 '참회록'이나, 성 프란시스의 '작은 꽃들', 번연의 천로역정, 켐피스의 '그리스도를 본받아' 등은 참으로 우리의 내면을 아름답게 하는 책들이다. 특히 포스터의 '영적 성장을 위한 제자 훈련'은 목회자나 평신도를 위한 영성 훈련을 위한 좋은 교과서가 될 수 있다.


3. 목회와 영적 지도력

지도력이란 타인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하지만, 영적 지도력은 "인간적이며 신적인 자질의 온전한 융합과 하나님과 인간의 조화된 사역으로 말미암아 다른 사람에게 축복이 되는 사역을 감당하는 소명"이다. 이러한 영적 지도력은 타고난 자연적인 것과 영적 자질의 융합으로 만들어지므로 지도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는 것을 이해하고 경건 생활을 통하여 더욱 굳센 지도력을 계발해 내어야 한다. 다른 면에서 지도력의 기술이란 계발되고 향상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지도자가 되는 것은 그 자신이 그러한 과정을 감당할 만한 능력을 갖추기 위해 가혹하고 은밀한 훈련을 받은 결과였다. 요셉이나 여호수아 그리고 다니엘 같은 이들이 하나님의 위대한 지도자나 높은 지위에 오르게 된 것은 그 과정 중에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개입이 있었기 때문이다.

중국의 내지 선교회의 창시자인 허드슨 테일러는 그의 지도력을 다음과 같이 한 책임자에게 보내는 편지를 통하여 분명하게 밝혔다.

"일을 행하는 데에 없어서는 안될 것은
1) 일에 대한 성격을 향상시키며,
2) 사역자들의 경건과 예배의 성취를 깊게 하며,
3) 방해되는 장애물을 가능한 제거하며,
4) 움직이지 않는 바퀴에는 기름을 바르며,
5) 결점이 있는 것은 어떠한 것이든지 바로 고치며,
6) 부족한 것이 있으면 보충할 것.
적합한 사람들이 부족하거나, 아직 조직의 설립과정에 있을 때 이런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내가 하나님께 쓰임을 받는다고 해도, 최소한 어느 정도
이렇게 지도력을 성취해 가기를 원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살펴볼 수 있는 것은 행정에 있어서 활동할 분야나 책임 한계를 분명히 하는 것을 말해주고 있으며, 영적인 분위기를 확산시키고 모임의 사기를 북돋기 위해 정중함과 화평함을 추구해야 할 인간 관계를 말해주고 있다. 또한 문제 해결을 위해 올바른 초점을 추구하도록 하고 있으며, 창의적 계획을 통해 추진력을 가져야 할 것을 말해준다. 진정한 지도자 자격이란 아래에서 위를 향하는 것이 아니라 위에서 아래로의 영적 지도력이기 때문이다.



Ⅴ. 결 론 : 내적 성장, 외적 변화

"자유를 찾아 떠나려거든,
욕망과 너의 지체를 이리저리 끌고 다니지 못하도록
너의 감각과 영혼을 훈련하는 일을 배우라
너의 영혼과 신체를 정결히 지키고,
너의 정해진 목표를 찾아
자기를 복종시키고 순종하라.
훈련없이 자유의 비밀을 맛본 자는 없다."

목회자는 하나님 뜻과 그 나라의 사업을 위해 소명 받은 자로써 철저한 자기훈련없이 그 분의 이상을 실현할 수 없다. 웨스터호프의 책 '내적 성장, 외적 변화의 서론을 쓴 디터 헤셀은 우리의 신앙과 영성을 추구하는 일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우리는 기독교 신앙과 기독교 공동체를 잘 육성하기 위하여 우리들의 예배 의식에 대해 분별력이 있어야 하겠다. 기도는 삶의 모습이며, 역사 안에서 행동하시는 하나님과 함께 하는 매일의 관계라고 하였다." 하루 하루의 삶이 내적으로 성령의 내주하시는 은총 가운데 사로잡히지 않고서는 경건함을 상실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 속에 구체적으로 참여하지 않고서는 우리의 진리 선포는 허공을 치는 소리일 수 밖에 없다.

웨스터호프에 의하면 "기도와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철저한 사랑 만이 전적
으로 만족스러우며, 하나님을 섬기고 정의를 추구하는 것이 진실한 기도"라고 하였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걷기 위해 부름 받은 목회자와 신앙 공동체의 길은 하나님의 은총과 신앙적 양심 그리고 성서와 학문을 통해 깨달은 진리에 대한 열정에 사로잡혀 있을 때에 목회자의 경건 생활은 유지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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