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1-03-16 22:04
선교와 문화인류학(폴 히버트)[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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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웹섬김이
조회 : 8,949  

우리의 목표는 홀로 사역하는 고립된 교회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교회들이 함께 하나가 되어 교제를 나누고 공통의 과업을 지향하도록 하는 것이다.

하나의 원칙: 자기 신학화

자기 신학화란 신생 교회가 스스로 성경을 읽고 해석할 권리를 갖는 것이다.

자신들의 문화에 보다 적합하다고 주장하는 신학을 현지 지도자들이 발전시켜 나갈 우리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신학적 다원주의의 허용이냐, 자문화 우월주의 노선이냐?)

신학적 다원주의로 나갈 우리는 신학적 충격을 경험한다.

신학적 다원주의에 대한 반응은 그것을 부인하는 .

그러나 우리가 아는 것만이 진리라는 확신에 대한 대가는 엄청나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끼리만 모여 고립된 공동체를 이루게 된다.

우리는 1) 성경의 진실성을 굳게 믿고, 2) 강한 신학적 확신도 갖고 있다. 우리는 1) + 2) 동일시 시키려 한다. 하지만 성경과 신학은 분리될 수밖에 없다. 신학이 특정 언어로 기술된다는 자체가 문화 종속적인 면이다.

신학은 한편으로 성경에, 한편으로 문화에 뿌리를 내리고 있기 때문에 신학은 "우리" "복음" 연결시켜주는 가교 역할을 한다. 이때 필요한 것은,

신중한 성경 석의

우리 자신의 문화적 역사적 상황에 대한 신중한 석의

좋은 성경 해석학

그러면 신학의 진실성은 어떻게 점검할까? 신학적 다원주의는 어떻게 대처할까?다음의 점검 기준이 필요하다.

번째 점검 기준: 성경 자체

우리는 신학이 아니라 성경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번째: 진리 안에서 성도들을 가르치시는 지속적인 성령의 역사.

번째: 기독교 공동체

이러한 단계를 밟는다 하더라도 우리의 신학이 모두 같아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믿는 바를 확고히 고수하면서 그것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권리를 갖고 있다. 그러나 타인을 정복하려 것이 아니라 사랑 안에서 진리를 말하는 것이 필요하다.

신학의 종류에는 가지가 있다.

공시적

실재의 배후에 있는 기본 체계를 연구

하나님, 세상, 인간, , 구원 본질에 관한 질문을 한다.

통시적

우주, 인간사회와 개인의 궁극적인 기원, 목적, 운명 등에 대한 질문을 제기.

가지 모두 필요하다. 우리가 하나님과 우주의 본질에 대해 연구하고자 한다면 조직 신학, 공시적 신학이 필요하고, 현재 진행되고 있는 일에 대해 알기 원한다면 성경 신학, 통시적 신학이 필요하다.

상황 속에서의 신학.

다른 문화권의 교회들도 그들 자신의 상황 속에서 복음을 이해하고 적용할 있는 동일한 권리를 갖고 있는가? –> 그들도 우리와 동일한 권리가 있으며, 또한 그들의 신학이 잘못될 위함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생 교회는 자신의 성장을 위해 스스로 성경을 연구해야 한다.

상황화의 단계

초신자 양육

선교사가 주도적으로 성경 메시지를 현지 문화에 맞게 상황화 해나가야 한다.

선교사가 현지 문화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올바르게 인식하는 것이 중요함.

현지 신학자 양성

교회 내에서 자연스럽게 지도자가 나올 있도록 격려하고 훈련해야 한다.

초문화 신학의 근거

초문화 신학을 추구해야 이유는 이를 통해 우선 세계 그리스도인들이 교제권을 구축할 있다는 점이다.

교회의 선교 과업을 함께 감당하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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