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사주의에 대한 12가지 질문.
글 : David M. Gower
질문 1 벧전 2:24에서는 분명히 그리스도께서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고침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왜 당신은 속죄의 한 부분인 병 고침을 인정하지 않습니까? [TOP]
☞ 참으로 도전적인 성격의 질문입니다. 비은사주의 그리스도인들이 먼저 채찍에 맞아야겠군요. 여기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채찍은 분명히 그분의 죽음과 실제 처형 중에 당하신 채찍질을 말합니다. 이 구절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하여금 고침을 받도록 채찍을 맞으셨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은사주의자들의 결론은 그리스도의 죽음이 이처럼 고침을 가져왔다면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사는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건강해야 하지 않겠냐는 것입니다.
그럼 다시 벧전 2:24로 돌아가 봅시다. "그분께서 친히 나무에 달려 자신의 몸으로 우리의 죄들을 짊어지셨으니, 이는 죄들에 대하여 죽은 우리로 하여금 살아서 의에 이르게 하려 하심이라. 그분께서 채찍에 맞으심으로 너희가 고침을 받았나니" 여기에 나오는 "고침"은 현대적인 의미에서 신체의 치유를 연상케 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과연 이것이 성령님께서 육체적인 치료를 두고 하신 말씀이었냐 하는 것입니다. 이 구절을 바르게 이해하는 데 필요한 몇 가지 단서가 여기 있습니다.
1. 성경 전체에서 이 "고침"(healing)이란 단어는 여러 종류의 고침을 나타내는데 쓰였습니다. 주로 육체적인 치유를 나타내었지만 상심한 마음을 달래는데도 쓰였고(눅 4:18), 마귀의 억압을 제거한다는 뜻으로도 쓰였으며(행 10:38), 또 죄악된 행실을 버리거나(히 12:13) 하나님께서 한 영혼을 구할 때에도 이 "고침"이라는 단어가 쓰였습니다. 이런 의미에 대한 또 다른 단서는 벧전 2:24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2. 여러분이 잘 아시는 "stick"이란 단어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 단어의 뜻도 여러 가지입니다. 그런데 문맥에서 빗자루, 성냥개비, 혹은 접착제 같은 단어가 함께 나온다면 아마 해당되는 뜻을 문맥을 통해 미루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베드로전서의 이 "고침"이라는 단어의 뜻도 이런 식으로 결정할 수 있습니다.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벧전 2:24절 전체 내용이나 또 전후의 문맥에 육체적인 치료를 연상하게 할 만한 단서가 없다는 것입니다. 대신 죄가 여러 번 언급된 것으로 보아 이 고침이 영적인 치료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전체의 흐름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베드로의 메시지는 이렇게 요약될 수 있습니다.
우리(독자 여러분)는 죄를 짓지 않으신(2:22,23) 그리스도의 본을 따라야 합니다(2:21). 이러한 높은 수준의 행실이 가능한 것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들을 짊어지심으로 우리가 죄들에 대해 죽고 의에 대해 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2:24). 우리는 습관적인 죄에서 고침을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더 이상 잃어버린(구원받지 못한)양처럼 방황하지 않고 여러분의 영혼의 목자에게 돌아왔기 때문입니다.(2:25)
이처럼 여기서의 "고침"(heaing)은 영적인 치료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만일 여기의 고침을 단순히 육체적인 치료로 본다면 글의 흐름과 전혀 맞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3. 벧전 2:24의 마지막 구("그분께서 채찍에 맞으심으로 너희가 고침을 받았나니")와 25절 말씀은 분명히 그리스도의 십자가 처형에 대한 유명한 예언의 말씀인 사 53장 5,6절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분께서 우리의 범법함으로 인하여 상처를 입으시고 우리의 불법으로 인해 상함을 입었도다. 그분께서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고침을 받았도다."
여기에 나오는 "고침"은 분명히 영적인 의미를 갖습니다. 그분의 죽음으로 우리의 범법과 불법들, 그리고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적대관계가 고침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죄의 치유는 환자에 대한 하나님의 처방입니다(이사야 1장). 대언자 이사야가 다룬 환자(이스라엘 민족)는 죄 많고 불법에 싸여 있으며 주님께서 버리신 악인들로 가득합니다(1:4). 하나님은 이 환자에게 말씀하십니다. "어찌하여 너희가 더 많이 맞으려느냐? 너희가 더욱더 반역하는도다. 온 머리가 병들었고, 마음은 온통 기진하여 발바닥부터 머리끝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처와 멍과 곪은 종기들 뿐이니"(1:5,6). 이 환자의 병세가 신체의 부위별로 묘사되고 있지만 사실은 영적인 상태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위대한 의원, 그것도 영적인 의원으로 오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죄인들과 함께 먹는 주님을 꾸짖자 주님은 자신이 왕진을 나온 의원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왕진을 나오신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죄인들을 불러 회개시키는 것입니다(마 9:10-30). 정확한 때에 위대한 의원께서 영적인 치료의 일을 마치시고 갈보리 언덕으로 오르시어 목숨을 내어놓으셨습니다. 즉, 손수 내리신 처방에 필요한 값을 치르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채찍에 맞으시고 죽으심으로 그분을 믿는 누구나 죄에서 고침을 받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