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 신학과 성경
하나님의 말씀인 구약의 역사는 신학적, 선지자적 역사로서 문법적, 유기적 특성을 함께 지닌다.
구약신학은 구약성경에 담긴 신학적 내용들을 탐구하고 설명하는 신학의 한 분야다. 교회가 성경의 가르침 위에 세워지고 성도의 신앙이 성경의 가르침을 통해 생기고 자라며 성숙한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구약성경의 가르침을 탐구하는 구약신학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러나 이러한 신학 작업이 모두 교회를 세우고 성도들을 유익하게 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때로 그것은 교회와 성도의 신앙에 도움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해를 끼치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어디에서 이런 문제가 생기는 것일까? 필자가 생각하기에 가장 중요한 원인은 성경을 대하는 태도에 있다. 성경에 대하여 어떤 태도를 취하는가에 따라 신학을 하는 방식과 내용이 달라진다. 그러므로 모든 신학 작업에 앞서 바른 성경관을 갖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성경은 어떤 책인가?
구약에는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말씀”, “여호와의 말씀” 등과 같은 표현이 자주 나타난다. 이는 구약이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한 책이란 사실을 가리킨다. 신약의 바울 사도는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성경의 특성에 대해 아주 분명한 입장을 취한다. 그는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딤후 3:16)이라고 밝힌다. 여기서 “모든 성경”은 구약 전체를 포함하며,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θεόπνευστος, God-breathed God-breathed)이란 하나님이 직접 “호흡을 불어넣으신 것”이란 의미다. 베드로 사도 역시 바울과 같은 입장에 선다.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벧후 1:21).
간혹 “예언”은 미래에 관한 말씀만을 가리키는 것으로 오해되기도 한다. 하지만 실은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말씀이 “예언”이다. 이는 구약성경이 전체로서 “예언”으로 간주되어야 한다는 의미다. 베드로 사도의 말을 빌리자면, 구약성경 전체가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이다.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ὑπὸ πνεύματος ἁγίου φερόμενοι, men carried along by the Holy Spirit)이란 성령이 “데려가시는” 것처럼 온전히 성령의 지배를 받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이런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서”(ἀπὸ θεοῦ, from God) 말한 것이 곧 구약성경이다.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구약성경에 두드러지는 특징이 있다면, 그것은 역사와의 깊은 연관성이다. 구약 이스라엘이 삶의 규범으로 받은 율법은 출애굽 이후 시내산에서 여호와와 맺은 언약관계에 뿌리를 내리고 있으며, 시편의 수많은 찬양과 기도 또한 그들의 역사체험과 맞닿아 있다. 선지자의 기록들도 마찬가지다. 그것들은 모두 특수한 역사적 상황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무엇보다도 구약은 창조로 거슬러 올라가는 세상의 역사와 아브라함과 함께 시작되는 구약 이스라엘의 역사를 기술하는 데 많은 관심을 기울인다. 구약의 가르침은 대부분 이 역사 속에 보존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구약의 역사는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역사와 크게 다르다. 화란의 저명한 역사학자 허이찡가(J. Huizinga)에 따르면, “역사는 한 문명이 스스로에게 자신의 과거에 대하여 설명하는 지적 형식이다.” 하지만 구약은 문명의 발전을 기술하는 일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구약은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시간 속에서 점진적으로 펼쳐지는 일에 주된 관심을 기울인다. 이런 의미에서 구약의 역사는 “신학적 역사”(theological history)이며, 구약에서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자들이 선지자인 점을 고려하여 “선지자적 역사”(prophetic history)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역사가 하나님의 뜻이 펼쳐지는 장(場)이라는 관점은 구약성경에 매우 깊숙이 스며있다. 구약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역사 속에서 행하신 일들이 무수히 기록되어 있다. 구약성경 기록자들은 과거의 인물과 사건을 소개하면서 그것들이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갖는 의미를 전하기 위해 매우 신중하게 어휘와 표현을 선택하며 문장과 문단을 구성한다. 필요하다면 과거의 인물들이 나누는 대화를 직접화법의 형식으로 소개하기도 하고, 중요도에 따라 긴 시간을 압축하여 기술하거나 비교적 짧은 시간을 길게 늘여서 기술하기도 한다. 심지어 연대기적 순서를 벗어나 앞에 일어난 일이 뒤에 기술되기도 하고 동일한 사건이 반복으로 기록되기도 한다. 이런 일들은 성경의 관심이 단순히 과거의 사건을 순차적으로 기술하는 선에 머물지 않고 그 사건이 하나님 앞에서 가지는 의미를 전달하는데 치중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따라서 구약성경이 가르치는 바를 바르게 알기 위해서는 과거에 대한 역사적 정보를 넘어 그것을 서술하는 방식과 의도를 파악하는 일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것이야 말로 구약성경을 “예언” 곧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는 올바른 길이다.
구약성경의 서술방식을 이해한다는 말은 많은 것을 포함한다.
그것은 우선 고대 히브리어를 습득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구약은 대부분 고대 히브리어로 기록되었기 때문에 히브리어 문법을 학습하고 구문을 이해하여 원문을 읽을 수 있는 실력을 갖추어야 한다. 나아가 구약 히브리어 성경에 사용된 다양한 문학적 수단들을 이해해야 한다. 구약은 놀라우리만치 섬세하고 정교하며 아름다운 언어의 사용이 전체를 특징짓는다. 이 언어의 조화 속에 “하나님이 불어넣으신” 호흡이 살아 숨 쉬고 있으며, 그것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은 시대를 뛰어넘어 “영혼을 소성케”(시 19:7) 하는 성령의 음성을 듣는다. 그러므로 미시적인 차원에서 어휘의 사용으로부터 시작하여 거시적인 차원에서 본문의 구성에 이르기까지 저자가 의도적으로 사용한 문학적 장치들을 두루 찾아낼 수 있어야 한다.
끝으로 구약성경을 대할 때 반드시 유념해야 할 사항은 전체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구약은 여러 시대 여러 기록자들이 쓴 글들이 모여 한 권을 이루는 특별한 책이다. 그러기에 구약성경은 다루는 주제나 방식에 있어서 다양성을 보이지만 동시에 전체를 하나의 유기체로 만드는 통일성을 가지기도 한다. 전체에 통일성을 불어넣는 힘은 당연히 역사의 다양한 국면을 관통하여 일관되게 자신의 뜻을 펼치시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온다.
이런 이유로 인해 구약성경에는 크고 작은 차이점이 나타나지만 그것들이 서로 충돌을 일으키거나 대립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구약성경을 대할 때 차이점을 간과하는 것도 옳지 않으나 그것을 확대해석하여 모순인 것처럼 받아들이는 것은 더더욱 잘못된 일이다. 이 양극단을 모두 피할 때 구약이 그 다양성 가운데 가르치는 신학적 내용을 풍성하게 배울 수 있다.
마지막으로 다시 강조하고 싶은 것은 구약성경이 전체로 유기적 통일체를 이룬다는 사실이다. 이는 구약의 어느 부분을 대하든 전체와의 관계 속에서, 더 나아가 구약계시의 완성인 신약과의 관계 속에서 살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김진수 교수(합신, 구약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