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1-09-02 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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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그럴 수 있나요? 우울증에 걸린 그리스도인이라니요? 진정으로 성령님에 의해 거듭난 체험을 하고 확실히 성령의 충만함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절대로 우울증에 빠지는 일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그 사람의 생활에 죄가 아직 남아 있다는 확실한 증거입니다."
위의 말이 아주 그럴 듯하고 단순하게 들릴지 모르나 이것은 성경에 나타난 사실과 다르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는가?"(시 42:5) "오, 주여, 내 생명을 취하옵소서"(왕상 19:4)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음이니이다"(욘 4:3)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마 26:38)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우울증을 부인함으로 말미암아 더욱 문제를 악화시킨다. 그들은 우울증 위에 죄책감을 덧붙여 문제를 이중으로 어렵게 만든다. 심한 우울증이 1톤에 해당하는 정서적 무게 를 지는 것에 해당한다고 가정해 보자. 아마 그정도가 될 것 같다. 등에다 1톤의 무게를 지고 다니는 것이 나쁘긴 하지만 당신은 그것을 질 수 있는 힘이 있을는지 모른다. 그러나 이렇게 말함으로 죄책감을 덧붙일 때 무게는 이중으로 가중되고 아무도 그 무게의 짐을 감당할 수 없게 될 것이다. "내게 뭔가 잘못된 것이 있기 때문에 이러한 우울증이 내게 주어진 것이야."
우울증으로 고통을 당하는 적이 한번도 없다고 해서 당신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영적이라고 가정할 수 없는 일이다. C.S.루이스는 우리가 칭찬받는 절반 가량의 덕이 우리가 영적으로 훌륭해서라기 보다는 단순히 기질과 타고난 성품 때문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죄로 인하여 우울증이 유발될 수 있으나 모든 우울증이 죄로부터 오는 것은 아니다. 우울증의 뿌리는 종종 매우 깊고 복잡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것은 어렸을 때 받은 상처와 그 자국을 얼마나 많이 어른이 되어서까지도 가지고 다니느냐에 따라 더 깊고 복잡해 질 수 있다.
우울증은 여러가지 요소들과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즉 우리의 인격구조, 신체적 차이점, 신체의 화학작용, 홀몬의 분비 작용, 감정적 패턴 그리고 우리가 배워온 느낌을 통한 이해들과 관계된다.
영적으로 거듭난다고 해서 우리의 기본적인 성품에 속한 기질이 변화되지 않는다. 오스왈드 쎈더스 의 말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이 우리 안에 들어 오는 것이지 우리의 기본적 성품에 속하는 기질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것은 우리 자신이 없어져 버리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바울은 회심한 후에도 똑같은 바울이었다. 베드로도 베드로의 특성이 남아 있었고 요한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다른 사람이 되지 않았다.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는 아무것도, 똑같이 존재하지 않는다. 똑같은 눈송이 조차도 발견할 수 없다. 바울 사도는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다"고 우리에게 상기시켜 준다.
우리의 감정과 믿음은 똑같이 우리의 인격(성격구조)를 통해 작동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나주실 때도 그는 우리의 인격을 통해서 역사하신다. 여기에는 다른 특별한 뒷길이나 지름길이나 샛길이 있을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머리 위 표면에 구멍을 뚫으시고 마술과 신비의 깔때기를 대고 우리에게 그의 은혜를 부어주신 것이 아니다. 우리가 믿음을 구사할때나 감정을 표현할 때 두 경우 모두 다 똑같이 우리의 심리적인 요소들을 통해서 하는 것이다.
사단은 우리에게 나타나는 기질적인 우울증의 현상을 영적인 우울증으로 바꾸어 놓으려 한다. 사단은 우리의 정서적 우울증을 영적인 패배로 바꾸어 놓기를 원한다.
나는 당신이 자신의 개성을 용납하고, 당신의 기질을 인정할 것을 강력히 권고하는 바이다. 이제는 진리가 당신 마음을 다스리고 있기 때문에 더 이상 자신에 대해 스스로 거부감을 가질 필요가 없다. 당신의 기질을 적대시하며 싸우던 것을 중지하고 그것이 하나님으로부터 당신에게 주어진 선물이라 는 것을 인정하라.
"기도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진정 나는 기도의 영과 기도하는 능력을 잃어버린 것 같은 느낌이었다. 다음 순간 내가 기억했던 것은 비록 내 마음에는 전혀 찬양과 감사를 드리고 싶은 느낌이 없었지만 내 의지로서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리는 것이었다. 나의 감정은 우울증과 흑암으로 완전히 뒤덮여 있을 뿐 아무 것도 느낄 수 없었다. 그러나 내가 그러한 시련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했을 때 그것은 축복으로 변하기 시작했고 환한 빛이 희미하게 떠오르면서 천천히 타오르는 그 빛은 마침내 내 마음 속에 있던 흑암을 깨뜨리고 말았다. 우울증은 지나가 버렸고 나의 인생은 다시 아름답고 생기있는 모습으로 변했다. 나는 다시 한번 은혜로우신 축복들로 인하여 충만함을 경험할 수 있었다." 라고 브랜글이 고백한 것 처럼 하나님을 기억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내일 아침 잠이 깨었을 때에도 당신이 기억할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 당신의 감정이나 또는 행위로 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심지어 그것은 하나님께 대한 당신의 사랑에 의해 좌우되는 것도 아니다. 그의 사랑은 오직 하나님 자신의 미쁘심에서부터 나오는 것이다. 주님의 지속적으고 변함 없으신 사랑은 결코 끊어지지 않는다. 그의 자비하심은 결코 고갈되어 없어지지 않는다. "주의 성실이 크도소이다. ...여호와는 나의 기업이시니 그러므로 내가 저를 바라리라"(애 3:23-24)
- 데이빗A. 씨맨즈 <상한 감정의 치유>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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