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의 신학적 중심
중심하나님이 주권적으로 세우시고, 유지하시고, 발전시키시고, 완성하시는 “하나님의 나라”가 신구약의 신학적 중심주제
구약성경은 최소한 세 가지 측면에서 방대한 책이다.
우선 분량 면에서 방대하다. 구약은 한 권의 책이지만 39권의 독립된 책들을 포함하기에 작은 도서관에 비교될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다음으로 구약은 내용적인 측면에서 방대하다. 구약의 각 책들이나 책의 묶음들(예를 들어, 모세오경이나 시편의 글들)은 각기 다른 시대에 서로 다른 저자들이 나름대로의 특별한 관심과 주제를 가지고 쓴 글들이다. 그렇다보니 구약에서 다뤄지는 주제들은 그 수를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다양하다.
여기에 더하여 저자의 관심과 주제를 표현해내는 문학양식도 이야기(내러티브), 율법, 노래나 시, 잠언, 예언 등으로 세분화된다. 하지만 이런 다양성 속에 전체를 하나로 묶는 통일성이 존재하며, 이것이야말로 이 책을 특별하게 만든다. 전체를 하나로 묶는 통일성, 이것은 구약이 한 분 하나님의 뜻을 펼쳐 보여주며 책의 궁극적 기원이 하나님께 있다는 사실을 반증한다.
그렇다면 구약성경이 펼쳐 보여주는 하나님의 뜻은 대체 무엇일까?
만일 이 하나님의 뜻이 다양성으로 특징지어지는 전체 성경에 통일성을 부여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형태를 지니는 것일까? 한 두 개의 신학적 주제를 중심으로 수많은 신학적 내용들이 어우러져 깊고도 넓은, 하나님의 오묘한 뜻이 드러나도록 되어있는가? 독일의 저명한 구약 학자 폰라드(G. von Rad)는 여기에 반대한다. 그는 구약이 여러 시기에 다양한 상황을 배경으로 생겨난 “신앙고백”(Credo)의 확장 내지 “현실화”(Vergegenwärtigung)의 산물이므로 구약에서 전체를 묶는 “중심”(Mitte)을 발견하는 일은 불가능하며, 최선의 방식은 구약이 전하는 “케리그마”(선포)를 “재진술”(Nacherzähung)하는 일이라고 주장한다.
이와는 다르게 미국의 저명한 구약 학자 차일즈(B. S. Childs)는 권위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옛 신앙공동체(구약 이스라엘)와 상호관계 속에서 최종적인 형태를 얻게 된 것이 현재의 구약성경이므로, 구약신학의 과제란 현재형태의 구약성경에 각인된 “정경적 의도”(canonical intention)를 발견하는 일이라고 주장한다. 차일즈에게 영향을 받은 학자들은 대체로 어떤 주제를 중심으로 구약신학을 구성하기보다 구약의 각 책들이나 책의 묶음들이 담고 있는 풍부한 신학적 내용들을 자세히 설명하는 일에 치중한다.
그러나 구약의 다양한 주제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중심 주제를 고수하는 학자들도 적지 않다. 침멀리(W. Zimmerli)에 따르면, 구약의 중심에는 모든 변화를 가로질러 자기 백성 이스라엘과 관계하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동일성”(die Selbigkeit des Gottes)에 대한 믿음이 있다.
카이저(W. C. Kaiser Jr.)는 구약 역사의 흐름 속에서 점진적으로 성취되다가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완성되는 “하나님의 약속-계획”(the Promise-Plan of God)이 구약의 중심이라고 주장한다. 이와는 달리 프로이쓰(H. D. Preuß)는 “세상과 함께 하시기 위해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여호와의 역사행위”를 구약의 중심으로 내세운다. 하지만 하우스(P. R. House)가 잘 말하였듯이 특정한 주제를 “중심”으로 내세우는 일은 다른 모든 주제가 부차적이라는 사실이 입증될 때만 가능하다. “하나님의 동일성”, 그분의 “약속”, “이스라엘의 선택” 등이 구약의 중요주제인 것은 분명하나 이것이 구약의 모든 주제를 하나로 묶을 수 있을 만큼 포괄적인지는 의문이다.
다른 한편, 하젤(G. Hasel)은 구약의 중심에 대한 여러 학자들의 견해를 살핀 다음 “하나님”이 구약의 “역동적, 통합적 중심”이라고 밝힌다. 여기서 “중심”이란 구약의 다양한 신학적 주제들을 “조직하는 원리”(organizing principle)가 아니다. 하젤이 염두에 둔 것은 구약의 다양한 주제들을 통합하는 “신학적 중심”(theological center)으로서의 하나님이다. 하젤과 유사하게 하우스(P. R. House)는 “중심”이란 말을 사용하지 않고 “한분 하나님의 존재와 예배”가 구약의 “주요 초점”(a main focal point)이라고 제안한다. 하젤이나 하우스의 견해는 사실상 구약에서 어떤 특정 주제를 신학적 중심으로 삼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인식에 따른 것이다. 과연 그들의 생각이 옳은가?
구약은 분명히 창조에서 종말로 나아가는 뚜렷한 방향성을 갖는다. 육일간의 창조가 일곱째 날의 안식으로 완성되는 시간 구조가 이런 방향성을 지시한다. 메릴(E. H. Merrill)의 말을 빌리자면, 구약은 역사 속에서 펼쳐지고 종말에 가서 완성될 하나님의 “영원하고 필연적인 목적”에 초점을 맞춘다. 이러한 역사적, 신학적 방향성이야말로 구약의 중심이라 할 수 있으며, 이것을 포착해야만 구약이 다양한 방식으로 전하는 신학적 메시지를 올바로 파악할 수 있다.
메릴은 “인간 대리자를 통한 하나님의 주권적인 통치”가 가져올 “하나님의 나라”의 완성이 구약의 모든 신학적 내용들을 하나로 묵는 중심 주제라고 주장한다. 사실 메릴의 견해는 이미 19세기 신학자 슐츠(H. Schultz)에게도 나타나며, 특히 구약신학 분야에서 20세기에 가장 중요한 작품을 남긴 것으로 평가되는 아이크롯(W. Eichrodt)과 밀접한 관련을 보인다. 아이크롯은 “언약”에 초점을 두고 구약의 황단면(cross-section)을 살핀 결과 “이 세상에 침투해 들어온 하나님 나라의 완성”이 신구약성경을 하나로 묶는다고 말한다.
아이크롯과 마찬가지로 미국 남침례 신학교의 두 교수 젠트리(T. J. Gentry)와 벨럼(S. J. Wellum) 역시 “언약을 통해 세워지는 하나님 나라”(Kingdom through Covenant)가 성경신학의 중심 주제라고 주장한다. 이와 비슷하게 왈트케(B. K. Waltke) 또한 “거룩하고, 자비로우시고, 유일하신 하나님의 왕권의 침투라는 개념이 구약의 모든 부분을 가장 잘 수용한다”는데 동의한다. 필자의 지도교수였던 화란 아펠도른 신학대학의 페일스(H.G.L. Peels) 교수 역시 같은 입장이다. 그는 “하나님의 나라가 여전히 구약의 기본적이고 중심적인 개념으로 간주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세우시고, 유지하시고, 발전시키시고, 완성하시는 “하나님의 나라”야말로 신구약을 아우르는 신학적 중심주제이다.
김진수 교수(합신, 구약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