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직 성경’과 개인의 경건생활
청교도들은 철저한 성경제일주의자들이었다. 교회의 모든 문제나 개인의 신학 사상과 신앙은 철저히 성경에 근거를 두어야만 했다. 그들에게 신구약성경은 ‘신앙과 행위의 유일한 규범’이었다. 이러한 그들의 사상이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를 작성하는 데 그대로 반영되었다. 그래서 다른 신앙고백서와는 달리 ‘성경’을 가장 먼저 다룬다. 역사가들은 그들을 가리켜 “신구약성경 밖에서 찾을 수 있는 유일한 성경적인 사람들”이라고 평가한다.
종교개혁가들에게서 이어져 내려오는 ‘오직 성경’이라는 사상은 성도들의 삶을 완전히 바꾸어 놓은 대전환점이다. 특히 실천적인 측면에서 청교도들의 개인적 경건생활 역시 철저하게 성경에 근거를 두고 있었다. 청교도들은 개인적인 경건생활을 그들의 신앙 행위 중 가장 위대한 것으로 간주했다. 경건의 힘이 청교도들을 청교도답게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청교도주의란, 단순히 일련의 율법이나 교리의 집합이 아니라 하나의 생명의 힘이었다. ‘거룩한 생활의 아름다움을 보여 줌으로써 그것을 향하여 움직이게 하고, 하나님을 중심으로 한 삶의 만족감에 대한 가능성을 감탄하며 희열을 느끼게 하는 비전이요 충동이었다.
청교도들은 디모데전서 4장 8절의 말씀과 같이 “범사에 유익한 경건”의 연습에 힘쓴 무리들이었다. 삶에서 거룩하신 하나님을 닮아 가려는 그들의 열망은 구원을 얻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아들로서 하나님의 은혜에 나타내는 반응이었다. 이처럼 경건한 삶의 능력을 위해 청교도들의 마음 중심에 절대적인 권위인 성경이 깊숙이 자리 잡아 그들의 생활을 지배하고 단련했다.
이러한 확신 때문에 청교도들은 개인적인 경건생활을 위하여 성경 읽기에 전념했다. 청교도들이 살던 시대에는 오늘날처럼 누구나 성경을 소유하고 있지는 못했다. 그런데도 하루에 세 번 성경을 읽었고, 매번 한 장씩을 읽도록 권유받았다. 리차드 그린햄은 성경을 읽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한 여덟 가지 항목을 말했다. 근면함, 지혜, 준비, 묵상, 성도의 교통, 신앙, 실천 기도이다. 청교도들은 그들의 삶 전체가 성경을 달성하는 것과 같았다.
성경 읽기에 이어 개인의 경건생활의 두 번째 요소는, 공적 기도 시간 외에 가지는 개인 기도 시간이다. 청교도들은 기도할 틈을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기도 생활을 멈추지 않았다. 존 번연은 “효과적인 기도란 성령에 의하여 우리의 죄악을 드러내고, 은혜의 보좌 앞에,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아가도록 격려받는 것이다”라고 했다.
청교도들은 직장이나 집 안에서 하는 모든 일들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했으며, 하나님의 완전한 뜻을 추구하며 실천했다. 일하지 않는 시간에는 기꺼이, 그리고 매우 열심히 성경 읽기와 성경 연구와 기도에 힘을 쏟았다. 그들은 개인 경건 시간을 통하여 신앙의 성장을 꾀했고,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확인했으며, 마음의 평화와 기쁨 및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는 유익을 얻었다.
2) 가정에서의 신앙교육
청교도들에게 가정은 신앙교육의 중심지였다. 그들은 가정을 종교적 공동체로 보았다. 윌리엄 퍼킨스는 가정을 하나의 작은 교회라고 가르쳤다. 청교도들은 각 가정을 교회와 그리스도의 몸에 빗대어 생각했다.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교회에 설교자가 있듯이, 가정에서는 가장이 설교자가 되어 모든 가족들의 삶을 지도했고, 가정 예배를 위하여 적어도 하루에 두 번씩 함께 모였다. 가정 예배를 할 때에는 시편찬송을 부르고, 성경을 한 장씩 읽었으며, 아이들에게 문답교육을 하고, 기도하고, 시편찬송을 부르고 폐회했다.
청교도들에게 교회가 성도들이 모여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배우고 가정에서나 일터에서 이를 실천하도록 고무하는 청교도 신앙의 근원지라면, 가정은 구체적인 신앙 훈련의 장이요 학습의 장이었다. 교회에서 배운 건전한 가르침은 곧장 가정으로 이어졌고, 가정은 이를 사회에 접목시키는 중요한 다리 역할을 했다.
이번에는 가정에서의 신앙교육 중 ‘물질의 바른 사용’에 대한 청교도의 가르침을 생각해 보자. 청교도들은 사랑을 베푸는 일을 권장하고 욕심에 이끌리는 것을 제한하며 절제하도록 훈련했다. 윌리엄 퍼킨스는 경제활동에 관하여 네 가지 원칙을 제시했다.
첫째, 하나님께서 모든 것의 주인이시기 때문에, 인간은 자기가 소유한 모든 것을 하나님께 회계(會計)해야 한다. 따라서 하나님의 것들을 바르게 사용해야 한다.
둘째, 부자는 필요하다면 그리스도를 위하여 자신이 가진 모든 소유를 과감히 포기해야만 한다. 그리고 부유하지 못한 것처럼, 재물을 챙기는 일을 포기해야만 한다.
셋째, 복음을 전파하거나 핍박당하는 자들이 있다면, 고통 가운데 있는 형제들을 구제해야 한다면, 그러한 일들을 위하여 우리의 소유를 과감히 사용해야만 한다. 그것은 성도들이 마땅히 따라야 할 하나님의 부르심이다.
넷째, 우리가 소유한 모든 것들을 하나님의 영광과 인간의 영혼 구원을 위하여 바르게 사용해야 한다.
이처럼 청교도들은 재물에 대해 절대적인 주인이 될 수 없다고 가르쳤다. 그래서 그들은 근검절약하고 검소하게 살았으며, 남는 것들을 주님을 위하여, 그리고 도움이 필요한 곳에 사용했다. 그로써 형제들의 사랑을 확인하고, 영혼을 그리스도에게로 돌아오게 했다.
청교도들은 여가 선용도 세속적인 쾌락을 위한 것이 되지 않도록 교육했다. 그러면서도 절제하는 미덕을 강조했고, 그러한 활동에 정열을 지나치게 쏟는 것을 금했다.
3) 주일 성수와 국가관
마지막 세 번째 특성으로, 주일 성수 개념과 교회와 국가관에 대해서는 10장에 따로 기술했다.
3장 청교도의 목회신학과 원리
1. 청교도 목회신학의 근거-성경
청교도들은 무엇보다도 성경을 교회와 개인의 삶에 관하여 최고의 권위를 가지는 하나님의 계시로 여겼다. 그리고 교회 개혁에 관해서는 성경이 뭐라고 말하는지를 먼저 살폈고, 성도들의 실제의 삶에서도 성경의 가르침을 생활화하기 위해 몸부림쳤다. 그들은 토마스 브룩스의 말처럼 “성경이 침묵하는 곳에서는 나도 침묵하기를 좋아하고, 성경이 말하지 않는 곳에서는 나도 듣는 귀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상을 굳게 신뢰했다.
청교도들은 목회가 무엇인지, 양들을 어떻게 양육해야 하는지, 설교 사역은 어떤 것인지를 성경에 근거하여 바르게 제시한 목회의 모범생들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누구보다도 그들은 성경을 사랑했고, 이 진리를 위해 전 생애를 헌신했다. 이것은 그들의 목회 사역에 그대로 반영되어 나타났는데, 그들이 가장 고귀한 사역으로 간주한 설교 사역이 그 실례이다. 그들에게 설교는 오로지 성경 그 자체를 전달하는 것이었다.
목회자는 자신의 목회나 사역이 과연 성경에 근거한 것인지, 그리고 진리의 전달자로서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여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서 행한 것인지를 깊이 점검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일꾼은 우리를 불러 세워 주신 주인의 마음에 합한 자이어야 한다. 청교도들은 이것을 가장 두려워했다. 이것이 바로 사역에 심혈을 기울이게 한 원동력이었다. 목사는 업적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로 말해야 한다.
2. 청교도 목회신학의 도구인 설교
흔히 청교도 신학을 일명 ‘목회신학’이라고 부른다. 왜냐하면 그들의 목회활동이 바로 그들이 물려받은 개혁교회의 정통 신학을 갈고 다듬어 꽃피우게 한 실체였기 때문이다. 특히 설교 사역을 목회의 99%로 간주할 정도로 설교 사역에 심혈을 기울였다. 우리는 이것을 ‘강단 목회(Pastoral work from pulpit)’라고 부른다.
1) 설교 사역에 대한 이해
청교도들에게 설교는 목회 사역의 전부라고 해도 틀리지 않다. 청교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밝히 풀어 증거하는 이 사역을 죄인을 구원하고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인간에게 알리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방편으로 믿었다(고전1:21 참고). 따라서 그들의 설교는 성경을 제치고는 설명할 수 없다. 그들에게는 성경 자체가 ‘하나님의 발언록(the utterance of God)’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생각들이 계시된 성경을 전하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영예로 간주했다. 토마스 굿윈의 말을 빌리면, 기록되어 주어진 성경은 하나님의 심장에 영원부터 기록되어 있는 성경에서 발췌한 것이요 복사본이다.
윌리엄 퍼킨스는 “설교는 영혼을 유혹하는 것이다. 인간의 마음은 설교를 통하여 누그러지고 불경건함과 세속적인 삶을 버리고 기독교 신앙과 회개로 나아간다”라고 했다. 그러므로 설교 사역이야말로 그리스도께서 교회에 주신 은사 중 가장 고귀한 은사이며, 성도들은 이를 가장 존귀한 것으로 간주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교회에 설교자들을 세우신 하나님의 뜻은 에베소서 4장 8절 이하에 잘 기록되어 있다. 토마스 굿윈은 여기에서 설교의 목적을 두 가지로 제시했다. 하나는, 사람들을 회심하게 하는 것이다. 목사는 사람들의 회심을 위하여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둘째는, 성도들을 온전하게 세워 가는 것이다. 어떻게 그들을 온전히 세워 갈 수 있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설교 사역을 통하여 그들을 온전히 세워갈 수 있다. 말씀 외에는 그 무엇으로도 결코 이 목적을 이룰 수 없다.
2) 설교자로서의 자세
그렇다면 청교도들은 어떤 자세로 강단 목회에 충실했는가? 이 부분에 대해서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예배 모범 지침에서 언급하고 있는 바를 잠시 살펴보는 것이 유익하다.
첫째, 수고하고(전력을 다하라), 주님의 일을 태만히 행하지 말라.
둘째, 명백하게, 즉 가장 재능이 없는 사람들도 이해할 수 있게 설교하라. 진리를 인간의 지혜에서 나오는 유혹적인 말로 전하여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아무런 효과도 없는 것으로 만들지 말고, 성령과 능력의 증거로 전하라. 또한 알지 못하는 외국어나 이상한 어법, 무익한 억양을 삼가고, 고대나 현대의 별로 우아하지 않은 성직자나 다른 저자의 글을 인용하지 말라.
셋째, 신실하게, 즉 자신의 이익이나 영광을 바라보지 말고 그리스도의 영광과 사람들의 회심과 덕성 함양과 구원을 바라보라.
넷째, 지혜롭게, 즉 자신의 모든 교리, 권고, 특별히 견책을 가장 적절하게 설복할 수 있는 방식으로 구성하라. 각 사람의 인격과 처지에 가장 적절한 관심을 보이고, 자신의 걱정이나 한(恨)을 섞지 말라.
다섯째, 진지하게, 하나님의 말씀과 어울리게 전하라. 자신과 자신의 사역을 멸시하는 사람들의 타락을 유발할 만한 모든 몸짓과 음성과 표현을 피하라.
여섯째, 사랑의 감정으로 전하라.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이 선하게 행하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설교자의 경건한 열심을 알게 하라.
일곱째, 하나님에 의하여 가르쳐지는 것처럼, 그리고 자신의 마음으로 설득하라. 설교자가 가르치는 것은 그리스도의 진리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양 떼 앞에서 그 진리의 모범으로서 행하라. 주님께서 자신을 감독자로 세우신 양떼와 자기 자신을 주의 깊게 감독하라.
이와같은 사역을 감당하는 목사들에 대해 존 플라벨은 이렇게 말한다. 그는 마태복음 24장 45-47절을 본문으로 설교하면서, 목사는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의 집의 청지기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즉, 목사는 하나님 나라의 위대한 신비들을 담고 있는 말씀 선포와 성례 집행에 헌신하며 힘을 다해 받들어야 할 청지기라는 것이다. 이런 청지기에는 두 가지 자질이 요구되는데, 하나는 충성스러움이요, 또 하나는 사려깊음이다.
① 충성스러운 청지기로서
충성스러운 일꾼은 첫째, 순결하고 영적인 목적과 의향을 가지고 직무에 임해야 한다. 교회는 자신의 것이 아니라 주님의 것이기 때문에 주님의 뜻과 영광을 우선적인 목적으로 삼아야 한다. 둘째, 심령이 진실하고 근엄해야 한다. 셋째, 직무를 수행하는 데 근면 성실해야 한다. 넷째, 그리스도의 집을 통솔하는 데 공명정대해야 한다.
② 사려 깊은 일꾼으로서
플라벨은 사려 깊은 분별력이 필요하다는 측면에서, 우리의 임무가 무엇보다도 잘 수행되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 임무를 잘 수행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성도들의 영혼 속에 주님을 아는 지식이 견고히 세워지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목사는 영혼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 필요를 채우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청교도들에게 회중에 대한 연구는 말씀 연구와 더불어 필수적이었다. 그래서 사용하는 ‘단어 선택’도 신중해야 한다고 했다. 진리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말들을 삼가야 한다. 청교도들은 학문 과시에 대해, “학문이 성경 연구에는 필요하나 강단에서는 그것을 과시해서는 안 된다”라는 사무엘 루터포드의 말에 동의했다. 듣기 좋은 말이 아니라 심령을 관통하는 말을 해야 한다.
또한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키기 위해 설교자들은 열정적인 자세를 잃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전하는 진리가 듣는 이들의 심령 속에서 살아 역사하도록, 먼저 그것을 자신에게 적용하고 나서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의 열정으로 힘을 다하여 호소해야 한다(빌3:18 참고). 마지막으로 사려 깊은 목회적 자세를 가진 목사로서 위로부터 은혜가 임하도록 도움을 구하는 기도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 청교도들이 기도의 사람이었다는 것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