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4-10-04 12:35
메데 왕 다리오와 바사 왕 고레스와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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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웹섬김이
조회 : 235  

메데  다리오와 바사  고레스와의 관계 

메대 제국과 페르샤의 초기 역사

메대(the Medes)는 민족 이름이고 메디아(Media)는 그들이 세운 나라 이름으로 부르고 있다. 메대는 노아의 세 아들 가운데 하나인 야벳의 아들 마대(Madai)의 자손들이 세운 나라로(창 10:2, 대상 1:5), 페르샤와 함께 인도-유럽족(Indo-European)에 속한다. 이들은 페르샤와 함께 메소포타미아와 인도 사이에 놓인 이란고원(高原) 지대에 살았다.

그들은 자신들은 "아리아누"(Arianu) 즉 "귀족들"(nobles)이라고 불렀으며 그들의 나라 이름도 여기에서 유래되어 "아리아나"(Ariana) 혹은 지금의 이란(Iran)으로 1935년부터 불려지고 있다.

이들 메대 족속에 관한 최초의 역사적 기록은 기원전 9세기 중엽인 앗시리아의 살만에셀 III세(859-824 BC) 때부터인데 그 후로는 계속 역사에 등장한다. 이들은 앗시리아의 여러 왕들에 의해 거듭거듭 정복되어 조공을 바쳤고, 북방 이스라엘이 망한 후 포로된 백성들이 앗시리아에 의해 메대의 여러 도시들로 강제로 이주되기도 했다(왕하 17:6, 18:11).

헤로도터스의 기록에 의하면 그 후 기원전 7세기 초에 데이코스(Deikos·혹은 c. 700 - c. 647 BC) 일어나 메대 족속들을 통일하여 왕국을 세우고 엑바타나(Ecbatana) 수도로 정하였다.

데이코스 다음에는 그의 아들 파라오르테스(Pharaortes)가 22 년간(c.647 - 625)다스렸는데, 이 때 그들 남쪽에 있던 페르샤족을 복종시켰다고 한다. 그 후 파라오르테스의 아들인 시악사레스(Cyaxares I)가 즉위하여 약 40년간(c. 625 - c.585) 다스렸는데, 그는 앗시리아를 넘어뜨리기 위해 느브갓네살의 아버지인 바벨론의 나보포랏살과 동맹을 맺어 기원전 612 니느웨를 함락시켰다. 정복한 앗시리아의 영토는 양분하여 티그리스강 동쪽과 북쪽은 메대가 차지하고, 바벨론은 이 자연적인 경계선의 서쪽과 남쪽을 차지했다.

그리고 이러한 동맹 관계를 공고히 하기 위해 왕실(王室)혼인이 이루어져, 시악사레스(1세)의 아들인 아스티아게스(Astyages)의 딸 아미티스(Amytis)가 나보포랏살의 아들 느브갓네살에게 시집가게 되었다.

그 후 시악사레스는 소아시아의 스키디아(Scythians)족을 정복하여, 그 영토를 병합하였으며 기원전 585년에는 리디아와도 접전했으나, 그해 5월 28일 일식(日飾)이 일어나자 서로 전투를 중지하고 강화(講和)하였다.

시악사레스 1세 다음에는 그의 아들 아스티아게스(Astyages)가 즉위하여 약 35년간(c. 585 - c. 550) 다스렸는데 그가 바로 고레스의 외조부라고 전한다. 역사가 헤로도터스에 의하면 아스티아게스는 꿈에 자기의 딸 만다네(Mandane)에게서 강물이 흘러나와 아시아 전역에 넘치는 것을 보고, 이를 경계하여 딸을 메대의 귀족에게 시집 보내지 않고 안산(Anshan) 있는 그의 페르샤의 봉신왕(封臣王) 캄비세스 I(Cambyses I c.600 - 559)에게 멀찍이 시집 보냈다. 이렇게 이루어진 결혼 관계를 통하여 태어난 것이 바로 페르샤의 국부(國父) 고레스 대왕(Cyrus II 558-530 BC)인 것이다.

그리스의 역사가 크세노폰의 기록에 의하면 고레스가 12세 되었을 때, 외조부인 아스티아게스는 딸과 외손자를 불러들였는데 어머니가 귀국한 뒤에도 고레스는 메대에 남아서 외조부에 의해 양육되었다. 고레스의 비범한 재간과 통솔력은 그가 장차 위대한 통치자가 될 것임을 분명히 드러냈다. 한 때 외조부에 의해 고레스를 죽이려는 시도까지 착수되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오히려 고레스에 의하여 도전받게 되었다.

기원전 553 고레스는 종주국(宗主國) 메대에 대해 반기를 들고 외조부 아스티아게스에 도전했다. 처음 두 번은 패했지만, 세 번째 싸움에서 메대의 주장(主將) 하르파구스(Harpagus)가 반란을 일으켜 마침내 550년 고레스는 수도 엑바타나를 점령하는데 성공했고 아스티아게스도 사로잡았으나 선대(善待)하여 저 멀리 카스피해 남쪽의 히르카니아(Hyrcania)의 지방 장관으로 보낸 것으로 전한다.

그러나 본래 메대와 페르샤는 종족도 같고,  왕가가 왕실 결혼으로 긴밀히 관련되어  나라 같았기 때문에 급격한 정변(政變) 없었고,  왕가에서 다른 왕가로 정권이 교체된데 불과했다.

단지 페르샤의 귀족들이 정부 요직(要職)에 대거 진출한 정도였는데 그럼에도 역시 유능한 메대 사람들도 여전히 기용되었다. 고레스는 메대 사람들에게 유화(宥和)정책을 써서 아스티아게스가 죽은 후에 그의 아들 시악사레스 2세(Cyaxares II)를 즉위시켜 메대의 상징적인 왕으로 남아 있게 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메대와 페르샤의 연합군은 바벨론을 침공하여 기원전 539 10 13 고레스의 장군인 구바루(Gubaru), 혹은 희랍어로 고브리아스(Gobryas) 바벨론에 진입(進入)했고, 고레스는 10 29일에 입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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