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장, 교회 절기, 성경적인가?
교회력의 중요성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고난 및 죽으심과 부활, 성령강림 같은 역사적인 사건들의 의미를 해마다 새롭게 다짐하며, 그 깊은 뜻을 바르게 전하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실제로 교회력의 기원은 여기에 근거를 두고 있다. 초대 교회의 성도들은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과 관련하여, 특히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여 그 감격과 기쁨을 나누기 위해 주일마다 모이게 되었고, 이것이 오늘날 기독교의 주일 예배의 근간이 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교회는 사순절, 주현절, 오순절, 성탄절, 부활절을 제정하여 해마다 교회의 주요 절기로 지켜 왔다. 여기에 중세 교회는 성모 마리아를 비롯하여 각종 성인들의 날을 교회력에 포함하여 모든 교회가 ‘날’들을 지키게 했다.
1. 교회 절기에 대한 역사적 배경
교회력을 보면, 주일을 제외하고 가장 먼저 등장한 것이 오순절이었다. 유대인들에게 그날은 유월절로부터 49일 후에 등장하는 칠칠절이었다. 이것은 모세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율법의 선포와 이스라엘의 건국을 기념하는 절기였다. 신약성경에서는 이 칠칠절에 이른바 ‘성령 강림’사건이 일어났고, 교회는 이날을 신약 교회의 탄생일, 또는 새 이스라엘의 시작으로 정했다(행2장 참고).
대강절은 6세기 이전에도 있었으나, 로마 가톨릭교회의 주교에 의해 제정된 성 앤드류의 날인 11월 30일에 가장 가까운 주일로부터 시작하여 4주 동안 지키게 되었다. 대강절은 ‘주님의 오심’을 기념하는 성탄절과 관계된다. 따라서 대강절의 절정은 성탄절이다. 그리스도의 태어나심을 축하하는 성탄절을 준비하는 기간으로, 그리스도의 강림을 위한 영적 준비 기간으로 4주를 엄격하게 지켰다.
성탄절은 초대 교회가 관심을 가진 날이 아니었다. 12월 25일을 성탄절로 삼은 유래를 보자면, 이날은 원래 로마 이교도들의 축제일 또는 태양신을 숭배하는 대대적인 축일이었는데, 주후 336년에 콘스탄틴 황제의 지시로 기독교의 성일이 되었다. 그리스도의 탄생일이 겨울이었고, 또 이날이 우주에 빛을 주는 날이라는 의미에서 12월 25일로 정한 것이다. 이후 안디옥에서는 375년에, 알렉산드리아에서는 5세기 경에 이르러 성탄절을 지키기 시작했으며, 그 이후 전 서방 교회가 지키게 되었다. 그러나 동방 교회에서는 1월 6일로 지켰다. 서방 교회가 동방 박사의 방문과 관련해 12월 25일로 정한 한편, 동방 교회는 예수님의 세례식에 맞추어 축하하는 뜻에서 주현절을 지키게 되었다.
사순절(주일을 제외한 부활절 전 40일)은 부활절을 준비하는 기간으로 주님의 고난과 죽으심에 초점이 맞추어지는 절기이다. 이 절기는 회개일인 속죄일에 시작되어 주님이 죽으신 성 금요일에 끝난다. 이 기간에는 엄격한 절제와 금욕을 실천한다. 이 절기는 4세기 중엽 예루살렘에서부터 교회력에 포함되기 시작했으며, 다락방에서의 성만찬 사건과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주님의 기도, 빌라도의 법정에서의 수난 등을 생각하면서 예배했다고 한다.
부활절은 기독교 절기 중에서 가장 오래된 절기이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춘분이 지나고 만월이 된 첫 주일’을 부활절로 지킨다. 따라서 부활절은 3월22일부터 4월 25일 사이에 지켜진다. 부활절은 사실 따로 정해진 절기라기보다는 주님의 부활을 기념하여 모이게 된 매 주일이 부활절이었다. 그러다가 동방 교회에서 부활절을 교회력의 시작으로 삼아 해마다 부활의 참된 의미와 부활의 영광을 되새기면서 기념하게 되었다.
추수감사절의 기원은 우리가 알 듯이 1620년에 미국으로 건너간 영국의 청교도들이 첫 수확을 감사하면서 하나님께 드린 일을 기념하여 지킨 미국 교회의 절기라고 할 수 있다.
2. 교회 절기에 대한 종교개혁자들의 가르침
칼빈은 절기에 미신적인 요소가 더해지는 것을 우려했다. 그러나 미신적으로 성물을 숭배하듯이 절기들을 숭상하는 듯한 오류가 없다면 절기를 지키는 것도 가능하다. 다만 거기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 선포와 성례 거행 및 공적 기도가 있어야 한다.
스코틀랜드에 장로교를 국교로 세운 존 녹스는 1560년에 교회 규범집이라 할 수 있는 ‘제일치리서’에서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의 말씀이 명령하지 않는 법규나 규범이나 계율에 의하여 사람들의 양심에 부과된 것은 무엇이든지 철폐되어야 한다. 예를 들면, 순결서약, 결혼에 대한 맹세, 금식일에 대한 미신적인 성수.....죽은 자를 위한 기도 및 인간이 제정한 성인의 날들, 사도들의 축일들, 순교자의 날들, 동정녀의 날, 성탄절, 주현절....마땅히 철폐되어야 한다”
제2차 헬베틱 신앙고백서는 녹스의 견해에 동의하면서 ‘예수님의 성탄, 수난, 부활, 승천 및 성령 강림’은 지켜도 무방하다는 예외 규정을 두었다. 이것은 중세 시대 익숙하게 지켜 온 습관을 쉽게 버리지 못하는 현실을 반영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에서는 주일 성수를 제외하고는 교회 절기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 구체적인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때에는 종교개혁자들의 가르침에 힘입어 절기가 더 이상 대중적인 관행이 아니었고, 교회가 순수하게 성경에 근거한 예식을 집행해 왔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이상의 역사적인 맥락에서 볼 때 개혁교회의 교회의 절기 문제는 세 가지 차원에서 금지된 것을 볼 수 있다. 첫째, 하나님의 계시된 말씀에 절기를 지키라는 명령이 없다. 둘째, 교회가 지나치게 절기들을 영적으로 신비한 무엇이 있는 것처럼 미신적으로 가르쳐 왔기 때문에 개혁교회에서는 미사와 더불어 미신적인 행위를 우상 숭배로 간주하고 금했다. 절기를 지킴으로 어떠한 영험이나 죄 사함과 신령한 복이 임한다든지, 또 이를 어기는 자들에게 임할 공포심을 조장하는 미신적인 놀음을 개혁교회에서는 더 이상 용납하지 않은 것이다. 셋째, 교회나 개인이나 누구를 막론하고 성경에 없는 것을 고안하여 강요하거나 지키도록 가르칠 수 없다는 사실에 근거하여 반대했다.
3. 절기의 타당성
교회가 절기를 지킴으로써 얻는 유익은 얼마든지 있다. 그리고 현대 교회에서 절기를 지키는 것에 종교개혁가들이 우려했던 종교적인 미신을 조장하는 일이 없다고 믿고 있다. 절기를 지킴으로써 절기의 성경적인 의미를 바르게 이해하게 되어 회중들이 더욱 그리스도께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돌리며 주님께 헌신을 다짐하게 된다면, 그것처럼 바람직한 것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절기를 지키는 데서 오는 몇 가지 폐단을 우리가 고려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첫째, 매년 절기를 지키는 것이 점점 절기의 참된 의미를 퇴색시키고, 절기를 그저 하나의 연례 행사로 전락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부활절 연합 행사, 그리고 축하 공연 등등.
둘째, 교회에서 지키는 절기는 무엇보다도 성경에 근거한 것이어야 한다. 사도행전에서도 초대 교회 성도들이 주님의 생신을 축하하는 행사를 열고 즐겼다는 기록을 읽을 수 없다.
마지막으로, 복음 선포적 측면에서 절기 수행은 타당성이 결여되었다. 절기 때 한번 전하는 것으로 끝내 버리고 마는 것은 옳지 못하다. 부활의 환희와 감사, 영광이 어찌 일 년에 한 번뿐이어야만 하는가? 초대 교회가 주일마다 모여서 기념한 것처럼, 우리도 매 주일이 고난 주간이요 부활절이어야 한다.
한국 교회는 왜 절기를 지키는가? 교회의 전통이기 때문에, 또는 복음이 선포되는 좋은 기회이기 때문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 외에 혹시 교회의 재정적인 수익 때문에 지키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진단해 보자.
16장 청교도의 가정관
청교도들의 위대한 특성 중 하나는 가정교육이다. 그들은 가정교육을 통하여 영국의 기독교 가정의 참모습을 심어 주었다. 특히 성경제일주의적인 사고방식은 그들의 가정생활에서도 성경의 권위와 가치를 한층 드높이게 했다.
1. 가정이란 무엇인가?
청교도들은 가정을 이루는 근본적인 목적을, 첫째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둘째는 그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행복을 위하여라고 보았다. 이러한 생각은 가정이 제대로 형성되면 사회나 국가가 저절로 잘된다는 확고한 신념을 낳았고, 실제로 영국의 얼굴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1) 종교적 공동체로서의 가정
윌리엄 퍼킨스나 리차드 십스는 가정을 일종의 ‘작은 교회’라고 했다. 윌리엄 가우지 역시 가정을 “꿀이 저장되는 교회와 국가의 신학교이며, 다스림과 복종의 제일 원리와 근본을 학습하는 곳”이라고 했다. 이러한 주장들은 적어도 기독교인들이 가정을 단순히 사회 구성원 중 가장 기초가 되는 조직으로 간주하기보다는 하나의 종교적 공동체로 보고 있음을 시사한다. 즉, 교회와 가정을 분리해서 생각하지 않고 상호 협력적인 관계를 지닌 공동체로, 가정을 교회의 강단에서 외쳐지는 말씀을 구현하는 현장이요 선포된 말씀이 사회의 구석구석에서 열매를 맺도록 다져지는 실습장으로 보았다. 따라서 교회의 가르침은 가정으로 이어졌고, 가정에서의 교육은 삶의 터전에서 꽃을 피웠다.
2) 안식과 행복이 깃든 공동체로서의 가정
청교도들은 안식과 복이 가정을 만드신 하나님으로부터 온다고 믿었다. 그래서 리차드 십스는 경건한 사람의 처마 밑에 거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이 복을 베풀어 주신다고 말하면서, 한 사람이 회개함으로써 온 가족이 회개하고 돌아오게 된 실례를 성경에서 찾아 설명했다(눅19:9, 행16:34). 이처럼 한 가장의 회개와 신앙이 온 집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다. 건강한 가정이 건강한 사회를 형성하며, 사랑과 행복이 가득 담긴 사회 공동체를 구현한다는 것이다.
2. 청교도의 결혼관
가정을 형성하는 최초의 의식은 결혼이다. 청교도들은 결혼을 어떻게 이해했는가? 청교도들은 결혼을 ‘창조의 원리이며 인류에게 주신 하나님의 최고의 선물’로 간주했다. 따라서 결혼은 차선의 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것으로 인간의 이상적인 삶에 속한다고 여겼다.
청교도들은 창세기 2장 22절을 주해하면서 여성과 남성의 평등성을 이렇게 설명했다.
“하나님은 아담의 옆구리에서 취하신 갈비뼈 하나로 여자를 만드셨다. 남자의 머리뼈로 만들지 않으신 것은 남자보다 높아지지 않게 하기 위함이요, 남자의 발가락에서 여자를 만들지 않으신 것은 남자에게 짓밟히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남자의 갈비뼈로 만든 것은 남자와 평등하게, 그리고 그의 팔 아래에서 보호받고 그의 심장 가까이에서 사랑을 받으며 지내게 하기 위함이다.”
이러한 결혼은 남편과 아내의 의무를 늘 상기시켰다. 리차드 백스터는 서로의 공동의 의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① 완전히 서로 사랑하라. 그러므로 진실로 사랑스러운 상대를 택하라. 그리고 당신의 사랑을 소멸할 경향이 있는 모든 일들을 피하라.
② 함께 거하며 서로 즐기라. 그리고 자녀의 교육과 가정을 다스림과 세상의 일의 경영에 조력자로 신실하게 협력하라.
③ 특별히 서로의 구원에 조력자가 되라. 서로 믿음과 사랑과 순종과 선해을 분발시키라. 죄와 모든 유혹들에 대해 서로 경고하며 도우라. 가정 예배와 개인 예배에 협력하라.
④ 모든 분쟁을 피하고 당신이 고칠 수 없는 서로의 약점들을 참으라. 다루기 힘든 정욕을 일으키지 말고 진정시키라.
⑤ 부부의 순결과 정절을 지키고, 질투를 일으킬 수 있는 상대에 대한 모든 부적당하고 무례한 몸가짐(행동)을, 그리고 부당한 모든 질투를 피하라.
그리고 아내(배우자)를 선정하는 문제에 있어서 청교도들은 신앙적인 관점에서 출발했으며, 매우 구체적이고도 실제적인 면들을 찾았다. 헨리 스미스는 교인들에게 다섯 가지 기준을 말했다. 첫째는 그 여성에 대한 평판, 둘째는 경건의 모습과 능력, 셋째는 말이 많은 사람인가 아닌가, 넷째는 단정하고 검소한가, 다섯째는 친구는 어떠한가 하는 것이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를 보면, 배우는 반드시 기독교인이어야 하며 불신자와는 결혼할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혹시 믿지 않는 배우자를 얻었을 경우에 배우자의 구원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그리스도 앞에 흠이 없는 배우자로 서게 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이렇게 하여 부부가 된 자들은 서로를 사랑하고 아껴야 한다. 고린도전서 7장 4절의 말씀을 통해서 부부의 평등성을 강조하고, 이에 기초하여 서로를 엄숙히 사랑하라고 가르친다. 청교도들은 감상적인 애정 표현을 개발해야 하며, 진정한 사랑을 명백히 표현해야 한다고 했다.
3. 청교도의 가족관
결혼의 목적은 자손을 번식하는 것만이 아니었다. 따라서 자녀가 없다고 해서 결혼을 파기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러나 결혼의 가장 큰 복은 자녀이며, 자녀를 기도로 보살피며 돌보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훈육해야 한다고 했다. 청교도들에게 가족의 개념은 부모와 자녀뿐 아니라 가정에서 봉사하는 종들과 때로는 나그네들까지도 가족의 개념에 포함했다.
청교도들은 가정을 교회와 그리스도의 몸에 빗대어 생각했다. 그래서 각 가정에서는 가장이 설교자가 되어 모든 가족들의 신앙을 지도하고 가정 예배를 드리되, 하루에 적어도 두 번은 예배해야 한다고 했다. 사실 가정의 회복은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남편의 이러한 권위와 책임의 회복에 달려 있다.
4. 청교도의 자녀 교육의 실제
교회에서 배운 건전한 가르침은 곧장 가정으로 이어졌고, 가정은 이를 사회에 접목시키는 중요한 다리 역할을 했다. 존 게리는 『옛 영국 청교도 또는 비국교도의 특성』에서 이렇게 말했다.
“청교도들은 누구에게보다도 먼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또한 가장 좋은 기독교인은 가장 훌륭한 남편이며 아내요, 부모이며 자녀요, 주인이며 종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께 대한 교리가 모욕당하지 않고 영화롭게 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가이우스 데이비스는 청교도의 자녀 양육의 이상들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설교자들은 사랑이 모든 부모의 의무의 근원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자녀들을 버릇없이 만들어서는 안 된다. 부모들은 원숭이같이 어린아이들을 너무 품다가 죽여서는 안 된다. 부모의 모범은 거룩함의 가장 큰 자극이다. 특히 자녀가 어릴 때에는 어머니의 모범이 큰 영향을 미친다. 교육은 가능한 한 빨리 시작해야 한다. 교육은 철저하게 이루어져야 하지만, 경건이 지식보다 더 중요하다.”
5. 맺음말
이처럼 청교도들의 가정생활은 경건과 훈육이 공존하면서 사회의 빛과 소금으로서 성도의 책임과 의무가 무엇인지를 터득하고 적용시킨 활력소였다. 신앙 훈련의 장이 되었던 가정의 모습은 현대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부모들은 오로지 학교 공부를 뒷바라지 하느라 전력을 기울인 채 신앙교육을 그저 주일학교 교육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 한 인격체는 육으로만 구성된 것이 아니므로 온전한 정신과 올바른 사고를 위하여 반드시 기독교 신앙이 필요함을 인식하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