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에서 완전한 성화가 가능한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을 성도(聖徒)라고 부른다. 성도는 거룩한 무리를 뜻한다. 성도는 말 그대로 거룩하게 구별된 사람이요, 거룩하게 사는 사람이다. 그러나 성도에게는 아무리 오랜 시간을 믿어도 자신이 거룩해졌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오히려 거룩하게 살려고 할수록 허물과 죄가 더 많이 느껴지고 잊었던 오래 전의 죄까지 생각나서, 회개하는 시간이 늘어나고 또 더 깊이 애통하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 그렇다면 성도가 이 땅에서 완전하게 거룩해지는 일은 불가능한 것인가.
이제 거룩해진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며 그 거룩에의 완성은 언제 이루어지게 되는지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자.
1. 완전 성화의 근거와 타당성 여부
주 예수를 믿으면, 죄를 용서받고 의롭다 일컬음을 받는다. 그래서 성경은 예수를 믿는 사람을 의인이라고 부른다(롬 3:28). 그러나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사람이라도 아직 완전히 거룩한 사람이 된 것은 아니다. 아직도 옛날의 본성이 남아 있고, 때로는 연약함이나 실수 때문에 죄를 범하기도 한다. 따라서 예수를 믿는 사람도 날마다 더욱 거룩해져야 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이것을 성화(聖化)라고 부른다.
성화의 과정은 어느 날 하루아침에 갑자기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매일 매일 조금씩 점진적으로 이루어진다. 그런데 그 완성은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에 이루어질 수 있고, 또 반드시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고 보는 생각을 완전 성화 또는 완전 성결론이라고 한다. 완전 성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그 근거로 제시한다.
1) 성경이 완전 성화를 명령한다.
사도 베드로께서는 성도들에게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이전 알지 못한 때에 좇던 너희 사욕을 본 삼지 말고,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고 말씀하셨다(벧전 1:14,15). 그리고 성도가 거룩해져야 할 이유로, 레 11:44, 45을 인용하여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찌어다 하셨느니라”고 하셨다. 이는 성도가 모든 일에서 하나님처럼 완전 성화에 이를 것을 교훈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한다.
한편, 예수님께서는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는 교훈을 통해 우리가 온전해져야 할 것을 말씀하셨고(마 5:48), 야고보 사도께서도 성도에게 인내할 것을 말씀하면서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고 하셨다(약 1:4). 그러므로 성도는 이 땅에서 완전 성화에 이르러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말씀들은 성도가 완전한 성화에 이를 수 있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는 성도든 아니든 간에 사람이면 누구나가 다 거룩할 것을 원하신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처음부터 모든 사람이 거룩하게 살 것을 계명으로 주셨고, 불의한 사람에게는 그 죄에 마땅한 징벌을 내리셨다. 그러므로 거룩하게 살 것을 명하는 위의 말씀들은 성도가 완전 성화에 이를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 완전 성화를 목표로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할 것을 의미한다고 보아야 한다.
2) 성도를 온전히 거룩한 사람이라고 부른다.
사도 바울께서는 성도를 온전한 사람(고전 2:6), 새로운 피조물(고후 5:17),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흠이 없는 사람(엡 5:27),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사람(빌 4:13), 그리스도 안에서 충만해진 사람(골 2:10) 등으로 불렀다. 그러므로 이런 이름들은 성도가 완전한 성결에 이르렀음을 의미한다고 한다.
그러나 성도를 온전한 사람이라고 부른 것은 성도가 가지는 법적인 신분이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는 정죄함을 받지 않는 온전한 의인이 되었음을 의미한다. 법적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성도라 할지라도 실제적으로는 여전히 허물과 죄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한 상태에 있다. 그러므로 성도를 온전한 사람으로 부른 말씀은, 성도가 법적인 신분에서 온전히 의인이 되었음이나(고후 5:17), 전보다는 상당한 수준에 이르도록 더욱 거룩해졌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전 2:6, 히 5:14). 그리고 성도가 온전하다는 것은 거룩한 직무를 담당할 충분한 자격을 부여받았음을 의미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딤후 3:17). 이 때문에 사도 바울께서는 성도를 거룩한 사람이라고 부르면서도, 곧 이어서 죄에 대한 책망을 빼놓지 않았다.
3) 거룩한 사람의 예가 있다.
성경은 노아를 의인이요 완전한 사람이라고 했고(창 6:9), 욥을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사람이라고 했다(욥 1:1). 또 아사 왕을 마음이 일평생 여호와 앞에 온전했던 사람이라고 했다(왕상 15:14). 그러므로 모든 성도는 그들처럼 완전 성화에 이르러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성경에서 의인이라고 불렸던 사람들은 완전한 성화에 이른 사람들이 아니었다. 노아나 욥이나 아사는 당시의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의롭게 살았던 사람이었을 뿐, 그들도 역시 실수가 있었고, 죄가 있었다. 그래서 성경은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하였고(롬 3:10), “만일 우리가 죄 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라 하였다(요일 1:8).
사실상 다른 사람들이 의인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남보다 더욱 죄인으로 여기고 있다. 더욱 거룩해지려고 하면 할수록, 지난 날 무심코 넘겼던 것까지도 죄였음을 새삼스럽게 발견하고 더욱 큰 죄의식 속에서 더 많은 회개를 하게 된다. 성도는 깨어 죄와 더불어서 선한 싸움을 싸우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거룩한 사람이란 완전히 거룩해진 사람이 아니라, 죄에 대해 더욱 민감해진 사람이다. 우리는 이 사실을, 사도 바울께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이후, 은혜에 깊이 들어갈수록 자신을 ‘죄인의 괴수’라고 불렀던 사례를 통해 잘 알 수 있다(딤전 1:15).
4) 하나님께로서 난 자는 죄를 범하지 아니한다고 했다.
사도 요한께서는 하나님께로서 난 자, 그리고 하나님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의 씨가 그 안에 있기 때문에,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고 따라서 죄를 범하지 아니한다고 하셨다(요일 3:6,9, 5:18). 그러므로 성도는 완전 성결에 이르게 된다고 한다.
그러나 사도 요한께서 하나님께로서 난 자가 죄를 범하지 않는다고 하신 말씀은 믿는 사람, 즉 하나님께 속한 사람은 신분상 죄 가운데서 계속 죄를 범하는 사람과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하나님께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씨를 가진 사람이다. 따라서 혹 실수나 연약함으로 죄를 범할 수는 있어도, 고의적으로나 습관적으로는 죄를 범하지는 않는다.
이 사실은 사도 요한께서 하나님께로서 난 자가 죄를 범하지 않는다는 말을 항상 현재형으로 표현한 것을 보아서도 잘 알 수 있다. 현재형은 습관적으로 반복되는 행동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사도 요한께서는 성도라도 일시적으로 죄를 범할 수 있음을 분명하게 인정하셨다. 그래서 “만일 우리가 죄 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라고 하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 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라고까지 말씀하셨다(요일 1:8).
2. 성화의 완성시기
사람이 이 세상에 살고 있는 동안에는 완전 성화에 이를 수 없다. 왜냐하면 사람은 예수를 믿어도 여전히 인간의 한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선한 목적을 위해 최후의 심판 날에 이를 때까지 사탄의 활동을 허용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예수를 믿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나라가 유업으로 허락되었다(약 2:5). 그 하나님의 나라는 죄가 없는 곳이다. 그러므로 성도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간다는 것은 성도에게 죄가 없어졌음을 의미한다. 성도는 이 땅에서도 하나님의 나라를 맛보며 산다. 그러나 이 땅에서 맛보는 하나님의 나라는 온전한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다. 영적으로만 누리는 하나님의 나라이기 때문이다. 성도는 죽음 이후에 가서야 온전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간다. 그래서 성경은 세상을 떠난 성도를 가리켜 “온전케 된 의인의 영들”(히 12:23), 또는 “흠이 없는 자들”(계 14:5)이라고 했다. 따라서 성도가 완전 성화에 이르게 되는 시기는 죽음의 순간 또는 죽음 직후라고 보아야 한다.
3. 성화의 목표와 내용
사람이 완전한 성화에 이른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게 되는 것을 말한다(엡 4:13).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른다는 것은 어떤 특별한 은사를 체험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은 사람의 어느 한 부분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전 인격을 통해서 나타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른다는 것은 생각하는 것이 그리스도와 같아지고, 느껴지는 것이 그리스도와 같아지고, 삶의 목표가 그리스도와 같아지는 것을 말한다. 사도 바울께서는 이러한 사람을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와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엡 4:24), 또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골 3:10)라고 불렀다.
새 사람으로서의 성화 과정은 육체의 욕심대로 구습을 따르는 정욕과 욕심으로 가득했던 옛 사람을 벗어 없애 버리는(갈 5:24, 엡 4:22) 부정적인 부분과, 하나님을 향하여 의와 진리와 거룩함으로 사는(갈 2:19, 엡 4:24) 긍정적인 부분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이 두 부분에는 일정한 순서가 있다. 긍정적인 부분보다는 항상 부정적인 부분이 우선한다. 이것은 마치 새 옷을 입기 위해서는 먼저 낡은 옷을 벗어버려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4. 성화의 수단
하나님께서는 성도를 성화케 하시기 위해 성경 말씀, 성례, 기도, 섭리적 지도(攝理的 指導. 루터가 경험했던 것처럼 불의한 사람이 벼락에 맞아 죽는 것을 보게 하거나, 경건하게 살려고 하는 사람이 오래도록 존경과 칭찬을 받는 것을 보게 하는 것과 같은 경우들을 말한다) 등을 효과적인 수단으로 사용하신다.
그러므로 거룩해지기를 원하는 사람은 이러한 수단들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이런 수단들을 멀리 하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거룩에 이르지 못한다. 그러나 이러한 수단 그 자체가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것들은 성령께서 사용하시는 수단이다. 따라서 성령께서 함께 하시지 않으면, 결코 거룩을 위한 도구가 되지 못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화의 수단들을 단지 형식적인 도구로만 이용할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함께하시기를 구하면서 사용해야 한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이 거룩하신 것처럼 거룩해야 한다. 특히 성도는 거룩을 위해 구별된 사람들이므로, 더더욱 거룩해지기를 위해 힘써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를 거룩하게 하시기 위해 성경 말씀, 성례, 기도, 섭리적 지도를 효과적으로 사용하신다. 그러므로 성도는 성령의 함께 하심 속에서 성경 읽기와 기도와 성례에의 참예, 그리고 하나님의 섭리하시는 방법을 주의 깊게 살펴서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는 거룩에의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러나 완전한 성화는 죽음 이후에나 이루어진다. 따라서 성도는 하나님 나라에 이르는 순간까지 거룩해지려는 노력을 중단하지 않아야 하며, 완전한 성화에 이르지 못했다고 실망을 하지도 말아야 한다.
박일민 교수(칼빈대학교 신학대학원장·조직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