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1-11-28 09:53
[3]성령의 은사에 대한 바른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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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웹섬김이
조회 : 2,171  

(6) 선교사

 

이 선교사의 은사는 직접 은사로서 언급되어 있지 않는다. 왜냐하면 "선교사"란 말은 성서가 직접 사용하는 개념이 아니라 오늘날 교회가 만들어서 쓰는 용어이기 때문이다. 선교사란 말은 그 어원에서 볼 때 복음전도를 위하여 외지로 보냄을 받은 사람을 의미한다. 이런 점에서 선교사란 말은 사도, 즉 아포슬(apostle)이란 말과 동의어가 된다. 선교사는 교회를 통하여 복음전도를 위하여 해외로 파송 받은 사람을 말한다. 이런 점을 볼 때 선교사의 은사는 이미 중지된 사도의 은사의 정신을 계승하는 것이다. 초대교회에서는 선교사의 은사는 세 종류로 분류되었다. 첫째는 본토 안에서 유대인에게 선교하는 것이다. 둘째는 국외에 나가 있는 유대인 동포, 즉 디아스포라에 선교하는 것이다. 셋째는 외국 이방인에게 선교하는 것이다.72)

 

(7) 장로(감독, 다스리는 은사)73)

 

신약에서 연령과 신앙의 경력이 노숙한 분을 장로로 추대하게 되었다.(딤1:5-6)이 직은 예루살렘에서 갈라디아, 에베소, 그레데 등 각지로 파급된다. 그들은 교회를 다스리는 것과 감독의 일을 하며, 장로회의도 하였다. 또 이 직분은 목사직과 동일시되는 때도 많았다. 다스림의 은사는 미래의 목표를 설정하고 사람들의 동기를 촉진시키고 계획을 달성하고 최종적으로 재검토 하는 것을 포함한다. 항상 이 직분은 지배하기 위함이 아니요, 교회를 섬기고 성도를 보살펴 봉사하는 것이어야 한다. 지도력 없이 교회 존재할 수 없다. 로마서 12:8에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이 은사를 사용하라고 권고한다. 디모데 전서 5:17에 다스리는 자들은 "배나 존경을 받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8) 집 사74)

 

보통 집사란 어원 "디아코노스"( )라는 말에서 나온 것이다. 이 말의 뜻은 "하인(요2:5), 사환(마22:13), 섬기는 자, 혹은 섬기기로 작정된 자로(마23:11, 고전16:16)" 번역된다. 고린도 후서 9:1에 바울은 흉년을 만나 예루살렘 교회 성도를 섬기는 일에 수고를 했다는 일을 했을 때 동일한 단어를 사용한다.

집사는 하나님의 일에 부족한 것을 보충하여 충족시키도록 힘쓰는 자이다. 종이나 일꾼으로 집맡은 청지기로서 봉사하는 자이다. (고후6:4, 고전4:1, 벧전4:10) 교회에서 집사 직을 맡은 자만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성도를 누구든지 주의 일꾼이 되어 겸손히 봉사하는 실천하는 은사를 말한다.75)

 

2. 은사와 교회 성장

 

(1) 교회성장의 정의

 

'교회성장'하면 대개 교회신도 수와 교회건물 건축, 그리고 예산증액을 생각하기 쉽다. 비 성장에 대한 낡은 합리화의 영향 때문에 교회성장을 수적인 확장, 양적인 물량주의 사도와 동일시하는 오해도 범하게 된다. 그러므로 교회성장이란 단지 많은 사람들과 더 많은 헌금을 교회 안으로 끌어들이려는 전략으로 인식되어서는 안 된다.

'교회성장'에는 확고한 신학적 기초가 있어야 한다. 한스 큉은 교회성장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성장해야 하고 하나님의 계획대로 자라야 한다고 하였다.76) 그는 또한 교회가 "내적으로 성장해야 하는데 그것은 신앙과 인식과 사랑의 성장이요, 수적으로도 자라야 하는데 그것은 복음의 설교를 기초로 해서 새로운 지체들이 탄생함으로써 성취된다."77)고 하였다. 그는 계속해서 예수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요, 교회성장의 근원이며, 목표이기 때문에 교회는 그리스도에게 순종함으로써만 그 성장이 가능하다78)고 말한다. 또한 맥가브란은 '교회성장은 하나님께 대한 성실성이요. 또한 하나님께서 열망하시는 것"이라고 했다.

 

(2) 은사를 통한 교회성장

 

성령의 은사가 교회 안에서 어떻게 개발되어 활용되느냐에 따라 교회의 성장을 가져 올 수 있다. 피터 와그너는 성령의 은사에 대한 무지는 교회의 성장을 지연시키는 중대한 원인이 될 수 있으며, 많은 그리스도인들을 괴롭히는 실망, 불안, 좌절과 죄악의 원인도 될 수 있으며 하나님을 위한 모든 유효성을 삭감하는 원인이 될 수 있다79)고 말한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성령의 은사에 대한 바른 이해와 활용을 해야 함을 알게 한다.

먼저 교회는 성도들의 은사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도록 교육을 하고 교회차원에서 그 은사를 활용하도록 허락해야 한다. 피터 와그너는 성령의 은사를 활용함으로 현재의 크케 눌려 있는 놀라운 성장의 위력이 풀려나 오게 될 것이다80)고 말한다.

그리고 모든 교회의 성도는 하나님께로부터 부르심을 받은 것과 그 사람의 성령의 은사와는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그러나 성령의 은사에 대한 특별한 이해와 관심과 견해가 교회성장을 위한 틀림없는 처방은 아니지만, 그러나 많은 경우에 있어서 성령의 은사에 대한 바른 이해와 활용 또 그 교회로 하여금 각 지체들이 성령의 능력에 의하여 서로 협력하는 가운데 기능을 발휘하기 시작하도록 용기를 불어넣어 주는 일은, 마치 예방 접종이 천연두를 예방하는 것처럼 그렇게 확실하게 그 교회로 하여금 침체에서 벗어나서 성장을 하도록 도와준다.81)

목회자는 교회성장을 위해서 그 은사를 발굴하는 분별력과 지혜가 필요하다. 지도자의 성령의 은사에 대한 마인드가 어떠한가에 따라서 그 성령의 은사가 교회 성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리고 목회자의 성령의 은사의 소유여부에도 교회성장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이에 피터 와그너는 그의 저서에서 "연합 장로교회는 목회자의 강한 능력이 그 교회의 생기와 부흥을 가져오는 결정적인 요인이 된다"는 사실을 충분히 인식해야 한다고 말한다. 목회자의 지도력은 그 교회의 교회활동의 거의 모든 분야에서 생기를 불어넣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며, 또한 교인수의 증가에도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그리고 성장하는 교회의 목회자들은 교회 일에 보다 더 많은 영향을 끼치고 일치감을 증진시키며 분쟁 문제를 잘 다루어 교회성장에 대한 보다 더 많은 책임을 감당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한다.82) 목회자의 복합 은사83)가 교회성장을 위하여 결정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다. 그리고 적합한 혼합 은사를 가진 적합한 사람이 있을 때 그 교회는 성장을 위한 큰 가능성을 가진다84)라고 한다. 목회자의 성령의 은사는 교회성장을 위해서 발견되어야 하고, 또 몸에 의해서 확증을 받을 필요가 있고 하나님의 영광과 교회의 성장을 위하여 그 은사를 발전시키고 사용할 필요가 있다.85)

 

3. 은사와 선교

 

성경은 은사와 선교에 대한 관계를 말해주고 있다. "오직 성령의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86) 성령의 권능을 받은 사람은 반드시 복음을 전하는 일을 하게 된다.

교회의 사명은 복음을 전하는데 있다. 교회로서 복음으로 세계를 섬겨야 한다. 교회가 특히 선교사의 은사를 받은 사람을 발견해야 하고, 그 사람을 복음전하는 선교사로 세계를 향해 보내야 한다. 선교의 사명을 성령의 힘과 성령의 은사로 감당해야 한다. 그럴 때 복음은 쉬지 않고 전파되어질 것이다. 아무리 거대한 교회라도 복음전도의 은사를 받은 사람이 없다면 그 교회는 곧 문을 닫게 될 것이다.87) 교회의 사명을 위해서 전도자의 은사를 받은 사람이 필요하다. 복음 전도는 불타는 마음으로써 복음의 증인이 되는 것이고 듣는 것들을 제자로 삼는 뚜렷한 목적으로서 가르치고 전파한다.

 

4. 은사와 섬김

 

(1) 교회 안에서의 봉사

 

'카리스마'는 '교회를 봉사하기 위해 주어지는 특별한 성령의 선물들'을 지칭한다(엡4:7,12). 바울은 고전12:8-10에서, 그리고 롬12:6-8에서 은사들의 긴 목록을 제시한다. 이 은사들은 모두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라는 구조 안에서 봉사하도록 부여받은, 성령에 의해 주어진 특별한 능력 내지는 재능이다. 이들은 그리스도께서 이 땅위에 그의 교회가 세워지는 것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 주신 영적 능력들이며, 성도의 봉사와 교회를 세우기 위한 연모로써 성령에 의해 신자들에게 부여된 특별한 은사들이다.88) 클레멘스(Clemens)는 이 은사에 대해 "봉사의 특별한 영역을 위해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이라고 말했다.89)

성경은 은사와 섬김에 대해서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 당이라"90)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섬김은 하나님의 성령의 힘으로 하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교회의 많은 성도들이 교회 안에서의 봉사를 자신의 노력과 지혜와 능력으로 하여 지속성이 없고 쉽게 지쳐 버리는 것을 본다.

봉사의 은사는 다른 은사에 비해 많은 사람에게 주어진다. 이 은사는 본질적으로 희생적인 성격을 나타내고 수고와 비난은 자기가 차지하고 영광과 찬양은 남에게 돌린다. 기초는 자기를 노출시키지 않는다. 대가도 바라지 않는다. 성령은 많은 사람에게 봉사의 은사로 주신다. 왜냐하면 이 은사가 다른 은사를 받들어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적어도 한 교회에 있어서 이 은사를 받은 사람들이 50%이상이 되어야 그 교회는 흔들리지 않는 기초를 갖게 되는 것이다.91)

피터 와그너는 교회에서의 섬김에 대해서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재능을 몸의 다른 지체들의 활동에 투여함으로써 그 다른 지체들로 하여금 그들의 은사의 효율을 증대시키도록 돕는 역량이다."92)라고 했다.

공동체로서의 교회는 섬기는 은사 소유자들의 봉사로 기초가 든든하게 세워졌다. 예수의 선교 공동체를 비롯하여 원시 예루살렘 교회와 바울의 현대 교회에서부터 오늘의 교회에 이르기까지, 교회는 이러한 은사소유가 없다면 기초를 세워나갈 수 없을 것이다. 교회 내에서 물질과 정신 그리고 몸으로 섬겨야 한다.93)

교회 내에서 섬김은 구제를 통해서도 교회의 공동체를 섬길 수 있다. 구제는 무엇보다도 남의 필요를 물질적으로 공급해주는 것을 의미한다. 이 구제는 헌금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구제 받은 사람은 구제 헌금을 적극적으로 하는 사람이다. 구제는 그리스도인의 의무이다. 그러나 성도들 중에 의무 이상으로 이 일을 잘 감당한 사람이 있는데 이 사람은 섬김의 은사를 받은 사람이다.

섬김은 또한 사람을 긍휼히 여김으로 섬길 수 있다. 로마서12장 8절에 "긍휼을 베푸시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라고 명시되어 있다. 이것은 바로 마음으로 돕는 것이다. 이런 점에 있어서 긍휼은 정신적으로 남을 섬기는 은사와 유사하다. 긍휼의 은사의 소유자들은 자기의 명예와 이익은 뒤로 미루고 상대방의 처지를 생각하여 남을 용서하고 세워줌으로써 공동체를 든든히 하는 사람들이다. 이 긍휼의 은사는 가장 두드러진 점은 예수 그리스도의 화애의 정신을 나타내주는 것이다.94)

남에게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해야 한다. 로마서12:8은 즐거움은 겸손의 산물이다. 이 규범에서 벗어나선 안 된다. 우월감에서 긍휼을 베푼다면 그것은 참된 긍휼이 아니다. 역경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 가장 큰 선물은 순박한 웃음이다. 이 웃음은 겸허한 심령을 가진 사람의 깊은 영혼에서 솟아오른다. 아무리 큰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 할지라도 우월감이 그 속에 자리잡고 있으면 이러한 웃음은 만들어내지 못한다.95)

그리고 교회에서의 섬김은 손 대접을 통해서 할 수 있다. 로마서12장13절에 "각 손 대접하기를 힘 쓰라" 히브리서13장 2절에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고 명기되어 있다. 초대교회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교회를 찾아오는 나그네를 자기 집에 영접하는 것은 최상의 대접이 되었다. 성령은 많은 사람에게 이러한 긍휼의 은사를 주어 교회의 덕을 세운다.96)

 

(2) 교회 밖에서의 봉사

 

교회는 세상 내에 있지만 이 세계에 동화되지 않는다. 교회는 이 세상이 없으면 존재의미가 없다. 교회는 세상이 있으므로 존재의미를 찾을 수 있다. 교회는 세상을 적대시하고 이 세상에서 구별되어 세상을 도피하여 존재할 수 없다. 교회는 세상과 결합되어 있음으로써 세계를 위하여 존재한다. 세계가 교회에 대해 무엇을 인식하고 있는지 이해하고 있는 교회라면 그런 교회가 세계와 유리된다는 것은 애초에 있을 수 없는 일이다.97)

교회는 세상과 구별되는 구원의 공동체로서 세상에서 자신의 과업을 수행해야 한다. 새로운 하나님의 백성인 교회는 어둠에서 빛으로, 죄에서 구원으로, 죽음에서 생명으로 사람들을 부르기 위하여 세상에 파견되어 있다. 세계의 구원이 다가오는 행방의 기쁜 소식을, 이미 시작했고 곧 완성될 하나님 통치의 복음을, 교회는 세계에 전해야 한다. 인간을 사랑함으로써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계시된 그대로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 해야 한다.98)

교회는 사회에 대한 봉사를 해야 한다. 사회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다 해야 한다. 한스 큉은 "교회는 이 현실의 세계는 바로 교회가 사명을 수행해야 할 장소요 시간이다. 따라서 교회는 이 세계의 새로운 시간과 장소에서 이론상이나 실천상으로나 현실적응을 회피할 수 없다."99)고 한다. 그리고 그는 "세계에 대한 최대봉사를 복음전파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여기서는 봉사를 복음전파로 보지 않고 사회에 대한 섬김으로 접근하려 한다.

교회의 봉사는 예수 믿는 자들끼리만 아름다움의 나눔의 삶을 갖는 집단 이기주의적인 교제가 아니다. 온전한 봉사는 기독교인들의 울타리를 벗어나 지역 사회 속에 있는 고통 당하는 이웃과 더불어 함께 삶을 같이하는 영역을 포함한다. 사도행전 2:47은 "초대 교회의 공동체의 성도들이 온 백성들에게 칭송을 받았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들을 모두 포함하는 말이다. 바울은 디모데 전서 6:18에서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고 말한다. 따라서 봉사하고자 하는 것은 나눠주기를 좋아하는 것을 의미한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명하기를 부자들에게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하나님께 두며 선행과 나눠주기와 봉사를 좋아하도록 가르치라고 하였다 (딤전6:17-18). 이 나눠줌은 교회내의 지체에게만 아니라 교회 밖 지역 사회의 가난한 이웃들에게도 실시하라는 것이다.100)

예수님은 누가복음 4:18-19에서 새로운 희년을 선포하셨는데 그것은 성령을 받은 결과 봉사의 역사를 통한 교회의 공동체의 자원적인 나눔과 섬김으로 지역사회 내에 있는 가난한 사람들의 문제들을 다 담당해 나가는 것을 말한다. 이것이 바로 성령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새로운 자원의 희년인 '자원의 희년'이다. 구약의 희년은 신약에서 봉사로 대체된다. 즉 교회라는 공동체는 구약의 희년의 의미를 성령의 봉사를 통하여 지역 사회 속에서 실천하는 기관이다. 교회는 교회 주위의 필요를 채우면서 고통 당하는 이웃과 더불어 함께 사는 것을 말한다.101) 교회는 인간을 향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행동으로 옮기기 위한 손과 발의 역할을 하는 종이다. 이 봉사의 기능에 있어서 타인을 위한 섬김의 기능을 수행해야 한다. 정신적. 육체적 불구자. 노동자. 실업자. 가난한 자. 소외된 자. 억눌린 자 등 모든 연약한 사람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격려하여 스스로 말씀에 의지하여 설 수 있도록 자발적으로 돕는 일이다. 하나님이 주신 각종 은사와 물질을 전체의 유익을 위하여 필요한 지체들과 나눈다는 것이다.102) 봉사로서의 교회는 세상의 위한 섬김과 나눔의 삶을 실천해야 한다. 봉사로서의 교회는 세상의 고통에 참여하도록 부름을 받았다. 그 고통에의 참여란 가난한자와 도움을 필요로한 자, 또 한계 상황에 있는 자들을 변화하고 돕는 것이며, 인류의 심령에 산 희망을 유지하는 데서 오는 것이다. 세상을 위한 섬김과 나눔의 실천은 봉사로서의 교회가 반드시 해야 할 과제인 것이다. 교회가 섬김과 나눔의 삶을 실천해야 한다.103)

교회는 가난한 자에 대한 책임이 있다. 성서가 말하는 이웃사랑은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을 사랑하는데서 출발한다.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이웃사랑이 참으로 실현되고 있는가를 판단하는 시금석이다. 잘살고 아름다운 사람끼리 사랑하는 것은 이방인들도 할 수 있다. 하나님의 백성인 교회는 자기들끼리 사랑하고 문안하는 이방인들의 사랑의 차원을 넘어서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을 사랑하고 이들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104) 교회는 가난하고 소외된 자를 위해서 봉사 관을 설치하여 그들과 함께 해야 한다. 교회는 우선적으로 가난한 자을 살리는 일에 주력해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교회는 또한 교회 밖에서 존재하는 하나님의 활동에도 유념해야 하고 교회밖에 존재하는 많은 선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에 확장 건설을 위해 매우 유익한 존재라는 점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105)

 

 

 

Ⅶ장. 성령 은사의 계발

 

1. 성령 은사 계발의 필요성

 

성경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이미 성령의 은사를 소유하고 있다고 말한다.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106) 그러므로 모든 성도는 은사가 주어 졌다고 믿어야 하고 그 은사를 계발해야 한다. 이에 바울은 그 주어진 은사를 발전시킨다고 말한다.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일 듯하게 하기 위하여 너로 생각나게 하노니"107), 성경은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께서 주신 성령의 은사를 계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피터 와그너는 그의 저서에서 하나님께서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성령의 은사를 소유하고 사용하는 것을 원하시고 하나님께서는 그의 잃어버린 양을 찾고 그의 교회가 성장하는 것을 원하시기 때문에108) 성령의 은사는 발견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성령의 은사는 은혜로 인해 교회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 주어진 것으로서 직임, 역사, 혹은 자연적 은사와 구별되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성도에게 은사를 주셨다. 그 주신 목적은 교회라는 공동체의 유익과 강화를 위함이다. 그러므로 교회라는 공동체가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세워지는 것이다. 이것이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주권으로 말미암아 특별한 기능을 몸 안에서 수행하는 것이다.

피터 와그너는 그리스도인들이 발휘해야 할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보실 때, 얼마나 괴로워 하겠는가하는 생각을 나는 종종 한다. 만약 우리들 모두가 우리들의 은사를 발견하고 활용하는 일을 열심히 할 것을 하나님께 약속한다면, 오늘날 우리들의 교회는 전반적으로 큰 부흥을 할 것이고109), 이 성령의 은사계발 여부에 따라 교회의 성장에 절대적으로 중요하다고 본다. 그러므로 성령의 은사는 계발되어야 한다.

은사의 발견은 그리스도인의 삶에 여러 가지 많은 유익을 제공한다. 그 첫째는 자기자신을 하나님의 귀한 일꾼으로 새롭게 인식하게 하고 그것을 인식하여 발견한 사람에게 주체성을 확립시켜 준다. 사람은 때때로 자기를 무능력하고 무의미한 존재로 간주할 때가 많다. 그리하여 때때로 사람들은 실의와 절망감에 사로잡혀 의기소침해 버리는 때가 적지 않다. 이러한 때 으례히 열등감이 엄습하여 그의 인격을 파기시켜 버리고 만다. 그러나 만일 그가 그의 은사를 발견하게 되면 곧 절망과 열등감에서 해방 받게 될 것이다. 또 자기 은사의 발견은 열등감을 예방해 준다. 절망과 열등감은 사탄이 늘 애용하는 유혹의 무기다. 그러나 성령의 능력 앞에서 이러한 사탄의 무기는 아주 무기력하게 되고 만다. 성령의 은사는 그 소유자로 하여금 모든 지체 속에서 자기가 없어서는 안 될 지체임을 알게 한다. 이 성령의 은사는 절망과 열등감을 가시게 하여 그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일꾼으로 주체성을 갖게 한다. 둘째는 나그네로서 자기 여정에 이정표를 찾되 여러 갈래 중에 자기가 택해야 할 길을 분명히 파악하게 된다. 그리고 영원을 향해 기나긴 순례의 길을 걷는 그리스도인에게 성령의 은사는 길목 길목마다 이정표를 세워줌으로써 그의 나그네 길을 인도해 준다. 셋째는 삶에 있어서 우선 문제를 정하는데 큰 도움을 얻게 된다. 그리스도인은 무엇을 어떻게 어디에서 시작해야 하는지 감을 잡지 못할 때가 많다. 이러한 때 자기의 은사가 무엇이란 것을 파악함으로써 자기의 삶의 어디에 우선 순위를 두어야 할 것인지를 확실하게 알게 된다.110) 이러므로 성령의 은사는 계발되어야 한다.

 

2. 성령의 은사를 발견하는 방법

 

그러면 하나님께서 성령의 은사를 주신 것을 어떻게 발견할 수 있을까?111)

 

(1) 먼저 교회는 성령 은사의 활용의 장으로 마련해 주어야 한다.

 

성도들이 자신의 은사를 마음껏 발휘할 할 수 있도록 마련해 주어야 한다. 이에 대해 피터 와그너는 "교회성장을 위한 효과적인 은사활용에 대해 목회자들이 강단에서 성도들에게 설교를 계속함으로 그들에게 동기를 부여 해주고 은사들에 관한 성경의 가르침을 성도들에게 계속 공부시키며, 성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은사를 발견할 수 있도록 목회자들이 도와야 한다. 또한 은사에 관한 자주적인 연구활동을 가지게 하고, 은사를 발견하기 위한 책임감을 위하여 목표를 정하고, 그리고 성령의 은사의 체험을 항상 지속시켜야 한다.112) 고 말한다. 지도자들은 성도들이 마음놓고 은사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은 경우 그 달란트를 땅속에 묻어두어 사장될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은사를 주신 목적에도 맞지 않는 것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지도자들은 성도들의 각각의 은사가 무엇인지 잘 파악해야 하여 성도들이 그들의 은사를 최대한으로 잘 활용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교회 공동체에 덕을 세우고 성도들에게 유익을 주도록 해야 할 것이다.

 

(2) 기도로써 시작해야 한다.

 

은사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 자기에게 주신 은사가 무엇인지 깨닫게 해달라고 간구하지 않고서는 그 은사를 발견할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를 그의 백성들에게 맡기셨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나라 건설을 위해 그냥 맡기신 것이 아니라 무기를 주셨다. 그 무기가 바로 은사인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그 은사가 무엇인지 알 수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 기도함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 무엇인지를 물어야 한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은사가 무엇인지 알게 되고 확신하게 될 것이다.

 

(3) 성경을 상고해야 한다.

 

먼저 성경에 나와 있는 은사에 대한 항목의 내용들을 파악하고 그 내용을 묵상함으로 자기의 은사가 무엇인지 끄집어내야 한다. 성령의 은사는 성경에 대한 연구 없이 파악될 수 없다. 성령의 은사는 하나님께서 그냥 아무런 이유 없이 주시지 않으신다. 반드시 그 목적과 대상에 맞게 주신다. 하나님께서 주신 성령의 은사는 사람의 영혼 속 깊이 파 묻혀 있다. 이 깊이 묻혀있는 은사를 찾아내어 활용할 때 빛나는 보배가 될 것이다.

이 성경의 상고를 통해서 은사가 무엇이며, 또 은사가 그리스도의 몸에 어떻게 조화되고, 은사가 각 개인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이런 것들에 대하여 잘 알도록 도와준다.113)

 

(4) 발견한 자기의 은사를 고유한 것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성령의 은사는 발전시키지 않고 그대로 두면 녹슬고 만다. 성령의 은사를 가장 욕되게 하는 것은 녹슬게 만드는 것이다. 은사를 발전시켜 나갈 때 자기가 받은 은사가 특별히 자기에게만 주신 고유한 것이라는 것을 인식할 때 다른 사람과 비교하여 열등의식과 부각하여 교만에 빠지지 않아 공동체를 유익하게 하고 바르게 섬길 것이다.

 

(5) 받은 성령의 은사가 타인으로부터 인정을 받아야 한다.

 

성경은 성령의 은사는 개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덕을 세우기 위한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그 사람은 그 은사를 받았다 라고 인정을 할 때 비로소 합력하여 선을 이룰 수 있게 된다. 만약 그렇지 않고 아직 마음속에만 있고 외부로 나타나지 아니한 은사는 잠재적 은사에 불과하다. 그리스도인은 타인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 자기의 은사를 잘 개발하여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이럴 때 한 공동체의 지체로서 공동체를 위해 봉사할 수 있을 것이다.

 

(6) 사용할 때 보람을 느끼는지 알아본다.

 

성령의 은사를 받은 사람은 그 받은 은사대로 헌신 봉사할 때 기쁨과 보람을 얻을 수 있다. 은사를 받은 사람은 용기와 지혜로 용감하게 자기의 은사를 발휘하고, 지혜 있게 다른 은사와 협력할 때 반드시 희열과 보람을 얻게 될 것이다.

그리고 피터 와그너는 이 성령은사의 발견을 위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114)

 

(7) 성령의 은사를 사모해야 한다.

 

성경 성령의 은사를 사모할 것을 이렇게 말한다.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115) "신령한 것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116) 성령의 은사를 사모할 때 성령의 은사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사모하는 자에게 주신다는 것이다.

 

(8) 성령의 은사를 얻기 위해서 안수를 받는다.

 

성경은 성령의 은사를 안수 받을 때 얻었다 라고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네 속에 있는 은사 곧 장로의 회에서 안수를 받을 때 예언으로 말미암아 받은 것을 조심 없이 말며"117). "그러므로 내가 나의 안수함으로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일듯하게 하기 위하여 너로 생각나게 하노니"118) 이 성경구절을 통해 바울의 안수와 장로의 안수에 의해서 디모데가 성령의 은사를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안수를 통해서 받은 성령의 은사는 고린도 전서12장 11절에서 "성령님의 뜻대로" 은사를 나눠주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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