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9-11-14 16:30
뉴에이지 운동의 종교적 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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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웹섬김이
조회 : 2,551  

뉴에이지 운동의 종교적 영성

(기독교 영성과의 비교)

序 論
19세기 말엽부터 기독교, 불교, 이슬람교 등의 제도권적 기성종교와는 다른 새로운 종교가 전(全)세계적인 세력을 형성하고 있다. 뉴에이지(New Age)라 일컬어지는 이 새로운 사상은 21세기에 들어선 시점에서 인류가 취해야 할 패러다임(paradigme)의 변혁을 내세우고 있다. 패러다임이란 모든 사회현상이나 사물을 바라보는 사고의 틀을 말하는 용어인데, 이들이 변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패러다임은 다름 아닌 기독교적 세계관이다. 음악, 미술, 영화, 출판 등의 대중문화의 다양한 분야에서 “뉴에이지 문화”라는 장르를 만들어가며 자신들의 이념을 일반에게 전파하고 있으며, 다른 종교와는 타협적인 태도를 취하는데 반해 유독 기독교(천주교를 제외한 개신교)와는 극단의 대립을 보이며 상호비난하고 있다.
그러면 뉴에이지가 도대체 어떤 교리와 사상을 가지고 있기에 기독교와의 상호비난의 대상이 되는지 그리고 뉴에이지 사상에 담겨 있는 동양사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지를 살펴 보아야 할 일이다. 특히 뉴에이지는 그들의 종교적 영성에 있어서도 많은 사람들에게 호응도를 높이고 있는 바 그들의 영성은 과연 무엇을 말하고 있는 지도 고려(考慮)해본다.

本 論
1. 뉴에이지 운동(New Age Movement)의 기원과 개념
뉴에이지 운동의 근원은 1875년 뉴욕에서 러시아 사람 <페트로브나 블라비츠키>에 의하여 창설된 “신지학협회(神智學協會)”에 있다. 힌두철학에 뿌리를 둔 신지학(Theosophy)적인 기본 명제들 중의 하나는 <모든 종교는 그들 사이의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공통적인 논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즉 범신론(汎神論)적인 동양의 사고와 유일신론(唯一神論)적 기독교 사상을 적절하게 혼합하여 만들어 낸 종교혼합주의적 열매라고 할 수 있다.
별다른 활동을 보이지 않다가 1960년대에 실질적인 활동에 들어서게 된 뉴에이지 운동은 이성과 합리주의에 근거한 과학만능주의인 모더니즘(modernism)이 붕괴하고 그 대안으로 제시된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의 열풍을 타고 급속도로 번져가기 시작했다. 특히 60년대 중반 아시아인에 대한 이민법 개정 이후 힌두교의 정신적 지도자인 구루(guru)들이 미국으로 건너가면서 동양의 신비주의 사상들이 서구의 합리주의와 과학주의 등과 결합하면서 형성되었다. 뉴에이지 사상은 현대문명에 염증을 느낀 현대인, 특히 서구인들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뉴에이지는 특히 인류가 직면한 위기의 원인을 개신교의 신과 인간과의 복종관계에서 찾는다. <배꼽>이라는 책으로 잘 알려진 뉴에이지 운동가 <오쇼 라즈니쉬>는 기독교의 전통적인 가치관을 비판하면서 지금까지 기독교가 인간을 가장 낮은 곳으로 끌어내리며 죄인 취급하고 무조건 신을 가장 높은 경지로 끌어 올렸기 때문에 인간이 가치없는 존재로 평가되어 스스로의 능력을 사용할 수 없었다고 말한다. 그는 기독교 사상의 굴레에서의 탈피를 주장하고 있다.
뉴에이저들은 기독교의 시대가 끝나고 새로운 시대(New Age)가 도래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점성술로 말하면 기독교의 시대를 의미하는 물고기자리가 끝나고 새로운 시대를 의미하는 물병자리 시대가 오고 있다는 것이다. 뉴에이지 사상을 담고 있는 마릴린 퍼거슨(Marilyn Ferguson)의 「뉴에이지 혁명 - The Aquarian Conspiracy(물병자리의 음모)」에서도 뉴에이지 운동은 지구상의 모든 인류를 하나로 묶어 민족주의와 국가적 이기주의를 떠나 진정으로 행복한 세상을 이룩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2. 뉴에이지 운동과 신비주의 영성
1) 범신론
범신론의 기본 논리는 신과 우주가 하나이며 한 인간의 영혼이 우주의 핵심이고 우주의 핵심은 곧 인간의 영혼이라는 것이다. 신이란 우리가 알고 있는 유일한 절대자 하나님이 아니라 궁극적이며 무한한 비인격적인 실체로서 존재하는 모든 것이다. 즉 이 세상의 모든 것이 신이며 명상을 통하여 신과의 합일을 경험함으로써 구원에 이른다고 주장한다. 뉴에이저들이 만든 음악에서 등장하는 신은 기독교의 하나님이 아닌 불교의 싯달타, 힌두교의 크리슈나 등을 의미한다. 실제로 1970년대에 한창 유행했으며 크리스천들도 흥얼거렸던 조지 해리슨의 는 성경에서 말하는 주님이 아니라 힌두교의 신인 크리슈나를 지칭한다. 이와 같이 뉴에이지의 사상은 범신론을 강조하는 힌두교 및 바벨론, 그리스 등의 사상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다.
2)다원주의
이는 범신론을 전제로 하여 발전된 사상이다. 보는 방향에 따라 사물의 모습이 달라져 보이듯이 각 종교에서 말하는 신도 이처럼 본질적으로는 동일하다는 사상이다. 그러므로 신은 본질적으로 같은 존재이며 어느 종교를 믿든지 종교상의 구원을 이룰 수 있다고 주장한다.
3)인본주의
여기서의 인본주의란 인간 존재의 가치를 그 어떤 가치보다 우위에 두자는 개념이다. 인간 내부에 있는 신의 모습을 발견하면 곧 인간이 신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4)영적 진화론 - 뉴에이지 영성
이는 인간 내부의 신성(神性)을 끄집어내는 방법론적인 사상이며, 인간은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 점차 신으로 진화해간다는 사상이다. 여기서 그들이 쓰는 용어가 <의식의 성장>이라는 것이다. 인간은 자신이 무한한 존재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유한한 존재로 살아가고 있는데, 이 망각에서 차츰 벗어나 자신이 무한한 존재임을 깨닫는 과정이 바로 영적으로 진화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예수회의 신부 <샤르뎅>도 인간의 궁극적 목표인 신성, 즉 극점에 도달할 때까지는 그리스도로 변화하는 진화가 계속 이루어질 것이라고 1950년대 말에 주장했다.
①여행의 입구
이 단계는 시작, 깨달음 그리고 갈등의 단계이다. 마릴린 퍼거슨은 LSD(환각제)가 60년대의 사람들을 깨달음의 길로 인도하는 역할을 했다고 한다. 즉 LSD가 선(禪;Zen)이나 명상으로의 여행을 시도하는 입구로서의 역할을 했다는 의미이다. LSD는 좌측뇌를 사용하던 사람들로 하여금 상상력이 풍부하고 신적인 존재가 되기 위한 우측뇌의 개발로 인도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화학약품에 의한 자각은 미미한 것으로서 명상과 요가, 선 등에 심취하게 되면서 뉴에이지라는 영적이고 신비주의적인 세계로 들어가게 된다. 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뉴에이지의 영성에 빠져드는 것이다.
②구도(求道)의 단계
명상을 하는 사람들은 초기단계에서 온몸의 긴장을 이완시킨다. 여기가 구도의 단계이다. 구도의 단계는 명상이나 요가, 선, 기공(氣功)과 같은 방법들을 시작하는 준비단계인 것이다. 이 준비단계에서는 <음악>을 준비한다. 좋은 명상음악은 명상에 깊이 빠지도록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이 음악은 변혁을 위한 보조도구로서 우측뇌의 개발, 깊은 명상, 자아각성을 위하여 사용된다. 이 음악은 대중음악이 아니라 분명한 영적인 목적을 가지고 만들어진다.
③통합의 단계
구도의 단계에서는 비판과 의심과 무지와 호기심으로 인해 시행착오를 되풀이하지만 통합의 단계에서는 안정되고 내향적으로 된다. 그리고 여기서 <내면의 스승>을 만난다. 뉴에이지의 방법들을 수행하여 어느 정도의 수준에 이르게 되면 유체이탈이나 환상을 통해 영적인 존재를 만나게 되는데, <내면의 스승>이란 바로 <사탄>을 의미한다.
그리고 <새로운 분야에 대한 관심>의 현상이 나타난다. 이 관심은 범신론이나 일원론에 대한 관심과 확신을 갖게 하며, 그것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해줄만한 분야에 관심을 갖게 만든다. 철학, 양자물리학, 음악, 의미론, 대뇌연구, 심리학 등이 새로운 관심의 대상으로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학문을 통하여 이들은 공통적으로 영적인 분야에 빠지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신비주의이다. 이 통합의 단계에 있는 사람들은 신비주의에 큰 매력을 느낀다. 즉 사탄숭배에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사탄을 숭배하게 되는 이유는 원래 사탄은 사악한 신(神)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들은 기독교에서 선한 신인 사탄을 왜곡시켜놓았다고 믿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사탄과 기독교의 하나님을 동일시하며 섬긴다.
④공모(共謀)의 단계
이는 변혁의 단계이다. 여행의 입구, 구도, 통합의 단계를 거치면서 자신을 변혁시켰던 것들이 자신뿐만 아니라 사회와 지구전체를 변혁시킬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래서 변혁을 기다리고 있는 자신과 같은 사람들과 공모를 한다. 바실레아 슐링크 여사가 뉴에이지 운동을 다양성 안의 일치라고 표현했는데, 이 단계를 거친 사람들이 공통된 목표를 갖고 있다는 의미를 함축시킨 것이다.
특히 뉴에이지는 이런 공모를 음악을 통해서 실현시키는데, 이 음악요법의 목표는 변혁이다. 국내에서도 뉴에이지 음악을 이용한 명상음악이나 태교음악이 만들어져 보급되고 있다. 이재는 태아에게까지 이교적(異敎的)인 영성을 강요하고 세뇌시키는 것이다. 주로 문화적인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는 영적인 변혁의 공모에는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이교적 영성이 감추어져 있는 것이다.
3. 뉴에이지 영성운동의 방법들
동양종교, 영지주의, 심령과학, 무속신앙, 명상(초월명상), 투시, 점치는 것, 최면술, 점성술, 요가, 관상, 수상, UFO에 관한 것들, 마녀숭배, 윤회설, 범신론적 학문운동, 인간의 잠재력 계발운동, 초혼영매술, 텔레파시, 강신술 등이 뉴에이지 운동에서 이용하고 있는 방법들이다. 위에 열거한 것들은 대부분이 뉴에이지 운동가들이 만들어 낸 것은 아니지만, 이를 자신들의 목적에 이용하고 있다. 이러한 분야는 대부분 현대인들이 호기심을 가지고 있는 미지(未知)의 영역으로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특히 음악과 환생은 뉴에이지 운동의 대표적인 방법들이다.
①<뉴에이지 음악과 성령>
일반적으로 대중음악에서 뉴에이지 음악으로 알려진 음악장르를 말한다. 명상, 요가와 같은 동양종교의 자아각성, 잠재력 개발의 방법들에 빠져있던 초기 뉴에이지 음악가들이 음악을 하나의 도구로 사용하기 위해 만들어 낸 것들이다. 엘리트들이 듣는 수준 높은 음악, 조용히 음미하면서 육체적, 정신적인 건강을 위해 듣는 음악으로 알려진 음악을 말한다. 어떤 음악을 들었을 때 그 음악이 뉴에이지 음악인가 아닌가 구별하는 방법 중 하나는 음악의 특징이 무엇인지를 살피는 것이다.
신디사이저나 어쿠스틱 악기인 플룻을 이용하여 매우 신비한 분위기를 연출해 낸다. 불협화음들이 섞여 나는 소리는 그 음악 속에 무엇인가 들어있는 듯한 느낌을 가지게 만드는데 그러한 느낌들은 바로 인간의 내면세계 속에 신(God)의 본질이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그들은 <대자아(Higher Self)>가 있다고 말한다. <대자아(大自我>는 인간의 영혼인데 어떤 사람들은 또 성령, 신의 중심, 내면의 신, 신과의 대면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내면세계에 들어갔을 때 만날 수 있는 <대자아>를 기독교에서 말하는 성령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성령은 내면속에 존재하고 있는 신의 본질로서 내면에 들어갔을 때 만난다. 성령은 바로 삼위일체 하나님인데 바로 이것이 인간의 영혼이며 인간이 신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는 신의 본질이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자신이 신임을 명상할 때 자신은 그대로 신이 된다>고 하며, <개개인은 자기가 속한 교회의 권위와 상관없이 내면의 신과 관계를 맺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②<환 생(還生)>
뉴에이지의 영적 진화론에서 전생(前生) 혹은 환생(還生)사상은 떼어놓기 힘들 정도로 밀접한 관계에 있다. 이는 윤회(輪回)사상으로도 불리는데 불교와 힌두교는 물론 초기 유태교와 기독교에서도 윤회의 가르침이 있었고, 고대 이집트와 바벨론, 앗시리아, 그리스에서도 윤회사상이 발견된다. 물론 기독교에서는 수많은 논란 끝에 A.D.553년에 제2차 종교공의회에서 윤회의 이론을 이단으로 규정했다. 윤회사상에서는 죽음은 영혼의 세계에 이르는 하나의 통로에 불과하기 때문에 전혀 두려워 할 대상이 아니라고 한다. 윤회를 결정하는 힘은 업(業; Karma-각자의 영혼이 살아 있을 때 행한 행위)이라고 말한다. 최근엔 <전생퇴행요법>이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있다. 환생은 영적진화의 중요과정으로서 환생을 통해 이전보다 영적으로 나은 상태로 변화한다는 사상을 나타낸다. 그리고 환생은 인간이 신이 되기까지 반복된다고 주장한다.
4. 뉴에이지 사상이 기독교와 문제를 일으키는 이유
뉴에이지 사상을 비판하는 기독교 서적들의 어조는 상당히 과격하고 신랄하다. 대중문화 가운데 뉴에이지적 요소가 많음을 근거로 대중문화 자체를 뉴에이지 운동으로 여기기도 한다. 뉴에이지 측에서도 기독교는 타파해야 할 대상으로 여기고 있다. 뉴에이지의 핵심 사상들은 예외 없이 전부 기독교와 배치되는 것들이다. 범신론이나 다원주의는 오직 예수그리스를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교리와는 양립할 수 없는 것이다. 더구나 인간을 신과 동격으로 놓는 인본주의 사상은 절대신을 강조하는 기독교에 정면으로 반대하는 것이다.
영적진화론에 있어서도 기독교는 전생 등을 부정하고 있는 반면에 뉴에이지는 신이 되기 위한 과정으로서 환생을 인정하고 있다. 뉴에이지 사상은 기본적으로 기독교 사상과 세계관을 비판하면서 등장했다. 지금 인류가 당면한 위기의 근본적인 원인을 기독교의 세계관에서 찾는 뉴에이지 사상이 기독교를 반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기독교 또한 역사적으로 다른 사상과의 타협을 모색하지 않았다.
5. 그러면 기독교 영성은 어떻게 할 것인가?
성경적 의미에 따르면 진정한 <영성>이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이해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죄로부터의 변화 속에서 약속된 것이며, <성화>와 <거룩>이라는 고상한 목표를 성실한 자세로 추구할 때 놓여지는 것이다. 그것은 또한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가능한 것이요, 오직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과 <화목>을 회복함으로 이루어지는 약속이다. 따라서 진정한 영성은 창조자와 피조물된 인간 사이에 <믿음>과 <언약>이라는 관계성의 문제요, 하나님의 자녀로소 누려야 할 특권적 과제가 된다.
따라서 신자들의 <영성>에 대한 이해가 한국 사회 속에 깊숙이 뿌리박힌 비기독교적 요소로 인하여 그 순수함이 오염되지 않도록 하는 세심한 성경적 연구와 기독교적 학문, 그리고 영적 각성이 요구된다. 실제로 한국 기독교인들의 정신에 끼친 한국 문화의 특수한 모습이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할 때, 한국인들이 추구하는 <기독교 영성>에는 한국의 전통적 종교 내지 비기독교적 문화의 흐름이 알지 못하게 자리 잡고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 중에서도 무교적(巫敎的)인 샤머니즘의 요소를 마치 기독교적인 <영성>으로 오해하는 것은 없는지를 살펴야 한다. 물론 선교 초기에 잡다한 귀신의 존재를 인정하는 한국적 전통의 무교사상은 기독교의 신(神)개념을 비록 왜곡된 모습으로나마 받아들이는데 도움이 되었다고 주장하기는 하나, 그러한 이해는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로서 대변(代辯)되어야 할 신앙의 참된 관계를 오직 왜곡된 기복신앙을 부추기거나 축귀적(逐鬼的)인 요소로만 강조하는 비성경적 결과를 가져왔다.
뉴에이지와 타종교에서 말하는 <자기수양>의 방법이 기독교의 <자기부인>을 통한 신앙의 정진(精進)에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하는 견해가 있는 것은 사실이나, 그러한 것들은 단지 개인의 발전을 위한 수단으로서 강조되는 것이기에 <기독교 영성>과는 전혀 차원이 다른 것이다. 타종교의 방법들이 <기독교 영성>의 옷으로 갈아입고 무분별하게 사용되어져 인간적 외형의 길로만 치닫는다면 이는 성경적 영성공동체의 윤리성을 망각하고 흐리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적 영성과 그 훈련이 영적 자유인으로서의 해방을 위하면서도 동시에 이웃에게 선을 베풀면서,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한다는 가르침은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이러한 이해는 오늘날 영성의 이름 아래 자기 추구 내지 율법주의적 자기 수양으로서 인간 중심적 그리고 사탄적 영성으로 흐르는 <다른 영성>들을 경계하는 좋은 교훈이 될 것이다.

結 論
뉴에이지 운동은 우리에게는 아직 낯선 개념이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뉴에이지는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고, 제도 종교로서의 형태도 띠고 있지 않으며, 그 주체도 베일에 가려져 있다. 뉴에이저(New Ager)라고 불리는 이들도 자신이 뉴에이지 운동가인지 확신하고 있지 못한 경우가 많다. 뉴에이저들은 기독교의 예배와 같은 의식이나 모임도 가지지 않고 있다. 다만 1년에 한번 1월 11일 오전 11시와 오후 11시에 이집트의 피라미드에 모여 의식을 치르는 것이 드러날 뿐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뉴에이지 운동은 기독교적 세계관을 비판하면서 등장했으며, 그 실체가 분명하지 않은 만큼 그 해당 영역도 상당히 넓다는 점이다.
그런데 뉴에이지는 종교의 개인화를 상징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 각 가정마다 교회나 절 등에 가지 않고도 개인이 원하는 시각에 편리하게 종교의식을 치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한국에서도 대형교회를 비롯한 대부분의 교회에서는 예배시간을 정확히 1시간으로 정해놓고는 한 번에 드려도 될 예배를 1,2,3부로 나누어서 드리고 있다. 물론 이런 현상들은 교회의 융통성 있는 변화라고 긍정적으로 볼 수도 있지만, 사람들의 기호와 욕구에 교회가 순응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요즘 유행하는 사이버 예배도 마찬가지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즉 뉴에이지가 추구하는 종교의 개인화가 이제 기독교에도 파고 든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또한 낡은 사고의 틀을 타파하고 지금과는 다른 새로운 사고를 받아들이자는 <새 시대에 맞는 새로운 사고>라는 뉴에이지의 핵심주제는, 지금까지 기독교가 제시하고 있는 행동양식 및 사고방식이 현대인들에게는 커다란 짐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맥락에서 반기독교적인 사상(타종교에 대해서는 호의적이면서)이 점차 세력을 얻어가고 있다. 이런 현상들은 과학문명 속에서 영혼의 갈증에 허덕이는 현대인들의 심리를 정확하게 파악한 뉴에이지 운동을 가능케 하는 것이다. 눈에 확실하게 보이지는 않지만 사람들에게 주어진 태초(太初)의 영성을 이용하여 교묘하게 신자와 불신자를 가리지 않고 파고드는 뉴에이지적 영성들은 성경 그대로 <우는 사자>의 모습이다. 이런 점에서 오늘의 기독교 영성운동과 영성훈련을 통한 기독교 영성 사역자들의 책임은 막중한 것이다. 철저한 성령의 지도와 인도를 받으며 이 마지막 시대에 사탄의 마지막 공격을 무력화시키는 영적 투쟁에서 승리자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한다. - 이 상 -
<참고서적>
1. 뉴에이지와 청소년문화, 박영호, 기독교문서선교회, 1995
2. 뉴에지와 음악, 곽용화, 낮은울타리, 1997
3. 대중문화 더 이상 침묵할 수 없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 예영커뮤니케이션, 1998
4. 영성신학의 이해, 문석호, 신앙과 지성,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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