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2-01-15 16:49
사두개인(Sadducees)은 어떤 사람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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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웹섬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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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두개인(Sadducees)은 어떤 사람들인가

 

복음서의 자주 등장하는 사두개인들은 바리새인들과 함께 유대 지도계급의 양대산맥을 이루었다. 바리새인들처럼 신앙이 변질되면 어떻게 되는지, 경건을 잃어버린 종교가 어떻게 변질되는지를 잘 대변해주는 사람들이다.


I. 사두개인의 기원


.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 이름이 대제사장 '사독'에게서 왔다고 본다. 사독은 다윗 시대에 있었던 대제사장 가운데 한 명이었다(참조, 삼하 8:17; 15:24).
후에 솔로몬은 아비아달이 아도니야의 반역을 도운 것을 인해(참조, 왕상 2:26-27)그를 쫓아내고 사독을 유일한 대제사장으로 인정했다(참조, 왕상 2:35).
레위족속은 성전에서의 사역을 감당하도록 선택을 받았다. 바벨론 포로기 이후에 이 제사장의 계보는 여호수아에게 이어지며 재확립되었다(참조, 학 1:1).
"다리오왕 이년 유월 곧 그 달 초하루에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로 말미암아 스알디엘의 아들 유다 총독 스룹바벨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에게 임하니라"(학 1:1)
후에 이러한 제사장의 가계와 그들의 지지자들은 '사독 가족' 혹은 '사두개인(Sadducees)으로 불렸다.

. 주후 9 세기의 랍비적 전통(랍비 나단의 아봇)은 사독이 소코(주전 2 세기)의 '안티고누스'의 제자였다고 말한다. 사독은 “죽음 이후의 상”과 관련하여 자기 스승이 한 유명한 말을 오해하여 사후의 세계를 부인하는 신학을 정립했다. 따라서 그들은 몸의 부활도 부인했다. 그들의 이러한 전통은 복음서에도 자주 등장하며 이것은 부활을 믿는 바리새인인들과 논쟁거리가 되곤 하였다.
"부활이 없다 하는 사두개인들이 그 날에 예수께 와서 물어 가로되..."(마 22:23)

또한 사두개인들은 구약성경중 토라 혹은 율법(창세기-신명기)만을 권위있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다. 후기 유대교에서 사두개인들은 '뵈수시안'으로 불린다. 뵈수스 역시 소코의 안티고누스의 한 제자였다. 그는 사독과 비슷한 신학을 발전시켰고, 그도 사후의 삶을 부인했다.

. 사두개인이라는 명칭은 요한 힐카누스(주전 135-104 년)의 시대에 이르러서야 사용되었는데, 이 기록을 요세푸스가 전하고 있다(참조, 유대 고대사 13:10:5-6). 유대 고대사 13:5:9 에서 요세푸스는 “세 학파”인 바리새인, 사두개인, 에센파가 있었다고 말한다.

마. 한편 안티오쿠스 IV 에피파네스(주전 175-163 년) 때에 셀루시드 통치자들이 제사장들을 헬라화 시키려는 시기에 이들이 출현했다고 주장하는 또 다른 설이 있다. 마카비 반란기 동안 새 제사장제도가 시몬 마카비(주전 142-135 년)와 그의 자손(참조, 마카비상 14:41)들에 의해 시작되었다. 이하스모니안 계열의 새 대제사장들은 귀족정치적인 사두개인들의 시작이 되었을 것이다. 바리새인들은 같은 시기에 하시딤(즉, “분리된 자들,” 참조, 마카비상 2:42; 7:5-23)에서 발전되었다.

. 오늘날에 제기된 이론에 의하면 사두개인들은 헬라어 용어인 '쉰디코이'의 철자에서 왔다고 주장한다.
이 용어는 로마의 권력과 결부한 지도자들을 가리킨다. 이 설은 왜 어떤 사두개인들은 귀족정치적 제사장이 아니었지만 산헤드린의 구성원이 되었는가를 설명할 수 있다.


II. 독특한 신앙


. 그들은 하스모니아와 로마의 통치 기간에 살았던 유대인 가운데 보수적인 제사장으로 이루어진 분파였다.

. 그들은 특별히 성전의 예배, 의전, 의식, 예배등에 특별한 관심을 가졌다.

. 그들은 기록된 토라(즉, 창세기-신명기)의 권위를 받아들인 반면 구전(즉, 탈무드)을 배격했다.

. 그들은 따라서 바리새인들이 소중히 여기며 발전시킨 여러 교리들을 거부했다.
1) 몸의 부활(참조, 마 22:23; 막 12:18; 눅 20:27; 행 4:1-2; 23:8)
2) 영혼의 불멸성(참조, 유대 고대사 18.1.3-4; 전쟁 2.8.14)
3) 천사의 세분화된 계급의 존재(참조, 행 23:8)
4) 그들은 “눈에는 눈”(즉, 렠스 탈리오니스)을 문자적으로 받아들였고 육체적 형벌과 사형제도(벌금형 대신에)를 지지했다.

. 신학적 논란을 가져온 또 다른 영역은 예정 대 자유의지와 관련된 내용이었다. 요세푸스가 언급한 세 그룹의 사람들인 1) 에센파는 일종의 결정론을 받아들였다. 2) 사두개인들은 인간의 자유의지에 강조점을 두었다(참조, 유대 고대사 13.5.9; 전쟁 2.8.14) . 3) 바리새인들은 앞의 두 견해의 중간 입장을 취했다.

. 어떤 면에서 이 두 그룹(즉, 사두개인 – 바리새인)의 갈등은 구약에서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의 갈등을 보여준다.

또 다른 종류의 갈등은 사두개인들이 사회적으로 지위를 갖고 땅을 소유한 자들을 대표한다는 점에 기인한다. 그들은 귀족들이었지만(참조, 요세푸스의 유대 고대사 13.10.6; 18.1.4-5; 20.9.1),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학자였고 일반 백성 가운데 경건한 자들이었다. 이러한 긴장은 예루살렘 대 전역에 있는 각 지역의 회당으로 대별되었다.

또 다른 갈등은 바리새인들의 신학에 영향을 미쳤던 조로아스터교를 사두개인들이 거부한 사실에서 유래했을 것이다. 그러한 신학의 예로서는 정교하게 발전된 천사론, 야웨와 사탄의 이원론, 사후세계를 강력하게 육체적인 용어로 이해한 점을 들 수 있다. 에센파와 바리새인들에게서 볼수 있는 이러한 과도한 견해는 사두개인들의 반대를 야기했다. 사두개인들은 다른 유대 종파의 사람들의 견해를 좌절시키기위해 오직 모세의 글에 나타난 신학만을 강조하는 보수적인 입장을 취했다.

그들은 지역적인 안정을 추구했는데, 1 세기의 환경에서 이것을 누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로마에 협력하는 방법 밖에 없었다(참조, 요 11:48-50).

"만일 저를 이대로 두면 모든 사람이 저를 믿을 것이요 그리고 로마인들이 와서 우리 땅과 민족을 빼앗아 가리라 하니 그 중에 한 사람 그 해 대제사장인 가야바가 저희에게 말하되 너희가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도다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서 온 민족이 망하지 않게 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한 줄을 생각지 아니하는도다 하였으니"(요 11:4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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