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3-03-12 15:10
임종직전 영접기도로 구원받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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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웹섬김이
조회 : 2,232  

임종직전 영접기도로 구원받는지요?

[질문]

곧 임종을 앞두고 있는 사람, 특히 부모님에 대해 복음을 전하고 영접기도를 받으라고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혹 동의의 반응이 보이면 자녀들이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그나마 안도의 마음을 가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저도 아버님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으로 그런 적이 있습니다. 예정론과 관련해서 과연 성경적인가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됩니다.

 

[답변] 

많은 신자들이 실행하고 있고 또 궁금해 하는 문제입니다. 질문하신 내용에 따라 1) 예정론과 전도의 관계와 2) 임종직전 영접기도에 의한 구원 여부라는 두 가지 주제로 나눠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예정과 전도 

우선 예정론과 전도의 관계는 간단합니다. 간혹 하나님이 택하여서 구원을 주기로 예정이 되어있다면 언젠가는 반드시 구원받을 것이므로 구태여 따로 전도할 필요가 없다는 극단적인 주장을 하는 자가 있습니다. 그에 대해선 이미 이 사이트에 대해서 한 번 다뤘습니다. (#14 - “예정에 의한 구원이라면 구태여 우리가 전도할 필요가 있는가?”라는 글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예정에서 가장 먼저 주지할 사항은 어느 누구도 누가 택함 받았는지 절대로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구원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이 전적으로 주관하십니다. 그러니까 더더욱 전도를 해야 합니다. 상기의 글에서도 강조했지만 “우리 아이가 예정되어 있으면 어차피 구원 받을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이 심판하실 텐데 아무리 부모라도 인간이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으니 그냥 두어야지.”라고 방치하는 부모는 아마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예정으로 구원을 주관하심에도 신자가 꼭 전도해야 할 이유를 성경은 명백히 밝혀 놓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믿을 생각은 아예 없고 정반대로 신자들을 열심히 핍박했던 지극한 안티크리스천이었습니다. 그러다 예수님과 초자연적인 대면으로 구원 받았는데, 바꿔 말해 예정으로 택함 받았음에도 전도를 가장 강조합니다.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고전1:21) “전도의 미련한 것”이 전도라는 방식이 아니라 전해지는 내용을 지칭한 것입니다. 

이어지는 23절을 보면 그 뜻이 더 분명해집니다.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고전1:23)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까 이방인들은 미련한 것으로 치부한다고 말합니다.

합리적 인본주의 사상에 젖은 그들로선 하나님이 인간으로 와서 십자가에 죽고 부활했으며 그 대속죽음의 은혜를 믿으면 구원 얻는다는 것은 완전히 망상적인 가설로 여겼던 것입니다. 그들은 인간이 신의 기준에 맞게끔 선해지거나 스스로 신의 지혜를 터득하여 구원 얻는 것이 훨씬 논리적이고 타당하다고 믿었습니다. 로마에 사형당한 한 죄수를 믿기만 하면 구원 준다는 것은 도무지 납득되지 않았습니다. 오늘날의 불신자들의 반응과 동일합니다. 

반면에 하나님은 불신자들에게 예수 십자가가 미련하게 여겨질지라도 신자들이 전도하는 것을 기뻐하신다고 합니다. 복음을 바로 전해서 기뻐한다는 단순한 뜻이 아닙니다. 더 근본적으로 “전도를 통해서 구원을 주신다”는 뜻입니다. 그 이유를 본문 안에 분명히 밝혀 놓았습니다. 이 세상은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니까 성령의 지혜로 예수 십자가를 통해 그분을 알게 된 신자들이 주님의 죽음과 부활의 의미를 가르쳐 주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또 바로 그것이 전도이고 그런 방식으로 불신자를 구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의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의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고전2:12-14) 

다시 정리하자면 전도라는 형식이나 전해지는 내용 자체가 미련한 것이 아닙니다. 설명 드린 대로 십자가 복음을 접한 불신자들이 그것을 미련하다고 여깁니다. 그럼에도 그렇게 전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길만이 구원의 유일한 방도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길은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믿음은 들어야만 생기고 전하는 자가 있어야만 들을 수 있다고 설파한 것입니다.(롬10:14,15)

예수님도 승천 직전에 제자들에게 세상 모든 민족에게 복음을 가르쳐서 지켜서 행하게 하라고 명했습니다.(마28:20) 예정되었다고 전도하지 않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다른 사람이 구원 받을 길을 신자가 앞에서 가로막는 짓입니다. 전도해야만 구원 받는, 전도한다고 다 구원 받는 것은 아니지만 전도하지 않으면 구원 받지 못하는, 더 깊은 이유를 다음 주제에서도 설명하겠습니다.

 

죽기 직전 구원 받은 십자가상의 행악자 

가까운 부모 자녀 친구 친지가 끝까지 예수를 믿지 않다가 죽을 지경이 되면 신자로선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이제 죽으면 기다리는 것은 심판입니다.(히9:27) 중간 회색지대도 없고, 회심할 제 2의 기회도 없으며, 마지막 날까지 심판을 유보시켜 주는 법도 없습니다.

그래서 간단하게 사영리 식으로 전도하고 그대로 수용하면 구원 받은 것으로 여기고 안심합니다. 당연히 남아 있는 가족이 자기 위로를 얻으려 전도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게라도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을 전해서 하나님께 그 영혼을 위탁시키려는 간절한 열망입니다.  십자가의 미련한 내용을 알게 해주려고 끝까지 또 마지막으로 전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시간적으로 너무 짧아서 제대로 복음을 다 전하지 못합니다. 그 잠간의 전도와 환자의 단순한 영접기도가 너무 형식적인 것 같기도 해서 구원이 과연 이뤄질지 의심스럽기도 합니다. 나아가 사영리 전도가 갖는 신학적 교리적 결함이 있습니다. 상대가 그대로 수용한다고 해서 당연히 구원이 이뤄진다는 법도 없습니다. (사영리 전도는 간단히 정리해서 아래에 별첨했음) 

구원은 오직 성령의 간섭으로 새 사람으로 거듭나야만 하고 그 일은 한 죄인의 내면에 하나님의 선도적 주도적 제2의 창조가 이뤄져야 가능합니다. 그 죄인도 가치관과 인생의 목표와 삶의 방식에서 이전과 정반대의 자발적 전환을 이루는 결단과 헌신이 따라야만 가능합니다.

“달린 행악자 중 하나는 비방하여 가로되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 하되 하나는 그 사람을 꾸짖어 가로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느냐 우리는 우리의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의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하고 가로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눅23:39-43) 

예수님의 십자가 좌우에 달린 사형수 중에 한 명이 임종 직전에 구원받는 내용입니다. 주님이 사영리로 전도한 것은 물론 아닙니다. 행악자는 신앙생활 한 번 해보지도 못하고 죽었습니다. 그럼에도 성자 하나님이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라고 즉, 구원 받았음을 선포해주었습니다. 어떻게 그 구원이 가능했습니까?

한마디로 그가 예수님이 그리스도인 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죄에서 구원하러 온 메시아임을 믿고 자신을 구원해달라고 간절히 소원했습니다. 자신이 세상에서 행위로 지은 죄 값은 당연히 받아야 하고 또 지금 십자가로 치루고 있다고 실토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구원 받는데 부족하다는 뜻도 분명히 드러냈습니다.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자기를 생각하소서”라고 간구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나라가 있다고 전제했습니다. 예수님이 구원과 심판을 나누는 하나님 나라의 주권자라고 인정했습니다. 또 자기를 생각해달라고 했습니다. 자신의 저지른 범죄 행위들을 용서해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세상법정에서 사형으로 감당했습니다. 자기 존재 전부를 불쌍히 여겨달라는 뜻으로 말했습니다. 

물론 그가 십자가 구원 진리를 교리적 신학적으로 명확히 이해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인간 사회의 인간적 수단으로는 아무리 선하고 경건하고 신령해도 인간이 결코 구원 받을 수 없음을, 다른 말로 자신의 태생적 존재론적인 원죄는 어떤 방안으로도 씻을 수 없음을 절감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죄인에게 구원의 계명을 가르쳐 주러 온 것이 아니라 직접 당신께서 죄인을 구원하러 오신 하나님이었음을 알았습니다. 또 그래서 그분을 구주로 영접할 때에 구원이 임할 수 있다고 깨달았습니다. 요컨대 그는 예수가 누구인지 알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3:16) 예수를 믿으면 구원 즉 영생을 얻습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17:3) 그 영생은 바로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를 아는 것”이라고 합니다. 십자가상의 구원 받은 강도도 예수님이 누구인 줄 알았던 것입니다.

 

임종직전의 영접기도 

임종직전의 환자는 아무래도 그동안 자신의 죽음 이후의 운명에 대해 깊이 고민할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자신의 인생도 겸허하게 되돌아볼 것입니다. 궁극적인 구원을 소망하게 됩니다. 아예 그렇지 않은 자도 많고 질병으로 그런 의식도 못하는 사람도 많지만 의식이 살아 있을 때부터 진정성과 간절함을 갖고 차분히 전도하면 아무래도 그럴 것입니다. 

그런 환자 중에 진심으로 지난 세월 동안에 하나님을 거역했던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고, 스스로 자기 죄를 도무지 씻을 수 없음을 절감하고, 예수 십자가 죽음의 은혜에 전적으로 동의하여, 그분을 메시아로 마음으로 믿고 영접하면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십자가상의 강도처럼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해 주소서”라고 간구하면 하나님의 긍휼이 임할 것입니다. 

물론 누가 구원으로 예정되어 있는지는 모르지만 또 지금 복음을 전하는 당사자가 진심으로 회심하는 지도 본인과 하나님만 알지만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바울이 하나님이 전도를 통해서 구원하기를 기뻐하신다는 이유를 어떻게 설명했습니까?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불신자로 하나님을 알게 해주어야만 한다고 했습니다. 영생이 하나님과 그분이 보내신 독생자를 아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간혹 사영리를 전하고선 상대로 영접기도만 시키면 즉, “입술로 시인만 하면”(롬10:10) 구원 얻은 것으로 여기는데 이야말로 미련한 전도의 대표입니다. 당장 로마서 그 구절 에서도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른다”고 전제했습니다. 입술로 시인한 것은 하나님과 사람 앞에 마음으로 이미 믿었다는 사실을 확인시키는 증거일 뿐입니다. 

단순히 지옥 갈 것이 두려워서 진정어린 회심은 없이 전도자가 시키는 대로만 따라 해선 구원 받을 수 없음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그럼에도 가족으로선 그렇게라도 전도해봐야 합니다. 시간이 너무 촉박하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예정이 되어있다고 임종직전에 전도하지 않으면 예수가 누구인지 모르는데 즉, 믿음 자체가 생기지 않는데 어떻게 구원을 얻습니까? 

구원이 천국과 지옥으로 나누는 단순한 차원으로만 여기면 구태여 전도에 열심을 낼 필요는 없습니다. 어차피 죽고 나면 하나님이 알아서 둘 중 하나로 나눌 것이니까 말입니다. 구원의 본질은 예수님을 알고서 그분과 함께 교제 동행하는 것입니다.

십자가상의 강도는 예수가 누구인지 죽기 전에라도 알았으므로 그날 이후로는 낙원에 가서 주님과의 아름다운 교제가 이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부터 천국 안에 들어가지 못한 자는, 아무리 예정이 되어 있어도 이는 사실은 틀린 말로 그런 자는 예정이 안 된 것임, 죽어서도 천국에 가지 못합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신자는 때를 얻든 못 얻든 기도하면서 복음을 전하기만 하면 됩니다. 전도만 하지 구원하려 들어선 안 됩니다. 구원은 성령의 능력으로 택한 자에게 하나님이 주십니다. 그럼에도 신자가 예수 십자가의 새 생명을 불신자와 함께 나눌 때에 구원이 이뤄집니다. 먹을 것을 발견한 거지가 어떻게 아직도 굶고 있는 동료 거지에게 그 먹을 것을 소개 안 해줄 수 있겠습니까? 또 처형을 완전히 사면 받은 사형수가 동료 사형수에게 그 사면 받는 길을 어떻게 안 알려 줄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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