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1-03-16 21:57
선교와 문화인류학(폴 히버트)[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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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웹섬김이
조회 : 7,353  

이는 다른 문화권을 처음 대하게 갖는 정상적인 감정적 반응이다. 문화 차이가 발견되는 곳이면 어디든지 발생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감정 이입이 필요함. , 다른 문화와 그들의 방식을 존중하는 것이다.

평가적 차원의 장애물: 미숙한 판단

다른 문화를 접할 제대로 이해하고 인식하기도 전에 먼저 판단하려는 경향.

때는 문화적 틀이 아닌 우리 자신의 문화 가치를 사용하여 평가하게 된다.

미숙한 판단의 극복을 위해

문화 상대주의를 가질 있다. 모든 문화는 동일하게 선하다는 접근법이며, 어떤 문화도 다른 문화를 판단할 권리를 갖지 못한다는 믿음. 그러나 완전한 상대주의로 인해 절대적 진리, 절대적 의를 잃어버릴 수도 있다. 그렇다면 복음도 필요 없고 선교할 이유도 없어지게 되므로 주의 필요함.

우리는 자신의 우월성을 선포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의 진리 됨을 주장한다. 성경 해석에 있어 우리가 편견이 있음을 인정하고 수정할 여지를 갖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자신의 문화와 사역하는 곳의 문화가 갖는 양자의 가치관에 대해 연구해야 한다.

진리와 의에 대한 우리의 단일 문화적 관점이 깨어지는 경험 없이는 성경의 문화적 이해에 이를 없다.

이제 우리가 이중 문화적 사람이 되었을 세계를 어떻게 우리 내면에서 조화시킬까?

배척

하나를 배척하는 방법

선교사로 왔다면 그곳의 문화를 배척할 없다. 결국 교묘하게 그곳의 문화를 미개하다고 규정할 있다.

이런 접근법은 복음을 의미 있게 현지인들에게 전달할 기회를 마든ㄴ다.

현지인화

우리 자신의 문화를 배척하고 현지인화 하는 .

보통 실패하게 되는데 이유는

우리가 풍요로운 사회에 속해 있다는 것으로 인해 정죄감에 빠질 있다.

아무리 노력해도 100% 현지인화 수는 없다.

아무리 노력해도 현지인들은 언제까지나 우리를 외국인으로 것이다.

본국 문화를 배척하게 되면 우리는 교회에 접촉하는 외부인으로서 우리의 유용성을 감소시킨다.

구획화

스스로 문화를 구획화 하는 것으로 가장 즉각적이고 단순한 해결책이 되곤 한다.

그러나 도가 지나치면 심각한 결과를 초래한다.

위선자나 표리부동한 사람이라는 비난을 받을 있다.

구획화는 세계 가운데 부딪치는 내적 긴장을 해결해주지 못한다.

통합

장기적으로 가장 깊은 수준에서 문화권간에 통합을 이루어 가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 문화적 틀이 필요함: 반드시 성서적 진리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어야 한다.

생활 양식의 동일화:

역할의 동일화: 때에 따라 현지인 밑에서 일해야 경우도 있다.

태도의 동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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