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07-09 07:12
성경 속 의(衣)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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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웹섬김이
조회 : 6,369  

성경 속 의(衣) 문화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필수적인 세 가지 요소가 ‘의(衣), 식(食), 주(住)’이다. 의식주는  지리와 기후, 민족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보이며, 문화를 이해하기 위한 기초 자료이다. 21세기 대한민국에 살아가는 우리의 의식주는 성경 속 이스라엘 백성들의 의식주와 큰 차이가 있다. 때문에 성경이 기록된 시대의 상황을 올바로 알려면 시대와 공간의 다리를 건너 당시의 의식주를 바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성경에 등장하는 의류는 고온건조하며 우기와 건기로 나뉘는 이스라엘의 기후에 적합한 옷들이다. 사계절의 변화가 뚜렷한 온대 기후의 대한민국에 살아가는 우리들이 성경의 뜻을 더 분명히 알기 위해서는 고대 근동의 의복 문화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성경에 나오는 5가지 옷

속옷(케토네트) 

성경의 ‘속옷’은 우리가 떠올리는 팬티 같은 속옷이 아니라 ‘기본 옷’의 개념이다. 두 개의 세마포 천을 얼굴과 양팔이 들어갈 구멍만 남기고 꿰맨 단순한 형태의 옷으로, 일상 생활 시 편하게 입거나 일할 때 입는 짧은 소매의 옷이었다. 우리가 생각하는 속옷(팬티)은 히브리어로는 ‘하고르’에 가까운데, ‘치마’라는 의미로 허리 주변만을 간신히 가리는 옷이다(창 3:7).

일반적인 속옷은 일하기 좋게 소매가 짧지만, 장자나 왕족은 손바닥까지 덮을 정도로 팔이 긴 속옷인 ‘케토네트 파심’을 입었다. ‘파심’은 손바닥과 발바닥을 가리키는 단어이다. 어린 요셉이 입었던 옷이 바로 ‘케토네트 파심’이다(창 37:3, 23, 32, 참고-삼하 13:18-19). 개역 성경은 당시 우리나라 문화를 고려하여 집안의 귀한 아들에게 입히는 색동저고리를 생각하여 ‘채색옷’이라고 번역하였지만, 사실 요셉의 ‘케토네트 파심’은 색상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보통 속옷과 달리 소매가 길었기에 일하기 적합한 옷이 아니었으며, 아마도 장식을 더하여 노동자와 구분하였을 것이다.

또 하나의 특별한 속옷은 ‘호지 않고 통으로 짠 속옷’이다. 이 옷은 십자가에 달리실 때 예수님께서 입으셨던 옷이다. 일반적인 속옷은 씨줄(수직의 실)과 날줄(수평의 실)을 엮어 짠 두 장의 천을 꿰매서 만들었지만, ‘호지 않고 통으로 짠 속옷’은 오직 날줄만을 가지고 한 개의 옷감으로 옷을 만들었다. 따라서 일반적인 옷은 찢을 수 있지만 호지 않고 통으로 짠 속옷은 찢으면 올이 풀려 천으로도 사용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로마 군병들은 예수님의 겉옷은 찢어서 나눠 가졌지만, 속옷은 찢지 않고 제비를 뽑아 통째로 가졌다(요 19:23-24, 시 22:18).

 

겉옷(심라)

겉옷은 양털에서 짠 실로 만들어 통으로 짠 네모난 천으로 만든 외투이다. 겉옷은 단순한 옷이 아닌 신분과 명예를 나타내는 신분증과 같은 의미이다(삼상 28:14, 왕하 2:9-14, 딤후 4:13). 겉옷이 특별한 의미를 갖는 가장 큰 이유는 술(tassel)을 달기 때문이다. ‘술’은 옷 귀 네 군데에 술을 만들고 청색 끈을 더하여 매듭을 짓고, 그것을 보면서 하나님의 계명을 기억하고 준행하게 하는 것이다(민 15:38-40, 참고-구속사 시리즈 제7권, 440-444.). 히브리인들은 술을 만들 때 여덟 가닥의 실을 다섯 번 매듭 지어 율법을 형상화시켰다. 이 술은 신분증으로도 사용되었는데, 사료에 따르면 당시 고리로 돈을 빌릴 때 술의 매듭 모양을 진흙 토판에 찍어서 자신을 증명했다고 한다. 

‘술’은 히브리어 ‘치치트’(צִיצִית)로, 히브리어 문자가 가지는 고유한 숫자값으로 풀이하면 ‘600’에 해당한다. 여기에 여덟 가닥의 실을 다섯 번 매듭지어 600+8+5 = 613이라는 숫자를 통해 율법의 613가지 조항을 표현하였다.

겉옷 술을 만지는 것은 그 사람을 만진 것과 동일한 것으로 취급되었다. 혈루병 걸린 여인이 붙잡았던 예수님의 옷자락 역시 술을 가리키며(마 9:20-21, 참고-막 6:56). 다윗이 사울을 죽이지 않고 옷자락만 잘랐다는 표현도 술을 자른 것이다(삼상 24:4-5, 11). 다윗은 사울의 겉옷에서 술만 벰으로써 사울을 죽이지 않고 그 상징만 베었음을 나타냈지만, 그 술은 사울을 상징했기에 마음 아파했다. 사울 역시 술을 베는 행위의 의미를 잘 알았기에 ‘나는 네가 반드시 왕이 될 것을 안다’라고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삼상 24:20-21). 요나단이 다윗에게 자기 겉옷을 준 것 역시 다윗이 왕이 될 것임을 인정하는 우정의 표시였다(삼상 18:3-4). 겉옷을 찢는 것은 가장 강력한 조문과 슬픔의 표시였다(삼하 1:11-12, 3:31, 욥 1:20-21, 렘 41:5). 

겉옷은 실생활에도 필수적인 옷이었다. 겉옷은 이불로도 사용되었다. 겉옷이 없으면 추운 광야의 밤을 견딜 수가 없기에 율법은 겉옷을 저당 잡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다(출 22:26-27, 신 24:12-13). 아모스 선지자 시대의 타락상은 ‘전당 잡은 옷 위에 누우며’라고 표현되고 있다(암 2:8). 저당잡을 수 없는 옷을 덮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깔고 앉기 위해 빼앗는 악한 모습을 묘사한 것이다. 십자가를 앞두시고 예수님께서는 “겉옷을 팔고 검을 사라”라고 말씀하셨는데(눅 22:36), 이는 생존에 필수적인 겉옷을 팔아서라도 말씀의 검을 갖춰야 하는 임박한 환난 때에 대한 표현이다(참고-히 4:12, 마 24:18). 

허리띠

속옷과 겉옷은 모두 펑퍼짐한 형태로, 허리를 동이지 않고서는 옷이 펄럭거려 일을 할 수 없다. 이런 점에서 허리띠는 옷 입기의 끝이요, 일하러 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유월절 식사는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어야 한다(출 12:11). 실내에서는 편안하게 허리띠를 풀지만, 밖에 나가기 전에는 반드시 띠를 띠어야 한다. 이는 출애굽 직전의 급박한 모습을 반영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명자에게 ‘허리를 동이라’(렘 1:17), ‘띠를 띠우다’
(사 22:21)와 같은 표현들이 나타나며, 엘리야나 세례 요한 같은 특별한 사명자를 ‘허리에 가죽 띠를 띠었다’라고 표현했다(왕하 1:8, 마 3:4, 막 1:6). 또한 띠는 옷 입는 순서에서 가장 마지막에 묶는 것으로, 전체를 완성하는 의미를 가지기도 한다(눅 12:35, 엡 6:14, 골 3:12-14). 

 

모자(터번과 베일)

중동 지방의 작열하는 태양과 거친 모래바람에서 눈을 보호하기 위해서 머리에 터번을 착용했다. 출애굽기 34:29-33에서는 모세가 수건으로 자기 얼굴을 가렸다고 말씀하고 있는데, 여기 수건은 얼굴을 닦을 때 쓰는 수건이 아니라 넓은 천을 터번처럼 두르고 헤어밴드로 두르는 것을 의미한다. 모세는 자신의 얼굴 광채를 가리기 위해 헤어밴드를 풀고 터번으로 얼굴을 가린 것이다. 터번의 헤어밴드는 남성의 상징이었다. 그래서 여자는 헤어밴드를 쓰지 않는 베일로 얼굴을 가렸다. 개역성경은 이 단어를 ‘면박’
(창 24:65), ‘너울’(아 4:1)로 번역하였다. 남자는 예배를 드릴 때 머리에 쓴 것을 벗어야 하고 반대로 여자는 베일을 써야만 했다(고전 11:4-7).

 

신발(샌들)

고대 근동사회에서 신발은 모두 샌들이었다. 샌들을 만들 때는 먼저 가죽이나 나무로 밑창을 만든 뒤, ‘신들메’ 끝으로 고정하였다(참고-창 14:23). 돌이 많은 유대의 특성상 밖을 나갈 때에는 반드시 신발을 신었고, 실내에서는 신발을 벗었다. 그러나 종은 맨발로 다녔다(참고-출 3:5, 수 5:15, 삼하 15:30). 신발은 증명서 역할도 했다(룻 4:7-8, 참고-눅 15:22). 신발은 다섯 가지 옷 중 가장 더럽고 냄새나는 것으로, 신발끈을 묶고 푸는 일은 종들의 몫이었다. 또한 종들은 신발을 벗고 나면 물을 받아와 발을 깨끗하게 씻겼다. 

 

옷의 재료

세마포

속옷은 주로 세마포로 만들었다. 세마포는 ‘아마’(flax, 파피루스의 일종)의 줄기로 만들었는데, 씨가 가득 맺힌 아마를 물에 일정 시간 담근 후 지붕 위에서 햇볕에 말려서 베실을 뽑아내었다. 세마포로 옷을 만드는 기술은 애굽에서 유입된 것이다. 이스라엘에서는 여리고를 중심으로 아마를 재배했지만, 애굽의 아마가 최고의 품질로 인정받았다. 세마포는 매우 비싼 옷감으로, 양털로 짠 옷보다 귀한 옷이었다(잠 31:22).

 

양털

겉옷은 주로 양털로 만들었다. 양털 옷은 메소포타미아 지방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이스라엘 의 양 한 마리에서 1년에 한 차례 0.75-2kg정도의 양털을 얻을 수 있다. 무더운 여름이 오기 전 양떼를 한데 모아 양털을 깎았는데, 이때 주인은 큰 잔치를 베풀었다. 당시 가난한 사람들은 자기 양떼를 직접 쳐야 했지만, 대부분은 삯꾼 목자를 고용해서 양을 치게 했다. 발굴된 계약 토판 등을 보면 삯꾼 목자는 1년 동안 맡은 양떼의 80% 이상을 살려야 할 의무가 있었고, 많은 양을 건강하게 데리고 올수록 많은 보수를 받았다. 양털을 깎는 날은 삯꾼 목자의 보수를 계산하는 날이자, 양떼를 위해 수고한 자들에게 보답하는 날이었다. 

다윗은 갈멜에서 있었던 나발의 양털을 깎는 축제에 찾아가 그의 양떼를 보호했던 일에 대한 정당한 보수를 요구하였다(삼상 25:2, 5-8). 나발은 마땅히 그 수고를 치하하고 보수를 지불해야 했지만 도리어 다윗을 모욕하므로 어리석게도 화를 재촉하고 말았다.

옷의 혼합 금지

율법에서는 양털과 베실을 섞어서 옷을 짜는 것을 엄격히 금하고 있다(레 19:19, 신 22:9-11). 혼잡은 성경에서 엄격히 금지되는 것으로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무너뜨리는 것이다. 거룩한 것과 거룩하지 못한 것을 혼합하는 일은 큰 죄로 규정되었다. 여자가 남장을 하거나 남자가 여장을 하는 것 역시 가증한 행위로 규정되었다(신 22:5).

 

실 뽑기와 옷감 짜기

아마나 양털에서 나온 섬유는 너무 얇아서 바로 옷을 지을 수 없었다. 그래서 먼저 여러 가닥의 섬유를 꼬아서 실을 만든 다음 실패를 돌려가며 굵은 실을 뽑아냈다. 실을 잘 뽑아내는 여자는 지혜롭고 현숙하다고 인정받았다(출 35:25-26, 잠 31:13). 실을 뽑은 뒤 경우에 따라 염색을 했다. 당시 염료는 매우 비싼 것이라 염색한 옷은 매우 귀한 옷이었다. 그중 가장 귀한 옷은 자색옷이었는데(눅 16:19-21) 당시 두로는 자색 염료와 염색 기술을 독점하여 막대한 부를 쌓았다. 두로 지방을 가리키는 ‘페키니아’라는 말 자체가 ‘자주색 염료’라는 의미에서 유래한 것이다. 자색 염료는 뿔고둥의 분비선에서 극소량을 채취하여 만들었는데, 가로세로 50cm를 염색하는 데 약 1만 마리의 뿔고둥을 채취해야 했다. 두로 사람들은 뿔고둥에서 분비선 부분만 채취하고 다시 해안에 놓아주는 식으로 염색 사업을 했다. 자주색으로 염색하는 것은 매우 큰 비용이 들지만, 다른 색깔의 옷에 비해 약 40배 이상의 값을 받을 수 있었다. 이러한 배경을 볼 때 십자가에 달리시는 예수님께 로마 군병들이 홍포(자색 옷)을 입힌 것은 ‘유대인의 왕’을 향한 조롱과 빈정거림을 위한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마 27:27-31). 또한 두아디라 성의 ‘자주 장수’ 루디아가 대단한 부자였다는 것도 알 수 있다(행 16:12-15). 그녀는 빌립보에서 바울의 설교를 듣고 최초로 전도된 유럽인으로, 훗날 자신의 집에 교회를 세움으로서 빌립보 교회의 초석을 쌓았다(행 16:40). 

실의 가공이 끝나면 베틀에 날줄을 매달고 베틀 북을 돌리고 베틀 채를 올렸다 내렸다 하면서 천을 짰다. 욥은 자신의 날이 실을 감기 위해 재빨리 움직이는 베틀 북처럼 빨리 간다고 고백했다(욥 7:6).  베틀 채는 길고 단단한 나무로 만들었는데 흔히 창자루의 크기를 설명할 때 사용되었다(삼상 17:7, 삼하 21:19, 대상 11:23, 20:5). 베틀의 씨줄은 수직을 이루는 실로 여성을 상징했고, 날줄은 수평을 이루는 실로 남성을 상징했다. 삼손은 들릴라에게 자신의 머리카락 일곱 가닥을 날줄에 섞으면 자신의 힘이 없어지리라 거짓말했고, 들릴라가 블레셋 사람이 쳐들어왔다 하자 일어나 베틀 말뚝에서 날줄을 뽑아버렸다(삿 16:13-14). 

‘맹모단기’(孟母斷機)라는 사자성어는 베틀에 짜던 천을 중간에 칼로 잘라버리면 베틀 채가 말려 올라가며 천을 쓰지 못하게 되듯이 학문을 중간에 그만두지 말 것을 가르치는 말이다. 히스기야 또한 자신이 곧 죽는다는 선고를 받았을 때 베틀 천을 자르는 모습에 비유하며 자신의 생명이 중간에 끊어져 말려 올라가는 베틀과 같다고 하나님께 눈물로 호소했다(사 38:12).

 

옷의 세탁

고대 근동에서의 세탁은 오늘날의 빨래보다 더 넓은 범주의 일이었다. 갓 짜여진 옷감은 매우 뻣뻣하여 입을 수 없었기에 전문적인 세탁자가 물에 담가 발로 밟아가며 부드럽게 만들었다. 또한 더러워지거나 퀴퀴해진 옷도 주기적으로 세탁했다. 당시 마을에는 빨래하는 ‘세탁자의 밭’이 따로 있었는데(사 7:3), 이는 고대 근동에서 사용하던 세제의 냄새가 썩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레미야 2:22에서는 세탁할 때 ‘잿물’과 ‘비누’를 인용하며 사람의 힘으로는 죄를 세탁할 수 없음을 가르치고 있는데, 여기 ‘잿물’은 히브리어 ‘네테르’로 잿물이 아닌 알칼리 광물 덩어리를 의미한다. 만약 ‘네테르’에 산성 식초를 뿌리면 화학적 반응을 일으켜 가치를 잃어버리고 만다(잠 25:20). ‘비누’는 히브리어 ‘보리트’로, 비비면 거품이 나는 사막의 비누나무 즙으로 만든다. 비누나무 즙은 표백작용이 있어서 표백제로 사용되었다(욥 9:30, 말 3:2). 

 

구속사적 뜻에서 본 옷

말라기 선지자는 구속사의 최종 성취를 바라보면서 그날을 ‘표백하는 자의 잿물과 같다’라고 표현했다(말 3:2). 성도의 옷이 더럽고 시커멓다고 해도, 표백하는 자의 잿물로 깨끗이 씻어주어 ‘세탁하는 자가 그리 할 수 없을 만큼 찬란하게’ 빛나게 만들어주시는 것이다(막 9:3). 이 옷은 변화산의 영광 가운데 예수님께서 입으셨던 찬란한 옷(마 17:1-2, 막 9:2-3, 눅 9:28-29)이 예표하듯 성도에게 입혀주실 그리스도의 옷이다(롬 13:14, 갈 3:27). 마지막 때 우리의 모든 더러운 옷은 예수 그리스도 보혈의 피로 깨끗이 세탁함을 입고(계 7:13-17, 참고-슥 3:3-5), 어린 양만 따라가는 성도들에게 희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혀주셔서 다시는 상하지 않고 더럽혀지지 않게 하실 것이다(계 7:9-10, 14:1-4, 19:6-8, 11-14). 

 

글_정디모데 전도사, 그림_박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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