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07-09 07:20
[2]칼빈주의와 아르미니안주의의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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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웹섬김이
조회 : 2,291  

 

이처럼 TULIP은 하나님 의지의 완전하심과 인간 의지의 자유로움 사이에 아무런 상충 모순이 생기지 않음을 전제로 하기에 성경말씀 그대로 진리가 됩니다. 반면에 항론은 이 진리를 전제 하지 않고 있습니다. 인간이 자유의지로 믿기로 결단해야 성령이 구원을 협력해준다고 합니다. 이는 하나님이 인간의 자유의지를 무시하고 부인한 것은 아닐지라도 하나님의 권능이 광대하고 완벽함에도 구원에서 아무 역할을 하지 못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얼마든지 인간의지와 별개로 당신의 권능을 행사할 수 있고 또 그러기에 미리부터 택한 자를 구원으로도 인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그분의 권능은 시간을 창조하시고 시간과 무관하게 시간 밖에서 모든 시간을 통제하는 데서 나옵니다. 영원토록 현재이신 하나님에겐 엄격히 말해서 예정이란 말 자체가 해당사항이 되지 않습니다. 그분의 뜻은 인간관점의 과거 현재 미래를 다 포괄하여 현재형으로 실현될 뿐입니다. 인간 생각으로는 태어나기 전부터 예정되었으니 불합리하게 여겨지지만 그분에겐 전혀 그렇지 않다는 뜻입니다.

 

마지막으로 예정론에서 절대 간과해선 안 될 사항은 하나님은 심판할 자를 미리 택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모든 인간이 한 명의 예외 없이 전적으로 타락하여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었기에 구원 할 자만 그것도 심한 고난과 핍박이 기다리는 당신의 일을 맡기려고 택한 것입니다.

 

 

서로 전제가 다르다.

 

다시 강조하지만 칼빈주의자나 아르미니안주의자 양쪽 다 자기들 의견만이 옳고 상대를 이단시 하는 태도는 지양해야 합니다.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벧전3:15) 이런 차원에선 종교개혁자들의 지지를 받은 데다 TULIP 외에는 구원이 없다고 엄격하게 강조해온 칼빈주의자들이 더욱 겸손해져야 하고 더 합리적으로 변증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간혹 칼빈주의자 중에 다섯 교리 중에 둘 혹은 셋만 믿는다고 말하는 자가 있는데 이는 잘못입니다. 다섯 교리는 사실상 상호 연결되어서 하나씩 떨어질 수 없는 단 하나의 교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가 부인되면 사실상 다른 것들도 다 부인됩니다. 인간의 전적부패가 시발점이 되어서 나머지 네 교리도 성립되는 것입니다. 전적부패가 아니면 나머지 넷도 성립되지 않습니다.

 

TULIP은 인간의 전적타락이, 항론은 인간의 부분타락이 그 주장의 출발점입니다. 전제가 다르면 그 다음의 논리 전개도 당연히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박사 논문처럼 모든 논의는 반드시 그 논리의 시발점과 지향하는 목표점 둘로 이뤄지는 범주를 정하고 논의에 사용되어질 용어들의 의미까지 통일 시킨 후에 진행되어야 합니다.

 

각기 인간의 전적타락과 부분타락에 근거하므로 TULIP과 항론은 다른 선로 위에서 평행하여 달리기에 한 번도 만날 수 없는 두 기차인 셈입니다. 논의가 지향하는 목표는 구원으로 같을지 몰라도 서로 다른 트랙 위에 있기에 저 기차는 틀렸고 우리 기차가 옳다고 서로 핏대를 세우는 것은 시간과 노력의 낭비일 뿐입니다. 그렇다고 둘 다 옳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럼 한 분 하나님이 가뜩이나 어리석은 인간들 앞에 서로 다른 두 가지 구원의 길을 성경에 함께 계시해 놓은 셈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양 진영 다 성경의 한두 구절만 택하여 서로 말꼬리 잡는 신학과 교리 싸움은 계속할 필요가 없습니다. 신자들도 그런 신학적 논의에 빠지면 빠질수록 방향을 잃고 혼란스럽기만 합니다. 이 두 전제 중에 과연 성경이 말하는 바가 무엇인지 자신의 구원경험에 비추어서 스스로 잘 판단해보아야 합니다.

 

그 판단 기준은 다시 강조하지만 성령의 간섭이 인간의 믿고자 하는 결심보다 먼저인가 뒤인가 하나면 충분합니다. 자연인이 과연 성령의 선도적 주도적 간섭 없이도 예수님과 그 십자가 대속구원의 진리와 은혜가 스스로 믿어지고 그와 동시에 자신의 옛 자아가 주님의 십자가 죽음과 연합하여서 죽고 주님의 부활과 연합하여 새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는지 여부를 잘 판단해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예정론 논의에서 가장 중요한 사실은 TULIP과 항론을 구체적으로 몰라도 구원받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을 외면 거부 대적했던 것이야말로 영적인 죽음이었음을 철저히 인식하고 그로 인해 파생하는 모든 죄들도 스스로는 도무지 씻을 수 없기에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를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주님만 따라 살기로 결단 실천하면 됩니다.

 

자신을 주관하는 진짜 주인이 돈에서 예수님으로 완전히 바뀌고 그에 따른 모든 가치관이 전도되어서 이전과 전혀 다른 방식과 목표로 살아가는 것이 구원입니다. 물론 우리의 본성 자체가 완전히 거룩하게 된 것이 아니기에 수시로 쓰러지고 죄를 지을 수는 있으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그 신분과 특권은 결코 빼앗기지 않습니다. 심지어 알고도 죄를 범할 수 있지만 내주하신 성령님이 그대로 버려두지 않으시고 진정으로 회개하도록 인도해주시기에 구원의 취소는 없는 것입니다.

 

 

반면에 항론은 단순히 쓰러진 것이 아니라 그로 인해 구원이 취소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박진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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