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1-03-16 21:56
선교와 문화인류학(폴 히버트)[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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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웹섬김이
조회 : 7,948  

일반적으로 적대적 반응을 일으키어 문화 충격에서 가장 위기에 해당함.

또한 새로운 문화권에서 살아가는 법을 습득해간다.

회복

단계에서 어떻게 현지인과 문화와 관계 맺느냐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함.

시기에 형성된 적응 형태가 이후에도 그대로 고정되곤 한다.

적응

새로운 문화가 편하게 느껴지는 때이다.

문화 충격

오랜 세월 해외에 체류한 본국에 돌아왔을 경험한다.

모든 것이 사치스러워 보이고 궁핍한 세상에 대한 무관심으로 보인다.

결국 자신의 원래 문화에서도 이방인이 된다.

새로운 문화에 적응하려면?

염려를 인정해야 한다.

문화 충격의 가장 파괴적인 부분은 구체적인 두려움이 아니라 오히려 염려이다.

새로운 문화를 배워야 한다.

문화를 배우는 것은 두려운 일일 수도 있지만 새로운 경험이 수도 있음. 차이는 보통 상황에 대처하는 사람의 태도에 달려있다.

문화는 참여함으로써 가장 배울 있다.

스스로 이국적 영토를 형성하고 그곳에서 사역을 시작하기 보다는 새로운 문화 내로 들어가서 현지인이 보는 대로의 생활을 체험하는 것이 좋다.

현지인으로 배운다면, 전도의 중요한 수단이 수도 있다.

신뢰를 쌓아야 한다.

타인에 대한 우리의 관심은 진정한 것이어야 한다. 관심은 여러 방식으로 드러난다.

또한 신뢰를 쌓는 데는 편견 없는 열린 마음도 필요하다.

스트레스를 해결해야 .

현실적인 목표

그리스도인들은 분주한 활동을 영적이라고 생각하거나, 여가를 누리는 것을 시간낭비라고 보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단기간에 소진되는 것을 피하고 평생 사역할 자로 살아가야 한다.

외국에서는 결코 이전과 동일 수준의 업적을 이룰 없으므로 현실적인 목표를 세워야 .

너무 심각하지 않아야 한다.

어느 모임에 불참하는 지금 내게는 치명적인 같지만 4 후에는 기억도 것이다.

반면, 언어를 배우고 사람들을 방문하는 것은 사역에 방해처럼 느껴지지만 나중에 돌아보면 초기 사역에 가장 중요한 업적이 있다.

유머와 융통성도 중요함.

감사는 스트레스의 반작용제이다.

부담을 나누어야 한다.

선교단체들은 선교지의 선교사를 돌봐줄 사람을 정해주지 않는데 이는 선교사 스스로 그런 사람을 찾아내도록 방치된 것이다.

4_성육신적 선교사

성육신적 선교사가 된다는 것은 문화 차이로 인해 생기는 신학적 문제들을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문화는 지식, 감정, 가치 가지 차원을 갖는다. 문화의 온전한 참여자가 되려고 가지 차원에 각각의 장애물이 있다.

인식적 차원의 장애물: 오해

인식적 장애, 새로운 문화에 대한 지식과 이해 부족과 연결됨.

오해를 극복해야 한다. 극복하기 위해선

배우는 자로 새로운 문화권에 들어가야 한다. 가르치는 보다 배우는 자로 들어갈 복음을 전할 있는 기회가 많이 주어진다.

또한 오해를 풀어주기 위해서는 우리의 방식을 명백하게 설명해주어야 한다.

내부자적 관점과 외부자적 관점

사람들은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 자신의 문화를 버려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이는 불가능함. 또한 그리 있어도 그것이 항상 좋은 것은 아니다.

선교사는 곳에서 다른 곳으로 정보를 전달해주는 문화 중개인이다.

최대한 긴밀하게 동일시된 후에도 어떤 의미에선 여전히 외부자임을 인정해야 한다.

감정적 차원의 장애물: 자문화 중심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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