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1-09-02 13:04
우울증에대한 오류와 진실.
인쇄
 글쓴이 : 웹섬김이
조회 : 8,690  

-- "상한감정의 치유"중 --

우울증이란 그리스도인들이 흔히 경험하는 증세이다. 아마 여러분 중에는

이렇게 반문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어떻게 그렇 수가 있나요? 우울증

에 걸린 그리스도인이라니요? 우울증과 그리스도인이란 두 단어는 서로가

성립되지 않는 말들이고 함께 어울릴 수 없는 말들입니다. 진정으로 성령

님에 의해 거듭난 체험을 하고 확실히 셩령의 충만함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절대로 우울증에 빠지는 일이 있을 수 없습니다. 진실로 어떤 그리스도인

이 우울증에 빠져 고민한다는 사실은 그에게 무엇인가 잘못된 것이 있고 주

님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바로 잡아야 할 잘못된 점들이 있다는 것이지요.

그것은 그 사람의 생활에 죄가 아직 남아있다는 확실한 증거입니다." 이

모든 말들이 아주 그렇 듯하고 단순하게 들릴지 모르나 이것은 성경에 나타

난 사실과 다르고, 그리스도인들의 경험을 통해 나타난 사실이나 심히학을

통해서 나타난 진리와도 상반된다. 물론 이것은 성도들의 자서전에 나타난

사실과도 일치하지 않는다. 그리스도인들도 우울해질 수 있다. 당신은 최

근에 다윗의 시편을 읽은 경험이 있는가?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

는가?"(시 42:5) "내 하나님이여, 내 영혼이 내 속에서 낙망하나이다."(시

42:6)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는가?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나는 내 얼굴을

도우시는 내 하나님을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시 43:5) 혹은 엘리야 선지

가 한 말을 들어 보지 않았는가? "오, 주여, 내 생명을 휘하옵소서."(왕상

19:4) 혹은 요나 선지가 한 말을 들어 본 적이 있는가?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음이니이다."(욘 4:3) 혹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께서 기

도하실 때 고통 가운데 하신 말씀을 들어 본 적이 있는가?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마 26:38) 사는 것을 포기할 정도로 심각한 우울

증에 빠져있는 상태를 찾아 본 적이 있는가? 우울한 심정을 표현하는 많은

시편의 내용들이 사람의 얼굴에 관해 말하고 있는데 그것은 매우 정확한 표

현이다. 우울하고 낙심한 사람은 그 얼굴에 아주 비참한 모습이 나타난다.

그는 마치 그의 어깨 위에 이 세상의 모든 무거운 짐이 놓여 있는 것처럼

수심과 근심에 찬 불해한 모습을 지닌다. 우울증의 또 다른 공통적인 증상

은 눈물을 흘리는 것이다.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 (시

42:3) 라고 시편 기자는 말한다. 이것은 놀라운리만큼 정확한 심리학적 표

현이다. 우울증은 종종 식욕 감퇴 현상을 초래한다. 아무 것도 먹고 싶지

않다. 음식을 먹을 수 없기 때문에 음식 대신 눈물을 먹고 산다. "내 눈

물이 나의 양식이 되었나이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덧붙인다. "네가, 눈

물이 나의 야채와 사라다와 후식과 음료수도 되었지요." 무엇이 잘못되어

그렇단 말인가? 우는 것을 중단할 수 없기 때문에 그들은 절망을 한고 살며

그것은 필수적으로 우울증을 더욱 심화시키는 결과가 된다. 성경은 우울증

에 관해 어떤 그리스도인의 설명보다 훨씬 더 우리에게 실제적으로 친절하

게 말해주고 있다. 그들의 설명 가운데는 그리스도인들도 매우 우울한 가

운데 빠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종종 죤 웨

슬레의 위대한 알데스게이트(Aldersgate)에서의 회심의 체험을 인용하곤 한

다. 그러나 나는 훼슬레의 몇가지 다른표현들을 여러분에게 더 인용할 수

도 있다. 그것은 마치 그의 찬란한 회심의 체험이 무효가 되는 것 같은 느

낌을 주는 우울하고 의심이 가득찬 낙심 가운데 부르짖는 말들이다. 선지

자의 모습 : 쌤열 로갠 브랜글 (Samuel Logan Brengle, Portrait of a

Prophet) 이란 책은 구세군이 낳은 유명한 성도에 관한 이야기이다

(Clarence W.Hall, The Salvation Armu,Inc). 브랜글이 쓴 거룩함에 관한

고전들은 수십 개의 언어로 번역되었고 수 백만의 신자들로 하여금 깊은 그

리스도 안에서의 삶을 살게끔 인도해 준 수단으로 사용되어 왔다. 헐

(Hall)이란 사람은 브랜글에 대해서 이렇게 썼다. "체질적인 우울증을 소

유한 그는 그의 마음에 찾아드는 우울한 감정들과 싸우곤 했다."(p.213) 후

에 그가 가두 집회를 할 때 술주정뱅이가 던진 벽돌이 그의 머리에 부딪쳐

그는 머리에 상처를 입고 고통을 겪어야만 했다. 이 상처로 인하여 받은

부작용 때문에 그가 오랫 동안 고생해 왔던 우울증이 더 심해졌다. 그럼에

도 불구하고 쌤열 로갠 브랜글 만큼 거룩한 삶을 산 성도가 또 어디에 있겠

는가? 우울증에 걸린 사람이 그것을 치료하기에 앞서 그는 먼저 자신이 우

울증에 걸렸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적지 않은 숫자의 그리스

도인들이 만일 자신들의 감정에 대해 아주 솔직하기만 하다면 "네, 우울증

이란 내게 있어서도 생소한 것이 아닙니다. 나는 당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압니다."라고 시인해야 할 것이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우울증을

부인함으로 말미암아더욱 문제를 악화시킨다. 그들은 우울증 위에 죄책감

을 덧붙여 문제를 이중으로 어렵게 만든다. 심한 우울증이 1톤에 해당하는

정서적 무게를 지는 것에 해당한다고 가정해 보자. 아마 그정도가 될 것

같다. 등에다 1톤의 무게를 지고 다니는 것이 나쁘긴 하지만 당신응 그것

을 질 수 있는 힘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렇게 말함으로 죄책감을

덧붙일 때 무게는 이중으로 가중되고 아무도 그 무게의 짐을 감당할 수 없

게 될 것이다. "내게 뭔가 잘못된 것이 있기 때문에 이러한 우울증이 내게

주어진 것이야." 우울증에 걸린 것이 반드시 영적으로, 잘못된 증거가 될

수 없다.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 가운데 우리는 가장 위대한 영적 승리를

체험한 후에 실망감에 사로잡혀 가장 큰 우울증을 경험한 사람을 찾아볼 수

있다. 이것은 엘리야의 생애 가운데 실제로 일어났던 이야기이다. 그에게

있어서 가장 위대한 순간 즉, 갈멜산에서 바알 선지자들을 대항하여 싸워

이겼던 일이 있었던 후에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가? 그 때 그가 로뎀 나

무 밑에 홀로 앉앗 하나님께 자기 생명을 빼앗아가 달라고 요청하는 모습을

우리는 볼 수 있다. 아브라함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창 15) 우리 가운데

많은 사람들도 이와 같은 경험이 있다. 우울증은 마치 자연이 가져다 주는

감정의 반작용인 것 같이 보인다. 이것은 마치 구경이 큰 총을 쏜 후에 생

기는 힘과 같은 반작용이다. 이것은 자연이 가져다 주는 반충(반충)이며

혹은 아마도 평형을 유지하려는 바퀴와 같은 역할인지도 모른다. 그 바퀴

가운데서 유지되는 평형을 씨.에스 루이스는 인간의 셩격 속에 존재하는

"파동의 법칙"이라고 부른다. 불행하게도 이 점에 있어서는 우리 그리스도

인 친구들이 가장 큰 대적이 될 수 있다. 우리는 그들이 거짓되고 비 현실

적인 충고를 하는 것을 보게 된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우울증에 대한 이

해가 거의 없는 상태이다. 자기 자신의 셩격이 그러한 문제와는 무관하기

때문에 우울증으로 인해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특히

서로 결혼의 관계를 맺은 사람들일 경우 더 무자비할 가능성이 있다. 만약

아내가 우울증으로 심한 고통 가운데 있고 남편은 그렇지 않을 때 남편은

자기 아내의 감정과 기분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될지도 모른다. 게

다가 남편이 아내가 우울증 가운데 빠져있는 동안 아내에게 영적인 부담을

얹어 준다면 그것은 이중적으로 무자비한 상황이 되어 버린다. 혹은 반대

로 아내가 남편에게 그와 같은 역할을 하기도 한다. 우울증으로 고통을 당

하는 적이 한번도 없다고 해서 당신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영적이라고

가정할 수 없는 일이다. 씨.에스.루이스는 우리가 칭찬받는 절반 가량의

덕(덕)이 우리가 영적으로 훌륭해서라기보다는 단순히 기질과 타고난 성품

때문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우울증과 죄책감. 어떤 종류의 우울증은 죄

읫까으로부터 혹은 의식적인 불순종과 범죄로부터 올 수 있다. 그러나 내

가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런 종류의 우울증과는 다르다. 아마 어떤

사람은 내가 어떨게 죄로 부터 온 우울증을 알아낼 수 있느냐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특히 양심이 지나치게 예민하므로 무엇이든지 꼭 해야만 한다는

감정에 사로잡혀 있거나 항상 불안감과 근심, 그리고 정죄감 때문에 고통을

받는 완전주의자는 그러한 질문에 큰 곤심이 쏠린다. 나는 여기서 매우 도

움이 될만한 일반적인 원리를 여러분들엑 소개하고자한다. 어떤 특별한 행

동이나 태도와 관련되어 있는 구체적인 죄책감은 일반적으로 보아 진짜 믿

을만한 죄책감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거기에 따르는 감정들도 실제적

인 죄로 인하여 오는 진짜 죄책감이나 우울증에 해당된다. 그러나 일반적

으로 가짜 정죄감 혹은 정서적인 원인으로 나타나는 우울증세는 불투명한

여러가지 것들이 다 원인이 될 수 있다. 거기에는 자기 자신을 비난하는

마음도 포함된다. 또한 근심되는 감정의 지배를 받게 되며 무엇이라고 꼭

잡아낼 수 없는 정죄감에 사로잡히게 된다. 죄로 인하여 우울증의 뿌리는

종종 매우 깊고 복잡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것은 어렸을 때 받은 상처

와 그 자국을 얼마나 많이 어른이 되어서까지도 가지고 다니느냐에 따라 더

깊고 복잡해질 수 있다. 우울증과 우리의 인격. 우울증은 여거가지 요소들

과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즉 우리의 인격, 구조, 신체적 차이점, 신체의

화학 작용, 홀몬의 분비 작용, 감정적 패턴 그리고 우리가 배워온 느낌을

통한 이해들과 관계된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것을 인식하고 용납해야

만 한다. 다음에 소개하는 아주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유치원 동요 내용을

이해할만한 훌륭한 상식이 우리에게 있었다면 얼만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잭 스프랫은 기름기를 먹을 수가 없고

그의 아내는 살코기를 먹을 수 없었다네.

그리하여 두 사람은 서로 협조하여 사이좋게

접시를 깨끗하게 비워 버렸네.

이것은 롤라울 정도로 우리에게 인격 구조를 심오하게 분석해 주고 있다.

잭 스프랫과 그의 아내는 타고난 체질이 전혀 다르다. 그들에게 꼭 같은

방식대로 먹게 하거나 같은 방식대로 살 것을 강요하지 말라. 그들에게 꼭

같은 방식대로 먹게 하거나 같은 방식대로 살 것을 강요하지 말라. 그것은

그들의 독특한 성격을 존중하지 않는 처사이다. 그들은 둘 다 가치를 부여

받은 사람들이며, 서로의 체질이 전혀 다를지라도 서로 깊이 사랑할 수 있

기 마련이다. 내가 원하는 것은 더 많은 목사님들과 교사들과 전도자들과

특히 부모님들이 앞에서 말한 동요에서 가르쳐 주는 건전하고 훌륭한 상식

을 통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잠간만요," 어떤 사람이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며 옛 것은 다 지나갔다고

한 것을 잊으셨나요? 중생의 경험과 성화의 과정들이 각 사람들의 다른 점

들을 없애버리지 못한다는 말입니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분명하다.

"하나님께 감사한 것은 우리의 기본적인 차이점이 변화되지 않는다는 점입

니다."

영적으로 거듭난다고 해서 우리의 기본적인 성품에 속한 기질이 변화 되지

않는다. 오스왈드.쌘더스의 말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이 우리 안에

들어오는 것이지 우리의 기본적 성품에 속하는 기질이 바뀌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것은 우리 자신이 없어져 버리는 것을 뜻하

지 않는다. 바울은 회심한 후에도 똑같은 바울이었다. 베드로도 베드로의

특성이 남아 있었고 요한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다른 사람이 되

지 않았다.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는 아무 것도 똑같은 것이 존재하지 않는

다. 똑같은 눈송이 조차도 발견할 수 없다. 하나로 통일된 가운데 존재하

는 여러가지 다양성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그가 인도하시는 길이 매우 신

비롭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나타내주고 있다. 우리는 기질 면에서나 성격구

조 면에 있어서 각자가 다 다르다. 우리는 보는 것과 느끼는 것이 다르고

우리가 느끼는 반응도 다르고 해석도 각자가 다 다르게 한다.

바울 사도는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다"고 우리에게 상기시켜 준

다.(고후 4:7) 천성적으로나 기질적으로 어떤 사람들은 신경이 예민하며,

염려하며, 혹은 쉽게 놀라기도 한다. 그들은 지나치게 감정이 예민하고 마

음이 쉽게 감동되거나 변한다. 나는 때때로 바울사도도 그러한 사람 중의

한 사람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는 용감하게 고린도에 들어갔지만 "약하

여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노라"(고전 2:3)고 한 것을 볼 수 있다. 그는 극

도로 긴장된 상태에서 "밖으로는 다툼이요 안으로는 두려움"에 가득 차 있

던 젊은이였다.(고후 7:5) 이것은 물론 젊은 디모데 목사의 경우와도 같

다. 디모데후서 전체는 바울 사도가 디모데를 우울증으로부터 벗어나게 하

려고 쓴 책처럼 보인다. 브랜글의 자서전을 기록한 분은 그를 가리켜 "타

고난 우울증의 소유자"라고 불렀다. 매우 내성적이고 예민한 성격의 소유

자가 가장 심한 우울증에 걸릴 수 있는 것을 우리는 종종 발견한다.

우울증에 걸려있는 우리 자신의 문제를 현실적으로 처리하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우울증 증세를 더 확대시키는 근본 원인이 되고 있다. 만약 우리가

자연적인 것(우리의 기질과 성격구조)과 초 자연적인 것(우리의 영적 생활)

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아주 심각한 잘못을 범하게

되고 만다. 우리의 감정과 믿음은 똑같이 우리의 인격(성격구조)을 통해서

역사하신다. 여기에는 다른 특별한 뒷길이나 지름길이나 샛길이 있을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머리 위표면에 구멍을 뚫으시고 마술과 신비의

깔대기를 대고 우리에게 그의 은혜를 부어주신 것이 아니다. 우리가 믿음

을 구사할 때나 감정을 표현할 때 두 경우 다 똑같이 우리의 심리적인 요소

들을 통해서 하는 것이다. 우리가 이 사실을 좀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

T.V와 스테레오 음향기와 라디오가 연결되어 만들어진 아주 크고 값비싼 오

디오 세트를 생각해 보기로 하자. 이것은 아주 멋진 기구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만약 그렇게 막대하게 조립된 기계에서 트랜지스터의 어떤 부분이

고장났다면 그 음향 장치는 작동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모든 구성 요소들이 다 같은 기계 구조를 통해서 작동하게끔 만들어졌기 때

문이다. 기계의 접착선이 이쪽 부분에서 타버렸거나, 콘덴서나 트랜지스터

의 일부가 저쪽 부분에서 잘못되었다면 세 개의 음향기는 모두가 그것에 의

해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 음향기들은 모두가 동

일한 기계 구조를 통해 작동하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우울증은 영적인

근원 이외에 다른 곳으로부터 올 수 있다. 그것은 우리의 인격 구조 중 어

딘가가 잘못되었기 때문에 올 수 있다. 아마 그것이 신체적인 이유가 될

수도 있고 혹은 감정과 인격의 불균형 때문일 수도 있다. 트랜지스터에 문

제가 생겼고 접착선이 타버렸을 때 그것은 우리의 영적 생활에까지도 영향

을 끼치게 된다.

브랜글의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누구보다 더 거룩한 삶을 살았던 그분이

자신에 대해 이렇게 기록했다. "내가 전에 느끼지 못했던 무서운 흑암과

우울증이 나에게 엄습해 왔다 ... 하나님이 계시지 않은 것 같이 느껴졌다.

나는 무덤으로 향하여 끝없이 달리는 것 같이 느껴졌다. 나는 인생의 모든

영광과 매력과 의미를 잃어버렸다 ... 기도를 해도 아무 소용이 없었고 진

정 나는 기도의 영과 기도하는 능력을 잃어버린 것과 같은 느낌이 들었다."

(Hall, Portrait of a Prophet, p.214)

바로 전에 말한 오디오 세트에 관한 예를 우리에게 적용시켜 보자. 하나님

의 사랑이 아직도 우리에게 계속적으로 오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송신인

에게는 아무런 이상이 없다. 라디오 방송국에서는 아름다운 음악을 내어

보내고 있고 텔레비젼 송신기는 화면에 올바른 영상들을 내어보내고 있다.

그런데 소리가 안들리고 텔레비젼 화면에 하얀 공백만이 나타날 뿐이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수신기 세트에 무엇인가가 고장이 났기 때문이다.

부랜글에게도 그와 같은 일이 일어났던 것이다. 그러나 그가 얼마나 현명

했던가를 살펴볼 수 있다. 그는 자신이 어떤 어려운 감정 가운데 빠진다 해

도 하나님이 거기에 계시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각 문장마다 '...처럼 느

껴졌다.'(seemed)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내가 무덤으로 향해 달려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브

랜글 자신도 그 단어에 줄을 쳐 놓았다.

당신은 감정의 심한 변화를 느껴본 경험이 있는가? 모든 것이 다만 족한 상

태에서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아침에 깨어보니 하나도 만족스럽지 못하

다. 그럴만한 아무런 이유도 생각해 낼 수가 없다. 어제 당신은 행복했

다. 오늘도 아주 좋은 날이 되기를 고대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일이 생

겼고 당신은 어제와는 다른 반응을 나타냈다. 어제 일어났던 일에 대한 당

신의 감정과 행동과 해석이 오늘의 것들과는 전혀 다르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거기에 당신만이 홀로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하나님이 거기

에 게시고 사단도 마찬가지로 함께 거기에 있다. 사단이 침대 끝에 앉아서

당신의 인격 속으로 살짝 들어오려고 엿보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사단은 영의 세계에 속해있기 때문에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이

미 알고 있다. 즉 기질적인 것이나 영적인 것 모두가 우리의 신체적인 기

능에 의하여 좌우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단은 우리에게 나타나는 기질적인 우울증의 현상을 영적인 우울

증으로 바꾸어 놓으려 한다. 사단은 우리의 정서적 우울증을 영적인 패배

로 바꾸어 놓기를 원한다. 그는 당신이 소유한 수신기 안에서 완전히 타버

린 감정을 취하여 당신이 가지고 있는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완전히 타버린

것처럼 나든다. 그는 당신의 연약함을 매우 잘 알고 있다. 그는 당신의

마음 속 깊은 곳에 있는 것을 알아차리고 그곳에 열려진 통로를 통해서 살

짝 당신의 인격 속으로 쳐들어온다.

사단이 얼마만큼 우리를 누르고 승리하려고 하는지 당신은 알고 있는가? 그

는 마치 운동 시합을 하는 우리에게 반칙을 범해 스스로 퇴장하도록 방해

공작을 하고 있다. 그는 우울증으로부터나오는 자연적인 감정을 변화시켜

우리가 영적인 패배감과 의심, 그리고 낙담하는 마음을 갖게끔 유도한다.

당신의 개성을 인정하라..

나는 당신이 자신의 개성을 용납하고, 당신의 기질을 인정할 것을 강력히

권호하는 바이다. 이제는 진리가 당신 마음을 다스리고 있기 때문에 더 이

상 자신에 대해 스스로 거부감을 가질 필요가 없다. 당신의 기질을 적대시

하며 싸우던 것을 중지하고 그것이 하나님으로부터 당신에게 주어진 선물이

라는 것을 인정하라. 내 경우를 보더라도 그렇다. 나는 수년 동안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어 보려고 나 자신과 싸우며 지냈다. 나는 신경이 예

민하고 긴장하기 쉬운 성격을 소유한 나 자신을 못마땅하게 생각했고, 항상

나 자신에 대해 화가 났으며,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어 보려고 노력했

다. 내 생애에 전환점을 맞이한 것은 바로 내가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용

납할 수 있었을 때부터였다. 어느늘 주님께서 내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자, 이것이 네가 가진 것 전체이다.! 너는 네가 아닌 다른 사람

이 될 수 없어. 네가 가진 것을 불평하지 말고 만족하게 여겨라. 그리고

그것을 가지고 잘 활용하는 법을 배워라."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너의 진짜 모습이 아닌 초인적 자신(Super

You)의 모습을 버리고 실제의 모습(Real You)을 내 손에 맡겨버린다면 너와

나는 좋은 관계를 가지게 되는 동시에 내가 너를 너 자신의 모습 그대로 사

용할 수 있으리라."

우울증을 극복하며 사는 방법의 첫 단계는 당신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

이는 것이다. 이것은 당신이 자신의 기질에 의하여 좌우되어야 한다는 뜻

이 아니다. 구원의 확신을 가진 후에 우리는 성령님의 지배를 받게끔 되어

있다. 그러나 성령님은 당신이 그를 인식하고 그에게 자신을 드릴 때만 우

리 안에 충만히 거하시고 우리를 지배하실 수 있다. 당신의 기질이 변화될

수는 없을지라도 당신은 성령님께 자신을 지배하시도록 허용할 수는 있다.

우리는 앞서 브랜글이 깊은 우울증에 빠져 있었던 것만을 보고 지나갔다.

그를 그러한 상태로 두고 싶지 않은 것이 나와 여러분의 동일한 생각이라고

믿는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기도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진정 나는 기도의 영과 기도하는 능력을 잃

어버린 것 같은 느낌이었다. 다음 순간 내가 기억했던 것은 비록 내 마음

에는 전혀 찬양과 감사를 드리고 싶은 느낌이 없었지만 내 의지로서 하나님

께 감사와 찬양을 드리는 것이었다. 나의 감정은 우울증과 흑암으로 완전

히 뒤엎여 있을 뿐 아무 것도 느낄 수 없었다. 그러나 내가 그러한 시련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했을 때 그것은 축복으로 변하기 시작했고 환한 빛이 희

미하게 떠오르면서 천천히 타오르는 그 빛은 마침내 내 마음 속에 있던 흑

암을 깨뜨리고 말았다. 우울증은 지나가 버렸고 나의 인생은 다시 아름답

고 생기있는 모습으로 변했다. 나는 다시 한번 은혜로운신 축복들로 인하

여 충만함을 경험할 수 있었다."(Hall,Portrait of a Prophet, p214)

바로 그것이다 브랜글이 말한 "나는 기억했다."가 중요한 사실이다. 바울

이 디모데에게 쓴 서신서에도 "내가 너로 생각하게 하노니"라는 대목이 나

온다. 내일 아침 잠이 깨었을 때에도 당신이 기억할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

당신의 감정이나 또는 행위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심지어 그

것은 하나님께 대한 당신의 사랑에 의해 좌우되는 것도 아니다. 그의 사랑

은 오직 하나님 자신의 미쁘심에서 부터 나오는 것이다. 주님의 지속적이

고 변함없으신 사랑은 결코 끊어지지 않는다. 그의 자비하심은 결코 고갈

되어 없어지지 않는다. 그 사랑과 자비하심은 매일 아침마다 새롭다. "주

의 성실이 크도소이다. ....여호와는 나의 기업이시니 그러므로 내가 저를

바라리라" (애 3:23- 24)


 
 

일반형 뉴스형 사진형 Total 3,686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326 우울증 치료에 대한 기독교 신앙적 접근 (논… 웹섬김이 09-02 10754
325 성경에 나타난 우울증 이야기 웹섬김이 09-02 9284
324 "2020년, 우울증 대란"…자살과 우울증 웹섬김이 09-02 8939
323 우울증에대한 오류와 진실. 웹섬김이 09-02 8691
322 성경과 교회사에 나타난 우울증의 사람들 웹섬김이 09-02 12263
321 우울증(데이빗 A. 시맨즈) 웹섬김이 09-02 9108
320 성경으로 본 우울증과 자살 웹섬김이 09-02 8881
319 기독교인이 우울증에 시달릴 때 웹섬김이 09-02 7990
318 극도로 억제된 우울 웹섬김이 09-02 7632
317 우울증의 유형 웹섬김이 09-02 8130
316 우울증 관리의 중요성 웹섬김이 09-02 7714
315 우울증의 원인 웹섬김이 09-02 7942
314 우울증의 증상 웹섬김이 09-02 7616
313 진정한 우울증은 질환 웹섬김이 09-02 7918
312 우울증이란 무엇인가? 웹섬김이 09-02 8640
311 상처란 무엇인가?(내적치유) 웹섬김이 09-01 9072
   211  212  213  214  215  216  217  218  219  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