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4-07-23 13:28
[2]십일조는 율법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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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웹섬김이
조회 : 7,110  

율법에서 말하는 십일조란? 

 

 

성경에서 말하는 십일조의 본질은 3가지 형태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하에서 제시된 성경구절은 여러분들이 직접 찾아보시기를 바랍니다.

 

 

 

<첫째> 가장 잘 알고 있는 유형으로 “레위인과 제사장과 함께 나눠먹는 십일조“입니다.

 

 

 

레 위인과 제사장의 십일조는 레위기 27:30-33에서 언급된 후, 민수기 18:21-32에서 좀 더 확장된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땅과 거기 속한 모든 것이 여호와의 것이며 그 모든 소산들은 여호와의 은혜’임을 고백하면서 레위인들에게 십일조를 주는 행위를 통해 하나님께서 당신의 것을 스스로 취하시는 십일조라 하겠습니다.

 

 

 

(레 27:30-33) “30 땅의 십분 일 곧 땅의 곡식이나 나무의 과실이나 그 십분 일은 여호와의 것이니 여호와께 성물이라 31 사람이 그 십분 일을 속하려면 그것에 그 오분 일을 더할 것이요 32 소나 양의 십분 일은 막대기 아래로 통과하는 것의 열째마다 여호와의 거룩한 것이 되리니 33 그 우열을 교계하거나 바꾸거나 하지 말라 바꾸면 둘 다 거룩하리니 속하지 못하리라”

 

 

 

(민 18:21-32) “21 내가 이스라엘의 십일조를 레위 자손에게 기업으로 다 주어서 그들의 하는 일 곧 회막에서 하는 일을 갚나니 22 이 후로는 이스라엘 자손이 회막에 가까이 말 것이라 죄를 당하여 죽을까 하노라 23 오직 레위인은 회막에서 봉사하며 자기들의 죄를 담당할 것이요 이스라엘 자손 중에는 기업이 없을 것이니 이는 너희의 대대에 영원한 율례라 24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거제로 드리는 십일조를 레위인에게 기업으로 준 고로 내가 그들에 대하여 말하기를 이스라엘 자손 중에 기업이 없을 것이라 하였노라 25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26 너는 레위인에게 고하여 그에게 이르라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취하여 너희에게 기업으로 준 십일조를 너희가 그들에게서 취할 때에 그 십일조의 십일조를 거제로 여호와께 드릴 것이라 27 내가 너희의 거제물을 타작 마당에서 받드는 곡물과 포도즙 틀에서 받드는 즙같이 여기리니 28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에게서 받는 모든 것의 십일조 중에서 여호와께 거제로 드리고 여호와께 드린 그 거제물은 제사장 아론에게로 돌리되 29 너희의 받은 모든 예물 중에서 너희는 그 아름다운 것 곧 거룩하게 한 부분을 취하여 여호와께 거제로 드릴지니라 30 이러므로 너는 그들에게 이르라 너희가 그 중에서 아름다운 것을 취하여 드리고 남은 것은 너희 레위인에게는 타작 마당의 소출과 포도즙 틀의 소출같이 되리니 31 너희와 너희 권속이 어디서든지 이것을 먹을 수 있음은 이는 회막에서 일한 너희의 보수임이니라 32 너희가 그 중 아름다운 것을 받들어 드린즉 이로 인하여 죄를 지지 아니할 것이라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의 성물을 더럽히지 말라 그리하면 죽지 아니하리라”

 

 

 

또 한 이것은 구별되어 성전을 섬길 직분을 맡음으로 인하여, 땅 분배에서 제외된 레위인들을 위한 생계의 대책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레위인들 역시 자신들이 받은 십일조의 십분의 일을 다시 떼어 제사장들에게 주어야 했습니다. 이 십일조는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면 주의 종들과 교회 직원 내지 봉사자들에 대한 사례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둘째> 함께 나누는 십일조입니다.

 

즉, "축제에서 가족과 함께 나눠먹는 십일조"로서 신명기 12:5-19, 14:22-27로 언급되고 있습니다.

 

 

 

(신 12:5-19) “5 오직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너희 모든 지파 중에서 택하신 곳인 그 거하실 곳으로 찾아 나아가서 6 너희 번제와 너희 희생과 너희의 십일조와 너희 손의 거제와 너희 서원제와 낙헌 예물과 너희 우양의 처음 낳은 것들을 너희는 그리로 가져다가 드리고 7 거기 곧 너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먹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손으로 수고한 일에 복 주심을 인하여 너희와 너희 가족이 즐거워할지니라 8 우리가 오늘날 여기서는 각기 소견대로 하였거니와 너희가 거기서는 하지 말지니라 9 너희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주시는 안식과 기업에 아직은 이르지 못하였거니와 10 너희가 요단을 건너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에 거하게 될 때 또는 여호와께서 너희로 너희 사방의 모든 대적을 이기게 하시고 너희에게 안식을 주사 너희로 평안히 거하게 하실 때에 11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한 곳을 택하실 그 곳으로 나의 명하는 것을 모두 가지고 갈지니 곧 너희 번제와 너희 희생과 너희 십일조와 너희 손의 거제와 너희가 여호와께 서원하는 모든 아름다운 서원물을 가져가고 12 너희와 너희 자녀와 노비와 함께 너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할 것이요 네 성중에 거하는 레위인과도 그리할지니 레위인은 너희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음이니라 13 너는 삼가서 네게 보이는 아무 곳에서든지 번제를 드리지 말고 14 오직 너희의 한 지파 중에 여호와의 택하실 그 곳에서 너는 번제를 드리고 또 내가 네게 명하는 모든 것을 거기서 행할지니라 15 그러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복을 따라 각 성에서 네 마음에 즐기는 대로 생축을 잡아 그 고기를 먹을 수 있나니 곧 정한 자나 부정한 자를 무론하고 노루나 사슴을 먹음같이 먹으려니와 16 오직 그 피는 먹지 말고 물같이 땅에 쏟을 것이며 17 너는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와 네 우양의 처음 낳은 것과 너의 서원을 갚는 예물과 너의 낙헌 예물과 네 손의 거제물은 너의 각 성에서 먹지 말고 18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실 곳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너는 네 자녀와 노비와 성중에 거하는 레위인과 함께 그것을 먹고 또 네 손으로 수고한 모든 일을 인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하되 19 너는 삼가서 네 땅에 거하는 동안에 레위인을 저버리지 말지니라”

 

 

 

(신 14:22-27) “22 너는 마땅히 매년에 토지소산의 십일조를 드릴 것이며 23 네 하나님 여호와 앞 곧 여호와께서 그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를 먹으며 또 네 우양의 처음 난 것을 먹고 네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항상 배울 것이니라 24 그러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이 네게서 너무 멀고 행로가 어려워서 그 풍부히 주신 것을 가지고 갈 수 없거든 25 그것을 돈으로 바꾸어 그 돈을 싸서 가지고 네 하나님 여호와의 택하신 곳으로 가서 26 무릇 네 마음에 좋아하는 것을 그 돈으로 사되 우양이나 포도주나 독주 등 무릇 네 마음에 원하는 것을 구하고 거기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앞에서 너와 네 권속이 함께 먹고 즐거워할 것이며 27 네 성읍에 거하는 레위인은 너희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자니 또한 저버리지 말지니라”

 

 

 

이 십일조는 여호와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으로 가지고 나와 온 가족이 함께 먹고 즐기라는 명령이 주어져 있습니다. 이는 구약 제사의 큰 주제인 "여호와 앞에서의 음식 나눔"에 내포되어 있는“거룩한 축제와 식사”라는 신학적 의미를 담고 있으며 이렇게 하나님의 언약공동체가 함께 축제하고 또 함께 나눠먹는 정신은 신약의 애찬(love-feasts)과 성찬으로도 이어지고 있어서 언약공동체내에서 영속적 가치와 의의를 가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십일조는 유월절 등 절기축제에 쓰이는 경비와 또 함께 음식 나눔을 위하여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십일조를 제사장과 레위인만이 아니라 백성이 가족들과 함께 즐기며 나누어 먹음으로 참여하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이 점에서 십일조는 제사장들과 레위인의 생계만을 위한 것이라는 일반적인 편협 된 생각의 틀을 깨트려주는 의미도 있겠습니다. 현대적으로 본다면 교회 안에서 친교와 봉사, 그리고 교육을 하는데 필요한 경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셋째> 구제를 위한 십일조입니다.

 

“이웃과 나눠먹는 십일조”로서 신명기14:28-29, 26:12-15에 말하고 있습니다.

 

 

 

(신 14:28-29) “28 매 삼 년 끝에 그 해 소산의 십분 일을 다 내어 네 성읍에 저축하여 29 너희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레위인과 네 성중에 우거하는 객과 및 고아와 과부들로 와서 먹어 배부르게 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의 손으로 하는 범사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신 26:12-15) “12 제 삼 년 곧 십일조를 드리는 해에 네 모든 소산의 십일조 다 내기를 마친 후에 그것을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에게 주어서 네 성문 안에서 먹어 배부르게 하라 13 그리할 때에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고하기를 내가 성물을 내 집에서 내어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에게 주기를 주께서 내게 명하신 명령대로 하였사오니 내가 주의 명령을 범치도 아니하였고 잊지도 아니하였나이다 14 내가 애곡하는 날에 이 성물을 먹지 아니하였고 부정한 몸으로 이를 떼어 두지 아니하였고 죽은 자를 위하여 이를 쓰지 아니하였고 내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여 주께서 내게 명령하신 대로 다 행하였사오니 15 원컨대 주의 거룩한 처소 하늘에서 하감하시고 주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복을 주시며 우리 열조에게 맹세하여 우리에게 주신 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복을 내리소서 할지니라”

 

 

 

이 십일조는 매 3년마다 가난한 이웃과 나눔을 목적으로 하는 십일조인데 수혜대상은 레위인들과 객(이방인, 개종자들)과 가난한 과부들이었습니다. 나눔과 구제의 대상이었던 객과 고아와 과부 등 약자를 보호하고 가난한 자를 구제하기 위한 용도로 실시되었던 십일조였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자세히 보시면 우리가 그토록 좋아하는 하나님의 복에 대한 선포가 오직 이 세 번째 십일조를 지키는 것에만 국한하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신 14:29) "너의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레위인과 네 성중에 우거하는 객과 및 고아와 과부들로 와서 먹어 배부르게 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의 손으로 하는 범사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레 위인을 위한 십일조는 하나님의 것을 바치는 것이기에 당연히 해야 한다고 말할 수 있겠으나, 가난한 이웃들을 위한 "구제용 십일조"를 잘 지킬 때에 “너의 손으로 하는 범사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신 14:29)는 축복의 약속이 선포되고 있습니다. 만약 십일조를 하시는 분이라면 복을 받기위해서는 전략적이든, 의도적이든 오히려 구제의 십일조를 하는 것이 복을 받는데 훨씬 더 성경적이라 말할 수 있겠습니다.

 

 

 

이 상 구약의 율법에 명시된 십일조에 대한 3가지 유형을 살펴보았습니다. 아마 많은 분들이 십일조는 그저 교회 안에서 주의 종들이나 교회직원(봉사자등)에게 쓰이는 것으로만 알았지, 정작 십일조 안에는 교회 안에서 서로 나누어먹는 것과 구제의 십일조도 있다, 라는 것은 미처 모르신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왜 우리는 지금껏 제사장들과 레위인을 위한 십일조는 그렇게 해오면서도 정작 온 가족(믿음의 형제자매들도 포함)과 함께 나눠 먹거나 가난한 이웃을 위해 삼 년마다 한 번씩 따로 십일조를 드려야 했는가는 몰랐을까요? 정작 3가지 유형 중에서 우리가 이 땅에서 복을 받기 위한 십일조는 바로 구제의 십일조라는 사실입니다! 정작 둘째와 셋째 십일조도 강조되어야 했고 실행 ?어야 하는 것인데, 우리는 교회에서 레위인을 위한 십일조만이 편협 되게 강조되어 가르침 받았던 면도 다분한 것입니다.

 

 

 

십일조는 성전유지를 위해서 쓰이지 않았다.

 

 

 

십 일조와 관련하여 또 하나 잘못 알고 있는 것 중에 십일조는 처음부터 성전유지를 위해 단 1원이라도 사용되지 않았다, 라는 것입니다. 성전 유지를 위해서는 성전세(Temple tax)가 있어서 그것으로 충당되었고, 건축을 할 때는 주로 자원하는 특별 헌금이나 헌물이 따로 드려졌습니다. 성경에는 성막을 만들었던 기록과 성전을 두 차례 건축하는 모습과 또 몇 번 성전을 보수를 했던 기록이 있지만 그 목적을 위해 십일조가 사용되었다는 언급이나 정황증거는 전혀 없습니다.

 

 

 

십 일조는 성전유지와는 무관하며 성전세가 그 목적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성전세는 출애굽기 30:11-16에 나타나 있는데 성전을 위한 속전으로 20살 이상 된 성인 남자가 반 세겔씩 드리도록 법으로 제정되었으며 출애굽기 38:24-31에서 처음 거둬들인 성전세의 세목과 또 그 성전세가 성막 건축에 사용되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에 주님께서도 신약기록에 보시면 베드로에게 물고기 입에서 돈을 가져다가 성전세를 내도록 하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십일조와 성전세의 또 다른 차이는 바로 십일조는 토지와 가축의 소산으로 드렸지만, 성전세는 돈으로 드렸다, 라는 사실입니다!

 

 

 

역 대하 24장에 보면 요아스 왕이 여호야다 제사장 생전에 성전보수를 위해 성전세를 거두었음을 알 수 있으며 요시야 왕은 성전 보수를 하다 율법 책을 발견하고 본격적인 개혁에 착수하였는데 그때에도 성전세로 거둔 은으로 성전을 보수하였습니다(왕하 22:4).

 

 

 

느 헤미야의 시대에도 십일조의 회복의 모습을 보여주면서도 성전을 위해서는 십일조와는 다른 별도의 성전세를 거뒀음(느10:32)을 알 수 있는데 특히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시대에는 그 세를 감면하여 1/2세겔에서 1/3세겔로 성전세를 내도록 하기도 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십일조와 성전 유지는 전혀 상관이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십일조를 주장하시는 분들 중에는 성전유지를 위해 필요하니 십일조를 내야 한다, 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이 외에도 십일조와 관련된 많은 이야기들이 있으나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대략 이정도 이야기만으로도 십일조에 대한 성경적 고찰과 십일조 반대론자들의 주장의 요지가 무엇인지 간파하셨을 것입니다.

 

 

 

지 금부터는 너무나도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십일조를 하지 않으면 구원받지 못하거나 구원받았다 해도 부끄러운 구원에 이르게 됩니다. 이에 대해서 설명을 드리고자 합니다. 먼저는 "십일조는 하나님의 계명입니다(1)"의 서두를 보시면, <율법>과 <계명>의 간단한 차이를 설명 드렸습니다. 개념이 정립이 안 되신 분들은 다시 한 번 살짝 들여다보시고 오시기 바랍니다.

 

 

 

<율법>은 크게 "도덕법"과 "의식법"과 "재판법"으 로 나뉘어집니다. 의식법과 재판법은 주 예수님의 십자가 구속으로 완전히 폐하여졌습니다. 이 두개의 법은 율법에서나 유효했던 것으로서 오늘날에는 폐하여졌고 지킬 의무가 전혀 없습니다. 따라서 오늘날에는 돼지고기 먹고 안 먹고는 자유입니다. 주일성수 안한다고 돌로 쳐 죽임 받지 않습니다. 돼지고기를 먹지 말라는 것은 의식법이요, 안식일 안 지키면 돌로 쳐 죽이라는 것은 재판법에 해당되기에 오늘날 그러하게 지킬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도덕법"은 다릅니다. 십계명은 구약에서나 신약에서나 유효합니다. 그 이유는 십계명은 만고불변의 진리인 도덕법에 속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성도가 하나님을 공경하는 윤리요, 도덕이기 때문입니다. 이 윤리와 도덕은 세상 끝 날까지 계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가령, 율법에서 말하는 간음하지 말라는 폐하여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라면 오늘날도 마땅히 지켜야 할 도덕법에 해당되는 계명이 되는 것입니다.

 

 

 

그 런데 많은 사람들이 십일조와 첫 열매를 "의식법"으로 생각하여 신약시대에는 폐지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십일조와 첫 열매는 "의식법" 아니라 "도덕법"이라는 것입니다. 이에 성경적으로 증명해 보겠습니다. 만약 십일조와 첫 열매가 "의식법"이 아닌 "도덕법"이라는 것이 성경적으로 증명이 되면, 십일조는 율법이 아니요, 하나님의 계명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도 지켜져야 할 하나님의 계명이 되므로, 십일조를 드리지 않는 사람은 죄를 범하는 것이요, 이에 대한 심판은 반듯이 있다, 라는 것입니다. 잠시 주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요일 2:3)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저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

 

 

 

우리 주위에는 주님 영접하여 믿는다는 고백으로 구원받는 줄 알고 아직도 착각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믿음다음 그 믿음의 증거가 있어야 합니다. 행함이 나와야 합니다. 그 행함은 바로 주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요일 2:4) "저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 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

 

 

 

주님을 믿고 안다, 하면서도 주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는 자는 거짓말 하는 자라 하였고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않다 하였습니다.

 

 

 

(요 14:15)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주님을 사랑하는 것은 그저 입술로 시인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이 외에도 성경은 누누이 계명을 지켜야 함을 강조합니다.

 

 

 

그 런데, <율법>은 내 자신이 믿음이 적든 크든 상관없이 반드시 지켜야 했습니다. 그것은 법으로 제도화 되었기에 내 믿음이나 형편에 상관없이 법대로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지키지 않으면 그에 대한 징계가 옵니다. 즉시 돌로 맞아 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 러나 <계명>은 그렇지 않습니다. 계명은 내 믿음의 분량 안에서 자발적으로 지키는 것입니다. 이것이 율법과 계명의 큰 차이입니다. 그렇기에 신약에서도 보시면 헌금이나 하나님의 계명들에 대해서 율법처럼 의식화, 재판화하여 기록하지 않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녀들이 믿음과 마음으로 행하기를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1) 영의 세계에서는 십일조를 계속 받고 있다. 

 

창 세기에 아브라함의 십일조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것이 반대론자의 주장대로 단지 사회적인 고대풍습이었고 일회성으로 끝난 것이라면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십일조와 멜기세덱의 이야기가 히브리서에 재등장합니다. 이는 단순한 사건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도바울은 무언가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히 7:8) "또 여기는 죽을 자들이 십분의 일을 받으나 저기는 산다고 증거를 얻은 자가 받았느니라"

 

 

 

여 러분들 이 구절을 눈 똑바로 뜨고 보셔야 합니다! 영적인 심오한 뜻을 깨달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서 드리는 십일조를 과연 하늘에서 받는지 안 받는지 명백히 제시되어 있는 구절입니다. 성령시대에도 십일조를 드렸습니다. 보시면 현재형으로서 "또 ... 십분의 일을 받으나"라고 하였습니다. 이에 하늘에 계신 주님께서는 받았다(받았느니라)라고 하십니다. 즉, 우리가 이 땅에서 십분의 일을 드리면 하늘의 주님께서는 받으신다, 라는 것입니다.

 

 

 

또 한 구절 더 보시겠습니다. 고린도전서 16장 2절입니다. "매주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이를 얻은 대로 저축하여 두어서 내가 갈 때에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 하셨습니다. 이 구절을 보시면 주일에 각 사람에게 헌금을 하도록 권유하는데, 단순한 감사헌금, 연보헌금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헌금에 대해서는 인색한 마음이 아니요, 억지의 마음이 아니요 자신의 믿음대로 즐겨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위 구절에 보시면 각 사람마다 이(利)를 얻은 대로 그에 대한 헌금을 하도록 하셨습니다.

 

 

 

이 것은 지금껏 사도바울이 성도들에게 말한 단순한 자발적인 헌금개념이 아닙니다. 각 사람마다 이를 얻은 대로 그에 대하여 계수하여 드리도록 하게 하신 것입니다. 즉, 당시 초대교회에서는 저마다의 이를 얻는 정도와 재산정도가 달랐을 것입니다. 특히나 아직 여린 신앙을 가진 성도들에게 십일조를 이야기 하는 것은 자칫 교회안의 또 다른 분란과 이간이 되었을 것이구요.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 성도들에게는 십일조 개념이 무척이나 부담되고 낯설었을 것입니다.

 

 

 

이 에 사도바울은 멜기세덱과 아브라함의 십일조, 그리고 위와 같은 이를 얻은 대로 정확히 계수하여 헌금을 드리는 것을 말하였던 것입니다. 이 헌금이 바로 십일조입니다! 그럼 십일조가 구원과 관련되어 있다면 왜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못하고 이렇게 빙빙 둘러서 이야기를 했을까요?

 

 

 

그 것은 바로 저 맨 위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십일조를 하지 않는다하여 무조건 구원받지 못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여린 신앙의 소유자들에게는 아직 더 말씀을 먹어야 하고 하나님의 체험을 통해 믿음성장이 필요한 것인데, 사도바울의 믿음을 기준으로 해서 십일조(헌금) 이야기를 한다면 우수수 성도들이 실족할 것이 뻔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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