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을 여는 열쇠 '언약'
1. 언약이란?
성경 전체의 이야기를 이해하는 열쇠가 바로 언약이다. 성경에는 역사 기록되어 있지만, 역사책이 아니다. 창조와 진화를 논하는 과학책도 아니다. 성경은 하나님에 관하여 기록된 신학책이다. 그러므로 성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저자이신 하나님의 관점에서 읽어야 한다. 하나님은 언약을 세우시고, 그 언약대로 행하심으로 자신을 나타내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세우신 언약을 이해할 때, 그가 행하실 일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은 언약의 약속대로 행하시는 신실한 분이기 때문이다.
언약이란 무엇일까? 성경의 언약은 두 당사자 혹은 두 사람 간의 구속력 있는 약속이다. 두 사람 간의 상호 의무를 이행하는 매우 엄숙한 약속이다. 일상생활에서 언약의 예를 많이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서로 간에 구속력 있는 약속을 맺는 것을 위해서 흔히 사용하는 단어는 계약(contract)이다. 부동산 계약, 사업상의 계약 등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계약을 맺고 산다. 건물을 계약할 때 당신은 동등한 관계에서 계약 조건을 결정한다. 계약을 맺을 때 당신은 동등한 관계에서 서로 간에 계약의 조건을 결정한다. 각각 서로가 필요로 하는 것을 가지고 협상을 통해 계약을 체결한다.
당신이 집을 지으려 한다고 생각해보자. 당신은 돈이 있고, 건축업자는 기술과 노동력, 재료를 가지고 있다. 당신은 그의 기술과 재료와 노동력을 원하고, 상대방은 돈을 원한다. 그래서 당신은 그가 일정한 가격과 일정한 시간 내에 집을 짓는다는 조건으로 건축업자와 계약을 한다. 계약을 체결할 때 가격과 시간에 관한 조건에 합의를 하고 서명한다. 사인하면서부터 서로 간에 약속을 이행해야 하는 구속력이 생긴다. 그러나 한 쪽이 약속을 이행하지 않으면, 상대방은 계약으로부터 자유하다. 또 다른 종류의 계약은 평화 조약 또는 전쟁이 일어났을 때 이루어지는 휴전협정이다. 보통 그것은 쌍방 간에 조건을 제시하고 협상을 통해 이루어진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계약을 통해 이루려 한다. ‘하나님 저를 치유해주시면, 제가 주의 일을 하겠습니다. 저의 재산을 드릴 테니, 자녀의 문제를 해결해 주세요!’ 등 하나님과 거래를 하려고 한다. 이 것은 계약적인 관계이다. 성경의 언약은 이러한 계약과 큰 차이가 있다. 언약에서는 한쪽 당사자가 모든 조건을 결정하여 제시한다. 그리고 상대방이 그 조건에 동의함으로 맺어진다. 상대방은 언약을 받아들이거나 거부하는 것이다. 언약의 조건을 바꿀 수 없다. 언약은 조건부 일수 있지만, 보통은 무조건 적이다. 언약을 일단 받아들이면, 약한 쪽에서 약속을 어기더라도, 약속을 제시한 쪽에서는 약속을 지킬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성경에 나오는 언약을 볼 때 가장 먼저 ‘조건부(conditional)’ 언약인지 ‘무조건적’(unconditional)인 언약인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조건부 언약이라면 계약에 가깝지만, 조건을 제시하는 쪽에서는 상대방의 약속 준수여부에 상관없이 당사자를 구속하게 된다. 상대방은 약속을 깨어도, 약속을 제시한 자신은 그 약속을 지킨다. 계약과는 상당히 다른 면이 있다.
하나님이 제정하신 성경적 결혼은 언약의 관계로 이루어진다. 하나님께서 결혼을 언약의 관계로 만드셨지만, 오늘날 결혼은 급속도로 계약의 관계로 변해가고 있다. 서로가 원하는 것을 가지고 있는 동등한 두 당사자 간의 합의를 통해서 계약을 맺는다. 오늘날 대부분의 결혼은 계약으로 이루어지고, 그래서 많은 경우 이혼으로 끝나고 있다.사랑이 계속되고, 조건이 변치 않으면 결혼이 유지될 것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헤어진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이혼율이 OECD 국가 중 가장 높다. 불행하게도 기독교인들의 이혼율도 별반 다를 바가 없다. 오늘날 어떤 사람들은 이혼 시 재산을 어떻게 나눌 것인지에 대한 혼전 계약서를 맺는 사람들도 있다.
언약의 관계로 이루어지는 결혼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약속에 대해 신실하게 지킨다. 계약 결혼은 감정과 조건이 바뀌면 언약을 포기하고 배우자를 바꾼다. 심지어 성경을 믿는 기독교인들조차 결혼을 계약처럼 생각하고, 배우자를 바꾸는 상황에 처해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결혼을 계약이 아닌 언약으로 여긴다. 상황과 조건이 바뀌어도 언약을 끝까지 지키는 것이다. 보통 남자들이 주도적으로 언약을 제안하는 것이 관례이다. 그리고 신부의 아버지는 딸을 신랑에게 보냅니다. 신부는 남편의 성을 따라 이름을 바꾼다. 신랑이 언약을 이끈다.
유언도 언약의 개념을 담고 있다. 만일 당신이 유언장을 써서 유산을 누군가에게 주려한다면, 그것은 계약이 아닌 언약을 이루는 것이다. 당신은 더 강한 당사자이다. 당신은 다른 사람에게 줄 유산이 있다. 그리고 그 유산을 어떤 사람에게 주도록 약속하는 것은 당신의 자발적인 의지이다. 당신이 남겨둘 것을 친척이나 친구들과 협상을 하지 않는다. 모든 조건을 당신이 결정한다. 상대방은 여러분이 남긴 유산을 받아들이거나 거부할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은 당신의 의지를 바꿀 수 없다. 당신의 결정에 달려 있다. 히브리서에도 예수께서 자신의 피로 새 언약을 맺으실 때 그가 죽을 때까지는 효력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언급한다. 당신의 유언(will)은 당신이 죽을 때까지 효력이 생기지 않는다. 그래서 피는 성경에 나오는 언약과 관련이 있는 것이다. 피를 흘린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언약을 만드신 분이다. 온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자발적으로 인간을 구속하기로 결정하신 것을 생각해 보면 놀라울 뿐이다. 광대한 우주도 그의 피조물에 불과한데, 우리 인간은 우주 안에 작은 먼지에 불과한 작은 생명체일 뿐인데 말이다. 그 크신 하나님이 작고 연약한 우리와 언약을 맺고 지키신다는 것을 생각할 때 감격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언약을 이루시기 위해서 하나님은 자발적으로 우리에게 자신을 주셨다.
성경은 그가 자발적으로 인간을 향해, 우리를 향해 한 언약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하나님의 계획과 그가 하신 일들을 보게 될 때 모두가 놀라게 될 것이다. 왜 그렇게 해야 할까? 그렇게 해야 할 아무 이유가 없다. 그는 우리를 만들고 우리가 가는 길을 가도록 내버려 둘 수 있었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하나님은 자신의 것들을 인간에게 주기 위하여 스스로를 구속하였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의 상속자로 만들고 싶어 했다. 그러기 위해서 그는 우리와 언약을 맺었다. 인간과 언약의 결혼을 한다는 의미이다. 그가 처음 결혼을 하듯 언약을 맺은 사람은 아브라함, 이삭, 그리고 야곱이다. 놀라운 것은, 비록 하나님이 그들의 신랑이었지만, 하나님은 그들의 이름을 취하셨다. 그리고 그는 아브라함, 이삭, 그리고 야곱의 하나님으로 불려졌다. 하나님은 또한 자신의 이름을 그들에게 주셨다. 아브람에게 하나님은 아브라함이라는 이름을 주셨다. '열국의 아비'라는 의미이다. 열국의 아비는 하나님의 이름이었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아브람에게 주셨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었다. 그는 이스라엘, 승리자라는 이름을 야곱과 그의 후손들에게 주셨다. 승리자의 이름을 주신 하나님은 영원히 이스라엘의 거룩한 분이라고 불릴 것이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깨뜨리고, 그를 떠나 있을 때 하나님은 호세아 선지자를 부르셨다. 그리고 나가서 창녀를 찾아 결혼하라고 말씀하셨다. 호세아는 대답했다.
“저는 선지자입니다. 창녀와는 결혼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는 결국 순종하여 창녀 고멜과 결혼하였다. 그리고 아이를 출산할 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 호세아야, 그 아이는 너의 아이가 아니다.”
“그럼 어떻게 하죠, 주님?” “그러면 그녀는 길거리로, 저는 선지자 직분으로 돌아가겠습니다. 그리고 세 아이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요?”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호세아, 네가 고멜을 찾아가서, 그녀를 운영하는 포주에게 돈을 주고 집으로 데려와라. 그리고 그녀를 돌보아 주면 좋겠다.”
“주님, 제가 왜 이런 일을 해야 하나요?”
“왜냐하면 고멜이 너에게 하는 행동이 바로 이스라엘이 나에게 행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네가 나의 마음을 직접 겪어보지 않는 한 너는 나의 감정을 이스라엘에게 전달할 수 없을 것이다. 너는 나의 애타는 마음을 내 언약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전해라!”
당신은 호세아서에서 이 모든 스토리를 읽을 수 있다. 하나님은 사람들과 결혼하셨다. 그는 아브라함, 이삭과 야곱, 그리고 이스라엘과 언약결혼을 맺었다. 하나님은 언약을 맺으시며, 그들에게 후손과 축복, 그리고 땅을 약속해 주셨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언약에 관련되어 있다.
우리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이해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인가? 이 세상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어떠한 하나님을 믿고 있는가이다. 우리가 생각으로 만들어낸 하나님은 허상이다. 성경을 통해서 자신을 나타내신 그 하나님을 알고 믿어야 한다. 하나님은 언약을 맺으시고, 그 약속을 반드시 지키는 하나님이다.
성경을 통해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두 단어가 있다. ‘유언’과 ‘증거’이다. 사람들에게 하신 약속이다. 하나님은 전능하시지만, 절대로 할 수 없이 있는데 바로 거짓말이다. 하나님은 약속을 하실 때는 절대로 어기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단지 언약을 맺으실 뿐만 아니라, 그 언약을 지키시는 하나님이다. 그러한 하나님의 성품이 우리에게 흔들릴 수 없는 안정감을 준다. 그러므로 약속한 것들은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다.
아브라함의 후손에게 주신다고 말씀하신 '약속의 땅'은 여전히 아브라함의 후손들에게 속한다고 확신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약속하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오늘날 이스라엘과 그 주변국들의 정치적 상황에서 가장 큰 이슈가 된다. 정치인들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주신 약속의 땅이라는 점을 무시하고, 인도주의적, 국제정치적 측면에서 이 상황을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모든 이슈들 가운데 고려해야 할 가장 중요한 요인은 그 땅은 하나님이 유대인들에게 약속한 땅이고, 하나님은 그 약속을 지키신다는 것이다. 그것은 약속된 땅이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하나님은 그가 하신 언약을 끝까지 지키시는 신실하신 분이기에 우리의 믿음이 된다. 성경에는 하나님이 말씀하신 그의 언약들이 기록되어 있다. 신학자들 간에 다양한 견해가 있지만, 성경에는 다섯 개의 중요한 하나님의 언약이 있다. 그리고 그중 어떤 언약이 현재를 살아가는 기독교인들에게 해당되는 지를 아는 것은 중요하다. 그 언약이 우리의 삶에 영향을 끼치게 되고, 그 약속대로 하나님은 행하시기 때문이다.
조셉 선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