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01-08 00:15
[1]삼위일체교리 발전사
인쇄
 글쓴이 : 웹섬김이
조회 : 3,758  

삼위일체(三位一體,trinity) 교리 발전사

 

I. 그 시초들


1. 서론 


교회의 삼위일체 교리가 형성하는 과정 중에서 중대한 진보를 나타내어 교리적으로 선포될 때까지 오랜 시간, 즉 4세기에 걸친 오랜 시간이 소요되었다. 

문제제시 : 교회는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 성령을 어떤 교리의 형태로 표현하고 있으며 또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2. 주변세계의 양식 


이것을 형성함에 있어 철학적 주변세계와 종교적 주변세계의 특정한 표현양식들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신앙을 사유적으로 표현했는지는 하나의 물음이 된다. 확실히 삼위일체 교리의 시발점은 불확실하지만 이점에 대해 지금까지 종국적인 해명이 내려지지 않은 상태이다. 비슷한 의미로 삼위일체라는 용어는 Origenes와 Tertullianus가 사용하기도 했지만, 본격적 신학 의미로는 안티오키아의 Theophilus가 하나님, 말씀, 지혜를 나타내는 데에만 사용하였다. (인테넷의 자료에서 발췌함:삼위일체의 관점에서 본 신경의 역사) 
신약의 삼위일체 교리 : 신약성경 안에 나타나지 않으나 그 의미는 충분히 내포되어 있고 신약의 전체적으로 예수 그리스도 인격 속에서 시작되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선포와 하나님의 표상에 대한 교훈적인 발전과 해명의 시발점이 된다. 
즉 최초의 기독교인들이 살았던 유대교는 唯一神論的 엄격한 종교로 자연히 唯一神論 자체를 공동으로 소유하게 되었다. 
유대교 속의 삼위일체 : 기독교인들은 하나님뿐만 아닌 예수 그리스도를 신앙하였고 성령으로부터 다른 무엇인가에 체험하게 되자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을 하였다. 그것은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형상을 의미하고 있으며 태초로부터 하나님과 함께 있던 로고스가 예수그리스도 안에 육신이 되었던 사실로부터 이해되었다. 
기독교인들은 유대인들의 하나님을 믿는 믿음 위에 그리스도의 선재가 진술 된 것이며 (빌2:5-11, 롬8:32, 고후8:9) 천상의 존재가 그들을 만나고 하나님 자신이 나타나 십자가와 부활이 전 세계를 향한 신앙을 표현한 것이며 또 그리스도를 하나님이라고 부른다. 
성령에 대한 성서의 진술 : 성령에 대한 신약의 진술들이 명백하지는 않지만 예수 세례시 성령께서 일하시고 승천 이후에 성령의 보혜사 진리의 영으로 예수 자신이 또 다른 영으로 제자들에게 오신다는 것을 약속하셨다. 다른 보혜사로 예수 그리스도 이외의 한 인격을 초대교회가 경험하고 그 실재로부터 생태가 규정된 것을 바울 서신을 통해 발견될 수 있다. 

3. 삼위일체의 형식발견 


신약은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 성령 극단적인 진술에 만족하지 않고 삼위적인 형식들을 발견하며 그 형식에 근거가 되는 영 이해로 교회는 이 진술의 완전한 내용과 심오한 의미를 오랜 발전의 과정 속에서 자신의 것으로 삼을 수 있었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에 관하여 고백하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행위와 영의 부으심에 그 근거를 두었던 신앙진술들이 상세하게 요구되었으며 하나의 명료성을 요구되었다. 


4.개념적인 형성시도(과도기) 


삼위일체의 오류 


교회가 三位一體를 사유적인 槪念으로 形成하는 시도가 긴 시간이 걸리고 오류의 길도 걸으면서 올바른 길을 찾게 되었다. 처음부터 교회에 본질적인 것 즉 하나님은 한 분이시라는 사실로 하나님을 두 분, 세 분은 믿기지 않는다는 점과 한 분이신 하나님이 자신을 삼중적인 양태로 나타내셨다는 사실이 확립하였다. 
2세기에 들어와 신학의 중점이 희랍의 사유의 세계로 옮겨지면서 희랍의 정서를 이해할 수 있는 형식으로(sein)에 근거한다는 데 있다. 하나님의 개념을 아버지, 아들, 성령간의 구별이 形而上學的인 獨立體(Eigenstandigkeit,Hypostase:실체)로서 이해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고대교회의 변증가들은 획기적인 도약을 하게 되었으며 희랍의 로고스 개념을 요한복음 1장과 결합시켰다. 
2~3세기 사이에 발전한 그리스도교의 한 이단으로, 이것은 로고스(말씀 또는 그리스도)가 독립적인 한 인격적 실체라는 교리를 부인하고 오직 성부 하나님만이 유일한 신임을 주장함으로써 극단적인 유일신 사상을 대변했다. 그리스도를 구주로 간주하지만, 신은 숫자적으로 하나뿐이어야 한다는 데 집착했다. 이 단일신론은 2가지 형태로 발전했는데, 하나는 역동적 단일신론(또는 양자론)이고 다른 하나는 양태적 단일신론(또는 사벨리우스주의)이다. 


(1) 이 문제의 논쟁과 관련된 첫 번째 이단이 力動的인 單一新論(dynamic Monarchianism)으로 그리스도의 위격을 희생시키고 하나님의 유일성을 부각시켰다. 역동적 단일신론은 그리스도가 기적적으로 잉태된 단순한 인간이었는데, 다만 그가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무한히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로 임명되었다고 주장했다. 2세기말경 테오도투스가 이 사상을 로마에서 가르치다가 교황 빅토리우스에게 파문 당했고, 그후에 아르테몬이라는 사람이 가르치다가 교황 제피리누스에게 파문당했다. 260년경에 또다시 사모사타의 파울루스가 이 사상을 가르쳤다. 오늘날 이 사상은 유니테리언파의 신념이다. 
이 교리적 견해는 하나님의 유일성을 지키기는 했으나 신성 삼위의 독특성을 살리는데는 실패하였다.(신학핸드북 P 551, http://cyberspacei.com/jesusi/) 

(2) 두 번째의 형태로 樣態的 單一新論(modalistic Monarchianism)으로 하나님의 유일성을 견지하면서 그리스도의 신성을 강조하고자 하였다 이 이론을 聖父 苦難設 (patripassianism)이라고 하며 사벨리우스(Sadellinism)로 알려져 있다. 
양태론적 단일신론은 몇몇 교부들이 주장하는 '성자 종속설'에 이의를 제기하며, 성부와 성자는 동일한 분의 다른 이름일 뿐이고 한 하나님으로서 "그가 세상보다 먼저 서 계신다는 점에서 성부요, 인간으로 나타났다는 점에서 성자로 부르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사상은 소아시아 출신의 성직자 프락세아스가 206년경 로마에서 가르쳤고, 테르툴리아누스가 자신의 소논문 〈프락세아스(양태론 단일신론의 창시자로 추정) 반박 Adversus Praxean〉(213경)에서 반박했다. 이 논문은 삼위일체 교리에 중대한 기여를 했다(신학 핸드북P 551,P 253, p 552, http://cyberspacei.com/jesusi/) 

5. 참고 : 주요 이단들 


1. 마르치온 : 구약배척, 엄격한 이원론, 가현론 
2. 도케티즘(가현론) : 그리스도라는 껍질만 수난받았다. 
하나님은 껍질을 뒤집어쓰고 세상에 나타났다. 
3. 유일신론(유주론) :monarchianism은 adoptism(입양론)과 modalism(양태론)으로 구별된다. ⅰ) 입양론 : 테오도토스 주장-하나님은 예수라는 인간을 그리스도로 입양했다. 
ⅱ) 양태론 : 그리스도와 성부는 동일하다. 세 가지 주창자가 있다. 
① Noetus : 성부와 성자는 같다(성부 수난설). 
② Praxeas : 인간 예수와 하나님 아버지가 결합하여 성자 그리스도를 낳았다. 
③ Sabellius : 성부, 성자, 성령은 한 분 하나님의 
서로 다른 상태변화일 뿐이다(가면론). 
4. 아리우스(아리아니즘) : 종속론, 성부만 하나님이고 
성자와 성령은 신적 능력을 지닌 피조물이다. 
5. 네스토리우스 : 마리아는 인간 예수를 낳았을 뿐이다. 
6. 몬타누스 : 교회배척, 엄격한 금욕, 순교지향, 천년왕국도래 임박. 
7. 마니교 : 엄격한 이원론, 엄격한 금욕, 마지막 계시 종결자로 자처. 


Ⅱ. 삼위일체 교리의 시발점 


저스틴의 발언으로 삼위일체 교리가 불명료한 것을 보여주어 2세기 말에 비로소 분명한 신론에 도입하게 되었다. 

1. 리용의 감독 이레네우스 


1) 하나님의 내적 본질을 역사 속의 말씀을 통해 인간과 역사 속에 현존하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선택'한다는 신앙고백을 한다. 말씀이 역사 속에 계시기에 역사는 하나님과 관계를 맺게되고, 성령을 통해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2) 구속사에 있어서 하나님의 계획은 인간을 하나님 자녀가 되도록 하는데 있다. 
이것은 인간과 하나님의 하나됨으로 확대된다. 이는 창조되지 않은 분이 창조된 자를 양자로 받아들이는 것과 같다. 그리스도를 하나의 실체는 십자가 죽음을 당하지 않은 것이다. 
이에 대해 이레네오는 예수와 그리스도는 한 분이고 같은 분이며, 고통과 죽음을 겪었다고 선언한다. 가현주의(docetism : 예수는 껍데기일 뿐)와 입양론(adoptianism : 예수가 죽은 후 성자로 입양되었다.)을 반박하여 참 사람이시고 참 하나님이신 그리스도를 천명한다(이후 451년 칼체돈 공의회에서 그리스도의 두 본성 천명). 즉, 구원은 곧 '그리스도 안에서의 수렴'이다. 이는 만물을 그리스도 안에서 모은다는 뜻인데, 구원론적 관점(구원을 주는 새 아담), 존재론적 관점(인간을 새롭게 하는 육화된 말씀), 종말론적 관점(불멸성과 부활의 인간), 이 세 관점을 내포한다. 이레네오는 2C 신학의 핵심에 위치하며, 하나님의 구원역사개입이라는 경륜을 통해 삼위일체를 보았다. 

2. 카르타고의 신학자 터툴리안 


삼위일체론의 기초형태를 형성한 터툴리안 (195년경 입교)은 영지주의와 마르치온(Marcion)에 반대하여 한 하나님 안에 창조자와 구속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의 하나됨(Einheit)를 강조하고 세 인격들 안에서 하나님은 한 유일한 본질이다고 주장했다, 하나님은 영원전부터 한 분이지만, 홀로 있지 않다. 그는 창조자로서 구속주로서 보혜사 성령으로서 자신을 계시했다. 이로써 그는 삼위일체론의 기초를 형성하였다. 
한 분 하나님은 수적인 혹은 단자적인(monadisch 單子的) 단일성(Einheit 單一性)이 아니라, 그 안에서 이미 구별된 단일성이다. 아버지는 아들과 구분되지만,(distincti) 분리되지(divisi) 않고, 구별되지만(discreti) 분리되지(separati) 않는다. 아버지와 아들은 신적인 단일성에서 구별되고 그 구별성에서 하나이다. 아버지는 아들을 통하여 성령을 보낸다. 이 성령은 신의 본질의 하나됨을 통하여 아버지와 아들과 결합되어 있다. (기독교적인 유신론으로서 삼위일체론 이해 오영석의 논문 신학과 교수/조직신학) 

3. 오리게네스 

클레멘스의 제자인 오리게네스(Origen)는 삼위간의 통일성을 말하기 위해서 동일본질(homoousios)이라는 용어를 일찍이 사용해서 니케아신조에서 교리적인 차원으로까지 발전시킨 위대한 사상가임에는 틀림이 없으나, 그에게 있어서도 고민은 삼위간의 통일성과 개별성을 말하는데 있었다. 그가 삼위간의 통일성을 말하기 위해서 사용한 용어가 '아들의 영원한 산출'(eternal generation of the Son)이라는 개념이다. 그는 아버지 하나님 한 분만이 오로지 하나님이시고, 또한 비출생적인 하나님이시므로 엄격한 의미에서 하나님은 아버지 하나님 한 분이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아들의 신성은 아버지로부터 영원하게 낳으신 신성이므로 파생적이다. 따라서 아들은 제 2의 하나님이라고 부를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오리겐의 삼위일체론의 난해성이 있다. 오리겐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기도할 수는 있어도, 기도는 오로지 하나님 한 분에게만 드려야 하며, 부활하신 아들에게는 드릴 수 없다고 하였다. 그리고 성령은 말씀으로 말미암아 존재하게 된 모든 존재들의 가장 명예로운 자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부에 의해서 생겨난 모든 존재들의 최상급자인 성령이 있다고 하였다. 
오리겐의 삼위일체의 두 번째 사항은 아버지와 아들의 영원한 동등(co-eternity)사상이다. 즉, 아버지는 선하심과 능력에 있어서 자신의 선하심과 능력을 나타낼 수 있는 대상이 있어야 한다고 하였는데, 이 점에 있어서 오리겐은 영지주의적 사고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였다. 하나님은 우주창조 이전에 자신과 영원히 동등한 영적 존재의 세계를 말씀으로 이룩하셨다. 그런데 영들이 선재적 상태에서 선재적으로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물질세계를 창조하였다. 따라서 영원하신 하나님의 신성과 타락으로 말미암아서 창조된 물질세계와의 사이에 중재자로서 아들이 있어야 했다. 

4. 아리우스(Arius 250?~336?) 


삼위일체설을 부인했던 아리우스는 리비아 출생으로 안티오키아에서 신학을 배우고 젊었을 때 알렉산드리아 교회의 사제(司가 되었고, 스승 루키아노스의 설을 이어받아 그리스도의 피조성(被造性) 주장을 펴다가 325년 니케아 공의회에서 논쟁에 패하고 정식 추방당하여 일리리쿰으로 유배되었다. 

아리우스의 주장은, 
“성부(聖父) ·성자(聖子) ·성신(聖神)의 세 위격(位格)은 대등하며, 오직 성부만이 영원하다. 그리스도가 실제로는 신이 아니라 피조물이라고 주장했다. 그가 내세운 기본 전제는 스스로 존재하며 불변하는 하나님의 유일성 성자는 모든 피조물과 같이 창조되었을 뿐, 하나님이되 피조물과 신의 중개역할을 하고, 하나님이 그에게 세상을 구원하도록 선택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은총을 입어 하나님의 양자(養子)로 선택받은 것이다”라고 주장하였다. 
니케아 공의회(325)에서는 이같은 아리우스의 주장을 이단으로 규정하고 배척하였으나, 그 후 아리우스와 그 일파는 콘스탄티누스 대제(大帝)에게 접근하는데 성공하여 콘스탄티누스 2세 황제 아래서는 전 로마 제국을 지배할 만큼 세력을 떨쳤다. 
그러나 이 무렵부터 엄격(嚴格) 아리우스파와 반(半)아리우스파의 분열이 일어난 데다 황제의 죽음(361)까지 겹치자 급속도로 몰락하였다. 

제1회 콘스탄티노플 공의회(381)는 이른바 니케아 신경(信經)을 재확인하고 아리우스파 문제에 종지부를 찍었다. 


Ⅲ. 니케아 회의

 
삼위일체 논쟁과 니케아에서 콘스탄티노플까지 
황제교황주의의 영향 아래 있었던 기독교는 정치적인 안정과 더불어서 기독교 내부적인 문제를 비로소 해결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배경에서 삼위일체 논쟁으로부터 기독론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살펴보기로 한다. 

1. 삼위일체 논쟁 


니케아회의 소집 배경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개종(313)으로 그리스도교는 확장하게 되고, 신학적 논쟁을 통해 풍부한 신학발전이 이루어진다. 헬라철학의 바탕 위에서 점차 사변화 되어가고, 내재적 삼위일체에 초점이 맞추어진다. 문제의 중심에 하나님의 본성(단일성, 구원론적 동기 등)이 있다. 4세기에는 주로 아들과 성령의 신성에 대해 문제가 제기된다. 


1) 문제의 발단 

320년경 안디옥 학파 출신의 장로 아리우스(Arius)는 알렉산드리아 교구에 속한 성바우칼리스(St. Baucalis) 교역자로 안디옥 학파의 입장에서 "아들은 시간 안에서 창조되었다"에서 시작된다는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신학적 입장을 공격하였다. 따라서 알렉산드리아 교구의 책임자인 알렉산더(Alexander)는 회의를 소집해서 아리우스의 견해를 수정할 것을 요청하지만 아리우스는 감독인 알렉산더의 지시를 따르지 않고 오히려 주교가 사벨리아니즘(유주론, 가면론)에 물들었다고 공격하며 니코메디아 교회의 감독으로 있었던 유세비우스(Eusebius of Nicomedia)에게 호소하였다. 그래서 아리우스 이론은 동방과 소아시아, 에집트 지역으로 빨리 퍼져갔고, 곧 알렉산드리아의 지역 공의회에서 아리우스는 단죄·파문되었다. 
여기에 황제 콘스탄티누스는 제국의 통일을 위한 교회의 통일이라는 대 원칙 아래에서 비투니아(Bythnia)의 호반도시 니케아(Nicea)에 소재한 자신의 여름궁전에서 318명의 감독을 초청하여 회의(council)를 개최케 하였다. 

2. 아리우스의 삼위일체 


종속적인 그리스도론을 주장한 아리우스(Arius)의 논점 
아리우스는 기독교의 유일신 하나님 개념을 보전하기 위하여 그리스도의 신성을 포기하고 하나님은 가장 높은 실체로 나누어질 수 없는 단일성을 지니고 있어 모든 존재의 근거를 형성과 원칙, 척도이며 다른 모든 사물들의 원인이다. 그러므로 창조자 하나님과 피조물과의 사귐을 이루기 위하여 중간 존재의 중재가 필요하여 "아들"이라 부르고 철학적 개념에 따라서 "로고스"라고 부른다. 이 아들은 아버지의 독생자로 이해될 수 없고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지혜와 이성이 나타났다. 이러한 로고스 그리스도를 반신 반인간의 존재로 그는 신적이지만, 아버지와 동등하지 않으며 모든 피조물의 모범이 되는 피조물이다. 세상에 하나님을 계시하기 위하여 시간과 공간이 있기 전에 창조되었고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그리스도에게 특별한 신적인 영광이 주어진 것으로 그리스도는 존재하지 않는 때도 있었다. 
그리스도 예수를 "창조된" 하나님 혹은 "반신적인" 존재로 변형시컨 것이다.(하르낙) "신화적 요소가 기독교에 유입되어 순수한 유일신앙은 신적 인간과 반인간적 신을 믿는 다신교로 전락되었다." 예수 그리스도가 "주"가 아니고 한계를 갖는 반신 반인간적인 존재라면, 인간은 그리스도를 만날 수 없고 그를 지배하고 처분할 할 수 있는 피조물로 전락시킨다. 아리우스적인 종속론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적인 주체성을 인간의 주체성으로 편입시켜 그리스도의 "주권"을 폐기시킨 계시의 부정이다. 그래서 교회는 아리우스와 종속주의를 거부하고 성서의 증언에 따라서 한 참된 하나님이 독자적인 세 인격들 안에서 자신을 주 하나님으로서 계시한 삼위일체론의 교의가 형성된 것이다. 성부, 성자와 성령은 폐기될 수 없는 세 고유한 존재 양식에서와 상호관계 속에서 활동하는 같은 하나님이다. 그리스도가 하나님과 동일본질이고(homoousios) 하나님이 그리스도와 동일본질이며 성령이 성부와 성자의 동일한 본질을 지닌다면 참된 한 하나님의 존재와 행동, 즉 하나님의 하나됨을(Einheit) 단자론적으로(單子論, monadisch)) 이해될 수 없고 근본에서 기독론적으로, 성령론적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325년 니케아 회의에서 아리안주의는 이단으로 배격되고 예수 그리스도와 아버지의 완전한 단일성의 교리가 관철되었다. "하나님의 독생자는 하나님의 하나님, 빛의 빛, 참 하나님이요 태어났으나 창조되지 않았고 아버지와 같은 본질이다." 

3. 니케아 회의의 결정사항. 


교리적인 삼위일체 문제 
황제의 종교 자문관 코르도바의 호시우스(Hosius of Cordova)는 일찍부터 회의의 주안점이 동일본질(homoousios)이라고 황제에게 익히 알려주었으며, 아리우스의 주장은 동일본질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유사본질(homoiousios)이라는 것을 파악하고서 황제에게 회의의 결정사항에 동일본질이라는 단어가 명기되어야 한다고 상기시켰다. 결과적으로 회의는 아리우스와 그의 일파를 배격하는 신앙선언을 하면서 다음과 같은 신조를 체택하였다. 
우리는 한 분 하나님을 믿는다. 그는 전능하신 아버지이시며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들을 만드신 창조자이시다. 
그리고 한 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아버지로부터 나신 자이시며, 독생자이시다. 즉 아버지의 본질로부터 나오신 자로서 하나님으로부터 나오신 하나님이시며 빛으로 나오신 빛이시며, 참 하나님으로부터 나오신 참 하나님이시다. 낳으신 자이시고 만들어진 자가 아니다. 아버지와 한 본질이시며 그를 통해서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모든 만물이 존재케 되었다. 그는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하늘로부터 내려오셨고, 성육신 하셨고, 인간이 되셨으며, 고난 당하시고 3일 만에 부활하셨으며, 하늘에 오르셨다. 그리고 산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실 것을 믿는다.그리고 성령을 믿는다. 
그러나 아들이 계시지 않았던 때도 있다고 말하는 자들, 탄생 전에는 아들이 계시지 않았다고 말하는 자들, 아들은 무에서부터 지음을 받았다고 하는 자들, 하나님의 아들은 상이한 본질 혹은 본체를 가졌다고 주장하는 자들, 혹은 아들이 피조되었다든지 혹은 변화될 수 있고, 바뀔 수 있다고 말하는 자들을 가톨릭 교회는 저주한다. 이 신조는 아버지에 대해서는 창조주이심을 밝히는 것으로 만족하였으나, 아들에 대해서는 아버지로부터 낳으신 자이시며, 아버지와 한 본질이시고, 낳으신 자이시고, 만들어진 자가 아니다라고 거듭해서 아들과 아버지의 동일본질임을 밝혔다. 이렇게 해서 아들의 신성이 확정되었으며, 동시에 아들에 대한 종속론적인 기독론은 더 이상 교회내에서 발을 붙이지 못하게 하였다. 


 
Ⅳ. 50년에 걸친 논쟁 

1. 논란의 여지 


니케아 신조는 성령에 대해서는 단 한 문장으로 간단하게 언급함으로써 결국은 콘스탄티노플 회의까지 삼위일체 논쟁이 지속될 수밖에 없었다. 
니케아회의장에서 황제 콘스탄티누스는 신조에 서명하지 않은 사람들의 교직을 박탈하고 추방하도록 명령하였다. 물론 이러한 조처에는 교회의 통일과 평화를 유지하려는 계산이 있었겠지만, 이러한 결정은 다음으로 이어지는 교회의 각종 회의에서 상대편을 정치적으로 몰아붙일 수 있다는 선례가 되었으며, 이러한 불길한 선례가 남긴 실례들이 그 다음으로 이어지는 여러 차례의 사건에서 실제적으로 발생하였다. 
니케아회의 이후로 동일본질파들이 주요 교구를 석권하면서 약 5년 동안 그런대로 평화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회의가 끝난 이후로 교회에 돌아온 감독들은 아리우스의 사상보다는 아직까지도 사벨리우스적인 형태론적 군주신론이 더욱 문제였음을 알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유사본질파에서는 보수적인 감독들을 설득함과 동시에 황후와 긴밀한 연락관계에서 다시금 황제의 부르심을 받게 되었다. 니코메디아의 유세비우스는 다시금 감독으로 취임하였으며, 아리우스도 돌아왔다. 
이렇게 해서 동일본질파에서는 알렉산드리아의 감독 알렉산더와 그이 제자 아타나시우스, 안키라의 마르켈리누스, 안디옥의 유스타티우스와 유사본질파에슨 니코메디아의 유세비우스와 아리우스가 다시금 재 대결하였다. 

2. 아타나시우스가(Athanasisus 373 경)

 
교회 이론이 정립되던 때라 여러 논쟁이 있었고 그 중에서도 아리우스와 아다나시우스의 논쟁은 아리우스는 안디옥교회의 감독이면서 또한 그무렵 신학계의 노장이었었다. 반면, 아다나시우스는 알렉산드리아 교회의 감독 알렉산더를 따라 처음으로 종교회의에 참석한 젊은 청년이었다. 그는 알렉산더 감독을 도와 자료를 정리하다가 나중에는 선두에 서서 노장 아리우스를 이단으로 정죄하고 승리를 거둔 "용장" 역을 했다. 
당시의 처절한 전투의 핵심은 "아버지와 아들이 같다, 그런고로 아들이 고통 당할 때, 아버지도 고통당했다"고 하는 파트리파시아니즘(patripassianism)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아리우스는 예수의 인성을 강조하여, 하나님의 로고스가 예수 속에 거하시기 시작한 '때'가 있었다고 했고, 아다나시우스는 신성을 강조하여 예수가 육신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처음부터 사람의 '마음'이 없는 영이었다고 생각했다. 이 논쟁은 절충적 결론인 "아들과 아버지는 한 하나님이다"라는 유명한 명제로 끝났지만, 정치적으로는 아다나시우스의 승리로 선포됐다. 

3. 삼위일체 교의의 확립 


삼위일체 교의는 콘스탄틴노플의 회의에서(381)사실상 완성되었다. 여기엔 아다나시우스의 영향이 결정적이었다. 아타나시우스가(Athanasisus 373 경) 아리우스의 양태론적 군주론의 유일신론에 반대하고 아버지와 아들의 동일 본질을 확립하게 했다. 그는 아버지와 아들의 동일본질 관계를 확립하기 위하여 수원(水源)과 거기서 흘러나오는 시냇물의 관계로서 설명한다. 아들은 태초부터 인격적으로 존재하였다. 수원과 시냇물은 그 형태가 둘이고, 이름이 둘이지만 서로 분리될 수 없는 것같이 아들은 아버지로부터 분리될 수 없고 아버지도 아들로부터 분리될 수 없다. 그러므로 아들은 아버지와 동일본질이고 같은 영원성이 인정되어야 한다. 이 아들은 그 기원과 본질에서 피조물과는 다른 상이한 본질이지만(heteroousis), 아버지와는 동일본질이다.(homoosios) 아들이 아버지와 <동질>이고 인격에서만 아버지와 구별된다면, 아들은 창조된 것이 아니고 아버지에게서 출생되었다. 아다나시우스는 아버지와 아들의 동일한 한 본질을 주장하기 위하여 한 본질을 표현하는 "homoousios"(wesens-eins)라는 개념을 본질의 같음을 표현하는 개념 "homoious"(wesensgleich)보다 선호하여 그 개념을 관철시켰다. 그것은 아버지의 신적인 본질에 아들이 참여한다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하나님 자신이 우리에게 행동하고 말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는 성자는 성부와 영원한 동일 본질이며 인격에서만 성부와 다르다고 주장하여 진정한 삼위일체의 교리를 주장하였다. 

이로써 아다나시우스는 성령론을 삼위일체론적으로 이해하게 하는 데서 커다란 공헌을 하였다. 아다나시우스는 아들과 아버지의 동질이라는 근거 위에 그리스도에 대한 기도,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집행, 죄의 용서, 부활이 소망을 지닌 구원론적인 성격을 세웠다. 그는 세례예식문에서 살펴볼 때, 성령이 피조물일 수 없다고 확신했다. 성령의 피조물이라면 하나님 안에 다른 어떤 본질을 지닌 것이 있다고 할 수 밖에 없다. 그러면 하나님은 삼위일체일 수 없다. 그래서 그는 성령을 아들에게 종속된 피조물이거나 어떤 신적인 힘과 천사와 같이 보는 견해와 맞서 성령은 아들과 마찬가지로 아버지와 동질이라는 것을 천명한 것이다. 그래서 그는 한 분 하나님이 삼중의 인격적인 존재로 나타나고 이로써 자신을 계시한다고 가르쳤다. 여기에 카파도기아 교부들은 세 인격체가 동일한 영광과 하나님의 본질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했다. 카파도기아 학자들의 논리는 삼위일체론의 확립에 크게 기여했다. 그래서 325년 <케아 신조>에는 삼위일체론적인 관점에서 성령론이 "우리는 성령을 믿으며"라는 진술이 진일보 하여 나타났다. 그러다가 362년 아다나시우스가 주관한 알렉산드리아 회의에서 다음과 같이 성령론이 삼위일체론적으로 확립되었다. 여기서 "성령은 아버지와 아들과 동일본질이며 성령은 성부와 성자와 같은 인격"이라고 선언되었다. 


Ⅴ. 성령의 신성확보 

통일성을 주장했듯이 이제는 성령의 문제 또한 시급한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전에 아리우스에 의해 제기된 신성과 피조된 존재사이에 양자택일 문제가 그 전체적 의의(Traweite)에서 깨닫게 되었다면, 성령의 문제는 그 문제를 마주놓고 볼 때 제쳐놓을 수가 없었다 이렇게 니케아신조에서 성령의 신성에 대해서 분명하게 밝혀 주지 않음으로서 교회는 자연히 상이한 견해를 가질 수밖에 없었으나, 지금까지 지속된 니케아 지지파들과 반대파들 사이에서 아버지와 아들에 관한 문제가 362년 회의로 어느 정도 해결됨으로써 자연히 성령에 관한 논란이 야기되기에 이르렀다. 이 문제를 크게 부각시킨 가이사랴의 유세비우스(Euseb von Casarea) 와 같은 사람은 동일하게 영을 아버지와 아들에게 종속시켰으며, '그는 아들에게서 나온 피조물 들중의 처음 난 자" 라고 말하였고 성령이 삼위일체에 있어 어떤 위치를 점하고 있는가 하는 물음에 대해 아직도 많은 불확실성이 있었다.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성령의 신성은 콘스탄티노플 감독인 마케도니우스(Makedonius 342-360년)주변에 모여들었던 소위 성령 훼손당(Pneumatomachen)에 의해 거절되었다. 이들은 아버지와 아들의 본질공존체(consubstanti-ality) 는 인정할 수 있으나 성령에 대해서는 인정할 수 없다고 하였다. 그래서 362년의 회의는 이들에 대해서 성령훼방론자 혹은 이 파의 지도자로서 콘스탄티노플의 감독(342-360)이었던 마케도니우스의 이름을 따라서 마케도니우스주의자라고 하였다. 
아다나시우스는 나중에야 비로소 세라피온에게 보내는 편지들 가운데서 성령의 위치에 대해서 표명하였다.(359혹은360).여기에서 그는 성서의 명백한 증언에 따르면 성령은 피조물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하며 삼위일체이신 신성과 하나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영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며 성화ㅡ 곧 생명을 준다 피조물들이 다른 많은 것처럼 가변적이고 시간과 공간에 묶여있는 반면에, 영은 불변하고, 편재적이고 한분이며 영을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에 참여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것은 영이 다른 것에 동참한다는 말이 아니라 오히려 그는 스스로 자신만을 전달한다 
. 
362년의 알렉산드리아 대회에서 성령의 신성에 관한 문제를 자연적으로 거론하게 되었다.동일본질(Homousie)의 개념이 필연적으로 아버지와 아들의 통일성에 대해 보다 깊게 숙고하게 함으로써 아들의 신성을 확인하는 것을 넘어서 또한 아버지와 아들의 본질적인 
오리겐 이후로 성령의 신성에 대한 논란은 계속되었으나 성령의 완전한 신성의 확보는 아타나시우스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아리우스는 성령을 하나의 위격으로 간주하였으나 성자의 본질이 아버지와 전혀 같지 않은 것과 같이 성령의 본질도 아버지와 전혀 다르다고 하였다. 아리우스의 주장을 그대로 이어받았던 아에티우스와 유노미우스등도 성령은 성자가 만드신 피조물 가운데 가장 고상한 자, 즉 조명과 성화의 근원이라고 하였다. 여기에 맞서서 예루살렘의 시릴은 성령의 삼위일체에 속한다고 하면서 '우리는 어떤 사람이 하듯이 성삼위를 나누지 않으며, 사벨리우스가 하듯이 성삼위 안에 혼돈을 일으키지도 않는다' 라고 하였다. 그는 성부는 성자에게 주시고, 성자는 성령에게 교통하시며, 성부는 성자를 통해 성령과 더불어서 모든 은혜를 베푸신다. 성령은 존립체이고 성부와 성자와 더불어서 항상 계시고 불가분리적으로 영화롭게 되신 자라고 하였다. 
이러한 배경에서 아타나시우스는 360년경에 자신의 성령에 관한 이론을 확립하였다. 그는 성령에 대해서 '신약성경은 비록 분명하게 밝히지는 않았다고 하더라도 성령은 피조된 본체가 아니고 하나님에게 속하며, 하나님의 신격을 소유함으로써 삼위일체 가운데 한 분이시며 아버지에게서 나온다. 성령은 불변하고 편재이며 유일하게 한 분이시다. 우리는 성령을 통해서 하나님에게 참여한다. 그리고 성령은 스스로 교류하신다'고 주장함으로서 성령의 본질공존체성을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특히 아타나시우스는 아들과 성령의 관계를 분명하게 하였다. 아들을 통해서 성령에 대한 지식을 얻을 수 있음과 같이 성령은 아들로부터 떨어질 수 없다. 

 


 
 

일반형 뉴스형 사진형 Total 3,387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2667 사도바울이 예언한 배교는-- 웹섬김이 01-27 2276
2666 모세오경 맥잡기 웹섬김이 01-27 2500
2665 연대기로 부류한 구약성경 웹섬김이 01-27 2318
2664 전국 이단, 하나님의 교회주소 웹섬김이 01-27 3280
2663 한눈에 보는 신약성경 웹섬김이 01-27 3218
2662 건강한 교회가 되기위한 10계명 웹섬김이 01-27 2716
2661 [2]삼위일체교리 발전사 웹섬김이 01-08 2692
2660 [1]삼위일체교리 발전사 웹섬김이 01-08 3759
2659 믿지 않는 사람에게 어떻게 논리적으로 기독… 웹섬김이 01-08 3397
2658 잘못된 교회 성장정책 웹섬김이 01-07 2129
2657 [2]기독교 창조론의 개혁 방안 웹섬김이 12-21 2289
2656 [1]기독교 창조론의 개혁 방안 웹섬김이 12-21 2450
2655 행복한 추수감사절 맞이하는 법 웹섬김이 11-14 1979
2654 한번 갔던 교회에 재방문 하지 않는 10가지 이… 웹섬김이 11-14 2040
2653 뉴에이지 운동의 종교적 영성 웹섬김이 11-14 2551
2652 칼빈주의 구원론 개관 웹섬김이 11-14 2912
   41  42  43  44  45  46  47  48  49  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