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1-10-26 16:06
기독교 윤리적 측면에서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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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웹섬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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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책임

우리가 사는 사회가 바르고 좋은 사회가 되기를 바라는 것은 모든 시민이 바라는 바이며 그리스도인이 바라는 바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이 사실상 주 예수께서 재림하시기 전까지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안다. 사람들의 심령이 악하므로 주께서 재림하셔서 세상을 심판하시고 악인들을 제거하시고 의의 세계를 만드시기 전까지 세상에는 불의와 불법이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오직 우리 주 예수께서 다시 오실 때 온 세상의 모든 것이 회복될 것이다. 사도행전 3:19-21,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또 주께서 너희를 위하여 예정하신 그리스도 곧 예수를 보내시리니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거룩한 선지자의 입을 의탁하여 말씀하신 바 만유를 회복하실 때까지는 하늘이 마땅히 그를 받아 두리라.” 요한계시록 21:5, “보좌에 앉으신 이가 가라사대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가라사대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사는 세속사회가 주의 재림 때까지 조금이라도 바르고 좋은 사회가 되기를 바라며 그것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러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사회에 대해 가지는 책임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세속 국가의 통치자들에게 복종해야 한다. 로마서 13:1-2, 4-5,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리는[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림[거스름]이니 거스리는[거스르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 “그는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네게 선을 이루는 자니라. . . . [그는]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위하여 보응하는 자니라. 그러므로 굴복하지 아니할 수 없으니 노를 인하여만 할 것이 아니요 또한 양심을 인하여 할 것이라.” 베드로전서 2:13-14, “인간에 세운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복하되 혹은 위에 있는 왕이나 혹은 악행하는 자를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를 포장(褒奬)[장려]하기 위하여 그의 보낸 방백에게 하라.” 베드로전서 2:17, “왕을 공경하라.”

이 말씀들에 의하면, 우리는 세속적 통치자들에게 복종해야 한다. 그들이 가진 권세는 하나님이 주신 것이므로 우리가 그들에게 복종치 않는 것은 하나님을 거스르는 것이 된다. 그들은 하나님의 사자라고 불린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들을 존중하고 복종해야 한다. 사회에 통치자들을 두신 것은 하나님의 일반적 은혜이다. 이러한 은혜 때문에 세속사회는 너무 급격하게 부패되거나 타락지 않으며 하나님의 허락하신 기간 동안 어느 정도 그 질서가 유지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나는 법령을 공포할 때, 우리는 그보다 더 높으신 하늘에 계신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해야 하기 때문에 그들의 법령에 복종할 수 없고 그것을 저항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바로의 명령을 거절했던 히브리 산파들처럼(1:17), 아합 시대에 선지자 100명을 굴에 숨기고 떡과 물을 먹였던 궁내대신 오바댜처럼(왕상 18:4),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금신상에 절하지 않았던 다니엘의 세 친구들처럼(3:16-18), 사자굴에 던지울 줄 알면서도 여전히 그의 방에서 예루살렘을 향해 창을 열어 놓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도했던 다니엘처럼(6: 10), 예수의 복음을 전하지 말라는 유대인 공회의 명령에 불복종했던 사도들처럼(4:19-20) 행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때에도 우리는 오직 합법적, 비폭력적 방법으로 저항해야 한다. 잠언 24:21, “여호와와 왕을 경외하고 반역자로 더불어 사귀지 말라.” 또 부득이한 경우, 성도는 다른 곳으로 피신할 수 있다.

둘째로, 우리는 세속적 통치자들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디모데전서 2:1-2,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한 중에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니라.” 이 말씀은 바벨론에서 포로생활을 하는 유대인들에게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해 주신 말씀과 동일하다. 예레미야 29:7, “너희는 내가 사로잡혀 가게 한 그 성읍의 평안하기를 힘쓰고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라. 이는 그 성이 평안함으로 너희도 평안할 것임이니라.” 우리는 우리나라와 통치자들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세속적 통치자들을 위해 세금을 내어야 한다. 불법적인 탈세는 그리스도인에게 옳지 않은 일이다. 로마서 13:6-7, “너희가 공세를 바치는 것도 이를 인함이라. 저희가 하나님의 일군[일꾼]이 되어 바로 이 일에 항상 힘쓰느니라. 모든 자에게 줄 것을 주되 공세를 받을 자에게 공세를 바치고 국세 받을 자에게 국세를 바치고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며 존경할 자를 존경하라.” 주께서는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일을 부정하지 않으셨다. 마태복음 22:21,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나라와 세상 나라의 두 영역에서 살고 있고 그 두 영역에서 해야 할 의무를 다해야 한다.

넷째로, 우리는 세속사회의 개선을 위해 다음 몇 가지의 일들을 실천해야 한다. 첫째, 전도하는 일이다. 성경이 보이는 사회 개선의 근본적 방법은 심령의 구원을 통해서이다. 인간의 본성은 심히 부패되어 있어 치료 불가능하므로(17:9) 단지 어떤 강압적 법규나 최선의 교육 등으로 개선되지 않는다. 사람은 오직 하나님이 주시는 거듭남을 통해서만 죄성을 극복할 수 있다. 그러므로 전도는 사회의 개선에 대한 최상의 성경적 대답이다. 잠언 16:6은 사람이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인하여 악에서 떠나게 되느니라고 말한다.

둘째, 모범을 보이는 일이다. 성도는 말과 행위로 세상 사람들에게 의와 선과 진실의 본을 보여야 한다. 마태복음 5:14-16,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디모데전서 3:7, “[장로는] 외인에게서도 선한 증거를 얻은 자라야 할지니.” 기독교가 진리 운동이고 새 생명 운동일진대, 그리스도인들은 세속사회 속에서 빛으로, 모범된 인격자들로 나타나야 한다.

우리는 정치, 경제, 법률, 과학, 교육, 신문 방송, 예술 등 직업의 각 분야에서 모범을 보임으로써 우리가 책임 있는 윗사람일 경우 직접적으로 혹은 우리가 아랫사람일 경우 간접적으로 다른 이들에게 선한 영향을 끼쳐야 하며 또 기회 있을 때마다 다른 동료들을 겸손히 설득하며 그들의 양심에 호소함으로써 사회 개선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셋째, 사회의 개선을 위한 합법적 일들에 참여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사회의 법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사회적 악을 제거하고 사회를 개선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성도 개인이 하는 것을 의미하고 교회가 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교회와 국가는, 그 구성원이 서로 중첩되지만, 그 성격과 존재 목적과 기능이 엄격히 다르다. 요한복음 18:36,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와 구주로 믿는 자들의 모임이며 예배와 영적 성장과 전도의 임무를 가진다(4:24; 4:12; 28:19). 그러므로 국가가 교회의 활동들에 간섭해서는 안 되듯이, 교회도 국가의 활동들에 관여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교회가 단체로서 세속정치에 관여하는 것은 성경이 가르치지 않는 바일 뿐 아니라 주께서 성경에 가르치신 교회의 본분에서 이탈하는 행위라고 본다. 교회는 단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의 진술대로, “비상한 경우들에 겸비한 청원의 방식으로 혹은 정부의 관리들로부터 요구된 경우에 양심의 만족을 위해 충고의 방식으로”(31:5) 국가와 관계되는 세속적 사건들에 대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교회가 단체로 세속정치에 관여하는 것은 옳지 않지만, 그리스도인 개인이 세속정치에 참여하는 것은 오히려 바람직한 일이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나 소명감을 가진 정치가, 국회의원, 공무원, 법조인 등으로서 그리스도인은 국가나 세계의 정의와 평화를 증진시키기 위해 정당하게 활동할 수 있다. 여기에, 단지 물질적 여유나 육신적 행복이나 출세 등의 근시안적 목표를 넘어서 고상하고 원대한 꿈과 비전을 품는 그리스도인 인재들이 요청된다.

물론, 사회 개선을 위한 참여는 혁명이나 과격한 폭력적 방법으로 이루어져서는 안 될 것이다. 혁명이나 폭력적 방법은 악하며 사회의 발전을 보장하지 못하고 오히려 혼란만 초래할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시민으로서 그가 속한 사회가 허용하는 합법적 방법을 사용해야 한다. 사회의 법이 허용하는 서명 운동이나 성명서 발표나 합법적 시위, 선거에의 참여 등이 필요하다. 사회 개선은 매우 점진적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우리는 인간 본성의 개조 없이는 사회의 개선이나 사회 정의가 실현되기 어렵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인내와 여유를 가져야 한다. 구원받은 성도들의 모임인 교회 속에도 불완전이 있다면 세속사회 속에서 온전함을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실상, 하나님을 모시지 않는 자들에게 참되고 온전한 도덕성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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