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07-09 07:30
[2]세대주의 신학 핵심 이슈들과 휴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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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웹섬김이
조회 : 2,552  

살전 4:16-18은 근거로 한 세대주의의 휴거론은 다음과 같다.

(1) 주께서 하늘로부터 천사장과 성도들의 환희와 승리의 소리와 함께 내려오신다.

(2) 주안에서 잠자는 성도들의 부활이 있을 것이다.

(3) 살아있는 성도들의 몸은 변화를 입을 것이다. 

(4) 공중에 들어 올리어져 영광스러운 만남이 있을 것이다. 

(5) 어린양의 혼인잔치가 7년 동안 있을 것이다. 성도들은 그의 신부가 되며 그것은 교회의 완성과 함께 이루어지며 교회의 가장 위대한 날이 될 것이다. 

  

다른 한편 땅에서는 7년 동안 대환난이 일어나고 유대인들은 처음에는 적그리스도를 섬기지만 곧 자기 잘못을 깨닫고 그리스도를 영접한다. 이것이 그들에게 대환난이 되며 7년이 지나 그리스도와 그의 성도들이 공중에서 재림하여 적그리스도와 그의 추종자들을 진멸시키실 것이다. 이것이 성도와 함께 오심이며 천년왕국의 시작이 된다. 

  

그러나 휴거란 말은 성경에 나오지 않는다. 세대주의자들이 휴거의 근거로 내세우는 구절 마25:1-12, 14:1-3, 살전4:16-18등은 재림 때를 말하는 것이지, 휴거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휴거론은 성경의 지원을 받지 못하며 단지 세대주의의 교회론에서 나온 이론일 뿐이다. 다비에 의하면 교회는 지상의 기관이 아니라, 하늘의 존재이다. 왜냐하면 그 존재가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이다. 교회는 성질상 천국의 것이기 때문에 지상의 환란으로부터 휴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는 두 번이나 환난을 당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이미 십자가에 못 박히셔서 고난을 당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휴거론은 다비의 잘못된 교회관에서 나온 잘못된 성경해석이라 보아야 할 것이다.

특히 세대주의자들은 환난 전 휴거를 강조한다(3:10). 그러나 역사적 전천년설과 무천년설은 한결같이 성도들이 지상에서 환난을 겪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스도께서 친히 환난을 당하셨으며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명하셨기 때문이다(16:24, 14:22, 7:14). 대환난이 시작되기 전에 휴거로 인하여 교회가 세상 밖으로 들림을 받을 것이라는 주장은 하나의 픽션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역사적으로 교회는 모든 환란을 겪어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휴거(rapture)와 영광스러운 나타나심(glorious appearing)은 분리된 사건이 아니다. 신약성경은 단회적 재림론을 가르치고 있지, 2단계 재림론을 가르치고 있지 않다.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련된 신약성경 상의 세 용어는 Parousia(coming), apocalypsis(revelation), epipahneia(appearing)이다. 살전 3:13; 4:15-17; 살후 2:8;  24:27의 본문에서 그 용례를 분석하여 보면, 그리스도의 파루시아는 교회의 휴거와 죽은 의인의 부활뿐만 아니라, 적그리스도, 불법한 자의 파멸이 수반되고 있다. 살후 2:8 예수께서 강림(parousia)하여 나타나심(epiphaneia)으로 불법한 자를 폐하신다 하여 파루시아와 에피파네이아를 동의어로 한 사건 즉 영광스러운 그리스도의 재림을 지목하여 사용하고 있다( 2:13의 에피파네이아와 마 24:27의 파루시아의 극적 사건을 참조). 

  

불가시적 비밀 휴거 개념은 데살로니가전서 4:15-17의 주의 호령, 천사장의 나팔 소리와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의 부활 사건들과 정면 배치된다. 또한 고린도전서 15:51-55에 나오는 사건들과도 맞지 않는다.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apocalypsis)은 교회의 복된 소망이다(고전 1:7 참조). 

  

휴거론은 앞에서 지적한 세대주의 신학의 핵심 이슈들과 연관 되어 있다. 그러나 여기서는 휴거설의 두 가지 이론적 근거를 제시, 분석키로 한다. 

  

(1) 다니엘 9:24-27에 나오는 마지막 칠십 번째 한 주일이 현재까지 미성취되어 앞으로 성취되어야 할 예언적 기간으로 본다. 


이 입장에서는 69번째 주일에 연이어 오는 기간이 아닌 분리되어 종말 때로 옮겨진다는 것이다. 이는 주석적으로 명확한 근거를 갖지 못한 가설에 불과하다. 하나님의 경륜에는 부활절 일요일에 시작된 교회기간이 괄호 안에 들어가는 갶(gap) 기간이 되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서 단 9:26에 나오는 기름 부음을 받은 자 (메시아) 곧 왕(nagid)”은 이어지는 26절에서도 기름 부음을 받은 자 (메시아)” 한 왕(nagid)”으로 나오고 있다. 이 평행적으로 나오는 한 왕(nagid)의 백성이란 메시아(예수 그리스도) 백성이지 적그리스도일 수가 없다. 26절의 을 이른바 적그리스도의 표상이라고 하는 티투스(Titus)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주장하여 메시아가 아니라면, 27절에 나오는 많은 사람들에게 순복하여 언약을 강화하겠다는(굳게 맺고) 기사와 부조화를 일으킨다. 이 언약은 기존언약을 강화시키는 것으로 재 확인하는 것이다. 도성과 성소를 파괴하는 것은 왕이 아니다. 유대 백성들이 먼저 로마에 반역하여 로마군의 진입을 일으켰고, 다음으로 성전이 하나님이 보호하시는 안전한 곳이 될 것이라고 여겨 유대 백성들이 거기로 몰려갔으며 거기에 유대 항전 군이 군진을 펼쳐 먼저 성전 유린을 자행하였으며, 그 결과 로마군의 공격과 성전 파멸케 하는 빌미를 제공한 것이다

27절의 그가 26절에 나오는 메시아를 가리킨 것이다. 요컨대, 칠십 번째 주일(7)의 전반부는 구주의 봉사와 직결되어 있는 것이다.  3년 반 기간 동안 예수께서는 여러 가르침을 통하여 언약을 강화 내지 확인하는 일이 담겨 있다. 예수께서는 옛 언약에 속하는 십계명 중 몇 계명을 산상보훈 등에서 굳게 하고 그 의미를 심화시키셨다.  7년 기간 중간에 인류 구원을 위하여 친히 자신을 유월절 양 제물로 바치시므로 더 이상 제물을 드릴 필요가 없는 구속사의 큰 획을 그으신 것이다. 즉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통하여 영원한 언약이 확인 및 비준된 것이다. 세대주의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끊어지심은 69번째 주일이 끝난 수일 후 일어남으로(Pentecost, Things to Come, 247, 248) 70 주일 예언기간 해석에서 크게 부각될 수 없어 십자가의 의미가 희석되는 결과를 야기시킨다. 

  

(2) 교회는 대 환난을 통과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교회는 환난 전에 휴거 되고 7년 환난기간이 이어질 것이다. 그 목적은 많은 유대인들의 회심을 불러오기 위함에 있다. 이 때 유대인들은 이스라엘과 맺으신 언약들의 성취를 체험하게 될 것이다. 

이스라엘민족 만이 환난을 통하여 준비되어야 하고 교회는 환난 없이 휴거된다는 가르침은 성도들이 세상에서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는다는 성경의 가르침을 무시하고 있다( 24:15-31; 살전 1:9-10; 3:3; 5:4-9; 요일 2:18; 4:3;  16:18;  7:14-17 ). 예컨대 요한계시록 7:14-17의 대 환난이 오로지 유대인만 그 대상이라면 각 나라와 족속과 방언에서 나온 무리들인 점( 7:9)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위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제자들도 환난과 핍박을 받았으며 순교와 무서운 핍박 때에도 영적으로 해 받는 일로부터 지켜주실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제자들도 환란 전에 그리스도께서 오신다는 것은 단지 소망일 뿐 전혀 근거가 없다고 보았다. 큰 환난 후 재림과 의인의 승천이 있다는 점에서 환난 후 휴거론이 오히려 더 성서적이다. 예수께서는 교회가 환난을 피한다는 논리보다 환난 중에 보호받을 수 있는 자세를 항상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는 점을 가르치셨다( 17:11, 15:  3:10). 

  

적그리스도의 심판, 죽은 자의 부활, 성도의 휴거는 환란의 종국에 예수께서 강림하실 때 동시에 일어나는 사건들이다. 이스라엘민족 만이 환난을 통하여 준비되어야 하고 교회는 환난 없이 휴거된다는 가르침은 성도들이 세상에서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는다는 성경의 가르침을 무시하고 있다( 24:15-31; 살전 1:9-10; 3:3; 5:4-9; 요일 2:18; 4:3;  16:18;  7:14-17 ). 예컨대, 요한계시록 7:14-17의 대 환난이 오로지 유대인만 그 대상이라면 각 나라와 족속과 방언에서 나온 무리들인 점( 7:9)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제자들도 환난과 핍박을 받았으며 순교와 무서운 핍박 때에도 영적으로 해 받는 일로부터 지켜주실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환란 전에 그리스도께서 오신다는 것은 단지 소망일 뿐 전혀 근거가 없다. 큰 환난 후 재림과 의인의 승천이 있다는 점에서 차라리 환난 후 휴거론이 오히려 더 성서적이다. 예수께서는 교회가 환난을 피한다는 논리보다 환난 중에 보호받을 수 있는 자세를 항상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는 점을 가르치셨다( 17:11, 15:  3:10). 야곱의 환난의 때이지만 이에서 구원함을 받는다( 30:7)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의 경험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이러한 성경 본문들이 나타내 보이고 있는 공통적인 점은 하나님께서 환난과 시련에 처한 자기백성을 보호하신다는 것이다. 마태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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