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1-10-07 10:57
교회가 목사의 생활비를 감당하지 못할 때
|
인쇄
|
조회 : 3,009
|
요즘 미자립 교회의 문제가 심각하다. 코로나 19로 인해서 한때 대면 예배가 전적으로 금지되기도 했고 교인수의 20%만 대면 예배에 참석하라는 정부 측의 조치로 인해서 특히 미자립 교회들이 전에 없이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비대면 예배를 위한 기기가 준비되어 있지 않은 영세한 미자립 교회에서는 아예 예배를 드릴 수 없게 되자 목사의 생활비는 고사하고 교회 건물의 임대료조차 감당하지 못하는 교회가 많아졌다. 그런데 미자립 교회의 문제는 어제오늘 대두된 것이 아니다. 신학교 난립으로 인한 예비 목사의 과다 배출, 신자 수 감소 등으로 인해서 1900년대 후반부터 교회를 개척하다가 포기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특히 농촌에서는 인구의 감소로 인해서 개척교회는 물론 기존 교회조차 재정적으로 큰 어려움에 직면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논의가 진작부터 제기되었다. 목사의 기본 생활비를 감당하지 못하는 미자립 교회가 늘어나자 1993년에 향린교회의 홍근수 목사가 ‘목사 호봉제’를 제안했고, 그다음 해에는 기독교 장로회 총회에서 이 문제를 논의했다. 그 후 2012년부터 다시 ‘목사 호봉제’를 실시하자는 이야기가 기장뿐 아니라 예장과 고신에서 그리고 감리교에서도 거론되었다. 그리고 최근에 감리교회의 소장파 목사들의 모임인 ‘새물결’에서는 ‘목회자 생활 안정법’을 제안했다. 감리교단 미자립 교회 목화자들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하자는 것이다. 2006년에 기감에서 이미 목회자에게 최저 생활비를 지급하자고 했으나 실현되지 못했었는데, 지금 목사들이 직면한 생활비 문제가 더욱 심각해졌으니 목회자의 생활을 안정시키기 위한 조치가 절실히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목사 호봉제를 제안한 사람들이나 ‘새물결’의 목사들은 구세군 교회를 목사의 생계비를 보장하는 교회의 모델로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구세군 교회는 중앙집권적이어서 개교회 중심적인 다른 개신교 교단과는 조직과 체제가 다르다. 구세군 교회에서는 재정도 인사도 본부에서 관장한다. 교역자의 수가 제한되고 보통 5년마다 순환 근무를 한다. 그리고 목회자의 월급은 교단에서 지급하고 은퇴시 퇴직금과 소정의 연금이 지급된다. 가톨릭과 비슷하다.
미자립 교회 목사의 생활을 안정시키려는 사람들의 의도는 높이 살만하지만, 개교회를 추구하는 교단들이 조직이나 체제를 중앙집권적으로 바꾸지 않는 한 목사의 호봉제나 생활 안정법은 실현되기 어렵다. 어느 목사는 ‘호봉제를 꿈꾸자’라는 제목의 글을 쓰기도 했는데, 장로교나 감리교 교단에서 호봉제나 목사의 기본 생활비를 보장하자는 제안은 꿈에 가깝다. 어떻든 지금 수많은 목회자가 생활비로 인해서 큰 고통을 받고 있다. 전체 목사의 66.7%는 최저 생활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생활비를 받고, 37%는 가족의 생계를 위하여 교회 사역 외에 다른 경제 활동을 하고 있다. 이것은 7년 전에 ‘목회사역연구소’에서 발표한 통계이기 때문에, 코로나 19 사태 이후에는 더 심각하다고 보아야 한다.
목사가 목회에만 전념해야 한다는 것을 모르지 않지만, 교회에서 최저 생활비조차 지급받지 못하는 목사는 생활비를 조달하려고 생활 전선으로 뛰어들지 않을 수 없다. 실제로 미자립 교회의 목사가 생계를 위해서 택시기사, 대리운전, 우유배달, 학원 강사, 정수기 판매, 서비스업, 물류센터나 건설 현장의 막노동 등의 일을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데 개신교계에서는 목사의 이중직 금지를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여전히 강하다. 구세군과 침례교단을 제외하면, 모든 교단에서 이중직을 제한하거나 금지하고 있다. 감리교단에서는 ‘이중직업을 가진 이’와 ‘전임으로 사역하지 않는 이’를 교역자로서의 소명 의식이 부족하고 목회에 대한 열의가 없으며 도덕적·윤리적으로 불성실한 교역자라고 규정하고 있다. 목사의 이중직을 금하는 교단에서 목사는 목회에 전념해야 한다는 것을 뒷받침하기 위해서 내세우는 성경 구절들(벧전 5:2-4, 딤전 3:1, 고전 4:1)은 생계를 위한 이중직과는 상관이 없다. 그것도 그럴 것이, 2천 년 전에 유대 사회에서는 목회자의 생계비가 문제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중직을 금하는 언급이 성경에 나올 리가 없다. 우리가 지금 논의하는 생계형 이중직은 현대의 상황에서 나타난 한국적 문제다.
그런데 그들은 성경에 명시되어 있는 바울의 이중직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바울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내외와 함께 천막 만드는 일을 했다. 지금 바울만큼 전도와 목회에 열심인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그는 천막을 만들면서도 전도자로서의 사명을 잘 완수했다. 더구나 그의 이중직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 전도에 도움을 주기 위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지금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목회 외에 다른 일을 하는 목사를 바울이 책망할까? 그는 고린도전서(11:1)와 빌립보서(3:17)에서 거듭 자신을 본받으라고 말했다. 우리가 바울의 권면대로 그를 본받으려고 한다면, 지금 생계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한 목회자의 이중직을 금하기보다는 오히려 장려해야 하지 않겠는가.
각 교단에서는 우선 이중직을 허용해야 한다. 생계를 위해서 많은 목사가 생활 전선으로 내몰리고 있는 지금 목사의 이중직을 금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고 미자립 교회에 고통을 가하는 일이고 교회 개척을 방해하는 일이다. 목사의 이중직을 금하는 상황에서 생계를 위해서 일하는 목사는 자신이 목사로서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고 있다는 자책감을 면할 수 없다. 교단에서 그들을 돕지 못한다면, 그들이 마음 편하게 생활비를 벌 수 있도록 조속히 이중직을 허용해야 한다. 개교회주의를 추구하는 교단에서는 호봉제나 기본소득 지원제도를 도입하기 어렵지만, 각 교회의 선교부에서 미자립 교회를 지원할 수는 있다. 지금까지도 여러 교회에서 영세한 미자립 교회나 개척교회를 지원해 왔다. 전에 없이 미자립 교회의
재정 상태가 어려워진 지금 각 교회에서는 미자립 교회를 위한 선교비를 대폭 늘릴 필요가 있다. 그래서 지원하는 교회 수를 늘릴 뿐 아니라, 각 미자립 교회에 보내는 선교비의 액수를 늘려야 한다. 20여 년 전에 10만원을 보낸 교회가 아직도 10만원을 보내는 수가 많다. 그리고 신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교회 개척의 현실을 숙지시키고, 교회가 자립하기까지 자비량 목회를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도록 준비시켜야 한다. 젊은이들이 교회를 개척하기 위해서는 자비량 목회를 하지 않을 수 없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목사의 품위를 유지하면서 생활비를 벌 수 있는 기술이나 자격증을 갖추도록 지도해야 한다. 자비량 목회의 한 가지 방안은 목사의 부인이 직업을 갖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교회에서는 목사 부인이 직업을 갖는 것을 못
마땅하게 생각해 왔다. 목사 내외가 함께 사역에 힘써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척교회나 미자립 교회의 교인이 소수이기 때문에, 목사 내외가 사역에 전념하지 않아도 된다. 맞벌이가 대세가 된 지금 목사도 맞벌이를 하면 생활비 조달에 큰 도움이 될 것이 분명하다. 요즘 은급비 문제가 진지하게 논의되고 있는데, 부인이 일하면 노후의 생활 안정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생활비를 조달하기 위한 사전 준비 없이 교회 개척을 시작해서는 오래 버틸 수가 없다. 무조건 꿈만 꾸어서는 안 되고, 꿈을 가졌으면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노력해야 한다. 지금 소명감만으로 교회 개척을 시작했다가 중도에 포기하는 젊은 사역자들이 많다. 그들이 교회 개척을 포기하는 것은 단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교회 전체의 문제다. 지금 많은 교회가 해외 선교를 위해서 힘쓰고 있다. 그런데 해외 선교도 중요하지만, 우리나라의 미자립 교회들을 자립시키는 일이 더 시급하고 중요하다. 내 집안의 문제를 방치하면서 남의 집을 돕는다면 그것은 무책임한 일이거나 위선적인 일이다. 미자립 교회를 돕는 것은 위축되어 가는 한국교회의 발전을 위한 일이다.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