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5-03-03 08:23
세대주의 종말론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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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웹섬김이
조회 : 216  

세대주의 종말론 비판

1. ‘세대주의’의 의미

 

세대주의자들은 ‘세대주의’를 세상을 하나님의 뜻(경륜)이 이루어지는 장(場)으로 간주하고 시간의 과정 안에서 여러 단계의 계시를 통해 하나님의 다양한 경륜이 성취되어 간다고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세대주의자들은 단계적 세대 안에서 주어진 하나님의 계시를 이해하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고, 이 계시는 점진적으로 마침내 완전한 종말에 이르게 된다고 주장했기에 이러한 신학 사상을 가리켜 ‘세대주의 종말론’이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2. 세대주의의 역사와 한국 교회에 미친 영향

 

‘세대주의’란 19세기에 출현한 종말론적 신학의 경향으로서 흔히 ‘세대주의 신학’이라 불리기도 하는데, 아일랜드계 영국인 존 넬슨 다비(J. Nelson Darby, 1800-1882)에 의해 주창되었습니다. 그는 그의 예언에 기초한 독창적인 성경해석법을 완성시켜 나가던 중, 스코틀랜드에서 10세의 어린 성령 운동 지도자라는 ‘맥도날드’양의 예언(대환난이 있기 전에 휴거되는 환상)을 전해 듣고서 그녀의 휴거론을 바탕으로 자신의 세대주의적 성경해석방식을 구체화하였습니다. 이후 미국의 스코필드(C. Scofield) 박사의 손질을 거친 후, 급속도로 퍼져나가게 되었습니다. 스코필드 박사는 무디 성서신학교 출신으로 회중 교회 목사였는데, 다비의 세대주의적 종말 사상에 심취되어 자신의 스코필드 관주성경(The New Scofield Reference Bible, 1909, 1917)의 주석에 그 내용을 포함시켰습니다. 후에 이 사상은 전 세계에 전파되면서 19세기 이후 복음주의권에서 가장 확고하고 보편적인 기독교 종말론 사상으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19세기 후반 한국에 들어 온 미국 선교사들이 당시 기독교 종말론의 정설로 인식되던 세대주의 신학을 한국에 소개하는 일은 자연스런 결과였습니다. 초창기 한국 교회 지도자들 대부분이 세대주의 종말론자들이었다고 말 할 수 있으며 요한계시록을 많이 강해하신 길선주 목사나 한국 정통 보수주의의 시조라고 할 수 있는 박형룡 박사 같은 분들이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그러나 해방이후 세대주의 신학은 불안한 사회 현실과 맞물리면서 보다 극단적인 종말론 형태로 변형을 거듭합니다. 이러한 신학적 오용과 변질의 중심에서 가장 큰(나쁜) 영향력을 발휘했던 인물이 조용기 목사입니다. 조목사는 세대주의 종말론 사상에 기초해서 요한계시록의 내용을 기록된 순서대로 문자적으로 이해하면서 말세에 될 일의 시나리오를 작성했고 여의도 순복음 교회와 산하 집단을 통해 세대주의적 종말론의 한국적 토착화에 절대적으로 기여했던 것입니다.

 

3. 세대주의 신학의 강조점(특징)

 

1) 문자적인 구약과 신약 해석에 근거하여 미래를 연속적인 시대의 도식으로 묘사한다.

대개 세대주의자들은 계4장은 교회의 휴거를, 6-10장까지는 전환난 3년 반을, 11-19장은 후환난 3년 반을 예언하다고 주장합니다. 후환난 시대의 마지막에 아마겟돈 전쟁이 일어나고, 그리스도는 지상에 강림(둘째 강림)하여 천 년간 사단을 무저갱에 가두고 천년왕국을 건설하고. 이후 사단은 잠시 놓였다가 백보좌 심판이 있고, 새 하늘과 새 땅이 건설된다고 합니다. 특히 조용기목사는 ‘요한계시록 강해’에서 이러한 계시록의 문자적 성취 과정을 세대주의 종말론에 기초해서 그대로 반영하고 있습니다.

 

2) 스코필드의 일곱 세대 구분

① 낙원의 무죄세대 ② 홍수까지의 양심세대 ③ 인류 통치세대 ④ 아브라함의 소명으로 시작하는 약속세대 ⑤ 시내산에서 골고다까지의 율법세대 ⑥ 은혜세대(교회) ⑦ 그리스도의 인격적 통치가 이루어지는 천년왕국세대.

 

3) 이스라엘과 교회는 다르다.

하나님 나라는 이스라엘의 불신앙으로 지연되었기에 하나님께서 교회라는 우회로를 택하셨고, 교회세대는 결국 과거의 이스라엘과 미래의 이스라엘 사이에 놓인 중간단계로 봅니다. 그러나 주의 재림으로 교회 시대는 막을 내리게 되고, 7년 대환난이 끝난 이후에 지상에 천년왕국이 세워진다고 봅니다.

 

4) 그리스도의 재림은 이중재림이다.

세대주의는 주님의 첫 번째 공중 재림 때에 교회와 성도들은 첫 번째 부활을 경험할 것이라고 이것을 휴거라고 부릅니다. 이후에 지상에서의 7년 대환난과 아마겟돈 전쟁이 있은 이후에, 주께서 수많은 성도들과 함께 7년 공중혼인잔치를 마치고 지상 강림하시는데, 이것이 둘째 재림이요, 마지막 ‘지상 재림’이라고 합니다. 이때 주님은 모든 원수 마귀를 멸하시고 천년동안 무저갱에 가두심으로서 성도들과 더불어 천년동안 왕 노릇하는 천년왕국 시대가 열리게 된다고 주장합니다.

 

5) 문자적 해석에 매달린다.

세대주의는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대부분의 숫자를 문자적 의미로 받아들여서 계7장의 ‘144,000’이라는 숫자를 주님의 공중 재림과 더불어 부활한 성도들이 그리스도와 혼인 잔치를 즐길 때, 지상에 남겨진 이스라엘에 속한 사람들의 실제적인 숫자로 보고 이들에 의해 많은 이들이 회개를 하게 된다고 가르칩니다. 계20장의 ‘천년왕국’도 그리스도의 지상 재림 이후 땅위에 문자적이고 가시적으로 세워질 그리고 주님이 직접 왕으로 통치하실 나라라고 주장합니다.

 

4. 개혁주의 관점에서의 세대주의 종말론 비판

 

1) 세대주의 종말론 해석법의 문제

보통 요한계시록을 해석할 때, 세 가지 범주로 나누는데 문자적 해석 방법, 영해적(spiritualizing) 방법, 문자적-영해적 방법입니다. 이 중에 대체로 개혁주의자들은 세 번째 해석 방법을 존중합니다. 계시록은 요한이 하늘의 환상과 하나님의 신탁을 직접 보고 듣고 기록한 것입니다. 즉, 하늘의 천상적 경험을 지상의 문자로 기록한 것입니다. 계시록은 우리의 이성과 경험이 접근할 수 없는 공간적 초월성을 가진 동시에 세상적 관념으로 추론하고 경험할 수 있도록 기록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계시록에 나타난 모든 진술을 한쪽 방향에서 고정된 채 해석하는 것은 참으로 위험한 일입니다. 계시록에 기록된 수많은 하나님 관점에서의 초월성과 상징성과 묵시성을 지극히 인간적인 상식과 이성의 차원으로 끌어내린 억지스런 시도가 바로 세대주의 종말론의 특징인 동시에 한계입니다. 계시록의 환상과 상징은 구약과 신약 전체를 아우르는 하나님의 언약과 성취라는 구도 속에서 해석되어야 합니다.

 

2) 이스라엘과 교회를 분리 해석하는 문제

세대주의는 이스라엘과 교회 관계를 대립 혹은 단절로 설명하려 합니다. 이것은 이스라엘과 교회를 언약적 통일성 안에서 보는 개혁신학과 정면으로 대치되는 개념입니다. 옛 언약(출20:1-17, 24장)은 이스라엘과만 맺은 것이 아닙니다. 이방인 개종자들이 하나님의 언약관계를 맺을 수 있었을 뿐 아니라 아브라함의 언약은 아브라함과 그 후손을 통해 천하 만민이 복을 받게 하는 언약이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새 언약 역시 교회와만 맺은 것으로 보아서는 안 됩니다. 새 언약은 표면적으로는 ‘이스라엘’과 맺은 것이지만 이스라엘과 이방인과 구분 없이 하나님의 백성 전체와 맺은 언약이기 때문입니다(히 8:10-11). 따라서 이스라엘을 유대인에게, 교회를 이방인 중에서 구원받은 성도에게만 적용하는 이분법적 설명은 언약의 통일성을 간과해 버린 중대한 오류입니다.

 

3) 이중 재림설에 대한 해석 문제

세대주의는 7년 환난을 전후로 있을 예수님의 이중 예정을 주장합니다. 환난 전에 첫 번째 (공중) 재림이 이루어지는데, 이때에 교회와 성도들이 들림(휴거)을 받을 것이라고 합니다. 또한 휴거되지 못하고 지구상에 남아 있는 자들은 불신 세계의 심판을 위해 대환난을 겪은 후에야 그리스도의 지상 재림이 또 한 번 반복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재림은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 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행1:11)의 말씀대로 인격적이며, 육체적이며, 가시적이며, 갑작스러우며, 영광스럽고 승리의 단 한 번의 재림이 있을 뿐입니다.

 

4) 천년왕국에 대한 해석 문제

계20:1-3에 나와 있는 ‘천년동안’이라는 말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따라 셋 또는 네 가지 해석의 경향을 보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점으로 천년이 앞에 오면 전천년설이요, 뒤에 오면 후천년설입니다. 무천년설은 천년을 문자적인 개념으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이 중 전천년설은 두 가지로 구분되어지는데, 세대주의적 전천년설과 역사적 전천년설입니다. 후자는 전자의 지나친 주장에 대한 반성에서 나온 주장이라고 볼 수 있는데, 전자와 비교해 가장 큰 차이점은 재림을 단일 사건으로 본다는 점입니다. 3세기의 정통 교부들은 전천년설을 지지했으나 4세기에 들어 콘스탄틴 황제의 개종으로 교회 시대를 천년왕국으로 보는 무천년설이 유행하였습니다. 어거스틴의 지지가운데 무천년설은 중세 교회의 공식적인 입장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러나 종교개혁이 일어날 즈음, 로마 교회에 반대하는 급진적 개혁세력들에 의해 현세적 천년왕국 사상이 번성하였습니다. 칼빈과 루터를 비롯한 종교개혁자 대부분은 신학적으로는 어거스틴의 무천년설에 머물면서도 천년왕국설을 개진하는데 매우 신중한 자세를 취하였습니다. 17세기 청교도들의 신대륙 이주 이후 기독교 복음의 번성과 함께 낙관적인 후천년주의 사상이 대두되기 시작하였고 조나단 에드워즈와 같은 신학자들에 의해 후천년설이 정통 교회의 입장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러나 19세기 들어와서 유럽의 정치적 사회적 불안이 고조되면서 다비와 플리머스 형제단을 통하여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이 나타났고 20세기의 복음주의에 가장 커다란 영향력 있는 기독교적 종말론으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네 가지 입장 모두 나름대로의 성경과 현실에 대한 주장과 근거가 있지만 우리는 문자적-영해적 해석을 근간으로 한 무천년설이 가장 성경적이며, 개혁주의적인 주장이라고 봅니다. 계시록에 나타난 심판의 순서들은 문자적인 예언이 역사적 순서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으로 볼 수 없으며, 천년왕국은 문자적 지상의 세상이 아니라 지상과 천상에서 동시에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절대적이고 영원한 축복 상태로 보아서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이후로부터 그리스도의 재림까지의 시간을 상징화한 표현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천년 동안 왕 노릇 한다.”는 계20:4 말씀은 지금도 하나님 우편에서 통치하시는 그리스도의 현재적 사건인 동시에, 현재의 성도들이 아직 경험하지 못한 천상의 미래적 사건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지상과 천상을 관통하는 ‘천년왕국’은 사단과 그의 대행자인 악의 세력들이 받을 아마겟돈 최후 전쟁과 더불어 임하게 될 주의 재림과 마지막 대심판으로 끝이 나고, ‘새 하늘과 새 땅’ 가운데 ‘새 예루살렘’의 영원한 축복 상태가 완성될 것입니다.

 

5) 144,000과 짐승의 표(666), 적그리스도에 대한 해석 문제

세대주의자들은 계7장과 14장에 언급된 숫자 ‘144,000’을 주님의 공중 재림과 함께 교회와 성도들이 휴거된 이후, 지상의 7년 대환난 기간 중에 땅에 남아 있던 사람들 중에서 구원의 기회를 얻을 수 있는 이스라엘(유대인)의 숫자로 봅니다. 그러나 이 주장 역시 요한계시록 말씀을 문자적으로 과도하게 해석한 오류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144,000’은 하나님의 백성의 완전한 총수를 상징화한 숫자입니다. 즉 이 숫자는 12×12×1000으로서 언약으로서의 구약의 백성(구약의 12지파)과 그 성취로서의 신약의 백성(신약의 12사도)에다 완전성과 무한성을 나타내는 숫자인 1000을 곱하여 나온 숫자입니다. 따라서 이 숫자는 하나님의 구원받은 백성 전체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계7장에서는 이들이 마지막 때의 환난과 사단의 시험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를 받는다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고, 14장은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들과 하나님의 인을 맞은 사람들이 받을 최종적인 운명(영벌과 영복)을 상징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계13장을 보면 ‘짐승의 표’에 관한 기사가 나옵니다. 세대주의는 이 ‘표’를 문자적인 의미로 해석해서 실제로 마지막 때에 적그리스도가 나타나 오른손이나 이마에 짐승의 표를 하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계시록 전후 문맥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억지 주장입니다. 이들 중에는 컴퓨터의 영자 철자를 아라비아 숫자로 환원하여 합하면 666이라는 숫자가 나온다고 말하기도 하고, 더러는 상품의 바코드(bar cord)도 666으로 환원된다고 주장합니다. 이외에도 666이라는 숫자를 적그리스도와 연결해서 설명하기 위한 수많은 억측들이 난무하였습니다. 그러나 계시록에 언급된 ‘표’는 당시 군인들, 노예들, 신전 봉사자들에게 소유물의 증거로서 낙인을 찍는 통상적인 전통에서 빌려 온 상징어입니다. 즉 ‘표’는 소유, 충성, 보호를 상징하는 내용입니다. 우리가 적그리스도와 666을 언급하는데 있어서 놓쳐서는 안 되는 점은 짐승의 수를 판독하는 일보다 짐승의 도덕적 본질을 파악하는 일입니다. 적그리스도는 짐승의 머리이고, 짐승은 적그리스도의 하수인입니다. 이들은 어떤 형태로든 하나님을 부정하며, 복음과 교회의 본질을 파괴하려 합니다. 집단적 권력의 총체로서 등장하는 적그리스도가 초대 교회에서는 네로로, 중세시대에는 교황으로 지목되었고, 그것은 바른 지적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계시록에 언급된 마지막 때에 나타날 적그리스도는 아닙니다. 마지막 때에는 이전의 적그리스도 보다 훨씬 더 가공할만한 능력과 속임을 가진 인격체로서 드러날 것입니다. 따라서 마지막 때를 사는 성도는 적그리스도와 짐승이 언제 어느 때에 그 실체를 드러낸다고 할지라도 결코 흔들리지 말며 인내와 믿음가운데 굳건히 서야 할 것입니다. 계13:10 “사로잡힐 자는 사로잡혀 갈 것이요 칼에 죽을 자는 마땅히 칼에 죽을 것이니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여기 있느니라”

 

6) 대환난 이전에 나타날 징조에 대한 해석 문제

세대주의는 7년 대환난이 다가올 시기와 징조에 관심이 많습니다. 이 부분에 관한 다양한 해석이 있지만 조용기 목사의 경우를 보면 그는 자신이 쓴 책들(계시록 강해, 다가올 미래)에서 7년 대환난의 분위기를 감지할 수 있는 세계적 사건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는 EU통합을 로마 제국의 부활로 보아서 열 발가락시대, 열 뿔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고 했으며, 마지막 전쟁을 중동전쟁으로 보아서 1991년 1월의 걸프전을 그 전주곡으로 간주합니다. 또한 경제가 위축된 소련이 아랍의 동조를 얻기 위하여 이스라엘을 공격함으로 3차 대전과 같은 전지구적 전쟁이 발생하는데, 소련을 중심으로 한 연합국은 예기치 않은 천재지변으로 패하게 되고, 마침내 승리한 이스라엘이 시온산에 솔로몬 성전을 재건함으로써 통일 유렵과 평화조약을 맺게 되고 이것이 7년 대환난 직전에 일어날 세계사적 사건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경적 근거를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이런 해괴한 해석들이 세대주의 사상과 연관이 있기에 우리는 세대주의 신학(특히 종말론)을 경계해야만 합니다. 따라서 이런 세대주의종말론이 크게 득세하는 시대를 사는 성도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 특히 성경적 종말론에 대한 바른 지식을 듣고 배우고 확신하는 일이며, 분별력을 가지고 우리의 믿음과 신앙을 보다 바르고 정밀하게 추구해 가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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