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3-06-29 20:57
목회자의 안식년 성경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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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웹섬김이
조회 : 10,044  
한마디로 하면 목회자의 안식년은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성경 어디에도 목사나 선교사를 위한 안식년 제도는 언급되어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것은 기득 제도권이 만들어 낸 전통 내지 관습일 뿐입니다. 성경의 원칙을 주장하는 많은 한국교회뿐만이 아니라 외국 교회의 거의 모든 목회자들이 이 목회자의 안식년에 대해서만큼은 관대한 이유는 그것이 성경적인 배경을 하고 있기 때문이기보다 자신들의 개인적 유익을 향유하기 위함이며 그 권리를 놓치고 싶지 않은 인간적 이기심의 발로일 뿐입니다. 물론 소위 안식년이라는 기간을 통해 개인적 또는 자신이 속한 교회 전체를 위한 심신 충전의 호기가 될 수는 있겠지만 그것은 인본주의에 입각한 결과론적 주장은 될 수 있을지언정 안식년 존재의 성경적 타당성을 요구할 수는 없습니다. 

안식년이란 

그렇다면 과연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안식년(Sabbatical year)은 무엇인지 보도록 하겠습니다. 

1. 먼저 성경은 '토지(Land)'와 관련하여 안식년을 말하고 있습니다. 

"제 칠년에는 땅으로 쉬어 안식하게 할지니 여호와께 대한 안식이라. 너는 그 밭에 파종하거나 포도원을 다스리지 말며(레 25:4)." 

"…during the seventh year the land shall have a sabbath rest, a sabbath to the LORD; you shall not sow your field nor prune your vineyard…(Lv. 25:4)." 

즉 토지(밭)를 6년 동안 사용(농사)한 후에는 그다음 해 1년 동안 그 땅을 놀리라(묵히다)는 얘기입니다. 이유인즉슨 땅도 쉬어야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모든 땅과 소산물의 주인이시며 원천 되시는 하나님을 위한 안식년이 되기 때문입니다. 

2. 또한 땅을 쉬게 하는 다른 이유는 가난한 자들과 들짐승들의 생존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너는 육년 동안은 너의 땅에 파종하여 그 소산을 거두고 제 칠년에는 갈지 말고 묵혀 두어서 네 백성의 가난한 자로 먹게 하라. 그 남은 것은 들짐승이 먹으리라. 너의 포도원과 감람원도 그리할지니라(출 23:10~11)." 

3. 그리고는 하나님께서는 1년 동안 땅을 놀리면 어떻게 먹고 살까 걱정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혹 너희 말이 우리가 만일 제 칠년에 심지도 못하고 그 산물을 거두지도 못하면 무엇을 먹으리요 하겠으나 내가 명하여 제 육년에 내 복을 너희에게 내려 그 소출이 삼년 쓰기에 족하게 할지라(레 25:20~21)." 

위와 같이 성경에서 말하는 안식년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토지와 관련하여 명령하신 하나의 법도였습니다. 이 안식년은 당시 제사를 담당하던 레위인들과도 아무 상관 없는 것이었습니다. 레위인들의 안식년에 대해 성경은 전혀 언급하고 있지 않습니다. 

안식년 사역의 성경적 근거에 대한 고찰 

그렇다면 소위 목회자와 선교사의 안식년을 주장하는 분들의 성경적 배경은 어떠한지 한번 보겠습니다. 그들은 안식년의 성경적 근거를 다음과 같이 제시합니다. 

하나님께서 인생을 위하여 안식할 것을 명하셨고 그날을 복되게 하셨으며(출 20:2, 레 23:32 등) 예수님께서도 사역자들의 쉼을 명하셨다(막 6:31). 그리고 사도바울과 바나바도 후원 파송 교회로 돌아와 안식년을 보냈다(행 14:27~28, 15:35~41). 

그럼 성경을 한번 살펴봅니다. 

"이르시되 너희는 따로 한적한 곳에 가서 잠깐 쉬어라 하시니 이는 오고 가는 사람이 많아 음식 먹을 겨를도 없음이라(막 6:31)." 

"거기서 배 타고 안디옥에 이르니 이곳은 두 사도의 이룬 그 일을 위하여 전에 하나님의 은혜에 부탁하던 곳이라. 이르러 교회를 모아 하나님이 함께 행하신 모든 일과 이방인들에게 믿음의 문을 여신 것을 고하고 제자들과 함께 오래 있으니라(행 14:27~28)." 

위의 성경 구절 어디에서도 안식년과 관련된 아이디어를 찾아낼 수 없습니다. 물론 일시적인 휴식은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사도바울이 선교 사역을 보고한 후 제자들과 함께 오래 머문 것을 안식 기간의 근거로 삼는다면 그것은 지나친 억측이라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도바울이 제자들과 함께 머물렀다는 사실을 두고 볼 때 복음 전파의 절대 명령을 받은 투철한 사명감을 갖고 있었던 그는 오히려 말씀을 가르치고 제자 양육의 혼신의 힘을 다했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지 오랜 기간 영육의 에너지 재충전을 위해 쉬었다고는 보이지 않습니다. 

또한 어떤 분들은 레위기 25장 4절을 인용하며 토지(땅)의 안식년을 확대 해석하여 목회자에게 적용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만일 토지에 대한 안식년을 목회자의 안식년의 성경적 근거로 삼는다면 우리는 대단히 심각한 결과에 직면하게 됩니다. 

그 이유는 첫째로 당시 토지의 안식년은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하나님과의 계약이며 법이며 명령이었습니다. 법과 명령으로서의 안식년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즉 목회자의 안식년을 굳이 토지에 빗대어 주장한다면 결과적으로 목회자의 안식년은 하나님의 명령이며 법이 되고 맙니다. 그러니까 목회자가 안식년을 지키지 않으면 죄가 된다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전 세계적으로 안식년을 갖지 못하고 있는 그것이 경제적인 이유든 개인의 신앙 양심이든 그 수많은 목회자와 선교사는 모두 죄를 범하고 있는 셈입니다. 단지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이 없이 목회자와 선교사에게 안식년을 제공하고 있는 대형 교회만이 범죄로부터의 안전지대에 놓여 있는 셈이 되고 맙니다. 

그리고 둘째는, 굳이 토지의 안식년을 확대 해석하여 인생에 적용해야 된다면 그것은 목회자뿐만 아니라 생업에 종사하는 모든 인간이 해당됩니다. 즉 목회가 하나의 직업이라면 모든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 역시 영육의 쉼과 재충전이 필요하다는 것은 일일이 물어보지 않아도 됩니다. 특히 정신적인 노동에 종사하는 분들의 안식에 대한 필요성은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 누구도 6년 일하고 1년을 쉬는 그런 사치스런 행운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물론 극소수 그런 특혜를 누리는 분들이 있음은 부인하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목회자가 안식년을 고집한다면 교회 안의 수많은 지체로서 기능을 다하고 있는 이름 없이 빛도 없이 봉사하며 수고하고 있는 목회자와 다름없는 하나님의 종들의 안식년은 왜 언급을 회피합니까? 저들은 교회 안에 역할만 다를 뿐 목회자와 다름없는 교회 지체이며 사역자들입니다. 오히려 저들은 교회 안의 과다한 봉사와 세상일도 함께 수행해야 하는 힘겨운 자들입니다. 대부분 목회자는 월요일에라도 쉴 수 있지만 저들은 월요일에도 일하러 세상에 나가야 합니다. 누가 과연 안식이 필요하겠습니까? 소위 성직이라는 허울 좋은 구실만으로 성경에도 근거 없는 목회자의 안식년을 자신들의 거룩한 권리인 양 주장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기득권 이기주의에서 비롯된 소위 성직자라고 스스로 치켜세우는 자들의 전통이며 관습이지 결코 하나님께서 요구하는 의무 사항이 아닙니다. 

저는 목회자의 개인적인 영육의 재충전과 개발의 필요성을 부인하는 것은 아닙니다. 지적 자원의 고갈을 호소하는 분들에게는 저도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일인 다역을 해야 하는 슈퍼맨으로서의 오늘날의 목회 시스템이 만들어 낸 결과입니다. 따라서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독선을 먼저 버리고 교회 지체들의 은사를 개발하여 목회의 여러 기능을 분배하고 함께 목회해 나가는 인식의 전환이 먼저 필요합니다. 또한 설교 중심의 예배를 지양하고 성경 말씀을 함께 배우며 나누는 초대교회의 예배 스타일을 추구하는 혁신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물론 교회별로 각기 사정에 맞게 목회자가 휴가를 갖는 것은 필요합니다. 휴식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러나 안식년이라는 만병통치약의 꿈에 젖어서 목회자가 이에 대한 권리를 주장한다든지 당연시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성경적이지도 또 심신의 피로와 영적 고갈을 해소할 수 있는 궁극적인 해결책도 될 수 없습니다. [출처] 이승훈 - 뉴스앤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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