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07-09 07:48
[3]시간 순서로 재구성한 예수님의 33년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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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웹섬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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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차 예루살렘 방문

> 주후 29년

종려주일

(마 21:1-11, 막 11:1-11, 눅 19:29-40, 요 12:12-19)

갈릴리와 데가볼리 지역에서 예루살렘에 들어오기 위해서는 요단강을 따라 남하하다가 여리고를 지나 벳바게와 베다니를 지나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보다 앞서 예루살렘을 향하시며 두 제자를 불러 벳바게에 가서 나귀새끼를 끌고 오라고 말씀하셨다. 나귀는 말과 비교하면 초라할 정도로 덩치가 작다. 더구나 나귀 새끼는 어린애 하나 태우기도 벅찰 정도다. 예수님께서 그런 나귀 새끼를 타셨으니 땅에 발이 닿을 듯 말 듯, 보는 사람마다 이해하기 어려운 광경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스가랴 9장 9절의 예언을 성취하시기 위해서 나귀새끼 위에 오르셨고, 나귀 새끼는 주저앉지 않고 자신의 등에 만왕의 왕을 태운 채 예루살렘으로 입성했다.

당시 예루살렘에는 유대인 약 270만 명이 모여 있었다. 이들은 예수님의 입성을 기뻐하면서 종려나무를 흔들면서 ‘호산나’라고 외쳤다. ‘호산나’는 ‘이제 구원하소서’라는 뜻 의 히브리어 ‘호쉬안나’(הוֹ ִשיָעה ָנא, 시 118:25)의 음역으로서, 예수님을 정치적인 메시아로 생각하고 로마의 압제 속에 신음하는 이스라엘을 구원해달라는 외침이었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과 생각을 아시는 예수님께서는 많은 군중의 환호성 속에서도 저들이 돌변하여 “십자가에 못박으라!” 외칠 것을 미리 보시면서 고독하게 입성하셨다. 

백성들의 환영을 받으며 입성하신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 성을 보시고 우셨다(눅 19:41-44). 여기 ‘우시며’는 헬라어 ‘클라이오’로, ‘격렬한 괴로움, 비통함, 대성통곡’을 의미한다. 즉, 사람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으며 들어오신 예수님께서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할 정도로 통곡하고 격렬하게 괴로워하신 것이다. 예수님께서 통곡하신 이유는 약 40년 뒤, 주후 70년 8월 10일에 로마의 디도 장군이 예루살렘을 공격하여 약 110만 명의 유대인들이 학살당할 것을 보셨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예루살렘의 멸망 당시, 흰 돌로 세워져 해가 높이 뜨면 황금색으로 빛을 반사해 ‘황금의 성’이라고 불리던 예루살렘의 별명 때문에 로마군 사이에 ‘예루살렘은 돌과 돌 사이에 황금을 넣고 지었다’는 소문이 퍼졌고, 로마군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않고’ 성벽과 성전을 파괴하였다.

예수님께서 체포되신 후 유대인들은 빌라도에게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으라며 ‘그 피를 우리와 우리의 자손에게 돌리라’고 소리쳤다(마 27:25). 그 소리친 대로 성취되어 예루살렘의 멸망 때 수많은 유대인들이 학살당했고 이후 세계 각지로 흩어져 오랜 기간 동안 천대받고 배척받게 된 것이다.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예수님께서는 제일 먼저 성전에 가셔서 성전을 둘러보셨고, 해가 저물자 베다니로 가셔서 유하셨다(막 11:11).

 

월요일: 권위의 날

(마 21:12-22, 막 11:29-19, 눅 19:45-48, 요한복음에는 월요일에 대한 기사가 없다)

고난주간 월요일은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시고 성전을 깨끗이 하심으로써 예수님의 권위를 나타내신 날이다.

종려주일 다음날인 월요일, 예수님께서는 다시 예루살렘에 들어오시며 성전으로 향하셨다. 베다니에서 나와 사랑하는 제자들과 예루살렘 성전으로 가시던 예수님께서는, ‘무화과의 집’이라는 지명의 ‘벳바게’를 지나실 때쯤 시장함을 느끼시고 잎이 무성한 무화과나무를 찾으셨으나 열매가 하나도 없음을 보시고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셨다. 팔레스타인 지방의 무화과나무는 3-4월경에 아직 먹을 수 없는 초록색 열매가 먼저 열리고, 뒤이어 잎이 나기 시작하여 6월경에 열매가 노랗게 익어 먹을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아직 무화과의 때는 아니었다 (막 11:13). 그러나 이 나무는 잎이 무성했지만 초록색 열매조차 보이지 않았다. 여기 처음 맺혀지는 초록색 열매는 먼저 언약 백성이 된 장자 이스라엘을 상징한다. 이스라엘은 무화과나무의 무성한 잎같이 권위적인 종교의식들은 가득했지만, 정작 신앙의 열매를 맺지 못함으로 예수님께 저주를 듣게 되었다.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것은, 깨닫지 못하고 열매 없는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책망, 그리고 믿지 못하는 제자들을 향한 믿음의 요구였다.

이후 예수님께서는 성전에 들어가셔서 성전을 깨끗이 하셨다. 이 성전 정화사건은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있었던 사건(요 2:13-22)에 이어 두 번째이다. 성전에는 ‘돈 바꾸는 자들’이 가득했는데 이는 당시 유대 사회에서는 ‘렙돈’, ‘드라크마’과 같은 헬라 돈과 ‘데나리온’ 같은 로마 돈을 사용했지만 절기마다 속전의 값으로 드리는 성전세 반 세겔(노동자 2일 품삯에 해당)을 내기 위해서는 유대 돈인 ‘세겔’로 환전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환전하면서 약 12.5%의 커미션을 떼었고, 제사장들은 상인들과 결탁하여 백성들이 가지고 온 제물을 트집잡아 돌려보내고 상인들이 폭리를 취하며 팔고 있는 제물을 사도록 유도했다. 그래서 당시 하나님의 기도하는 성전은 장사하는 곳, 강도의 굴혈이 되어 있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분노하여 성전의 매매하는 자들에게 강도라고 소리지르시고 내쫓으셨다. 유대 백성들에게 가장 대접받던 종교지도자들을 강도라고 부르며 쫓아내신 예수님의 폭탄선언은 삽시간에 예루살렘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화요일: 변론의 날

(마 21:23-26, 막 11:20-14:11, 눅 20:1-22:6, 요 12:20-50)

고난주간 화요일은 예수님의 생애에서 공개 전도 최후의 날로 하루 종일 종교지도자들과 변론하시며 시달림을 당하셨던 날이다.

화요일 아침, 베다니를 떠나 벳바게를 지나면서 예수님과 제자들은 저주받았던 무화과나무가 뿌리까지 말라 있는 것을 보았다(막 11:20-21, 마태는 이 사건을 즉시 일어난 것으로 강조하여 기록하고 있다 – 마 21:19-20). 뿌리까지 마른 것은 무화과나무의 생존권까지도 박탈당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말씀으로 권고 받을 때가 바로 열매를 맺어야 하는 때임을 가르쳐 주는 것이다.

당시 종교지도자들은 종려주일에 백성들이 예수님을 열광적으로 맞이한 일 때문에 시기와 질투가 극에 달해 있었다. 이들은 어떻게든 대중 앞에서 예수를 망신시키고자 갖은 변론과 질문을 준비하였다. 이들은 예수님의 권위에 대해서 질문하면서 자신들이 가진 종교지도자로서의 권위를 과시하고자 했지만 도리어 요한의 세례에 대한 역질문을 답하지 못하고 망신만 당했으며(마 21:23-27, 막 11:27-33, 눅 20:1-8), 예수님께서는 세 가지 비유(두 아들의 비유:마 21:28-32, 악한 농부의 비유: 막 12:1-12, 혼인잔치 비유:마 22:1-14, 눅 14:15-24)를 통하여 종교지도자들을 책망하셨다. 이들은 예수님의 비유가 자신들을 책망하신다는 것을 분명히 알았다. 그러나 이들은 회개하기는커녕 예수님을 잡고 백성들 앞에서 다시 자신들의 권위를 세우고자 했다(마 21:45-46).

예수님 당시 유대교는 외적인 율법 준수에 대해서만 토론하는 사변(思辨)의 종교로 빠져가고 있었다. 이를테면 ‘식사를 하기 전에 손을 씻고 정결해져야 한다면 손은 몇 분 동안 어떻게 씻어야 하는가?’와 같은 허례허식이 가득 차 있었다. 따라서 종교지도자들은 그중 난해한 사변들, 즉 납세의 대상에 대한 문제나 부활의문제, 계명 중 가장 큰 계명의 문제 등 어려운 질문을 통하여 예수님을 공격하려고 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들의 질문을 명쾌히 해결하시고, ‘그리스도가 다윗의 자손이라면,어찌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고 칭하셨는가?’(마 22:41-46, 막 12:35-37, 눅 20:39-44, 시 110:1)라는 질문을 통하여 그리스도가 신성과 인성을 동시에 가지신 분임을 선포하셨다. 이외에도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에 대한 일곱 가지 화를 말씀하시고(마 23:1-36, 막 12:38-40, 눅 20:45-47), 예루살렘의 멸망을 미리 보시며 탄식하셨다(마 23:37-39).

 

예수님께서 가르치시던 중, 한 과부가 연보궤(헌금통)에 두 렙돈, 즉 한 고드란트를 헌금하는 것을 보셨다. 렙돈은 1/128 데나리온으로(1데나리온은 하루 노동자 임금으로 약 10만 원의 가치), 두 렙돈이면 오늘날 약 1,500원 정도에 해당한다. 예수님께서는 그녀가 구차한 중에서도 자기 모든 소유를 드릴 만큼 아낌없이 헌금했음을 칭찬하셨다(막 12:43-44).

그 후 헬라인들이 빌립에게 찾아와 예수님을 만나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사도행전 17:21을 볼 때 이들은 ‘새 것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당시 대단한 이슈의 주인공이었던 예수님을 직접 만나고 싶어했던 것이다. 이 소식을 들은 예수님은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다’고 말씀하시며 십자가의 시간이 다가옴을 말씀하셨고(요 12:24-26), 예수님께서 고난의 십자가 길을 놓고 번민하며 기도하시자 하늘에서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 약속하는 음성이 들렸다(요 12:27-33). 웅성대는 군중들에게 예수님께서는 다시 한 번 이 땅에서의 ‘들림’과 그 들림으로 말미암은 ‘이끎’에 대해서 가르치셨고(요 12:32-33), 믿지 않는 군중들을 떠나가 숨으셨다(요 12:36, 37-50).

예수님께서는 성전에서 나오시는 길에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의 멸망과 종말에 대해서 가르치셨다 (마 24-25장, 막 13장, 눅 17, 21장). 예수님께서는 가까운 미래에 예루살렘 성전이 완전히 파괴될 것을 예언하시고(마 24:1-2) 종말의 징조와 종말을 깨어 예비하고 기도하며 준비할 것을 가르치셨다. 그리고 열 처녀의 비유(마 25:1-13)와 달란트에 대한 비유(마 25:14-30, 눅 19:11-27),양과 염소의 비유(마 25:31-46)를 통해 늘 깨어 종말을 준비하는 신앙의 중요성을 가르치셨다.

예수님께서 하루 종일 식사도 제대로 못하시고 변론과 가르침으로 분주히 다니시는 동안 악한 종교지도자들 역시 분주한 하루를 보냈다. 그들은 가야바의 집에 모여 예수를 죽일 방책을 연구하고 언제 죽일지 회의를 벌였다(마 26:1-5, 막 14:1-2, 눅 22:1-2). 회의 끝에 백성들의 반응이 두려우니 명절이 지나서 예수를 죽이자고 합의를 보았다.

 

예수님께서는 고난주간 동안 저녁마다 예루살렘에서 베다니로 돌아가 문둥이 시몬의 집에서 묵으셨다. 이날 마리아는 값비싼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나와 예수님의 머리에 부음으로 예수님의 장사를 준비했다(마 26:6-13, 막 14:3-9, 요 12:3-8). 이 향유는 300데나리온, 오늘날 수천만원에 해당하는 값비싼 것이었다. 그러나 제자들은 마리아의 행동이 예수님의 장사를 준비한 것인지를 깨닫지 못했고(마 26:12) 도리어 가룟 유다의 선동에 휘말려 마리아를 질책했다(요 12:4-5).그러나 가룟 유다의 질책은 선한 사업을 위해서가 아니라 마리아의 헌금을 몰래 빼돌려 도둑질할 생각 때문이었다(요 12:6).이 마음을 꿰뚫어보신 예수님은 공개적으로 가룟 유다를 도적으로 지적하셨고 예수님의 장례를 예비한 마리아를 기념하라며 칭찬하셨다(마 26:10-13, 막 14:6-9).

 

수요일: 침묵의 날, 기도의 날

(마 26:1-5, 막 14:1-2, 눅 22:1-6)

4복음서에서는 예수님께서 수요일에 행하신 일에 대한 기록을 찾을 수 없다. 그래서 신학자들은 이 날 예수님께서 화요일에 행하신 일이 많아 베다니의 집에서 편안히 쉬셨다고 설명하면서 ‘은퇴의 날’이라고 표현한다. 그러나 인류의 죄를 걸머지고 십자가에 달리시는 일이 1분 1초가 가까워지고 있음을 아시는 예수님께서 편안히 쉬실 리가 없다. 이날예수님께서는 내적으로 깊이 침묵하시며 공생애 3년 동안의 모든 행적을 마음 속에 기도하심으로 정리하셨다. 그리고 나사로까지 죽이려는 종교지도자들을 생각하시고 나사로에게 피할 것을 통지하셨다(요 12:9-11).

시몬의 집에서 망신을 당한 가룟 유다는 한밤 중에 빠져나갔다. 그리고 예수님이 베다니에서 기도하시는 동안 대제사장들을 찾아가서 예수님을 팔겠노라 약속하고 은 30냥을 받았다(마 26:14-16, 막 14:10-11). 본래 종교지도자들은 명절이 끝나고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지만 가룟 유다의 배신 덕분에 명절 전에 예수님을 죽이는 것으로 계획을 수정했다.

가룟 유다의 ‘가룟’은 ‘열성적인 유대주의자’, 혹은 ‘그리옷 출신의 남자’라는 뜻으로 추측된다. 만약 가룟 유다가 그리옷 출신이라면 12제자 가운데 가룟 유다만이 잘 사는 남쪽 유다 지역 출신이고 나머지는 천한 북쪽 갈릴리 출신이라는 의미이다. 그는 지역적인 역차별을 느꼈을 수도 있으며 평소 유다 지역의 사람들이 갈릴리 지역의 사람들을 은근히 무시하는 경향을 가졌을지도 모른다. 그런 가운데 가룟 유다는 회계라는 중책을 맡으면서 야망도 가지고 제자들을 선동하는 역할을 해왔다. 처음에는 귀히 쓰였지만 결국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는 데 악인으로 쓰여지게 되었다(잠 16:3).

 

목요일: 고민의 날, 비애의 날

(마 26:17-35, 막 14:12-31, 눅 22:7-38, 요 13:1-17:26)

목요일은 인류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고민하신 날이다. 이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최후의 만찬을 마치신 후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이 피가 될 정도로 기도하시며 십자가를 예비하셨다.

이날 저녁을 가리켜 성경은 ‘무교절의 첫날, 양 잡는 날’이라고 표현하고 있다(마 26:17, 막 14:12, 눅 22:7). 본래 무교절은 유월절 다음날부터 칠일을 지키게 되는데 ‘무교절의 첫날’은 유월절을 포함하여 무교절 전(全) 기간의 첫날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그런데 주후 29년의 ‘무교절의 첫날, 양 잡는 날’은 하루 앞당겨져야 했다. 주후 29년의 안식일은 ‘큰 날’이이기 때문이다(요 19:31). 여기 ‘큰 날’(μεγάληἡἡμέρα ἐκείνουτοῦ σαββάτο)은 안식일 이면서 유월절이 겹치는 날으로, ‘큰 날’에는 유월절을 하루 앞당겨서 전 날 지키고 다음 날을 안식일로 지켰다. 즉 본래 유월절인 1월 14일은 토요일로 ‘큰 날인 안식일’로 지키고, 유월절을 하루 앞당겨 13일

금요일에 지킨 것이다. 따라서 12일 목요일은 유월절을 예비하기 위해 집에 누룩을 제거하고 유월절 만찬으로 무교병과 어린 양을 준비하는 날이었다. 예수님께서는 이날 제자들과 유월절 식사 하시기를 간절히 바라셨다(눅 22:14-15). 그러나 마태복음 26:26, 누가복음 22:19를 볼 때 제자들은 무교 병(헬라어:ἄζυμος아쥐모스)을 전혀 준비하지 않 았고 예수님께서는 유월절 식사 대신 유교병(헬라어:ἄρτος아르토스)을 드셔야 했다.

예수님께서는 유월절 식사 중에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다(요 13:1-11). 그리고 제자들에게 다시 한 번 십자가의 수난이 있을 것을 가르치시면서, 서로 섬길 것을 종용하셨다(요 13:12-20). 이 말씀을 마치신 예수님은 심령에 민망하여 “너희 중에 하나가 나를 판다” 말씀하시며 “떡 한 조각을 찍어서 주는 자가 바로 그 자”라고 하셨다(요 13:21).이것은 가룟 유다에게 마지막 회개의 기회를 주신 것이다. 다른 제자들은 무지하여 예수님께서 가룟 유다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인지 깨닫지 못했지만 누구보다 가룟 유다 자신만큼은 그 떡이 어떤 의미인지 잘 알고 있었다. 만약 이때라도 가룟 유다가 그 떡을 받지 않고 눈물로 회개했다면 그는 예수님을 파는 자리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때 곧 사단이 가룟 유다 속에 들어갔고(요 13:27), 유다는 그 떡을 받고 예수님을 팔기 위해 나가고 말았다. 이후 예수님께서는 나머지 제자들에게 떡을 떼어 축사하시고 나누어지고 잔을 사례하고 주시면서 최후의 성만찬을 행하셨다(마 26:26-30, 막 14:22-26, 눅 22:14-23, 요 13:21-30).

성만찬이 끝난 후,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최후의 고별설교를 하셨다. 이 설교는 요한복음 13:31-16:33에 걸쳐 길게 기록되어 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서로 사랑할 것을 새 계명으로 주셨으며 예수님께서 아버지께로 가셨을 때 ‘다른 보혜사’를 주셔서 영원토록 제자들과 함께 있게 하시고 전에 가르쳤던 모든 일을 기억하여 생각나게 하실 것을 약속하셨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 유일하게 가룟 유다만이 예수를 팔러 떠나 이 마지막 설교의 자리에서 빠져있었다.

식사와 고별설교를 마치신 예수님께서는 찬미하며 감람산으로 기도하기 위해 나아가셨다. 예수님께서는 감람산으로 가시던 중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할 것을 예고하셨다(마 26:31-35, 막 14:27-31, 눅 22-31-34). 특별히 누가복음 22:31-32을 볼 때, 사단이 밀 까부르듯 하려고 제자들을 청구하였으나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위하여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셨다.예수님의 체포와 십자가 앞에서 다 도망갔던 제자들이 다시 회개하고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주님의 중보기도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예수님께서는 약 오후 11시 정도에 겟세마네 동산에 도착하셨다. 감람산 중턱에 있는 겟세마네 동산은 예수님께서 평소에 습관을 좇아 기도하시던 곳이었다. 예수님께서는 여덟 제자에게는 산 아래에 앉아 있으라고 말씀하시고 베드로,야고보,요한 세 제자만 데리고 동산으로 올라가셨다. 동산에 이르신 후 세 제자들에게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깨어 있으라”고 말씀하시고는 돌 던질 만큼의 거리에서 기도하기 시작하셨다. ‘겟세마네’는 ‘기름 짜는 틀’(‘기름을 짜 는 기계’라는 뜻의 아람어 ‘가트셰마네’(ַגת ְשָמֵני)에 서 유래)이라는 뜻이다. 이 지명의 의미처럼 예수님께서는 육체와 마음, 몸과 영혼까지 참기름 짜듯이 인류의 죄를 위해서 쥐어짜내며 ‘하나님께 바싹 붙어 앞으로 조금 더 나아가는 기도’(막 14:32-44, 눅 22:44)를 드리셨다. 누가복음 22:44에서는 예수님의 기도를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셨다고 4중으로 강조하면서, 그 결과 예수님의 땀이 핏방울같이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다. 마태복음 26:39을 볼 때, 예수님께서는 얼굴을 땅에 비벼가면서 이마 가죽이 다 벗겨져 피가 날 정도로 간절히 기도하셨다. 그런 눈물 어린 기도 속에서, 주님과 함께 기도의 방벽을 세워야 할 세 제자는 잠들어 있었다.

결국 예수님께서는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세번째 동일한 말씀으로 기도하신 후 자정쯤 기도를 마치셨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오셔서 “이제는 자고 쉬라 보라 때가 가까웠느니 인자가 죄인의 팔에 팔리우느니라. 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고 말씀하시고 사람들에게 붙잡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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