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2-05-03 10:56
누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는가? A. W. 토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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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웹섬김이
조회 : 1,711  

누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는가?

 

"그러나 그는 우리의 허물로 인하여 상처를 입었고, 그는 우리의 죄악으로 인하여 상하였도다. 우리의 화평을 위한 징계가 그에게 내려졌고, 그가 맞은 채찍으로 우리가 치유되었도다"(이사야 53:5).

요즈음 들어 세상에서는 교회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비밀스런 음모 하나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죄에 대한 인간의 책임과, 심판이 실재, 그리고 하나님의 진노와 구주의 십자가에 관련된 음모입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사람들의 마음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재판에 회부해 십자가에 못박은 것에 관한 역사적 책임을 거두어 줌으로써 그 마음에 평화를 주려는 운동이 드러내 놓고 아주 강력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형제애 관용의 미명 아래 쏟아져나오는 여러 현대적인 선언들과 원칙들은 기독교의 교리를 잘못 이해한 데서 기인한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남자와 여자들에게는, 우리 주님께서 온 인류를 위해 상처를 입으시고, 모욕을 당하였으며, 십자가에 못박히셨다는 사실이 어두운 그림자로 드리워져 있습니다. 이것은 모든 인류에게 짐지워진 기본적인 책임이며, 인간은 이 사실을 애써 외면하고 회피하려 드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입니다.

유다나 빌라도만 비난하려 들지 마십시요. 입술을 일그러뜨리며, "돈을 받고 그분을 팔아 넘겼지!"같은 비난이나 하고 있으려 하지 마십시요.

빌라도만 탓하고 있지도 마십시요. 빌라도는 의지가 박약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죄가 없음을 선언해 놓고도, 그의 무죄함을 끝까지 수호해 줄 만한 배짱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도록 넘겨준 유대인만 비난하고 있지도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못박은 로마만 비난하고 있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몰론 그들에게는 죄가 있습니다. 물론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과 공범입니다. 그들의 손으로 주님을 십자가에 못박았지만, 오로지 그들만이 그 엄청난 범죄의 범인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오늘날 만연해 있는 죄악과, 사람들의 가슴에 끓어오르는 분노도 그분을 거기에 있게 한 요소 중의 하나입니다. 고의적인 속임수와 세금을 속여 내는 부정행위를 통해 드러나는 당신의 부정직함 역시 그분을 십자가에 못박히게 한 요인입니다. 죄악, 증오, 의심, 질투, 거짓말, 음욕, 육욕에의 탐닉 등, 이 모든 인간의 추악한 본성이 그분을 십자가로 내몬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아담의 자손들은 모두 그분을 십자가로 내 몬 사실에 부끄러움을 느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임을 고백하는 남자와 여자들 중 얼마나 많은 이들이, "그래, 나 역시 주님을 십자가에 못박히게 만든 사람 중의 하나지!" 하는 내적인 자각으로 인한 부끄러움이나 고통도 없는 상태로, 주님의 죽으심을 기념하는 주의 만찬에 참석하는지 그저 놀라울 따름입니다.

일반적으로 자연인들은 너무도 사소한 일에 집중하는 나머지, 생과 존재에 관련된 가장 중요한 일을 간과하며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십시요.

남자와 여자를 불문하고, 어느때 어느 장소에서든지 늘상 최근의 패션 경향에 관한 이야기에서 시작해서 플라톤이나 철학 사조에 관련된 이야기를 다양한 폭을 오가며 늘어놓을 뿐입니다. 그들은 평화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토론을 합니다. 그들은 교회에 관해서도 이야기하고, 교회가 어떻게 공산주의 대항해 든든한 보루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토론도 합니다. 그들이 꺼내는 화재 중에는 사람을 난처하게 만드는 요소가 전혀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 중 누군가가 꼭 논의되어야 하고, 저마다 숙고해 보아야 하는, 우리 혼에 관련된 너무도 중요한 영적인 주제들을 화재에 올리면, 순식간에 모든 대화는 뚝 끊기고 사람들은 갑자기 꿀 먹은 벙어리가 되고 맙니다. 소위 교양있다는 계층의 사람들 사이에서는 신앙에 관련된 주제를 화재에 올릴 시에는 그저 학설의 범주에서 논하고 말지 개인적으로 적용시키는 차원으로는 나아가지 말라야 한다는 묵계가 정해져 있는 듯합니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실로 한 가지 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바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허물로 인하여 상처를 입었고, 그는 우리의 죄악으로 인하여 상하였도다. 우리의 화평을 위한 징계가 그에게 내려졌고, 그가 맞은 채찍으로 우리가 치유되었도다』하는 사실입니다.

이 구절에는 두 가지의 끔찍한 단어가 등장합니다.

바로, 허물과 죄악입니다.

허물은 정당한 권위에 반역을 해서 정도에서 벗어나는 것을 말합니다. 전 우주에서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한 존재는 타락한 천사와 인간밖에 없으며, 인간은 아직까지도 악명 높은 반역자로 살아가고 있는 상황입니다.

영어에는 허물과 죄악이라는 단어에 담긴 끔찍한 뜻을, 그 엄청난 무게를 온전히 옮겨 전달할 만한 적당한 표현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권위와 그분의 창조 질서에 대항한 인간의 범죄와 타락 속에서, 왜곡과 뒤틀림, 추함과 비뚤어짐, 그리고 반역을 보게 됩니다. 이 모든 것들이 거기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또 그것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셔야 했던 필연적인 이유를 설명해 줍니다.

'죄악'은 결코 좋은 단어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 말을 혐오스러워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죄악의 결과는 결코 그냥 넘어갈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이사야는 우리에게 너무도 분명하게 구주께서 『우리의 죄악』으로 인하여 상하셨다고 선언했습니다.

모두들 "저는 아닙니다!"하고 부정할 지도 모르겠군요. 하지만 모든 인간의 손가락에 있는 지문이 우리를 거스르는 명백한 증거로 제시됩니다. 경찰들은 범인을 잡을 때, 식탁과 문 손잡이에 남겨진 지문을 보고서 거기에 침입했던 강도가 누구인가를 찾아냅니다. 인간의 지문은 전 세계에 있는 모든 어두운 지하실과 으쓱한 골목길, 그리고 어둑어둑한 악의 장소에서 발견할 수 있으며, 하나님은 이 지문으로 모든 인간을 하나하나 식별할 수 있습니다. 당신이 죄악으로부터 도망치거나, 당신의 도덕적 책임을 타인에게 돌리는 일은 전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죄악』은 바로 당신과 관련된 문제인 것입니다.

우리의 허물과 죄악으로 인하여 그분이 상처를 입고, 상하셔야 했습니다. 그분이 상했다는 말 속에는 모독을 당하고, 침뱉음을 당하고 찢기셨으며 더러운 것들로 얼룩졌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악한 자들의 손에 내맡기셨습니다. 그분은 수치와 모독을 당하셨습니다. 그들은 그분의 수염을 뽑고 그분의 몸을 피로 얼룩지게 했으며, 흙과 먼지로 더러워지게 했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어느 누구도 비난하거나 저주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한 분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를 위하여 찢기고 상하셨던 분, 그분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 상하신 분을 예루살렘의 언덕으로 끌고 가 거기서 형벌을 받도록 한 것은 이스라엘 민족의 크나큰 오판이며 실책이 아닐 수 없으며, 이는 이스라엘 민족이 짐진 무거운 짐입니다.

이사야는 이스라엘의 오판을 미리 내다보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그가 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 당한 줄로 생각하였도다. 그러나 그는 우리의 허물로 인하여 상처를 입었고, 우리의 죄악으로 인하여 상하였도다』(사 53:4-5).

그분은 우리 때문에 모독을 당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때문에 상처를 입으셨고, 무지하고 가치없는 자들에게 모욕을 당하셨습니다.

이사야는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우리의 화평을 위한 징계가 그에게 내려졌고』(사 53:5).

이 화평은 바로 우리를 하나님께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게 하기 위한 징계가 그분에게 내려졌습니다. 우리가 원하기만 한다면 화평을 누리게 하기 위하여, 우리가 아닌 그분에게 징계가 내려진 것입니다. 비난과 징벌, 그리고 혹독한 벌칙이 이 징계라는 단어가 의미하는 바입니다. 그분은 로마의 법령 아래서 공적인 장소에서 매를 맞고 채찍질을 당하셨습니다. 그들은 사람들이 다 보는 앞에서 그분에게 채찍질을 가했습니다. 그분은 자신을 조롱하는 자들이 다 보는 가운데서 채찍을 맞고 형벌을 받았습니다. 상하고 피흘린 그 한 사람은, 세상과 인간의 마음에 있는 화평의 갈구에 대한 유일한 해답이었습니다. 그분은 우리의 화평을 위해 매질을 당하신 것입니다.

저는 인류가 고안해 낸 형벌 가운데 성인을 공적인 자리에 데려다 놓고 모든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매질하고 채찍질하는 것보다 더 사람을 비참하게 만드는 벌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범법자들은 감옥에 다녀온 후 사람들 앞에서 영웅 행세를 하곤 합니다. 많은 범법자들에게 무거운 세금이 매겨지지만, 어떻게 벌금형을 빠져나와서는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그 사실을 떠벌리고 다닙니다. 그러나 그 악한이, 비웃고 조롱하는 대중 앞에 끌려나가 윗통을 벗은 채로 소리나게 채찍질을 당한다면, 그는 단단히 체면을 잃을 것이 분명하고, 그리하여 어디 가서 그일을 자랑스럽게 떠벌리고 다니는 일도 없을 것입니다. 그는 예전처럼 간이 배 밖에 나와서 설쳐대지도 못할 것입니다. 채찍질이나 매질은 사람에게 굴욕감을 심어 줍니다. 사실 등 위에 내리쳐지는 채찍보다 그 굴욕감이 더 견디기 힘들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우리의 유익을 위해서 상처를 입으시고 징계를 받은 것에 비한다면, 저를 포함한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이 회개할 때 느꼈던 비참함은 그야말로 중병 앞의 생채기 정도일 것입니다. 진심으로 회개한 사람이라면 그는 자신의 죄악과 하나님을 대항한 반역이 너무도 극악 무도한 것임을 깨달았을 것이고, 자기 스스로에게 심한 혐오감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는 감히 하나님께 형벌을 감면해 달라는 얘길 꺼내지도 못할 심정일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 짐지워진 고난으로 말미암아 화평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분은 강도에게나 응당할 모욕과 수치를 감당하셨으며, 자신이 범하지도 않은 죄로 말미암아 채찍을 맞아 상처를 입고 찢기셨으며 피를 흘리셨습니다. 그분은 아무런 반역도 저지르지 않았는데 말입니다. 그분은 인간들 사이에 만연한 죄악의 물결로 인한 창조주이신 사랑의 하나님의 분노를 우리를 대신해 받으신 것입니다.

 

 

A. W. 토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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