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배경
아모스가 벧엘에서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을 선포한 지 대략 10년 후인 기원전 750-730년 무렵에 또 다른 선지자인 호세아가 이스라엘의 역사의 무대에 등장했습니다. 호세아라는 이름은 구원을 의미합니다. 여호수아와 예수라는 이름과 동일한 히브리어 어원에서 유래합니다. 책 전체에 걸쳐 호세아는 죄에서 벗어나 주님께로 향하는 구원의 메시지를 들려 줄 것입니다. 아모스 선지자는 여로보암 2세의 통치 기간에 정치 경제적 부강함 속에 우상숭배, 종교혼합주의와 사회의 만연한 불의에 대한 책망과 심판의 메시지를 이스라엘에게 전했습니다. 여로보암 2세의 통치가 끝나갈 무렵, 호세아는 북 이스라엘의 10지파를 위해서 보내진 하나님의 마지막 선지자였습니다. (호세아 1:1) 상대적으로 부강한 시기를 통치하던 여로보암이 2세가 죽고 호세아의 선지자 사역이 마무리 될 무렵이 되면 북 이스라엘은 급격히 몰락해 가게 됩니다. 6명의 왕이 반란과 암살을 반복하며 통치하는 혼란의 시기가 계속되다가, 북 이스라엘은 기원전 722년에 앗수르의 침략에 의해서 완전히 멸망하여 역사 속에서 그 자취가 사라집니다. 불과 이러한 멸망의 시기를 20-30년 앞두고 있는 북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은 마지막으로 한번 더 선지자를 보내셔서 회개하여 멸망의 심판을 피할 것을 호소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몇 세기 전에 엘리야와 엘리사가 처절하게 싸웠던 바알 숭배를 그들은 여전히 지속하면서 그들에게 축복과 번영을 준다고 믿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종교체계는 이방인들이 섬기던 우상숭배와 뒤섞인 혼합주의에 젖어 오직 하나님을 섬기겠다고 약속했던 언약에 대한 신실함을 버린 지 오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 이스라엘은 경제적으로는 부강한 상태였기 때문에, 그들이 이방 나라와 같이 풍요의 신으로 믿고 섬기고 있던 바알과 아세라 숭배를 버리지 않았고, 그들의 삶을 진정 돌보시고 부요케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버렸습니다.
이러한 시기에 호세아는 강한 공의의 어조가 아닌 부드럽고 자비로운 사랑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열 지파가 이제 곧 그의 심판으로 사라지기 전에 주신 하나님의 마지막 호소였습니다. 호세아를 이해하는 핵심단어는 히브리어 단어 ‘헤세드' (חֵסֵד':chesed)입니다 이 히브리 단어를 우리 말로 번역할 수 있는 정확한 단어가 없습니다. 당신이 언약의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을 설명하는 데 사용되는 언약적 개념을 담고 있는 단어입니다. ‘사랑’이라는 뜻이지만 ‘신실함’ 혹은 ’충성됨’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참 사랑은 상대방에게 신실하고 충성된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종종 '인애’ 혹은 '신실함'으로 번역이 되었습니다. 성경에서는 ‘신실함’이 60번, ‘인애’는 9~10 번 사용되었습니다. 그것은 변함없는 사랑과 헌신의 의미를 포함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누군가에게 너무 헌신적이어서 어떤 일이 일어나든 그들을 계속 사랑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늘날에는 사랑의 개념 속에 신실함, 충성됨의 의미를 잃어버려 호세아가 말한 헤세드의 사랑을 이해하기가 어려운 시대입니다. 사람들은 한동안 누군가와 사랑을 즐겼다가 버리고 다른 사람에게 가면서도 여전히 사랑이라는 단어를 가볍게 사용합니다. 그러나 북 이스라엘로 보내진 마지막 선지자인 호세아는 변함이 없이 신실하신 하나님의 ‘헤세드’의 사랑을 외치며 하나님께 돌아올 것을 호소하였습니다. 호세아를 통한 하나님의 마지막 말씀은 이스라엘이 회개하고 그가 심판을 받지 않기를 바라는 매우 부드럽지만 열정적이고 감정적인 사랑의 호소였습니다
- 2. ‘KEY’ 노트
- 1. 호세아 선지자와 창녀 고멜의 이야기 (1장~3장)
처음 세 장은 우리에게 호세아서의 줄거리를 제공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호세아는 창녀 고멜과 결혼하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오늘날도 그렇지만, 그의 시대에 선지자가 되려는 사람인 호세아에게 이 명령은 더욱 충격적인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세 자녀가 있었는데 그 중 적어도 한 명은 호세아의 자녀가 아니었습니다. 고멜은 세 명의 자녀를 낳은 후 다시 이전 직업으로 돌아갔습니다. 호세아는 그녀를 찾아 구애하며 집으로 데려와 다시 함께 사는 생활을 반복했습니다.
그의 첫 아들의 이름을 이스르엘이라고 부르라고 하시는데, 그 두 가지의 의미가 있습니다. 먼저는 ‘흩어지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스라엘은 곧 정복당하여 앗수르에 의해서 포로가 되어 사방으로 흩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이스르엘은 또한 여로보암 2 세를 왕위에 오르게 했던 그들의 왕조의 선조인 예후가 아합의 모든 후손을 학살하여 왕좌를 세웠던 이스르엘 골짜기를 지칭합니다. (왕하 10:11) 하나님은 호세아에게 그의 아들에게 다시 이스르엘이라는 이름을 짓게 함으로 이제는 예후의 왕조와 그의 후손을 심판함으로써 이스르엘에서 아합에게 행했던 일을 그대로 당하게 해주겠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분명히 이것은 여로보암 2세에게 좋은 소식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이스르엘의 피를 예후의 집에 갚으며 이스라엘 족속의 나라를 폐할 것임이니라’ (1:4) 말씀 하신대로, 기원전 752 년 여로보암 2세가 죽은 후 그의 아들 스가랴는 불과 6개월을 통치하고 암살되어 (왕하 15:8-10) 예후의 왕조는 종말을 맞이하게 되었고, 호세아의 선지자 사역이 끝나기 전에 이스라엘은 강력한 앗수르 제국에 패망하여 모든 것이 파괴되고 포로로 잡혀가게 됩니다. (왕하 17:20-23).
두 번째로 낳은 딸의 이름을 ‘로루하마’라고 부르게 하는데, 그 의미는 ‘자비가 없다’는 것입니다. 호세아는 그 딸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듣는 모든 사람들에게 다가올 심판과 포로 생활을 상시 시킬 것입니다. 마지막의 자녀의 이름은 ‘로암미’ 이며 그 의미는 내 백성이 아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버렸으므로 더 이상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라는 것을 깨우치기 위함입니다.
이에 유다 자손과 이스라엘 자손이 함께 모여 한 두목을 세우고 그 땅에서부터 올라 오리니 이스르엘의 날이 클 것임이로다 너희 형제에게는 암미라 하고 너희 자매에게는 루하마라 하라 (1:11, 2:1)
그러나 이러한 심판의 메시지 이후에 하나님은 회복의 약속을 주십니다. 이스라엘을 회복시킬 것이며, 그 날에 유다 자손과 이스라엘 자손이 함께 모일 것입니다. 심판을 의미하는 이스르엘이 위대한 이름으로 바뀔 것이며, ‘로암미’(나의 백성이 아님)는 나의 백성이라는 의미의 ‘암미’로 ‘로루하마’(무자비)라는 이름은 루하마라는 ‘자비’라는 뜻을 가진 이름으로 부르라는 것은 이스라엘을 구속하고 회복시킬 것이라는 그분의 약속입니다.
2 장은 호세아의 아내 고멜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저는 내 아내가 아니요… 저로 그 얼굴에서 음란을 제하게 하고…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저를 벌거벗겨서 그 나던 날과 같게 할 것이요 저로 광야 같이 되게 하며 마른 땅같이 되게 하여 목말라 죽게 할 것이며 (2:2-3)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간음하는 아내로 묘사합니다. 저는 내 아내가 아니라는 것은 관계가 깨어졌음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음란을 제하지 아니하면 그녀를 광야처럼 황무지로 만든다는 것은 이스라엘이 창녀와 같은 음란의 길을 버리지 않으면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경고하는 것입니다.
저가 그 연애하는 자를 따라 갈지라도 미치지 못하며 저희를 찾을지라도 만나지 못할 것이라 그제야 저가 이르기를 내가 본 남편에게로 돌아가리니 그 때의 내 형편이 지금보다 나았음이라 하리라 (2:7)
하나님께서 죄의 즐거움을 허용하실 때 그러한 삶이 얼마나 허무한 것이며, 우리가 주님을 따르며 살았던 때의 삶이 얼마나 행복했던 것인지 깨닫게 됩니다. 이스라엘이 좇아가는 우상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실체를 드러내시기 전까지는 그들에게 매력적으로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을 쫓아가는 삶이 얼마나 공허한 것인지를 깨달을 때 그들은 첫 남편인 여호와께로 돌아갈 준비가 될 것입니다. 계속해서 호세아는 아내 고멜과의 관계를 통해서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말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먹을 양식을 공금해주고 있는 것을 몰랐습니다. 이스라엘이 다른 신들을 쫓아 갈 때에도 주님은 여전히 이스라엘을 위해서 곡식을 위해 마련하셨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에 대한 희생적이고 헌신적인 위대한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가져다가 바알에게 바쳤지만 여호와 하나님은 여전히 그들을 사랑하셨습니다. 호세아가 고멜을 그처럼 돌보고 있었을 때 그녀는 간음하는 다른 남자에게 그것을 보냈습니다. 호세아는 그녀가 쫓고 있는 남자들이 고멜을 살피지 않았으며 그로 인해 그녀는 가난과 누더기 속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호세아는 그들이 있는 집에 찾아가 문을 두 드리고 말했습니다. “나는 그녀의 남편 호세아입니다. 그녀에게 필요한 식료품과 돈을 가져 왔습니다.” 호세아가 떠났을 때 고멜과 그녀의 연인은 그가 바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그 시절에 내가 내 곡식을 도로 찾으며…’ (2:9)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곡식을 주셨고, 그들은 하나님이 주신 것을 바알에게 바쳤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제 그 식량을 없애 실 것이며, 이스라엘이 그들의 필요와 부족함을 느끼면 아마도 그때서야 주님께로 돌아갈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완전히 잊었습니다. 여로보암 2 세 시대에 이스라엘은 큰 번영을 누리면서 하나님이 주신 이러한 번영과 축복을 우상 숭배와 불 경건 한 쾌락을 위해서 사용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들의 번영을 빼앗으실 것입니다.
비로소 저의 포도원을 저에게 주고 아골 골짜기로 소망의 문을 삼아 주리니 저가 거기서 응대하기를 어렸을 때와 애굽 땅 에서 올라오던 날과 같이 하리라 (2:15)
아골은 히브리어로 ‘문제’를 의미하므로 아골 골짜기는 ‘문제의 골짜기’라는 의미입니다. 아간의 죄가 발견되고 심판을 받는 환난의 장소였습니다 (수 7:26).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회복하실 때의 그 회복이 너무나 놀라워서 고난의 계곡을 희망의 문으로 바꾸실 것입니다. 그 때 이스라엘은 어린 시절처럼 그곳에서 노래 할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회복 될 때 그들은 기쁨으로 차고 넘치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과거의 죄의 쾌락과 그로 인한 고통과 공허한 삶에 대한 기억은 잊혀지고 하나님의 참된 행복이 회복됩니다. '
나는 너와 결혼하여 영원토록 함께 할 것이다.' 주님과의 관계가 궁극적으로 회복되면 결코 그 관계는 다시는 깨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 분과의 관계는 의와 정의, 사랑과 자비로 위에 견고하게 회복 될 것이며, 더 깊고 친밀한 관계로 이어져 그들은 하나님을 진정으로 알게 될 것입니다. (2:21)
땅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에 응하고 또 이것들은 이스르엘에 응하리라 (2:22)
‘이스르엘’이라는 이름은 흩어지다는 의미로 심판 때에 이스라엘이 멸망하여 흩어지게 될 부정적인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씨가 잘 뿌려지는 것을 묘사하는 파종하다는 의미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주님은 심판에서 흩어짐을 상기시키기 위해서 사용했던 ‘이스르엘’이라는 단어를 구속하여 영광스런 회복을 주실 것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이제 내가 이스라엘을 열방에게 생명을 줄 씨앗으로 온 세계에 뿌릴 것이다”라는 예언적으로 선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풍요와 축복으로 회복시키실 것이며, 생명의 씨앗이 되어 열방을 축복하게 될 것입니다.
너는 내 백성이라 하리니 저희는 이르기를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하리라 (12)
이스라엘은 주는 나의 하나님이라 고백하고, 그는 이스라엘을 나의 백성이라 부를 때 하나님이 회복의 역사는 완성됩니다. 주님은 당신의 백성을 자신에게로 인도하여 그들과 함께 하시며, 이스라엘을 그의 백성으로 삼으시며 따뜻한 사랑으로 그들을 돌보실 것입니다. 이렇게 심판의 사인으로 주신 호세아의 세 자녀 이름이 이제 완전히 구속되고 회복되어 자비와 은혜와 회복의 증표로 바뀌어질 것이며, 하나님은 그들을 보며 기뻐하실 것입니다.
3장은 남편 호세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다른 신을 섬기고 건포도 떡을 즐길지라도 여호와가 저희를 사랑하나니 너는 또 가서 타인에게 연애를 받아 음부된 그 여인을 사랑하라 하시기로 (3:1)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믿음을 버리고 그를 떠났을 때에도 그들에게 신실했듯이, 호세아에게 고멜을 변치 않고 사랑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호세아는 노예 된 고멜을 돈을 주고 사서 그녀를 집으로 데려 옵니다. 그렇게 명령하신 이유는 그들의 관계를 통해서 하나님과 이스라엘에 살아있는 예와 교훈이 되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고멜은 결국 노예로 팔렸고 호세아는 그녀를 노예의 신분에서 돈을 주고 샀습니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피로 값주고 죄의 노예 된 우리를 산 것에 관한 예표적인 모습입니다. 노예된 고멜을 사서 자신의 품에 둔 것은 다시 관계를 회복하여 함께 살고자 하는 것이듯, 하나님이 우리를 죄에서 구속하여 구원하시는 것은 우리와 영원토록 함께 거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정치적 영적 파멸로부터 돌아와 여호와를 다시 구할 것입니다. 그들이 주님께로 돌아올 때까지 궁극적인 회복은 없을 것이며, 이 예언은 그리스도께서 그의 성도들과 천년 동안 온 세상을 다스릴 천년왕국(the millennial Kingdom)의 시대에 궁극적으로 성취 될 것입니다. (사 55:3-5, 렘30:9, 겔 34:23-25). 그러나 지금 누구든지 주님께로 돌아간다면 그러한 관계의 회복의 축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신조셉 선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