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신학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들어가기 전에 - 옮긴이의 글
《현대신학의 모험》 저자 아시나 사다미치(芦名定道)는 이번 연재에서 생략하는 제1장 ‘변증법적 신학의 의의’와 제2장 ‘포스트모던이란 무엇인가’를 통해 현대신학을 논하기 위해 ‘역사적 관점’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한다. ‘현대’ 혹은 ‘현재’란, 과거로부터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역사적 전개 과정이기 때문이다. 우선 1장에서 1920년대부터 현재까지 100년 정도 기간을 ‘현대’로 설정한 뒤, ‘변증법적 신학’이 맹위를 떨친 1960년대까지를 전반기로, 이후 시기를 후반기로 나눈다. 그리스도교는 18-19세기에 전개된 ‘근대’ 세계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학문적 기초로서 근대신학’을 형성했다. 프리드리히 슐라이어마허, 알브레히트 리츨, 에른스트 트뢸치로 대표되는 근대 시기 자유주의신학은 제1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변증법적 신학’의 비판에 직면한다. 그리고 이들의 새로운 신학적 도전은 ‘현대신학의 출발점’이 된다.
저자는 “근대 학문이 인식 주관에 의한 지식의 구성을 기반으로 하였던 것(칸트주의에서 구성주의까지)과는 대조적으로, 변증법 신학 운동에서는 인식 주관(인간)에 대한 신학적 앎의 대상이 우선적으로 주장되었으므로, 인간에게 계시가 맞추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계시에 맞추는 것”이라는 설명을 덧붙이며 변증법적 신학의 특징을 요약하였다. 대표적으로 “바르트의 신학적 앎”을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재발견이자, 은밀하게 인간학으로 변질된 근대신학을 넘어서려는 시도”라고 평가한다. 동시에 토마스 토렌스가 펼친 주장에 의지하면서 “바르트가 시도한 것은 자연신학의 단순한 부정이 아니라 오히려 신학적으로 정당한 방법에 기초하여 자연신학을 확립하는 것, 즉 자연신학의 변혁”이었다고 강조하였다. 변증법적 신학이 현대신학의 출발점이었는데도, 루돌프 불트만 신학의 사례에서 잘 드러나듯, 여전히 근대적 앎의 방식이 계속해서 작용하고 있었으므로 “문제는 결코 단순하지 않다”고 진단한다. 그리고 ‘상관의 방법’을 제시한 폴 틸리히 신학은, 자유주의신학과의 연속성을 유지하면서도 변증법적 신학 운동의 진리성에 접속하려 한 현대신학 전반기의 중첩된 상황을 잘 보여준다고 설명한다.
한스 큉이 칼 바르트를 ‘신학의 포스트모던적 패러다임의 창시자’로 평가한 대목을 소개한 저자는, 제2장에서 이후 전개된 ‘포스트모던’ 시대 신학에 대한 역사적 의미를 고찰한다. ‘전환기’이자 ‘혼돈으로 치닫는 길’이었던 1960-1970년대에 바르트, 불트만, 에밀 브루너 등이 한꺼번에 서거하면서 신학의 전환은 주제에서부터 점점 명확해졌다. 과학기술 발달로 생명윤리나 환경윤리, 종교적 다원성, 전쟁과 폭력 등 다양한 주제가 급부상한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문제(=위기)를 신학적으로 적절히 대처할 만한 이론적 혹은 실천적 틀이 부재한 가운데 현대신학에서는 연구자와 실천가가 제각각의 다양한 시각과 맥락에서 개별적으로 거대한 문제에 맞서야 했고, 바로 여기서 현재에 이르는 혼돈의 신학적 상황이 발생했다”고 지적한다. 이른바 “현대 세계의 격동성”은 “갑자기 출현한 것이 아니며, 역사 속에서 깊이 잠복해있던 동향”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이러한 상황에서 그리스도교와 신학은 어디에 서서, 어느 곳을 향해 나아가야 할지를 묻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저자는 “그리스도교는 기본적으로 거대서사 혹은 거대담론에 의존하며, 근대적 지식이나 근대신학의 특징인 방법론적 특징인 방법론적 엄밀성, 체계의 구축과 같은 것은 포스트모던적 조류에서 가치나 유효성을 크게 상실하였고, 이는 곧 조직신학의 위기라고 말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진단한다. “포스트모던의 유행 속에서 체계성을 포기한 조직신학이 과연 조직신학이 될 수 있을까? … 체계적 사유의 후퇴와 함께 신학적 논의가 각론화하고, 신학적 지식이 분산화의 늪에 빠져있”지만, “근대는 여러 파편을 드러내면서도 기본적으로는 아직 건재하며, 현대신학도 그 총체에 있어서는 근대신학, 근대 그리스도교와의 연속성을 견지하고 있으며, 조직신학의 위기도 실은 포스트모던이 주요 원인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근대 자체의 내부 현상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말한다. 또한 존 캅의 말을 인용하면서 1970년대 이후 현대신학의 내실은 “신학의 쟁점(=대립축) 변화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포스트모던에서 신학을 양분하는 것은 정통과 이단, 교파적 차이 등이 아니라 오히려 성·가족·경제·개발·정치·환경·생명·과학기술 등의 논점이다”고 지적한다. 21세기에 접어들면서 그 동향은 “더욱 혼미해지고 있으며, 새로운 문제적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현대신학을 논할 때 중요한 것은 ‘위기는 동시에 기회’라는 점이며, 위기가 깊다는 것은 그동안 전혀 수행하지 못했던 근본 질문을 처음부터 차근차근 되묻도록 이끌며, 그리스도교 사상을 철저히 재구축하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면서, 희망의 불씨를 살려보고자 한다. 마지막에는 “현대라는 시대의 카이로스에 눈을 돌림으로써 그것은 가능하며, 현대신학은 그런 의미에서 다름 아닌 하나의 ‘모험’이다”고 결론을 내린다.
이상 1960년대를 기준으로 나뉘는 현대신학 전반기(변증법적 신학의 시대)와 후반기(혼돈의 포스트모던 시대)의 역사적 고찰을 기초로 하여, 저자는 다음의 글을 통해 ‘현대신학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제3장)라는 물음에 대해 나름의 관점과 방법론을 제시하고 있다.
‘인류’라 칭하는 모든 것을 포괄하는 역사적 그룹이 밀집된 계속적인 역사라는 의미로서의 인류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폴 틸리히, 《조직신학 제3권》 중에서)
이번 장에서는 현대신학의 역사적 개관(원서 1-2장의 내용)과 관련하여, 그리스도교 역사의 서술 방식, 신학 사상의 지역성 혹은 다원성, 패러다임론의 적용 가능성 등과 같은 현대신학을 논하는 방법과 관점에 대하여 설명하려 한다.
그리스도교 역사의 서술 방식
‘그리스도교에 대한 역사 이해는 어떻게 가능할까?’ ‘그리스도 신학의 역사 서술은 어떻게 해야 할까?’와 같은 물음들은 이 책의 범위를 넘어서지만, 현대신학의 방법론적 논의라는 점에서 보더라도 결코 무시할 수 없다. 먼저 이 물음에 대한 보충 설명으로 시작해보자.
19세기에 근대 역사학이 성립된 이후, 역사학은 국가사·정치사·민중사·심성사 등 다양한 시각과 방법으로 전개되어왔다. 그리스도교사 연구도 이러한 성과에 근거를 둔다. 근대 역사학에서 전제로 삼는 것은 인간과 관련한 여러 현실을 역사의 생성 과정 안에서 설명하고 이해하려는 ‘역사주의’이며, 그 영향은 현대에까지 이른다. 근대 이후 등장한 학문적 차원의 그리스도교사 서술은 역사주의 틀 안에서 다양하게 변화해왔다. 대표적인 그리스도교 사상의 역사 서술 및 구상으로는 아돌프 폰 하르낙의 《교리사》(1880년대), 에른스트 트뢸치의 《사회교설》(1912년) 같은 업적을 들 수 있다. 이를 고전으로 하여 변증법적 신학의 영향이 후퇴함과 동시에 (현대신학 후반기인 1970년대부터 현재까지) 야로슬라프 펠리칸의 《그리스도교 전통: 교리 전개의 역사》, 볼프하르트 판넨베르크의 ‘문제사’(問題史), 프리드리히 빌헬름 그라프의 ‘사회사적 방법’ 등 방법론을 둘러싸고 활발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여기서 방법론의 역사적 전개를 상술할 수는 없지만, 몇 가지 포인트 정도는 지적하고 싶다. 우선 이러한 학문적 서술 배후에는 근대 이후의 역사 이해가 자리하고 있다. 이는 하르낙의 《교리사 강요》에서 교리사는 18세기에 시작되었다고 설명한다는 점에서 합치한다. 이것을 ‘계몽주의에 의한 교리(도그마) 해소’라는 또 하나의 하르낙 테제와 결합시킨다면, 교리사는 교리의 역사성에 대한 자각을 통한 교리의 역사화(=신학적 자유주의)1)로 가능해졌다고 말해야 할지도 모른다. 이리하여 교리사는 자유주의신학에서 기초 학과(분야)가 되었다. 그런 점에서 교리는 관념과 사회, 혹은 사상과 삶의 문맥 사이에 성립하는 변증법으로 파악된다. 이 변증법의 어느 항목에 강조점을 두느냐에 따라 다양한 역사 서술을 정리할 수 있다. 트뢸치는 〈‘기독교의 본질’이란 무엇인가〉(1903년)에서 하르낙의 교리사를 비판하면서 교리를 문화사·정신사, 혹은 정신의 실제적·물질적 전제의 역사로 자리매김하는 그리스도교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회교설》은 이 방법론에 기초해 역사를 연구한 성과이며, 하르낙과 트뢸치 사이에는 ‘관념·사상’과 ‘사회·문맥’ 중 어느 쪽에 중심축을 두는가에 따른 교리 이해의 차이를 인정할 수 있다. 펠리칸의 교리사는 하르낙 구상의 현대판이며, 판넨베르크와 그라프의 차이는 현대신학 후반기 단계에서 하르낙과 트뢸치의 차이를 반복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에서도 사상과 사회의 관련성은 중요한 포인트가 된다.
이러한 그리스도교사 서술 방식은 ‘단일한 그리스도교사는 존재하는가’ 혹은 ‘단일한 그리스도교사는 서술 가능한가’ 하는 물음을 떠올리게 한다. 또한 이 질문은 현대신학의 ‘역사’를 개관할 때도 문제가 된다. 여기서는 ‘현대’라는 역사적 한 시대가 지닌 특이성을 말하고 싶다. ‘단일한 그리스도교사는 존재하는가’에 대해서는 펠리칸처럼 그리스도교 교리의 다형성(多形性, forms)과 역사적 발전 양상들(전통)이라는 방법으로 대답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상호연관성’이라는 역사 개념의 요건2)을 고려한다면, 단일한 인류사는 근대 이후 처음으로 구상할 수 있게 되었으며, 모든 그리스도교 현상을 포괄적으로 서술하는 그리스도교사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앞부분에 인용한 틸리히의 글을 참조하기 바란다.) 그리스도교의 역사는 엄밀한 단일성이 아니라 다양한 여러 전통의 느슨한 다원성과 상호연관으로 이해해야 한다. 오히려 근대 이후 역사적 전개에 기초한 현대의 글로벌화, 즉 ‘현대’야말로 그리스도교가 긴밀한 상호연관을 통해 연결되어 있음을 이해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이 책에서 논하는 현대신학이란 그리스도교적 전통들이 보여주는 상호연관의 한 단면을 서술한 것에 불과하므로 내용 면에서는 한정된 수준에 머문다. 그러나 현대의 글로벌화가 불러온 다양한 그리스도교의 여러 형태 사이에 발생하는 상호연관, 이를테면 여러 전통의 교류사에도 유의하면서 논의를 진행하고 싶다.
신학 사상의 지역성과 다원성
현대신학의 서술을 음미해보면, 독일 신학 중심의 현대신학 전반기(192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의 현대신학)에 존재했던 통일적 세계가 현대신학 후반기에는 급속히 무너져 혼돈에 빠졌다는 느낌이 들지도 모른다. 현대신학 후반기 상황은 그렇다 쳐도, 전반기를 그렇게 묘사한 것은 과연 타당한 일일까? 당초에 현대신학은 후반기뿐 아니라 전반기에도 혼돈하지 않았던가? 이 책을 쓰고 있는 나 자신의 질문이기도 하다.
우선 이에 답하기 위해서 판넨베르크를 참고하고 싶다. 판넨베르크는 《독일에서의 근대 프로테스탄트 신학의 문제사 ― 슐라이어마허로부터 바르트와 틸리히에 이르기까지》(1997년)에서 19세기 독일 신학이 그에 선행하는 18세기 영국의 이신론(理神論)과 같은 하나의 지역적인 사상 동향이 아니었고, 세계 그리스도교 신학에 모범적이고 고전적인 의의를 지니는 것이었음을 지적한다. 현대신학 전반기의 중심이 왜 독일인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문맥을 통해 신학 동향을 정리하고 해석하는 고전적 실례(범례)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답할 수 있지 않을까. 역사를 개관할 때 현대신학 전반기를 (광의의) 변증법적 신학을 통해 묘사하는 것은 변증법적 신학이 현대신학을 논하는 데 고전적 위치를 차지한다는 판단에서다. 또한 현대사상에서는 계몽주의적 보편성에 대하여 특정 문맥과 전통에서 생성되는 보편(전통특수적 보편)이 대치되는 경우가 있다.3) (신학에서는 알리스터 맥그래스의 저작에서 확인된다.) 이 논점에서도 독일 신학에 앞서 전통특수적 보편성을 인정하는 것은 역사 서술로서 가능한 일이다.
사실 신학에서 ‘보편성과 특수성·지역성의 관련성’ 문제는 현대신학 후반기 이전에도 논의가 이루어졌다. 예를 들어 틸리히는 독일에서 미국으로 망명한 신학자였지만 체험을 바탕으로 1953년에 〈신학에서의 지역주의 극복〉이라는 논문을 썼다. 망명 초기에 갖고 있었던 지역주의(“오직 독일에서만 그리스도교와 근대정신이 어떻게 일치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절대적 진지함 가운데서 다루었던 것이다”라는 편협함과 자만)를 반성하면서, 신학과 철학 영역에 존재하는 지역주의와 그것을 극복하는 일의 의미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문제는 독일적인 지역주의에서 미국적인 지역주의로 갈아타거나, 지역주의를 완전히 탈피한 보편주의에 서는 데 있지 않다. “미국화하려는 의도 없이 오히려 우리가 전(全) 아메리카적 상황에 우리 자신의 방법으로 공헌하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일본적 그리스도교 문제도 전보다 심도 있는 논의가 가능할 것이다.
패러다임론의 적용 가능성
나는 그리스도교 신학에 패러다임 개념을 적용하는 것을 회의적으로 보는데, 패러다임론의 문제는 이 장에서 지금까지 살펴본 논의와 깊이 관련되어있다. 그리스도교 신학에 대한 역사를 서술할 때 모든 교파·전통을 포괄하는 작업이 쉽지 않다는 논의로부터 ‘본질적으로 다원적 성격을 갖는 그리스도교를 단일한 틀에서 파악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리스도교를 어떤 통일성에서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현대신학 논의에 패러다임 개념을 사용하는 일이 적절한가’ 하는 문제를 생각하는 경우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논점이다. 현대신학 후반기뿐 아니라 고대부터 중세에 걸친 신학의 경우에도, 사상들에 단일한 패러다임이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현대신학의 혼돈 상황은, 처음부터 그리스도교 신학에서 단일 패러다임을 찾기가 불가능하다는 점을 뜻하는 것이 아닐까?
그리스도교 신학에서 큰 사상적 전환을 논할 때, 하나의 비유로 ‘패러다임 전환’이라는 표현을 쓴 일은 분명 드물지 않다. 그러한 시도에 어느 정도 너그러워도 좋을 것이다. 그리스도교사를 패러다임의 전환으로 서술하는 대표적 학자로 한스 큉이나 그라프가 존재하며, 이 책에서도 참조해온 구리바야시 테루오(栗林輝夫)의 《현대신학의 최전선(프런트)》에도 패러다임 개념이 종종 등장한다. 하지만 패러다임 개념이 원래 자연과학의 역사를 서술하기 위한 개념이었음을 감안한다면, 그 방법론적 문제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스도교 신학에 패러다임 개념을 적용한다는 것은, 신학에 자연과학적 모델을 과도하게 도입할 수 있게 됨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자연과학 모델인 패러다임 개념을 인문사회과학에 적용할 때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그러면 패러다임론에 입각한 고찰을 시작해보자. 패러다임론은 토마스 쿤이 쓴 《과학혁명의 구조》(1962년)에서 소개된 이후, 과학철학 및 과학사 분야를 중심으로 찬반을 둘러싼 논쟁과 해석이 활발하게 일어난 주제이다. 또한 과학적 지식의 사회적 형태와 발전 과정에 대한 설득력이 큰 반향을 일으켜 자연과학 이외에 다양한 학문 분야에서도 적용을 시도하고 있다. 그 혁신적 의의에도 쿤의 논의는 처음부터 여러모로 모호하다고 지적받아왔다. 쿤 스스로도 결국은 패러다임 개념의 엄밀화를 점차 지향해나간다. 여기서는 이토 구니타케(伊藤邦武, 교토 대학 명예교수)가 쓴 〈패러다임론의 전개〉(《과학과 철학》(科学と哲学), 昭和堂, 1988)에 수록)에 소개된 개념 정리를 참조하려 한다.
패러다임 개념은 지극히 다의적으로 사용되지만, 크게는 세 가지 형태로 정리된다.
(A)형이상학적 패러다임 혹은 메타 패러다임:
실재를 구성하는 원소(元素)에 대해 과학자들의 공동체가 공유하는 견해를 말한다. 즉, 천동설이나 지동설과 같은 세계관, 세계의 인식이 수학적 진리·직관으로 이루어진다는 인식론적 견지 등이다. 시대와 전통 위에서 공통된 철학적 틀로서 패러다임을 말한다.
(B)사회학적 패러다임:
뉴턴역학을 모델로 한 실증주의적 과학 등에서 볼 수 있는 ‘수미일관(首尾一貫)한 전통’을 의미한다. 여기에는 과학자들의 공동체에 대하여 과학적으로 인지될 수 있는 문제나 해답을 제공하는 ‘일반적으로 승인된 과학상의 업적’ 등이 포함된다.
(C)인공물 패러다임:
한 연구 분야에서 정통한 연구 방법을 정한 ‘교과서’, 혹은 실험에서의 표준적 절차나 표준적 용구·기계나 개념상의 도구 등을 말한다.
훗날 토마스 쿤은 (A)를 패러다임 개념에서 우선적으로 제외하였고, (B)는 ‘전문 모체’(専門母体)라고 표현하였으며, (C)에는 ‘문제 해결의 모범 사례’라는 말을 붙여서 (B)와 (C)를 구별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개념 규정의 변천은 존재하지만, 특정 시대에서의 과학의 영위와 역사적 발전을 분석하였다는 점에서 쿤의 논의 가운데 주목해야 할 포인트는, 패러다임은 그것을 공유하는 과학자들의 공동체와 관련하여 이해해야 한다는 점이다.
연구자들의 공동체는 특정 퍼즐과 그 해법의 한 덩어리를 하나의 ‘업적’으로 인정하고 있으며,
그러한 업적의 평가 배경에는 형이상학적·인식론적 전제, 어떠한 세계관의 공유라는 것이 가로놓여 있다고 생각된다. (《과학과 철학》, 174쪽)
쿤의 패러다임론은 과학의 역사적 발전에 대한 논리실증주의적(검증주의) 혹은 칼 포퍼적 반증주의(反証主義)의 설명에 과학적 제반 전통의 가족적 유사성 혹은 통역 불가능성을 주장한다는 점에서 포스트근대의 사상적 상황에 즉시 적응하고 있다. 바로 거기에 패러다임론의 매력이 존재한다. 앞서 지적하였듯이, 과학자들의 공동체를 통한 패러다임 공유라는 인식은 자연과학적 연구를 모델로 삼는다. 이 모델은 근대 자연과학의 문화적 혹은 이데올로기적 차이를 극복하고, 자유주의 세계와 공산주의 세계 어디서든 공유되고 있다. 심지어 종교적 전통의 차이마저 뛰어넘어 그리스도교 세계나 이슬람 세계, 나아가 불교 세계에도 동일하게 존재하고 통용된다. 이런 점에서 잘 알 수 있듯이 패러다임론은 자연과학의 현상에 훌륭히 부합한다.
그렇다면 그리스도교 신학에 대해서는 어떠할까? 현대 자연과학자가 공유하는 연구 전통의 틀에 해당하는 것들이, 신학적 연구나 신학자들의 공동체에서 과연 존재할까? 그리스도교의 다양성 혹은 다원성이라는 현실로 판단해볼 때, 변증법적 신학을 이른바 현대신학의 패러다임으로 삼아 현대신학 전반기의 통일성을 논해보겠다는 것은 엄밀한 의미에서 불가능하다. 여기서 패러다임론을 자연과학에서 사회과학이나 인문학으로 확장하고자 할 때의 방법론적 한계가 드러난다. 신학적 지식을 비롯한 인문학적 지식이 자연과학적 지식과는 전혀 다른 역사성을 가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학적 앎의 역사를 서술하려면, 그 역사성에 적응될 만한 방법론이 필요하다.
하지만 사실 패러다임 개념이 인문학 영역에서는 전혀 무의미하다는 결론을 내리는 것 또한 경솔한 생각이다. 이 책의 범위를 넘어서는 문제이지만, 앞서 소개한 논고에서 이토 구니타케는 쿤이 ‘과학 언어 체계의 전환을 분류법의 전환과 결부한 은유 시스템의 창출’(위의 책, 203쪽)이라고 생각했다고 지적하였고, 또한 이것을 푸코가 《지식의 고고학》에서 말한 지식 공간 전체의 전환으로 연결하고 있다. 이는 과학 이론의 전환에 대한 언어론적 접근이라 할 만한 논의이며, 신학적 앎과의 관련 선상에서 패러다임론을 살려낼 가능성을 시사한다. 예를 들어, 언어론적으로 해석된 패러다임론을 통해 다원적인 신학적 앎과 그 범례의 적절한 관계를 기술하는 일이 가능해질지도 모른다.
바로 이러한 점에서 “패러다임이란 귀납적이지도 연역적이지도 않으며, 아날로지(Analogy)적인 인식의 형태”라는 조르조 아감벤의 패러다임론 분석(《사물의 표시 - 방법에 대하여》, 事物のしるし - 方法について, 筑摩書房, 47쪽)은 신학적 앎을 역사성에 입각하여 분석하기 위해 참조할 내용이지 않을까?
이 장에서 역사 서술과 패러다임론 문제를 다룬 이유는, 신학의 방법론적 논의와 그 밖의 인문학 분야에서 방법론이 진보해나간 것 사이에서 격차를 느끼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데 있다. 현대사상의 학문론은 신학적 앎의 이해를 심화한 토양 위에서 더욱 풍부해질 가능성을 내포하며, 현대신학의 역사 서술도 방법론적 심화가 더욱 진지하게 요청되고 있다.
■ 주
1) 역사학을 기초학문으로 삼는 신학적 자유주의에 의하면, ‘교리’는 역사를 초월한 진리가 아니라 역사적 연관성 안에서 형성된 역사적인 존재이다. 이것을 ‘교리의 역사성에 대한 자각’이라고 부른다. 여기서 교리를 구체적인 역사적 맥락 안에서 형성시키고자 하는 신학적 구상이 나오게 된다. 이것이 ‘교리의 역사화’이며, ‘문맥화 신학’ ‘콘텍스트 신학’은 이러한 과정의 한 형태라 말할 수 있다.
2) 역사 개념에 있어서의 ‘상호연관성’에 대해서는 트뢸치가 쓴 〈신학의 역사적 방법과 교의적 방법에 대하여〉(《트뢸치 저작집 2》(トレルチ著作集2), 요르단사, 특별히 10-18쪽)와 판넨베르크의 ‘구원 사건과 역사’(《조직신학의 근본문제》(組織神学の根本問題), 일본 기독교단 출판국, 특히 52·62쪽)를 참조하기 바란다. 여기서는 트뢸치가 분석한 역사 개념을 염두에 두는데, 그의 말(《트뢸치 저작집 2》)을 빌리면 다음과 같다. “역사적 삶의 모든 현상은 상호작용을 하고 있다.” “모든 사건은 항상적(恒常的, 지속적) 상호연관 속에 놓여 있다.” “전체나 개체나 모두가 서로 관련되어 하나의 사상이 다른 것과 관련되면서 필연적으로 하나의 조류를 형성하게 되는 것이다.”
3) ‘전통특수적 보편’은 알리스터 맥그라스의 용어이다. 예를 들어 ‘고대 그리스’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생겨난 민주주의가 그 특수한 역사적 연관성을 넘어 인류의 보편적 가치로 승인될 경우에 전통특수적 보편성이라 말할 수 있다. 또는 근대 서구 그리스도교라는 특수한 역사적 연관에서 성립된 인권 개념이 보편적이라고 하는 경우를 들 수 있다. 이에 반하여 ‘계몽주의적 보편성’이란, 서구 근대적인 이성의 보편성을 전제로 그에 기초하여 전 인류를 계몽하고자 하는 입장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