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 책별로 시간순서를 따라 배경(context)을 이해하며 성경읽기
1. 배경 (Context)
여호수아와 그와 함께 했던 세대들이 약속의 땅의 많은 부분을 정복했지만, 아직 이스라엘이 다 정복하지 못한 개척해야 할 땅들이 있었습니다. 그 지역에 거주하던 블레셋 민족은 호전적인 해양 민족이었고, 갈릴리 북부의 산지에 거주하고 있던 아낙 자손들은 철기로 무장한 전차부대를 가진 강한 민족들이었습니다. 여호수아와 그의 세대의 사람들이 다 죽고, 정복해야 할 땅들은 그대로 버려진 채 이스라엘은 그들 가운데 남아 있는 가나안 거민들의 문화를 따라 점차 우상숭배의 길로 빠져들어 갑니다. 정복하지 못한 가나안 족속들은 그들에게 가시와 올무가 되었으며, 이스라엘은 이방 민족의 죄와 문화에 동화되어져 갑니다. 사사 시대는 이렇게 우상숭배, 불순종과 도덕적 타락이 가득한 암흑의 시기였습니다. 이스라엘이 이러한 영적, 도덕적 타락이 가득하게 된 것은 여호수아와 그의 세대가 죽고 난 뒤 그 다음 세대는 여호와 하나님을 알지 못하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모세와 여호수아 모두 하나님 말씀의 교육을 강조했지만, 그들은 신앙의 교육을 소홀히 하였고, 결국 그 교육의 실패는 자녀의 세대들이 하나님을 떠나 영적으로 어두운 시대 속에 반복적인 불행한 삶을 초래하게 됩니다.
2. 'KEY’ 노트
다음 세대를 위한 하나님 말씀 교육의 실패와 영적 암흑기 (1장 - 5장)
이스라엘 자손이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바알들과 아세라 우상을 섬겼습니다. 하나님께서 진노하셔서 이스라엘의 대적들이 일어나게 되어 그들은 8년동안 종살이를 하게 됩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부르짖으니 하나님은 그들을 위하여 한 구원자로 갈렙의 동생인 옷니엘을 세우시고, 그가 이스라엘의 사사로 있는 40년 동안 이스라엘에 평안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이 다시 악을 행하므로 하나님께서 또 다른 대적을 강하게 하셔서 이스라엘은 그들에 의해 고통받게 됩니다. 고난가운데 이스라엘은 다시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고, 하나님은 다시 사사 에훗, 삼갈을 보내주셔서 이스라엘을 고통가운데서 구원해 주십니다. 그러나 사사들이 죽자 이스라엘은 다 하나님 앞에서 악을 행하게 됩니다. 곧 가나안 왕 야빈이 일어나 철병거의 무기로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학대하자 이스라엘은 다시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합니다. 여사사 드보라는 이스라엘을 학대하던 야빈 왕과 군대 장관 시스라를 믿음으로 물리치고 승리를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찬양이 온 이스라엘의 찬양이 되지는 못하였습니다.
기드온의 삼백용사 (6장 - 9장)
이스라엘 자손이 또 다시 죄악에 빠져들었습니다. 그러나 미디안이 일어나 이스라엘을 억압하고 핍박합니다. 모든 농가는 수탈을 당하고 백성들은 산에 피신하여 굴을 파고 살았습니다. 미디안에 의해서 고통받던 이스라엘은 다시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하나님은 선지자를 보내셔서 내 목소리를 듣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이라고 그들을 깨닫게 하시고 기드온을 부르십니다. 하나님은 미디안을 멸하기 위해 기드온을 격려하시며 그들을 멸하여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것이라고 약속합니다. 그러나 기드온은 너무나 유약한 리더자였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통해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것인지 확인하기 위하여 양피를 내어놓고 양피만 젖고 땅이 젖지 않으면 그렇게 믿겠다고 징표를 구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대로 응답하시자 그는 반대로 땅만 젖고 양피에는 젖지 않게 하시면 믿겠다고 다시 한번 징표를 구합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 중에서도 기드온과 같이 사인을 구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기드온이 자신의 부르심에 대한 사인을 구하는 것은 문맥을 통해서 볼 때 그의 유약한 믿음의 표현이었지 성경이 가르치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는 모델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두려움 많고 유약한 리더십의 모습은 우상을 파괴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은 기드온은 다른 사람의 시선이 두려워 밤에 몰래 그 우상들을 무너뜨리는 모습에서도 드러납니다. 기드온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많은 미디안 군대의 숫자로 인해서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적들의 숫자로 인해서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싸우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미디안과의 전투에 동참하기 위해 모여든 자 삼만 이 천명 가운데 테스트를 통해서 항상 긴장을 늦추지 않고 군인으로서 태도를 잃지 않고 있었던 삼백 명 만을 남겨두고 모두 돌려보내도록 합니다. 총과 칼이 아닌 밤 중에 횃불과 나팔을 들고 나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나갔을 때 하나님이 그들을 위해서 싸우셨습니다. 이스라엘의 300명의 군대가 명령을 따라 나팔을 불 때 미디안 군대가 서로 칼로 치고 싸우게 하여 스스로 자멸하게 하심으로 대승리를 거두게 하셨습니다.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며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면 그 어떤 대적들도 두려워할 것이 없다는 것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기드온의 삼백용사
하나님을 왕으로 모실 마음이 없는 백성들은 기드온을 왕으로 삼으려 하지만 기드온은 너희가 하나님을 왕으로 섬겨야 할 것이라고 거절합니다. 기드온이 죽자 이스라엘은 곧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하나님 대신 바알 신을 섬기게 됩니다. 기드온의 70명의 아들 중에 하나였던 아비멜렉은 자기 형제들을 죽이고, 백성들의 동의도 없이 스스로 왕이 되어 더욱 악행을 저지르지만, 결국 전쟁터에서 여인의 돌을 맞고 자살을 택하게 됩니다. 아비멜렉의 이야기는 하나님께서 악행을 행하는 자를 어떻게 징벌하시는 지를 교훈 해 줍니다.
입다 (11장 - 12장)
입다는 큰 용사로 인정받는 사람이었습니다. 또한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 여정을 마치고 가나안 약속의 땅으로 들어오는 길에 있었던 역사적 사실을 구체적으로 거론하며 암몬 왕의 잘못을 지적할 만큼 역사적인 통찰력을 갖추고 있는 지적인 능력을 겸비한 사사였습니다. 그러나 입다는 전쟁에 승리를 주시면 돌아오는 길에 가장 먼저 자신을 맞이하는 사람을 번제로 바치겠다고 하지 말아야 할 경솔한 서원을 하여 결국 자신의 딸을 제물로 드리게 됩니다.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것은 모세의 율법을 통해서 명백히 금지하신 일입니다. (레 20:2-3, 신 12:31) 그와 그의 딸의 행위가 순교적 신앙의 모델로 생각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또한 입다는 암몬과의 전쟁이 끝난 후에 에브라임 지파의 사람들이 시비를 걸어오자, 암몬을 향한 칼을 형제 지파인 에브라임에게 돌려 4만여 명을 죽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 지도자는 무엇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백성들을 사랑으로 이끌어야 합니다. 지도자가 어떤 사람이 되느냐에 따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축복이 될 수도 재앙이 될 수도 있음을 사사기의 역사를 통해서 봅니다. 계속되는 이스라엘의 우상숭배와 함께 자격 미달의 지도자들의 모습들은 더욱 이스라엘의 진정한 왕을 간절히 찾게 합니다.
삼손 (13장 - 16장)
이스라엘 자손의 악행은 계속되어 이번에 하나님은 블레셋 사람을 일으켜 대적하게 합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악행의 결과로 인해 그들을 대적하는 사람들이 일어나는 것을 깨닫고 죄악을 버리고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원하셨습니다. 삼손의 이름의 문자적 의미는 ‘햇볕 (Sunshine)’ 입니다. 그는 나실 인으로서 금주와 머리카락에 손을 대지 못하는 그 시대에 문화 속에서 엄격하게 구별된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삼손은 하나님의 영이 함께하는 사람이었으며, 초자연적인 힘을 부여 받아 이스라엘의 우상숭배를 근절하고 하나님 만을 예배하고 섬기는 민족이 되도록 인도하기 위해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삼손은 블레셋과의 싸움에서 승리를 거두기는 하지만 이 일의 시작은 그가 사사로서의 임무에 충실해서 행한 일이 아니라, 사사로의 임무를 망각하고 이방 여인을 취하는 가운데 자신의 감정을 절제없이 표출하는 분노 가운데 일어난 사건이었습니다. 육체적인 힘은 강력했지만, 그는 사실 너무나 영적으로 정신으로는 유약한 사람이었습니다. 여인 드릴라의 유혹이 넘어가 금지된 법을 떠나는 순간 하나님의 영은 그를 떠났고 그에게 주어진 초자연적인 능력도 사라졌고 두 눈이 뽑혀 블레셋으로 끌려가 비참한 종말을 맞게 됩니다. 철저히 자신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더 높은 수준의 거룩한 삶을 살았던 나실 인이었지만, 하나님과 이방 여인 사이에 갈등하며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정욕 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자신의 힘을 사용하는 그의 모습은 하나님과 이방 신 앞에서 마음을 정하지 못하던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을 대변하듯 보여줍니다. 비록 삼손은 그의 신실하지 못한 삶으로 비참한 신세가 되었지만, 삶의 마지막 스토리에서 그와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마지막 은혜의 손길을 보게 됩니다. 삼손의 머리카락이 다시 자라나며 초자연적인 힘이 다시 돌아와 블레셋 사람들이 우상숭배 하던 신전의 기둥을 무너뜨리며 삼천 명의 블레셋 사람들과 함께 죽으므로 하나님의 공의에 따른 복수를 그들에게 행하게 됩니다. 이렇게 삼손의 마지막 삶은 이스라엘이 언젠가는 다시 하나님의 은혜로 회복하게 될 희망을 우리에게 보여 줍니다.
영적 도덕적 기초가 무너진 사회 (17장- 21장)
이스라엘 북부에 땅을 분배 받고 정착해 있던 단 지파는 사사 시대에 이스라엘에 만연해 있던 불순종과 우상숭배의 단면을 보여줍니다. 레위 인들은 제사장 지파로써 다른 지파의 십일조에 의해서 생활을 하며 제사장 직을 수행할 수 있었지만, 사사기 시대에는 누구도 율법에 따라 십일조를 내는 사람들이 없어 레위 제사장들이 생계를 유지하기가 어려웠고, 그래서 제사장 직을 온전히 수행하며 하나님을 제대로 섬길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백성을 대표하여 하나님을 섬겨야 할 제사장들이 우상을 가지고 다녔으며, 단 지파에서는 제사장을 하나님의 율법에 따라 임명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임의대로 개인 비서처럼 임명하고 월급을 주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사라지고, 자신들이 행하는 일들이 어떤 의미가 있는 지를 알지도 못한 채,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행하는 시대에서 하나님께서 거하실 성소나 그 성소를 지키고 섬기는 제사장들의 의미 또한 퇴색되었던 것입니다.
이런 이스라엘의 영적인 타락은 사회의 더욱 더 심각하고 무서운 도덕 적 윤리적 타락을 가져오게 된다는 것을 부 도덕하고 부패한 베냐민 지파의 스토리를 통해서 알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한 제사장이 첩을 데리고 베냐민 지파가 차지하고 있던 지역을 지나가는데 밤이 되어도 아무도 그들을 영접해주지 않습니다. 한 노인이 유숙할 곳을 찾고 있던 레위인과 그 첩을 자신의 집으로 영접해 주지만, 그 마을의 비류들이 노인에게 당신의 집에 머물고 있는 나그네를 내놓으라고 협박합니다. 이는 성적인 타락이 극에 달해 동성 간에 성관계를 하겠다고 롯의 집에 들어온 사람의 모양으로 온 천사들 내놓으라고 했던 소돔과 고모라에서 일어났던 일이 사사 시대에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는 베냐민 지파들 가운데서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레위인은 자신의 손으로 직접 자신의 첩을 불량배들에게 내어주고, 그 다음 날 아침까지 성적 학대를 당한 레위인의 첩은 문 앞에 쓰러져 숨을 거둡니다. 레위인은 이를 보고 복수를 위해서 첩의 시체를 열 두 덩이로 나누어 이스라엘의 각 지파에 보냅니다. 기브아의 비류들과 제사장으로의 윤리적 삶을 버리고 오로지 복수심에 불타는 레위인을 율법의 따라 심판하지 못하도록 베냐민 지파의 장로들이 그들을 내어주지 않자 다른 지파들이 하나로 연합하여 베냐민 지파를 상대로 무자비한 살육을 행하여 베냐민 지파가 사라질 위기에 직면하게 됩니다. 모든 지파가 일제히 베냐민 지파에게 자신들의 딸을 결혼시키지 않겠다고 이미 서원을 한 상황에서, 그들은 12지파 중 하나인 베냐민 지파가 멸족되는 것은 막기 위해서 실로 지역의 여인들을 납치하여 남은 베냐민 지파의 육백명의 성인과 결혼할 수 있도록 행하므로, 그들의 잘못한 말과 행동에 대해 하나님께 나와 회개하고 서로 화해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서원을 깨뜨리는 것을 피하면서도 베냐민 지파가 멸족되는 것은 피하는 길을 선택한 것입니다. 이렇게 사사기의 마지막 이야기는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 일어난 일이라는 것을 믿을 수 없는 참혹한 이야기로 마무리됩니다. 우상 숭배를 하며 하나님을 떠난 사람과 사회는 그 결과로 부도덕하고 윤리적으로 타락한 삶을 살게 되며 그 결과가 얼마나 비참한 지를 사사기의 스토리를 통해 보게 됩니다.
3. KEY’ 포인트
다음 세대의 신앙 교육의 실패와 그 결과
하나님의 통치는 그가 택하여 세운 사람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대로 여호수아를 통해서 이스라엘에게 가나안 땅을 정복하게 하셨고, 여호수아 이후의 이스라엘 세대를 통해서 열방을 축복하고 싶어하셨습니다. (창 12:1-4) 그러나 사사기 시대는 여호수아와 그와 함께 했던 하나님을 아는 세대가 모두 죽은 후에,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다음 세대들은 곧 하나님과의 언약을 떠나 우상을 숭배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이제 약속하신 축복의 땅 안으로 들어왔지만, 그들은 주님 안에 있지는 않았습니다. 이처럼 다음 세대를 위한 신앙 교육의 실패는 곧바로 그 세대에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사라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멀리하며 각자 자기들이 좋아 보이는 우상을 따라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가나안 족속의 사람들을 약속의 땅에서 쫓아 내보내라고 하신 이유는 그들이 이방 민족과 함께 거하게 되면 곧 그들과 같이 동화되어질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순종하지 않았고 곧 이방인들의 우상숭배와 문화를 따라 살아가게 됩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과의 언약을 깨뜨리고, 그를 떠날 때마다 대적들이 일어나서 이스라엘을 괴롭힙니다. 이것은 신명기에 이미 묘사되어진 언약을 깨뜨릴 때 일어날 하나님의 심판으로 일어나는 저주의 결과입니다. 그러면 그들은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며 급박한 상황에서 구원해주시길 간청합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사사를 보내어 이스라엘을 위경에서 건져 주십니다. 잠시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지만 이스라엘은 곧 하나님을 떠나 다시 우상을 섬기고, 그러면 또 다른 대적들이 일어나 이스라엘을 공격해 옵니다. 사사기에서는 이러한 일들이 7번이나 반복됩니다. 성경에서 숫자 7은 완전수인데, 그 의미는 사사기를 통해서 이스라엘의 죄에 대한 타협, 우상숭배는 끊임없이 반복되는 그들의 일상이었으며, 반면에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구원을 요청할 때마다 그들의 간구에 응답하셔서 사사를 보내서 구원해 주시는 변하지 않는 신실한 모습을 보여주십니다.
사사기의 악순환: 죄(sin) -> 고통(suffering) -> 간구(supplication) -> 구원(salvation)
왕을 필요로 하는 이스라엘
사사기는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각 그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라는 구절로 마무리됩니다. 그들의 불행한 이야기는 마치 아담과 하와가 에덴 동산에서 모든 축복을 누리며 살았으나, 왕이신 하나님의 말씀과 그의 생각을 따르지 않고, 자신이 보기에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지혜롭게 될 것 같아 보이는 대로 행동함으로 자신과 인류에 저주와 불행이 오게 했던 것과 같이,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권위를 떠나 자신의 원하는 대로 살아온 결과였습니다. 사사 시대에 일어난 비극적인 스토리들은 결국 이스라엘 중에 왕이 없어 모든 사람들이 자신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행동한 결과였다고 사사기의 저자는 결론 짓는 것입니다. 사사 시대는 아직 왕이 없이 지파의 장로들이 각각의 지파를 이끌었습니다. 사사기에 기록된 사건들은 각 지역의 지파에 스토리이며, 그들이 하나님을 떠나 대적들이 그 지파를 핍박하면 하나님은 사사를 일으켜 그들을 구원하셨습니다. 사사 개인의 연약함과 실수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이 있었으며 하나님은 그들을 사용하여 이스라엘의 각 지파들을 구원하셨습니다. 그러나 사사들은 이스라엘의 완전한 구원자의 역할을 행하지는 못했으며, 이스라엘의 근본적인 문제들이 사사들에 의해서 해결되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사사기는 이스라엘의 근원적 문제를 해결하여 그들을 구원할 왕의 등장을 독자들에게 기대하게 합니다. 우리는 ‘누가 그 이스라엘의 왕이 될 것인가?’ 라는 질문을 다음 스토리인 룻기에서 다시 이야기하게 될 것입니다.
신조셉 선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