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6-05-17 12:13
모세요경 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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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웹섬김이
조회 : 3,927  
"오경"이란 이름은 성경의 처음 다섯 권에 붙인 명칭이다. 
이 이름은 "다섯 두루마리"라는 뜻의 그리스어에서 온 말이다. "모세 오경"이라고도 불리는 이 책은 히브리어 성경 중 유대인 공동체가 가장 으뜸으로 소중히 여기는 부분이다. 히브리어로는 이 책을 "토라"라고 부른다. 토라는 전통적으로 "율법"이라고 번역된다. 이 번역어는 히브리어 성경을 최초로 그리스어로 번역한 70인역본에 사용된 그리스어를 반영한다. 그리스어 신약에서도 같은 낱말이 이 책을 가리키기 위해서 사용되고 있다(마 5:17; 눅 24:44; 요 1:45를 보라). 하지만 히브리어 용어는 보다 광범위한 의미를 품고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교훈"이나 "계시"로도 번역된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시는 가르침을 나타낼 때 그렇게 사용된다.
 내용
이 다섯 권의 책은 규칙이나 규정뿐만 아니라 설화체의 글도 담고 있다. 이 설화체의 글은 창조에서부터 모세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히브리 백성이 겪은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이 책이 다루는 내용은 다음과 같이 구분된다. 

· 창조에서부터 인류가 온 세상에 흩어지기까지(창 1:1-11:9) 
· 히브리 백성을 창시한 조상들, 즉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요셉(창 11:10-50:26) 
· 히브리 백성들의 출애굽(출 1-15장) 
· 홍해에서 시내 산까지(출 16-18장) 
· 시내 산의 이스라엘 백성(출 19:1-민 10:10) 
· 시내 산에서 모압 평지까지(민 10:11-21:35) 
· 모압 평지에서 진을 친 이스라엘(민 22:1-36:13) 
·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하는 하나님의 행하심과 하나님의 율법(신 1-33장) 
· 모세의 죽음(신 34장)
 오경의 형성
전통적으로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은 모세가 이 다섯 권의 책을 썼다고 믿었다. 그렇지만, 이런 입장을 계속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그것을 대단히 어렵게 만드는 요소들이 많이 있다. 똑같은 사건이나 가르침이 두 번 혹은 그 이상 여러 곳에서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이 그런 예이다. 이같은 사실은 두 개의 서로 다른 자료들이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하게 한다. 창 6:19에서 노아는 자기와 함께 모든 짐승의 암수 한 쌍을 방주에 데리고 들어가라는 명령을 듣는다. 그러나 창 7:2-3에서 노아는 어떤 짐승은 암수 한 쌍씩을, 또 어떤 짐승은 암수 일곱씩을 데리고 들어가라는 지시를 받는다. 아브라함의 첩 하갈은 두 번씩이나 집 밖으로 쫓겨난다(창 16장; 21:9-21). 아브라함은 두 번씩이나 자기 목숨을 구하기 위해서 자기 아내 사라를 자기 누이라고 둘러댄다(창 12:10-20; 20장). 그 아들 이삭도 자기 아내 리브가에게 똑같은 일을 하고 있다(창 26:6-11). 이 두 이야기는 거의 비슷한 이야기이다. 이야기의 시제가 다름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나 아들 모두 똑같은 그랄 왕 아비멜렉을 속이려고 하고 있다. 동일한 절기에 대한 기사가 여러 번 반복되고 있는가 하면(출 23:14-19; 34:18-26; 레 23장; 신 16:1-17), 십계명을 받는 기사도 두 번이나 중복되고 있다(출 20:2-17; 신 5:6-21). 이 외에도 많은 본문들이 이야기가 실제로 일어났던 때보다도 수백 년 후에나 있게 될 장소나 제도를 언급하고 있다(예를 들어 창 47:11 설명을 보라. 또 다른 예로 창 36:31은 모세 시대 이후 250년 가량이 지나야 이스라엘에서 첫 번째 왕이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왕들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따라서 이런 이야기들은 사건이 일어났던 시기에 동시적으로 기록되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아야 한다. 
이런 여러 이유 때문에 우리는 오경이, 개별적인 이야기들이 구전으로 전해졌던 때부터 시작하여 오경이 최종 편집되는 단계에 이르는 주전 5세기까지, 수백 년에 걸친 과정의 마지막 결과물이라고 믿게 되었다. 예를 들어 생각해 보자. 창 1-2장은 창조에 대해서 두 번 이야기하고 있다. 첫 번째 기사(1:1-2:4상반)에서 창조자는 "하나님"을 가리키는 보편적인 이름인 "엘로힘"이다. 두 번째 기사(2:4하반-23)에서 창조자는 보통 "주 하나님"이라고 번역되는 "여호와 (또는 야웨) 하나님"이다. 오경에 걸쳐 두루 나타나는 이와 같은 어구들은 오경을 구성하는 데 두 개의 초기 자료가 있었을 것이라고 추정하게 만들었다. 첫 번째 자료는 이른바 "J"(여호와와 유다를 표기하는 영어의 머리글자)로서 다윗과 솔로몬의 통치 때인 주전 10세기에 예루살렘에서 편찬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두 번째 자료는, "E"("엘로힘"과 "에브라임"을 나타내는 영어의 머리글자)라고 불리는데, 주전 9세기 이래 북 왕국 이스라엘에서 유래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두 자료가 궁극적으로 하나로 결합되면서, 거기에 제사장과 성소와 전례와 예배와 희생제사에 관심을 쏟았던 마지막 자료가 추가되었다고 본다. 이 추가된 자료를 제사장들이 기록한 것이라고 해서 "P"라고 부른다. 마지막으로 독립 단락인 「신명기」가 주전 538년 이스라엘이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 귀환한 후에 첨가되었다. 
모든 성서학자들이 이러한 견해에 동조하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질문들이 남아 있기도 하다. 그렇지만 지금으로서는 이 복잡한 주제에 대한 설명으로 이러한 견해가 폭넓게 수용되고 있다.
 오경의 중요성
오경은 한 때 이스라엘 백성의 삶에 대한 기록이자 그 근거라고 생각되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 옛 이야기를 읽거나 낭송할 때 오래 전 아주 먼 옛날에 일어났던 사건을 기억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도리어 그들은 자기들이 겪은 경험을 증언하기도 한다. 오경 이야기를 낭송하면서 그들은 위대한 사건 속에 빠져들어 가게 되고, 그러면서 이야기를 관망하는 구경꾼이 아니라 그 이야기에 동참하는 주인공이 된다. 이스라엘 백성은 한때 애굽에서 노예 생활을 했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위대한 손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의 군대로부터 해방시켜서 물을 가르고 건너게 한 후 약속의 땅까지 무사히 오도록 이끄셨다(신 26:1-11). 이것은 결코 죽은 역사가 아니었다. 그것은 그들이 겪은 고유한 이야기였으며 살아 있는 유산이었다. 
이것은 기독교인들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이 책을 먼 과거에 대한 정보로만 대해서는 안 된다. 기독교인은 이 책에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어떻게 다루셨는지를 배운다. 하나님은 자기가 한 약속을 거듭 새롭게 하시면서, 자기 백성들이 이처럼 고백하도록 부르신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신 6:4-5).
 오경의 메시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다루시는 모든 이야기를 하나로 묶는 요소는 하나님이 그 백성과 맺으신 언약이다. 이것이 얼마나 중요했던지 기독교인들은 그 말에 대응하는 라틴어 '테스타멘툼'을 가지고 히브리어 성경과 기독교 성경에다가 '구약(옛 언약)'과 '신약(새 언약)'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 중심 되는 주제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는 것으로 시작된다(창 15장; 17장). 그 언약은 그 다음 단계에서 이삭(창 26:1-5)과 야곱(창 28:10-22; 출 2:24; 6:2-5를 보라)과 새롭게 체결된다. 시내 산에서 하나님이 모든 백성과 언약을 맺게 되면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신다(출 24:3-8). 이 언약은 이스라엘 백성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려고 하던 무렵 모압 평지에서 새롭게 다듬어진다(신 29:10-15). 언약을 통해서 하나님은 스스로 그 백성과 두터운 유대를 맺으신다. 그 백성과 함께 하고 그들을 축복하신다고 약속하신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스라엘 백성은 되풀이해서 그 언약을 지키지 않고 하나님께 반역하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은 늘 신실하게 자기 백성이 자기에게 돌아오도록 이끄신다. 선지자 예레미야 때에 하나님은 자기 백성과 맺으실 새 언약을 선포하신다(렘 31:31-34). 기독교인들에게 있어서 이 언약은 예수께서 성만찬을 제정하실 때 성취되었다(막 14:22-26; 고전 11:23-25). 
그 언약의 조항 중에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그 자손들이 자기 땅을 갖게 되고 그 땅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신다. 이 주제가 「민수기」와 「신명기」에서 줄곧 다루어진다. 그 땅은 거룩한 땅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 곳에 거룩하신 하나님이 자기 백성과 함께 거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 땅이 없다면 이스라엘 백성은 백성이 되지 못하리라. 기독교인들에게도 이같은 가르침은 중요한 요소가 된다. 표현하는 방식이 다르기는 하지만, 기독교인들도 하나님께서 자기들과 영원히 함께 계시면서 자기들의 하나님이 되시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과 새 예루살렘의 약속을 바라고 있다(계 21:1-4). 
마지막으로, 그 언약은 하나님이 거룩하시듯 하나님의 백성도 거룩해야 한다고 다짐하고 있다(레 20:26; 22:31-33). 이것은 곧 하나님의 백성이란 하나님을 예배하고 섬기도록 특별히 헌신해야 할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런 특별한 역할은 그들만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다. 그것을 지킴으로써 하나님은 세상에 있는 모든 백성들을 축복하실 것이다(창 12:1-3). 이 주제는 기독교인들에게도 의미가 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은 제사장이 되어야 하고, 거룩한 민족이 되어야 하며, 하나님께 헌신한 백성이 되어야만 한다(벧전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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