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4-10-13 11:32
이사야서(13장 ~ 23장) 열방의 나라들을 향한 예언
인쇄
 글쓴이 : 웹섬김이
조회 : 118  

이사야서: 열방의 나라들을 향한 예언 (13장 ~ 23장)


이번 섹션은 유다의 주변에 있는 열방의 나라들을 향한 예언과 심판에 대한 경고입니다. 이사야는 앗수르, 바벨론, 블레셋, 모압, 다메섹, 구스, 애굽, 에돔, 아라비아, 두로 등 유다 주변의 나라들에 대한 예언적 메시지를 선포합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하나님은 유다 주변의 이방 나라들을 하나님의 백성은 북 이스라엘과 유다를 징계하기 위해 사용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한계를 넘어서 그의 백성을 잔인하게 학대했습니다. 그들은 비인간적이고 무자비했으며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조롱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들을 불로 벌하셨고 결국 멸망케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열방의 나라에 형벌에도 불구하고 이사야는 온 땅이 유다의 축복에 참여할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23장 ~ 24장).

바벨론의 멸망 (이사야 13장)

이사야 13장을 시작으로 이사야는 열방에 대해 예언합니다. 심판이 하나님의 집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 합당하므로 여호와께서 먼저 이스라엘과 유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제 여호와께서는 바벨론을 시작으로 열방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이사야는 유다가 바벨론 제국 멸망(기원전 586년) 되기 거의 100년 전인 기원전 685년경에 선지자 사역을 마쳤습니다. 이 예언 당시 바벨론은 빠르게 부상하는 국가였고 확실히 앗수르 제국을 넘어서는 나라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역사를 주관하시는 여호와께서는 바벨론에 심판이 오기 수백 년 전에 그들의 교만에 대한 심판을 말씀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참으로 의로운 분이시기에 이스라엘 주변의 악한 나라들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바벨론을 비롯한 이방 나라들은 이스라엘과 유다를 대적하는 국가였으며, 하나님께서는 적들에 대한 복수를 선포하시며 그분의 백성을 향한 그분의 사랑을 보여 주셨습니다.

여호와의 날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13:9) 이사야는 이제 바벨론 제국에 대한 가까운 심판의 날과 궁극적으로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에 완성될 마지막 심판의 날의 성취를 동시에 예언적으로 선포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날은 성경에서 약 26번 사용되는 중요한 문구입니다. 그것은 시간적으로 단 하루의 심판 날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그의 일을 바로잡으시는 심판의 시기를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마치 사람이 세상을 주관하는 사람의 날같이 보여지지만, 주님이 그의 뜻과 심판을 집행하시는 그의 날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죄인들을 멸하시며, 세상의 악에 대해 벌을 내릴 것입니다. (11) 죄악이 관영하여 궁극적인 심판을 받을 때가 다가오는 바벨론과 세상을 예언 적으로 동일시하는 것은 성경에 일관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사야가 바벨론의 심판의 환상과 그 악에 대한 온 세상의 심판을 예언 적으로 동일시하며 선포하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운 것은 아닙니다. 바벨론은 성경에서 287번 언급되어 예루살렘을 제외한 다른 어떤 도시보다 더 많이 언급됩니다. 바벨론은 유프라테스 강에 위치하고 있는 도시로 홍수 직후 (창 11:1-10), 하나님에 대한 조직적인 적대감을 나타내는 문명의 중심이었습니다. 바벨론은 후에 유다를 잔인하게 정복한 제국의 수도였고, 유대인에게 모든 악의 본질, 잔인함, 하나님 백성의 원수, 그리고 지속적인 육신의 정욕과 탐욕의 모형이 되었습니다. 바벨론이라는 이름은 조직적인 우상 숭배, 신성 모독,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박해와 관련이 있습니다.

바벨론은 맹수에게 사로잡힌 노루와 같이 될 것입니다. (14) 바벨론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의 모습은 마치 사자에게 쫓기던 노루가 사로잡혀 완전히 삼켜지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에 정복하기 위해서 메데 사람 (페르시아)를 일으킬 것입니다. (17) 이 예언이 바벨론 제국이 앗수르 제국을 패배시키고, 초강대국이 되기 수십 년 전에 선포되었고, 심지어 메대가 바벨론에 대항하여 그들을 정복하기 훨씬 이전에 주어졌음을 통해서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며, 세상의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곳에는 결코 사람이 살지 않게 될 것입니다. 한번 정복되어 멸망하게 될 고대 도시 바벨론에는 다시는 사람이 거주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고레스가 바벨론을 정복했을 때 그는 도시를 황폐화시키지는 않았습니다. 성벽은 기원전 518년까지 그대로 남아 있었으나 서서히 황폐화되어 주후 7세기 무슬림에 의해 정복될 때까지 인구가 급격히 줄어들면서 오늘날까지도 버려진 장소가 되었으므로 이사야의 예언은 성취되었습니다.

바벨론과 사단의 멸망 (14 장)

이사야 13장은 바벨론에 닥칠 심판으로 인한 황폐함과 우울함이 가득했습니다. 바벨론은 유다의 대적이었기 때문에 그들에 대한 모든 심판은 이스라엘에 대한 자비의 표현이었습니다. 따라서 이사야는 바벨론에 대한 심판의 선포와 함께 여호와께서 선택하신 이스라엘에게 자비 베푸실 것이며 여전히 그들을 사랑하실 것입니다. 자신의 땅으로 그의 백성들이 돌아올 것이며, 그의 백성들의 회복에 대한 약속도 강조합니다. 바벨론 사람들은 대부분의 유다의 사람들을 강제로 추방했기 때문에 그들이 약속의 땅으로 돌아올 귀환의 약속은 소중했습니다. 이 약속은 이스라엘이 70년간의 바벨론 포로 생활을 마치고 그들의 땅으로 돌아왔을 때 일부 성취되었습니다. 이방인들도 함께 그의 백성과 함께 할 것입니다. 다시 모이고 회복된 이스라엘은 이방인들도 그들과 함께 거하며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볼 수 있도록 초대될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그들의 압제자들을 다스리게 될 것입니다.

바벨론이 무너질 때에 기쁨이 충만할 것입니다. (14:3-8) 여호와께서 당신의 슬픔과 당신의 두려움과 당신이 섬기도록 만들어진 고된 속박에서 쉬는 날을 주실 것입니다. (3) 여호와께서는 믿는 이스라엘에게 진정한 안식을 주실 날을 선포하십니다. 그들은 슬픔과 두려움과 힘든 속박에서 안식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회복의 날에 바벨론 왕의 패배와 약함이 드러나고 이스라엘은 기뻐할 것입니다. 이 예언이 이사야 13장의 맥락에서 연결 됨에 따라 이사야가 예언적 성취의 두 가지 측면을 염두에 두고 있음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첫째, 바벨론 제국과 그 왕에 관한 즉각적이고 부분적인 성취입니다. 두 번째로는 온 세계의 바벨론 적 특성을 가진 나라와 그 왕인 사탄에 대한 먼 훗날의 궁극적인 성취입니다.

학대하던 자가 어떻게 멈출 것인지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4) 하나님께서는 여기서 바벨론 제국과 함께 영적 바벨론의 왕인 사탄이 어떻게 멸망하게 될 것인지 알려 주십니다. 그의 압제가 그치고 여호와께서 악인의 지팡이와 통치자의 홀을 꺾으실 날이 올 것입니다. 분노와 함께 여러 민족의 사람들을 멸망시키는 바벨론을 멈출 수 있는 나라가 없었으나, 하나님만이 그들의 폭주를 멈출 수 있습니다. (6) 바벨론 왕과 그와 같은 특성을 가지고 있는 영적 바벨론의 왕인 사탄은 모두 열방의 백성들을 다스리고 억압하는 잔인한 통치자였습니다. 그러나 한때 핍박을 하던 그들은 사라지고 고통을 받았던 사람들은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온 땅이 안식하고 고요하며 심지어 노래를 부르기까지 합니다. 바벨론 왕의 멸망을 나무들도 기뻐합니다. 이것은 문자 그대로 바벨론의 왕에게 해당됩니다. 바벨론 왕은 전쟁을 위해서 연료와 목재를 취하기 위해서 이스라엘과 레바논을 수천 그루의 나무를 벌목하게 했습니다.

지옥은 바벨론의 멸망에 흥분하고 있습니다. (9) 지옥 자체는 바벨론 왕을 만나는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그렇게 많은 사람을 학대하던 사람이 이제 스스로 고통당하는 곳에 떨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문자 그대로 바벨론 왕과 영적 바빌론의 왕 모두에게 해당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탄이 지옥으로 떨어질 운명임을 우리가 알기를 원하십니다. 그는 패배자이며 확실히 이 세상의 왕이나 지옥의 군주도 아닙니다. 사탄은 어둠의 지하 감옥인 지옥에 떨어지게 될 것이며 궁극적인 죄수로서 영원히 지옥의 형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 지옥은 그를 받아들이며 기뻐할 것입니다!

‘너도 우리 같이 연약하게 되었느냐 너도 우리 같이 되었느냐?’ (10) 그가 지옥에 갔을 때 바벨론의 왕은 자신이 세상에서 아주 큰 존재라고 생각했지만 단순한 사람이라는 것이 드러났습니다. 또한 영적 바벨론의 왕이 지옥에 가면 그가 단지 피조물에 불과한 존재라는 것을 보고 모두가 놀라게 될 것입니다. 종종 우리는 사탄의 지위와 능력을 과대하게 부풀리곤 합니다. 사탄은 단순한 피조물이며 결코 하나님의 맞상대가 아닙니다. 바벨론 왕과 사탄의 화려함은 무너질 것이며, 구더기가 그들의 아래에 퍼지고 벌레가 그들을 덮을 것입니다. (11)


계명성(루시퍼)의 몰락 (사 14:12-15)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12) 여기서 선지자 이사야는 바벨론 왕을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계명성은 아침 별 또는 낮 별을 의미하며, 하늘에서 밝게 빛나는 물체를 나타냅니다. 한때는 밝고 찬란하게 빛나는 바벨론의 왕이 이제 하늘에서 떨어져 땅에 찍혔습니다. 근거리와 먼 성취 모두에게 말하는 여기서도 이사야는 가까운 미래와 먼 미래를 동시에 예언적으로 선포하고 있습니다. 문자 그대로 바벨론 왕은 그 시대의 사람들 사이에서 밝게 빛나다가 마치 사람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 같이 완전하게 몰락하고 타락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하늘에 살면서 훨씬 더 극적으로 타락한 훨씬 더 밝게 빛나는 존재가 있었습니다. 영적 바벨론의 왕인 사탄이었습니다.

네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음이여... (12) 사실 하늘에서 사단의 떨어지는 것은 네 단계에 걸쳐서 일어나며, 이것은 그의 마지막 네 번째 타락을 의미합니다. 사탄은 영광스러운 존재에서 타락한 존재로 떨어졌습니다. (겔 28:14-16) 이것이 예수님께서 누가복음 10:18에서 사단이 하늘에서 번개처럼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고 말씀하셨을 때 관한 것입니다. 이것은 이미 일어난 사단의 타락 중에 유일한 단계의 사건입니다. 사단은 하늘나라에 접근할 수 있는 존재였지만 (욥 1:12, 왕상 22:21, 슥 3:1), 땅으로 떨어져 더 이상 하늘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제한될 것입니다. (계 12:9). 또한 사단은 천 년 동안 땅으로부터 바닥이 없는 무저갱의 구덩이로 처박힐 것입니다. (계 20 : 1-3). 마지막으로 여기 이사야 14:12에서 언급했듯이, 사단은 무저갱에서 꺼내져서 영원한 불못으로 던져지게 될 것입니다. 이곳이 바로 우리가 일반적으로 지옥이라고 알고 있는 곳입니다. (계 20:10) 아침의 아들은 루시퍼가 타락하기 전에 있었던 그의 영광, 아름다움, 영예의 칭호입니다. 아침의 아들 계명성은 영광스러운 존재였습니다.

바벨론 왕의 교만과 자기 의지는 다섯 가지 ‘내가 하리라’라는 진술에서 강력하게 표현됩니다. 이것이 자기중심적이고 자기 집중적인 삶의 본질이다. ‘나는 하늘에 올라..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 지극히 높으신 분처럼 될 것입니다.’ (12-13) 우리는 이 진술에서 사단이 자신을 하나님보다 높이려는 욕망이 아니라 동료보다 자신을 높이려는 욕망을 봅니다. 이 구절에서 볼 때 사단의 욕망은 하나님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다른] 별 위에 있는 가장 높은 천사로 존경받고, 하나님 곁에 있는 사람이 받을 영광과 관심을 받는 것입니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보다 높기보다는 동등한 대우를 받기를 원했습니다. 모든 피조물 중에서 가장 높고 영광과 존귀 면에서 하나님과 동등하기를 원했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려는 계획은 결국 인간을 천사보다 우위에 둘 것이기에 사단은 천사의 3분의 1을 자신의 반역에 동참하도록 설득하여 하나님의 뜻을 대적하였습니다. (계 12: 3-4, 12:7, 계 12:9). 이를 통하여 인간에 대한 사단의 현재 전략을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죄와 반역을 조장하여 인간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가리고, 인간이 하나님이 아닌 자신을 섬기게 하여,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뜻과 그 영광을 파괴하는 것입니다. 자신을 높이고 자화자찬하는 사단의 열망에도 불구하고 그는 전혀 높아지지 않을 것입니다. 자신을 스스로 높이는 교만한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사단은 무너지고 멸망하게 될 것입니다. 사 14:18-23 단락에서 이사야는 문자 그대로 바벨론 왕에 대해 더욱 초점을 맞추어 이야기합니다. 타락한 바벨론 왕의 시체는 잘려진 나뭇가지처럼 말라지고 버려 질 것입니다. 반면에 풍부한 열매를 맺을 이새의 그루터기의 가지와는 참으로 대조적입니다. (11:1) 바벨론은 완전히 파괴되고 멸망하게 될 것입니다. 바벨론을 향한 심판이 행해질 때 그의 심판의 손에서 벗어날 자가 없을 것이며, 남은 자와 그의 후손들 아무도 남아있지 않을 것입니다.

사 14:24-27에서 앗수르에 대한 다가오는 심판을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앗수르를 깨뜨릴 것입니다. 앗수르 군대가 유다를 침공했을 때 강력하게 이 일을 행하셨습니다. 왕하 19:35에서 강력한 앗수르 군대의 침공으로 멸망에 위기에 직면한 유다를 하나님은 주님의 천사를 보내셔서 하룻밤에 185,000 명의 앗수르 군대를 멸망시켜 그들을 구원하셨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세우신 목적은 아무도 취소시킬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항상 그의 목적을 이루 십니다. 그의 계획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뜻과 목적을 온전히 신뢰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블레셋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사 14:28-31) 역사 속에서 이스라엘과 블레셋 사람들 사이에는 끊임없는 전쟁이 있었는데 하나님은 여러 번 블레셋을 이스라엘이 불순종과 거역을 심판하기 위한 몽둥이와 같이 사용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과 유다가 겸손해질 때 하나님은 블레셋 사람들이 영광을 누리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이것은 블레셋을 향한 하나님의 예언 적 경고입니다. 이스라엘과 유다가 멸망할지라도 그들의 고통을 그들은 기뻐해서는 안되며, 블레셋을 향한 심판이 중단되었다고 생각해서도 안됩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모두 흩어질 것이고, 하나님의 심판은 임할 것입니다.


모압에 대한 경고와 장차 임할 심판 (15장-16장)

모압 백성은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된 후 딸들이 아버지 롯을 술에 취하게 하고 근친상간의 관계에서 태어난 아들입니다 (창 19:30-38). 모압 사람들은 이스라엘의 남동쪽 평원, 현대 요르단에 정착했습니다. 때때로 모압 사람들은 이스라엘의 큰 적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을 저주 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예언자 발람을 고용 한 사람은 모압 왕 발락이었습니다 (민수기 22장-25장). 사사 시대에 이스라엘을 압제 한 사람은 모압의 왕 의 글론이었습니다 (삿 3:12-30). 사울과 다윗 시대에 이스라엘은 모압을 장악했지만 그 후에 이스라엘의 왕들은 그들을 항상 이스라엘의 통치 아래 두지 못했습니다.

롯이 아브라함의 조카이기 때문에 그들은 이스라엘과 먼 친족의 관계였습니다. 이 때문에 하나님은 신명기 2:9에서 이스라엘에게 모압을 멸망시키고 그들의 땅을 빼앗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왕인 다윗의 외할머니 룻은 모압 출신이었고, 다윗은 그가 사울에게서 도망쳤을 때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모압 왕의 보호에 맡겼습니다 (삼상 22:3-4). 이러한 이유로 이사야가 모압에 대한 다가오는 심판을 설명할 때 더욱 슬픔과 공감대를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한밤중에 모압의 ‘알’이 황폐해지고 파괴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압의 중요 도시들에 대한 심판을 선포하십니다. 그들은 이방 신전인 바잇과 디본 산당에 올라가서 그들의 신들에게 보호해 달라고 애걸할 것입니다. 그들은 베옷을 입고 심한 통곡으로 울 것입니다. 이 침략으로 인해 모압에 큰 고통과 슬픔이 있을 것입니다. 푸른 풀이 시들었습니다. (15:6) 아름다운 모압의 평원은 멋진 목초지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의 심판 아래 푸른 풀이 시들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얻은 재물을 가지고 버드나무의 시내를 건너며 피난민이 되어 도망할 것입니다. 그들의 대적들이 모압의 모든 경계에 퍼지며, 모든 사람들에게 고통이 임할 것입니다. 모압 국경 주변의 모든 사람들은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봅니다. 모압의 심판에서 탈출 한 자들에게 하나님은 사자를 보내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향한 심판에 종지부를 찍으실 것입니다.

땅의 통치자에게 어린 양을 드리라 (16:1) 는 것은 모압이 예루살렘에 공물을 다시 가져와서 하나님께 복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왕하 3:4-5에 묘사되어 있는데, 한때 이스라엘에 공물을 바쳤던 모압 왕 메사는 이스라엘의 아합 왕이 죽었을 때 더 이상 공물을 받치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이사야는 모압에게 이 공물을 다시 가져올 곳을 권고합니다. 이사야는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는 모압의 무력하고 혼란스러운 상태에 대한 강력한 그림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들은 둥지에서 버려진 방황하는 새와 같이 아무런 보호를 받지 못할 것입니다. 그들의 유일한 의지는 예루살렘과 그 왕에게 다시 복종하는 것입니다.

모압이 심판을 받는 것을 지켜보는 이사야가 유다에게 증거합니다 (16:3). 여기에서 이사야는 그들을 향한 동정심으로 유다의 통치자들에게 모압의 도망자들을 보호해 줄 것을 간청합니다. 그의 큰 동정심은 아마도 모압과 다윗 왕가 사이의 관계성 때문일 것입니다. ‘쫓겨난 자를 숨기며 도망한 자를 발각시키지 말며...’(3) 하나님은 유다가 심판을 받는 모압의 피난처이자 보호처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세상의 사람들의 보호처와 은신처가 되어 주어야 할 하나님의 사람들의 사명입니다. 우리는 피난하는 자, 도망치는 자들을 받아들이고 결코 그들을 배신하지 않을 은신처가 되어야 합니다.

나의 쫓겨난 자들로 너와 함께 있게 하되… (4) 유다는 모압의 도망한 자를 받아들이라는 권고를 받았습니다. (3) 이제 4절에서는 모압은 유다의 쫓겨난 자를 받으라고 말씀합니다. 이사야 16: 4-5의 이 말씀은 적 그리스도의 분노를 피해 도망하는 유대인들의 피난처가 될 모압의 마지막 시대의 예언일 수 있습니다. 적 그리스도의 분노에서 도망친 이스라엘은 모압과 같은 피난처를 찾을 것입니다. (계 12:6, 계 12:13-14) 압제하는 자들이 땅에서 사라질 때까지 유다는 보호될 것입니다. 그 마지막 때에 메시아의 보좌가 세워질 것이며 메시아 자신이 그 보좌에 앉을 것입니다. 그의 통치는 공평하고 의로울 것입니다. (5)

하나님의 심판에서 모압은 고통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사 16:6-8) 우리는 모압의 교만에 대해 들었습니다. 바벨론이나 앗수르 제국이 교만에 빠지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모압과 같이 작고 약한 나라가 교만하다는 것은 참으로 이상합니다. 그러나 아무것도 없는 작은 자라도 그 마음은 한없이 교만하고 우월감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을 모압의 예를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이 교만은 예레미야 48:1-13에 나오는 심판의 예언에서도 언급됩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나라를 심판하실 이며, 그들은 통곡할 것입니다. 모압 사람들의 교만으로 인해서 하나님은 그들을 무너뜨릴 것이며, 그들이 가진 모든 소유와 자만심을 파괴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포도나무들을 마르게 할 것이며, 모압 사람들은 통곡할 것입니다. 이사야가 모압에게 임할 심판을 예언하고 있지만 그는 그들의 멸망을 결코 기뻐하지 않습니다. 그는 이방 나라들의 멸망을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이사야는 모압으로 인해서 심하게 아파서 내 마음이 모압의 수금처럼 소리를 발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11) 모압이 고통 속에 피할 길을 찾기 위해서 이방 신들의 산당을 찾아 그들을 위해서 봉사하고 기도할지라도 그 우상들이 기도에 응답하거나 그들을 구원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들은 헛된 곳에서 구원의 길을 찾고 있을 뿐입니다. 이사야는 재난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 멸망 중에 사람들이 잘못된 길을 향하는 것을 보면서 그들에게 닥칠 고통을 알고 있었습니다.

‘삼 년 내에 모압의 영화와 그 큰 무리가 능욕을 당할지라 (14)’ 삼 년 안에 이사야가 주님의 말씀을 대언하여 모압에게 심판이 임할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심판이 모압을 겸손하게 할 것입니다. 모압의 영광은 소멸될 것입니다. 이 예언의 말씀이 언제 이루어졌는지 역사적으로 검증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러나 앗수르의 사르곤 왕은 기원전 715 년에 아라비아 지역을 점령하기 위한 대규모 전쟁을 벌였으며, 그 가운데 모압을 황폐화시켰을 것을 역사적 사료를 통해서 추정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왜 심판의 시기를 알려 주셨을까요? 그것은 모압에 대한 경고이자 그들의 겸손한 회개에 대한 초대였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인 이스라엘의 죄를 다루셨듯이 이방 나라들의 죄 또한 다루신 다는 것을 확신시켜주십니다.


아람과 이스라엘에 대한 경고 (17 장) 

다메섹은 더 이상 도시가 아닐 것이며, 파괴된 더미가 될 것입니다. 아람의 수도인 다메섹은 고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 중 하나였지만 다가오는 아람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은 그것을 단지 폐허 더미로 축소시킬 것입니다. 이스라엘과 아람은 유다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이 너무나 친한 친구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아람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동시에 북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을 선포하십니다. 왕하 15:29는 이 예언 어떻게 성취되었는지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날에 사람들은 창조주를 바라보고 그들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을 존경할 것입니다. 이처럼 심한 심판을 받는 가운데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에 대한 겸손한 존경심으로 반응할 것입니다. 심판에서 하나님의 목적 중 하나는 우리의 초점을 우리의 우상과 그분 대신에 우리가 신뢰했던 것들로부터 돌이키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 목적이 북 이스라엘을 향한 예언과 그 성취를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들의 부강한 도시들은 버림받은 가지와 같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때 하나님은 그들이 의지하고 숭배하는 모든 잘못된 것들을 제거하실 것입니다. 이방인들이 섬기는 우상의 신전제단, 나무 형상, 향 제단, 심지어 그들의 강한 도시조차도 보호받지 못할 것입니다. 그들의 유일한 여호와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들의 수확은 폐허가 될 것입니다. 이스라엘에 대한 여호와의 심판의 한 측면은 그들의 수고를 헛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들은 작물을 심고 추수를 위해 열심히 일할 것이지만 그들의 수확은 폐허가 될 것입니다. 이것은 주님의 심판의 가장 파괴적 측면 중 하나 일 수 있습니다. 학개 1:6은 이 말씀에 대한 좋은 예가 됩니다. 당신은 많이 뿌렸으나 적은 수확만을 얻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충분한 음식이 없고, 옷을 입지만 따뜻하지 않으며, 소득을 얻어 가방에 넣지만 구멍이 있는 곳에 넣는 것과 같아 모두가 새어나가 버립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이러한 심판을 내리신 이유는 구원의 하나님을 잊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면에서 이것은 큰 죄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당신을 창조하셨기 때문에 당신의 구원의 하나님을 잊는 것은 죄입니다. 그가 당신의 구원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분을 잊으면 구원을 잊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다른 나라를 사용하여 아람과 북 이스라엘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들은 멈출 수 없는 거센 홍수처럼 그들에게 다가올 것입니다. 그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뜻 안에서 옳게 행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심판하는 도구로 그들을 사용하신 것은 아니며 그들이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에서 면제될 것이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하나님은 죄인들을 사용하여 다른 죄인들을 심판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심판 중에도 하나님은 항상 자비를 보이십니다. 하나님은 한동안 악인들이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심판하도록 허용하실 것이지만, 이스라엘을 공격하는 자들을 그분의 공의로 또한 꾸짖으실 것입니다.


구스(에디오피아)에 관한 말씀 (18장)

이사야 시대에 에티오피아는 이집트를 지배하고 있었고, 앗수르 제국의 주요 경쟁자였던 세계 강대국이었습니다. 유다는 그 두 제국 사이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유다는 앗수르와 에디오피아 사이에서 누구를 의지할 것인지를 항상 고민해야 했습니다. 기원전 715 년 샤바코(Shabako)라는 이름의 에티오피아 사람이 25대 애굽을 장악했습니다. 에티오피아의 지배는 기원전 633년까지 계속되었습니다. 배를 물에 띄우고 그 사자를 수로로 보내며… (2) 이 장면은 앗수르에 대항하여 유다 및 주변의 나라들과 동맹을 맺으러 오는 에디오피아 대사의 모습을 묘사하는 것입니다. 에디오피아 대사가 유다를 앗수르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키라고 초대할 때, 그들은 유다에게 대사를 빠르게 에디오피아로 돌려보내달라고 요청합니다. 에디오피아 사람들은 유다가 앗수르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켜 에티오피아와 이집트와 동맹을 맺었다는 소식을 듣고 싶어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에디오피아 사람들의 동맹과 도움을 거절하셨습니다. (사 18:3-6) 왜냐하면 그는 앗수르 인들을 더 잘 다룰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앗수르에 대항하여 그들의 연합 군대를 소집하기를 원하셨다면 그것을 위해서 깃발을 들거나 나팔을 불었을 것입니다. 그는 그것을 완벽하게 하실 수 있고 때가 되면 그것을 할 것입니다. 다른 어떤 나라를 의지하는 것이 아닌 유다는 여호와 하나님을 신뢰해야 했습니다!

‘그는 가지를 베며 퍼진 가지를 찍어버려…’(5) 하나님께서는 앗수르를 가지치기 하실 수 있습니다. 그는 앗수르 군대를 완전히 멸망시켜 산의 독수리들과 땅의 짐승들을 위한 먹이로 남기실 것입니다. (6) ‘그 때에.., 만군의 여호와께 드릴 예물을 가지고…’(7) 이사야는 메시아가 다스리는 그날에 에디오피아 사람이 와서 여호와를 경배하고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이 있는 곳 시온 산으로 예물을 가져올 날을 선포합니다. 이스라엘의 대사들이 에디오피아, 혹은 앗수르와의 동맹에 대한 소식을 전하는 대신 에티오피아 사람들이 와서 시온 산에서 예배를 드리는 날이 올 것입니다.


애굽에 대한 예언적 경고와 말씀 (19장 - 20장)

여호와께서는 빠른 구름을 타고 애굽으로 오실 것입니다. 애굽은 고대 세계의 강대국 중 하나였으며 이스라엘의 바로 남쪽에 위치하여 이스라엘이 항상 경계해야 하는 제국이었습니다. 여러 번 애굽은 이스라엘의 적이었고, 때로는 이스라엘의 피난처였으며, 이스라엘에 경건하지 않은 동맹을 제공했습니다. 이 장에서 주님은 애굽에 대한 예언을 선포합니다. 애굽의 우상들은 그의 면전에서 흔들릴 것입니다. 애굽은 많은 다른 신들을 숭배하는 것으로 유명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심판의 손길을 통해 많은 다른 신들을 두드리실 것입니다. 이사야 시대에 애굽만큼 미신과 더러운 우상 숭배에 사로잡힌 나라는 지상에 없었습니다. 미이라, 고양이, 개구리, 악어, 도마뱀 등등 모든 것이 그들의 숭배에 대상이 되었습니다.

‘각기 형제를 치며 이웃을 칠 것이요…’(2) 이사야는 애굽에 다가오는 내전을 예언하는데, 이는 간접적으로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손길이었습니다. 이사야 시대가 얼마 지나지 않아 애굽은 12개의 여러 왕국으로 나누어졌고 분열의 역사를 통해서 잔인한 전쟁이 지속되었습니다.

한 나라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때, 종종 그들의 지도자로부터 건전한 조언과 지혜를 제하시고 헛되고 어리석은 자들의 조언을 받고 선택하도록 버려 두십니다. 또한 그의 심판이 임할 때 잔인한 왕이나 지도자들을 보내서 그들을 다스리게 합니다. (4) 하나님은 두 가지 방법으로 그들의 지도력을 통해 국가를 심판하실 것입니다. 유능한 리더십을 제거하고, 잔인하고 억압적인 통치자를 보내는 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저주이자 심판입니다. 강은 낭비되고 말라 버릴 것입니다. (5) 나일강은 이집트의 농업과 경제의 핵심이었습니다. 심한 가뭄을 겪거나 수위가 낮아지는 것은 이집트인들의 삶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고통받는 노동자들은 외칠 것이며, 어부들도 슬퍼할 것입니다. 그들은 물에 그물을 퍼뜨리는 어부들을 시들게 할 것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그의 손을 흔들었기 때문에 애굽 사람들은 공포에 질려 반응할 것이며 두려움에 떨 것입니다. (16) 유다는 이집트에게 공포의 대상이 될 것입니다. 이것은 대 반전입니다. 수천 년 동안 애굽의 힘은 유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유다가 애굽보다 더 강해질 날을 예언하셨습니다. 애굽은 여호와를 경배하고, 여호와의 위업을 기념할 것입니다. 애굽이 압제를 당할 때, 그들은 그들의 압제자들 때문에 여호와께 부르짖을 것입니다. 그러면 그분은 그들에게 구세주와 전능 한 분을 보내셔서 그들을 구원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심판이 무엇이든 그분의 소망은 사람들이 회개하고 그분께 돌아와서 그들이 치유되고 회복되는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애굽, 앗수르는 함께 세 가지 중 하나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애굽, 앗수르 사이에 평화가 있을 날이 올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애굽에서 이스라엘을 통해서 앗수르로 가는 고속도로가 있을 것이며, 그들 사이에 자유롭게 무역과 여행을 할 수 있는 평화와 번영의 시대가 있을 것이며, 그날에 주님은 세 나라를 모두 축복하실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구원과 축복이 열방으로 확대되고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애굽과 앗수르도 하나님의 구원을 위해서 부르실 것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항상 그의 기업입니다. 그곳에서 그는 휴식과 집을 찾습니다. 그의 백성 이스라엘은 그의 기업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새 언약의 백성인 교회를 위해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인지, 성도들 안에서 그의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인지 알 수 있도록 기 도한 것처럼 (엡 1:18) 하나님의 백성은 그의 기업이며 영광입니다

20장에서 이사야는 애굽과 에디오피아를 신뢰하지 말 것을 권고합니다. ‘앗수르 왕 사르곤이 군대장관 아스돗으로 보내매 그가 와서 아스돗을 쳐서 취하던 해…’ (1) 이것은 앗수르 군대가 블레셋 도시를 정복 한시기를 설명합니다. 앗수르에 대한 이사야의 예언은 앗수르의 승리에 대한 실제적인 역사로 이루어졌다는 구체적인 증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기원전 711 블레셋 사람들은 이스라엘의 이웃이자 가시였습니다. 블레셋의 도시인 아스돗의 멸망으로 이스라엘은 분명히 우리가 다음 차례이며, 그들은 보호가 절실히 필요하다고 느꼈을 것입니다.

네 허리에서 베옷을 벗고 발에 신발을 벗을찌니라…(2) 이사야는 베옷으로 된 겉옷, 즉 애도의 옷을 입었습니다. 이제 하나님은 그에게 베옷을 벗고, 신발을 벗으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자신의 선지자들이 그들이 직면한 문제에 대해서 더 진지하게 고려하도록 사람들의 마음을 일깨우기 위해 그들의 눈에 보이는 표징을 행동으로 보이도록 하셨습니다. 이사야가 벗은 몸과 벗은 발로 행한 것이 옷을 전혀 입지 않은 나체 상태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대신, 그는 관습적인 내복만을 입은 상태로 행했습니다. 마치 속옷이나 잠옷만 입는 것과 같습니다. 이를 통해서 하나님이 주시고자 하는 메시지는 완전한 가난과 굴욕이었습니다. 이사야가 입은 속옷 차림에 신발이 없이 행하는 상태는 가장 가난하고 궁핍한 삶을 표현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사야는 애굽에 대한 예언적 증거를 위해서 여호와의 명령에 따라 3년 동안이 가난하고 겸손한 옷을 입었습니다. 그것은 이집트에 대한 메시지였습니다. 앗수르 왕이 애굽인들을 포로로 끌어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앗수르 인들 애굽인을 포로로 끌어갈 때 그들을 벗겨 내고 모욕했습니다. 이것은 모두 애굽이 당할 수치에 관한 예언입니다. .

하나님께서 에디오피아와 애굽을 심판하실 것이 확실한 때, 유다가 앗수르로부터 보호받기 위해 그들을 바라보고 의지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었는지 분명히 알 것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유다가 두 개의 강력한 제국 (이집트와 앗수르) 사이에 갇혀서 어느 쪽도 신뢰할 수 없는 코너로 몰아가셨습니다. 사방 어디에도 그들에게 탈출구는 없었습니다. 이사야 19 장에 나오는 애굽의 부흥과 회복에 대한 영광스러운 약속 때문에, 유다는 애굽을 신뢰하려 했을지도 모릅니다. 언젠가 그들은 모두 주님께 나아갈 것입니다. 그러나 드라마틱 한 이사야의 애굽을 향한 3년간의 예언적 선포는 애굽을 의지하는 것이 얼마나 헛된 일인지 유다에게 보여줍니다.


이사야 21 : 바벨론, 에돔, 아라비아에 대한 경고

해변 광야에 대한 경고라 (1) 바벨론 대평원은 호수와 습지로 나누어져 있었는데, 바벨론을 ‘해변 광야 (혹은 바다 광야)’라고 불렸습니다. 엘람과 메대는 페르시아 민족의 고대 이름입니다. 후에 페르시아 제국은 바벨론 제국을 정복하게 되는데, 이사야는 그들의 군대가 바벨론을 정복하기 위해서 행진하는 것을 예언적으로 보았습니다. 바벨론 사람들의 마음은 진동하고 두려움과 고통으로 떨었습니다. (4) 바벨론이 함락되었도다 함락되었도다! (9) 파수꾼들은 외칠 것입니다. 이 극적인 장면은 메대-페르시아 제국이 바벨론을 정복했을 때 성취되었습니다.

두마는 세일 산지에 거하고 있던 에돔 왕국의 또 다른 고대 이름이었습니다. 에돔 사람들은 야곱 (이스라엘)의 형제 에서의 후손입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남동쪽 땅에 정착했으며 때로는 이스라엘의 적이었습니다. 에돔에게 혼란과 어둠의 날이 임할 것입니다. 파수꾼에게 울부짖는 강력하고 극적인 장면을 사용하여 이사야는 에돔에 닥칠 심판과 공포의 그림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아라비아도 심판을 피하지 못할 것입니다. (사 21:13-17) 이사야는 아라비아에 닥칠 공격으로 인해서 고통 당하는 난민들의 모습을 묘사합니다. 칼과 활로 공격하는 전쟁의 고통에서 도망쳤기 때문에 그들은 목이 마르고 먹을 양식이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아라비아를 향한 이 공격은 곧 임할 것입니다. 일 년 내에 그들이 누리던 영광이 다 소멸하게 될 것입니다.


이사야 22장: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

이사야는 희락의 도시에 대해 슬퍼합니다. 언덕 위에 있지만 더 높은 언덕에 둘러싸여 있는 세계의 계곡에 한복판에 위치하고 있는 예루살렘에 관한 말씀입니다.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백성들과 선지자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의 중심지였기 때문에 ‘이상 골짜기’(1)라고 불립니다. 즐겁게 떠들던 예루살렘을 보면서 이사야는 사악한 사람들의 소음인가, 아니면 기쁨의 표현인가?”(2)라고 묻습니다. 예루살렘에 살해당한 사람들은 전쟁에서 칼로 죽임을 당하지 않았습니다. 예루살렘이 바벨론 사람들에게 정복되었을 때 유다 사람들은 전투에서 용감하게 싸우다가 죽은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대부분 도시의 포위 공격으로 인해서 굶어 죽거나 도망치다가 죽었습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퍼지는 역병으로 인해 죽었으므로 이는 참으로 불명예스러운 죽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사야는 슬피 통곡하고 있습니다. (4) 우리는 보통 예레미야를 눈물의 선지자로 알고 있지만, 이사야 또한 하나님의 백성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심판이 보고 눈물로 통곡하며 울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사야는 이상 중에 유다를 멸망시키기 위해서 다가오는 군대를 보지만, 여호와께서는 그들을 구원해 주시지 않습니다. 곤경과 고통의 날에 이사야는 화살과 병거로 가득 찬 군대가 예루살렘을 공격하는 것을 이상 중에 보면서 바벨론 사람들이 결국 예루살렘을 멸망시킬 것을 예언합니다. 골짜기에 병거가 가득할 것이며 기병들은 성문을 둘러싸며 공격하지만 여호와께서 그들을 구출하지 않으실 것이다. (사 22:5-7) 예루살렘은 다가오는 전투를 준비하기 위해서 헛된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사 22:8-14) 그들은 낮은 웅덩이의 물을 모았습니다. 예루살렘이 바벨론의 공격에 직면했을 때, 그들은 전투와 포위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성벽을 강화하고 물을 공급받을 방법을 확인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유다의 보호막을 제거할 것이기 때문에 이것 중 어느 한 가지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예루살렘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일은 그들의 마음을 여호와께로 돌이키는 것이었지만, 그들은 창조주 하나님을 바라보지도 존경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은 예루살렘을 공격할 준비를 하는 대신에 겸손한 회개로 여호와께 마음을 돌이켜야 했지만, 그들은 겸손하게 주님을 찾는 대신 자신들이 준비한 것에 대한 헛된 확신을 가지고 먹고 마시며 방탕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이 죄악 때문에 예루살렘을 위한 속죄는 없을 것입니다. 용서받을 수 없는 이 죄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무시하고 여호와 앞에서 겸손하고 회개하는 것을 거부하는 죄입니다. 예루살렘은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 해야 할 필수적인 일을 제외하고는 모든 일을 하고 있었으며, 그들의 유일한 구원의 길인 여호와를 거절했기 때문에 그들을 위한 속죄가 없을 것입니다.

셉나는 히스기야 왕의 청지기였습니다. (왕하 18:18, 사 37:2). 그는 히스기야 왕의 수석 조수 중 한 명이었고 국고를 관리하는 높고 명예로운 직분을 가졌지만 자신의 유익과 영광을 위해서 그것들을 사용했습니다. (22:15-19) 이 당시 유다는 선한 왕인 히스기야가 다스리고 있었기 때문에 왕이 아닌 그다음 권력의 사람인 셉나에게 정죄 판결이 내려졌습니다. 주님은 이 교만한 사람 셉나에게 ‘너는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네가 무엇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느냐?’ 고 물으시며, 너는 정말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고 아무런 존재도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사야는 유다와 예루살렘의 백성이 유배될 것이라고 예언했지만 셉나는 믿지 않았습니다. 그는 화려한 무덤을 예루살렘에 지으며 나는 결코 유배 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공처럼 큰 나라로 던질 것입니다. 거기에서 그는 죽을 것입니다. 그의 집무실에서 그는 쫓겨날 것입니다. 셉나는 명예와 영광을 구했지만 찾지 못했고, 자신이 만든 값비싼 자신의 무덤에 묻히지도 못했으며, 하나님은 그를 유배 중에 죽게 하셨습니다.

힐기야의 아들 엘리아 김은 히스기야 왕의 또 다른 관리로서 왕상 18:18과 사 36:3과 같은 구절에서 언급됩니다. 하나님은 그를 나의 종이라고 부르십니다. 셉나와 엘리아 김은 모두 히스기야의 종이었지만 셉나의 마음은 이기적인 야망과 영광을 향했고, 엘리아 김의 마음은 여호와를 향했습니다. 엘리아 김이 여호와의 종으로 그를 섬겼기 때문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큰 권세를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다윗 집의 열쇠를 그의 어깨에 얹을 것입니다.


두로의 멸망에 대한 예언 (23장)

이스라엘 북쪽에 있는 두로는 고대 세계의 위대한 해양 세력인 포에네시아의 주요 도시 중 하나였습니다. 해운의 중요한 항구이자 중심지였기 때문에 두로는 상업과 물질주의의 대명사였습니다. 두로는 “바다의 바벨론”이었습니다. 뛰어난 항구와 선원 덕분에 그들을 큰 무역대국을 세웠습니다. 두로는 내륙 도시와 섬 도시의 두 부분으로 나뉘어 진 도시였습니다. 내륙 도시는 이사야가 예언 한대로 앗수르 인과 바벨론에 의해 정복되었습니다. 이 섬 도시는 그 후인 기원전 332년 알렉산더 대왕에 의해 정복되었습니다. 두로는 이스라엘에게 혼합된 가방이었습니다. 두로의 히람 왕은 성전 건축과 다른 프로젝트를 위해 다윗과 솔로몬에게 큰 목재를 공급해 주었습니다. 히람은 솔로몬 선원들에게 이스라엘이 바다로 무역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두로는 이스라엘에게 최악의 통치자 중 한 명인 이스라엘 왕 아합의 아내 이세벨을 주었습니다.

이사야는 두로에서 온 선원들을 통해서 두로의 항구가 파괴되고 멸망하였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 소식을 들을 때, 두로의 보고에 그는 통곡하고 괴로워합니다. 두로는 돈이 지배하는 도시였습니다. (사 23:6) 무역하는 상인이 왕과 같은 대우를 받았고, 가장 영예로운 존재였습니다. 지도자나 명예로운 사람이 되려면 왕실의 유산을 받거나 선하거나 정직한 사람 일 필요는 없었습니다. 오직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사업의 성공뿐이었습니다. 두로가 큰 성공을 거두었기 때문에 그들은 자부심과 자만함이 가득했습니다. 그러나 만군의 여호와께서는 두로를 심판하여 겸손하게 하실 것임을 이사야가 선포하였습니다.


두로의 멸망 (23:10-14)

두로는 앗수르와 바벨론 모두에게 패할 것입니다. 그들은 두로를 심판하기 위해서 하나님에 의해 사용되었습니다. 두로는 70년 동안 잊혀 질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너무나 정확하여 두로가 심판으로 인해 잊혀 질 정확한 연도를 정하셨습니다. 이사야는 그의 시대에 잘 알려진 노래를 인용하면서 하나님께서 정하신 70년이 끝나면 두로가 다시 기억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두로는 다시 하나님께 사용될 것입니다. 세상에서 얻은 그들의 이익과 보수가 여호와를 위하여 구별될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두로가 절실히 구한 재물은 주님을 위해서 사용될 것입니다. 


 
 

일반형 뉴스형 사진형 Total 3,522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3474 여호수아서 - 책별로 시간순서를 따라 배경(co… 웹섬김이 10-13 131
3473 이사야서(13장 ~ 23장) 열방의 나라들을 향한 … 웹섬김이 10-13 119
3472 이사야 (11장-12장): 책별로 시간 순서를 따라 … 웹섬김이 10-13 131
3471 이사야 (1장-10장): 책별로 시간 순서를 따라 … 웹섬김이 10-13 132
3470 열왕기 상 - 책별로 시간순서를 따라 배경(cont… 웹섬김이 10-13 126
3469 다섯 가지 “열쇠” 웹섬김이 10-13 130
3468 성경을 여는 열쇠 '언약' (모세의 언약… 웹섬김이 10-08 172
3467 성경을 여는 열쇠 '언약'(아브라함의 … 웹섬김이 10-08 184
3466 성경을 여는 열쇠 '언약' (노아의 언약… 웹섬김이 10-08 169
3465 성경을 여는 열쇠 '언약' 웹섬김이 10-08 193
3464 성경을 여는 'KEY' 노트 요나서 웹섬김이 10-07 197
3463 메데 왕 다리오와 바사 왕 고레스와의 관계 웹섬김이 10-04 236
3462 느부갓네살 왕과 나보니두스와의 관계는? 웹섬김이 10-04 246
3461 세번째 높은 사람~~ 웹섬김이 10-04 221
3460 다니엘 시대(바벨론-메대 바사)의 주요 왕들 웹섬김이 10-04 229
3459 바벨론 제국의 이해 웹섬김이 09-29 227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