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6-05-12 17:55
[1]요한복음과 공관복음과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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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웹섬김이
조회 : 9,059  

공관복음과의 관계

 

 요한복음은 다른 세 권의 공관복음서와 구별되는 독특한 부분이 매우 많이 있습니다.

1) 공관복음이 갈릴리를 중심으로 기록한 반면 요한복음은 유대와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기록했고, 
2) 공관복음이 주님이 다윗의 아들과 인자임을 강조한 반면, 요한복음은 주님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강조했으며,
3) 공관복음에는 저자의 해석이 적지만, 요한복음에는 저자의 해석이 많이 나타나고,
4) 공관복음이 주님의 교훈을 많이 기록한 반면, 요한복음은 주님의 교훈을 적게 기록하고 그것을 매우 상세히 기록했으며,
5) 공관복음이 한 번의 유월절만을 언급하고 있는 반면, 요한복음은 3-4번의 유월절을 기록하고 있으며. 
6) 또한 날짜와 시간계산에서도 요한복음은 공관복음과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요 19:13-14).

  이러한 요한복음의 독특성으로 인해 일부 학자들은 요한복음이 공관복음서와 아무런 관계 없이 독자적으로 기록한 책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면 과연 요한복음은 공관복음서와 아무런 관계 없이 독자적으로 기록된 책일까요? 아니면 요한이 공관복음서의 내용과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을까요? 우리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요한복음과 공관복음서와의 관계를 좀 더 자세하게 생각해보겠습니다.

1. 요한복음과 공관복음의 유사점
  요한복음과 공관복음은 많은 차이점이 있지만, 공통적인 면도 역시 많이 있습니다. 우선 요한복음과 공관복음은 그 내용에 있어서 공통점이 많이 있습니다. 요한복음과 공관복음에는 모두 아래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1) 세례 요한
 2) 제자들을 부르심
 3) 5000명을 먹이심
 4) 제자들의 바다 여행
 5) 베드로의 고백
 6) 예루살렘 입성
 7) 최후의 만찬
 8) 그리스도의 수난. 


  또한 약간 다르게 묘사되긴 했지만, 요한복음과 공관복음서는 모두 다 성전 청결 사건과 주님께서 기름부으심을 받은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누가복음과 요한복음은 둘 다 주님께서 부활하신 장소가 예루살렘이었다고 증언하고 있으며, 주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으신 일에 대한 요한복음의 설명도 (눅 22:27)과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베드로가 많은 고기를 잡는 사건에 대한 묘사도 요한복음은 누가복음과 깊은 관계를 갖고 있습니다(요 21:1-, 눅 5:1-). 그리고 묘사 방법은 다소 다르긴 하지만, 요한 복음과 공관복음은 모두 다 주님의 병고침과 이적 사건의 표본이 되는 사건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공통점들은 요한복음이 독자적으로 기록했다기 보다는, 공관복음을 토대로 해서 기록했을 가능성이 있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2. 요한복음과 공관복음의 차이점

  그러나 요한복음은 공관복음과 공통점뿐 아니라 다른 점들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에는 공관복음서에 있는 내용 중에 생략된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요한복음은 다음과 같은 공관복음서의 내용들을 생략하고 있습니다. 
 
1) 동정녀 탄생
 2) 세례
 3) 시험과 변화산 사건
 4) 귀신들린 자와 문둥병자의 치료
 5) 비유
 6) 주님의 만찬 제도
 7) 겟세마네의 고민, 버림받고 부르짖는 모습
 8) 승천에 대한 기록. 


  그러면 왜 요한복음에는 이러한 사건들을 생략했을까요? 일부 학자들은 요한이 공관 복음서 자료들 중에서 역사적인 특성을 제거하고 나서, 그 중에서 자신의 신학적인 구조에 불필요한 내용을 생략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요한복음의 역사성을 부정하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무조건 받아들이는 일은 조심해야 합니다. 가장 설득력 있는 설명은 요한복음을 기록할 당시에 공관복음서는 널리 알려져 있었으며, 따라서 요한이 반복해서 기록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 일부 자료를 생략했을 것이라는 견해입니다.

  둘째로 요한복음에는 공관복음에 없는 내용이 첨가된 것도 많이 있습니다(90%). 요한복음에 추가된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서문(1:1,18)
 2) 나다나엘의 고백(1:43-51)
 3) 가나의 이적(2;1-12)
 4) 니고데모 사건(3장)
 5) 수가 성 여인 사건(4장)
 6) 생명의 물(4:6-29)
 7) 주님의 신성 주장(5:19-47)
 7) 예루살렘에서 앉은뱅이와 봉사를 고치신 사건
 8) 생명의 떡(6:22-71)
 9) 세상의 빛(8:12-59)
 10) 선한 목자(10:1-30)
 11) 나사로가 살아난 사건(11장)
 12) 다락방 설교(13:1-16:33)
 13) 주님의 중보 기도(17:1-26)
 14) 주님의 고난을 설명하는 부분. 


  그러면 왜 요한은 공관복음서에 없는 많은 자료들을 첨가했을까요? 아마도 그 이유는-초대 교부의 증언과 같이-요한이 공관복음서에 없는 내용을 보충하려고 요한복음을 기록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셋째 요한복음에는 공관복음에 비해 사건에 대한 기록이 적고, 그 대신에 긴 설교들이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한 요한복음의 서문은 공관복음에 비해서 매우 철학적으로 진술되어 있으며, 요한복음에는 공관복음에 나타난 비유들이 대부분 생략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특성으로 인해 일부 학자들은 요한복음과 공관복음의 내용이 서로 충돌하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두 복음서가 설명 방식에 있어서는 다소 다르지만, 결국은 같은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설교 내용과 전달 방식은 설교를 듣는 대상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의 독자가 학식있는 사람들이 많았다면, 공관복음서의 독자는 갈릴리의 평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공관복음서가 일반 대중을 위한 설교에 초점을 맞춘 반면, 요한복음은 설교 후에 일어난 소수의 사람들과 나눈 깊은 대화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설교 내용과 방식이 다른 점은 이러한 점에서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넷째, 이 외에도 요한복음과 공관복음의 기록이 다른 점이 몇 가지 있습니다. 요한복음에는 성전청결 사건이 두 번 기록된 반면, 공관복음에는 한 번 기록되어 있습니다. 일부 학자들은 주님께서 성전 청결 사건으로 인해 체포되셨기 때문에 성전청결 사건을 한 번 기록하고 있는 공관복음의 기록이 정확하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요한복음의 기록과 같이 성전청결 사건이 두 번 있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또한 공관복음은 주님께서 제자들과 지키신 유월절을 한 번만 기록하고 있지만, 요한복음은 주님께서 절기를 지키기 위해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신 일을 여러 번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유월절(2:23)
 2) 무명의 절기(5:1)
 3) 유월절(6:4)
 4) 장막절(7:2)
 5) 수전절(10:22)
 6) 유월절(13:1). 


  유월절이 한번 기록된 공관복음의 기록을 보면 주님의 공생애 기간이 마치 1년이었던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요한복음을 보면 유월절을 지킨 일이 최소한 3번이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요한복음에 의하면 주님의 공생애가 3년이상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공관복음에 유월절이 한 번 기록되었다고 해서 주님의 공생애 기간이 1년이었다고 볼 필요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공관복음서의 기자들이 필요에 의해 중간의 유월절을 생략했을 가능성이 있기 땨문입니다. 또한 시간을 언급하는 문제에 있어서도 요한복음은 공관복음과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요 19:13-14). 이러한 일로 인해 일부 학자들은 신약시대에 두 종류의 달력과 시간 계산법(유대식과 로마식)이 함께 사용되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들은 공관복음과 요한복음의 시간 언급이 다른 것은 요한과 공관복음서의 기자들이 서로 다른 달력과 시간계산법을 사용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합니다.

3. 요한복음과 공관 복음의 관계
  그러면 요한복음과 공관복음에 이러한 유사점과 차이점이 나타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에 대한 설명은 다음과 같은 네 가지가 제시되고 있습니다.

 가. 요한복음은 공관복음서와 관계 없이 독자적으로 기록되었다. 
  그러나 이 견해는 왜 요한복음에 공관복음과 유사한 내용이 많이 나타나고 있는 지를 설명하기가 어렵습니다. 사실상 요한이 공관복음서를 알지 못하고 요한복음을 기록했다는 가정은 매우 받아들이기가 어려운 견해입니다. 이 견해는 요한복음이 공관복음서보다 먼저 기록되었다고 가정해야만 가능한 주장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자들은 요한복음이 공관복음보다 늦게 기록되었다는 점에 있어서는 서로 일치하고 있습니다.

 나. 요한복음은 공관복음서를 해석하고 있다. 
  이 견해는 지지하는 학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 견해는 요한복음이 공관복음서를 해설한 책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 견해의 경우 요한복음은 역사적인 기록이 아니라, 공관복음서의 내용을 해설한 해설서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가정을 받아들이는 일도 문제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견해는 왜 요한이 공관복음서의 모든 부분을 해설하지 않고, 일부분만을 설명하고 있는지를 설명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만일 요한복음이 공관복음서의 해설서였다면, 요한복음은 공관복음 전체를 해설했을 것이며, 그렇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두꺼운 책이 되었을 것입니다.

 다. 요한복음은 공관복음을 대체하기 위해 기록했다.     
  이 견해는 가장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견해입니다. 이 견해는 요한이 공관복음서를 인정하지 않고 다른 복음으로 대체하기 위해서 요한복음을 기록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만일 요한이 이러한 목적으로 요한복음을 기록했다면 요한의 의도는 실패했다고 볼 수박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초대 교회는 물론 지금까지도 모든 교회들이 공관복음을 널리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라. 요한복음이 공관복음의 내용을 보충하고 있다. 
  이 견해는 가장 중요하며, 또한 가장 많은 학자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 견해입니다. 이 견해는 요한이 공관복음서에 기록되지 않은 내용을 보충하고, 그 공간을 채우기 위해서 요한복음을 기록했다고 주장합니다. 이 견해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요한이 공관복음의 내용 중에 일부를 생략한 것은 불필요한 중복을 피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요한 당시에 공관복음서의 내용이 많이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요한의 목적에 불팔요한 내용을 과감히 생략할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또한 이러한 견해는 왜 요한은 공관복음서에 없는 내용을 많이 추가했는지에 대해서도 설득력 있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한 전승은 마지막으로 남은 요한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공관복음에 없는 주님에 대한 이야기를 기록해 달라는 요구를 받고 요한복음을 기록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전승이 사실이라면 요한은 공관복음서가 생략하고 있는 주님에 대한 많은 기사를 보충했을 것이며, 다른 자료들을 참고해서 필요한 내용을 첨가했을 것입니다. 물론 이때에도 요한이나 그의 독자들은 모두 다 공관 복음서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었던 것은 물론입니다.

1. 요한복음과 공관복음의 기록이 비슷한 점이 무엇인지 설명해 보자.

2. 요한복음과 공관복음의 기록의 차이점 4가지를 설명해보자.

3. 요한복음과 공관복음의 관계에 대해 설명하는 4가지 견해를 설명하고, 어느 것이 맞는지 나름대로 설명해보자.
 

 

 

요한복음의 배경

 

  우리는 그 동안 계속해서 요한복음(저자, 기록 목적, 기록 시기와 특성)에 대해서 생각을 해왔습니다. 이제 우리는 또 다른 주제, 즉 요한복음을 기록한 배경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 요한복음서의 배경
  모든 신약 책들에 있어서 그 배경을 연구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지만, 특히 요한복음의 경우 그 배경에 대한 연구는 더욱 중요합니다. 요한복음을 해석하는 문제는 요한복음의 저자와 요한복음의 기록 당시 주위 환경에 대한 여러 가지 견해들에 의해 많은 영향을 받아온 것이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학자들이 요한복음의 기록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제시한 것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1. 원시 기독교
  요한복음서는 초대 기독교 역사와 독립해서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요한복음서는 초대 기독교 역사 속에서 산출되었고, 원시 기독교 신학의 배경 속에서 생겨난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요한복음서의 저자가 주님을 직접 목격한 사람이었거나, 그 목격자들과 직접 접촉한 사람이라면 이 사실은 더욱 분명합니다. 우리는 앞에서 요한복음이 공관복음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을 생각했습니다. 요한복음은 그 강조점이 다르기는 하지만, 그 내용에 있어서 공관복음과 상충되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공관복음서가 원시 기독교의 영향을 받았던 것처럼, 요한복음 역시 초대 기독교 역사와 신학의 배경 속에서 생겨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 바울주의
  어떤 사람들은 요한복음이 바울의 서신의 영향을 입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요한복음의 저자는 바울의 신봉자였으며, 요한복음은 바울의 가르침을 발전시킨 것이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바울 신학보다 한 단계 더 완성된 기독교 신학을 요한복음에서 찾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다드는 바울 서신을 통해 요한복음을 해석하려는 일에 대해 매우 주의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3. 유대주의
  일부 학자들은 요한복음의 기록에 영향을 미친 것은 유대주의였다고 말합니다. 사실 요한이 당시 유대주의와 접촉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주님과 요한 자신이 유대주의 전통에서 자라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요한복음이 유대주의를 받아들였다고 단정 지을 필요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요한복음에 나타난 주님의 가르침은 유대 랍비들의 가르침과 동일한 요소보다는 다른 점들이 더 많기 때문입니다. 특히 일부 학자들은 요한복음에 유대교의 한 분파인  엣센파의 흔적이 많이 나타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에센파에 대해 기록한 쿰란 문헌을 보면 요한복음에 나타난 여러 가지 추상적인 진리들(빛, 진리, 어둠...)이 많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이 문서가 발견되기 전에는 학자들이 이러한 추상적인 주제들은 헬라의 영향으로 인해 나온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 문헌이 발견되면서 그 주장은 그 근거를 잃고 말았습니다. 브라운은 요한복음의 저자가 쿰란 문헌의 사상과 표현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요한복음의 저자가 복음서를 기록할 때에 얼마나 쿰란문헌에 영향을 받았는지는 알 수 없다고 말합니다. .

4. 헤르메틱 문헌
  또 다른 학자들은 요한복음이 헤르메티카의 영향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헤르메티카는 이집트의 헤르메스 트리스메기스투스(Hermes Trismegistus)에서 기원한 철학적, 종교적인 문학의 형태였습니다. 이 문학은 주로 2-3세기에 시작되어 매우 오랜 기간 동안 지속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다드는 요한복음서가 헤르메티카와 많은 부분에서 비슷한 점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반드시 요한이 헤르메티카의 문학적인 용법을 차용했다고 할 필요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헤르메틱과 요한복음은 그 특징에 있어서 많은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요한복음은 헤르메티카보다는 70인경과 언어적으로 더 유사성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요한복음은 헤르메티카 보다는 70인경을 토대로 기록했다고 보는 편이 나을 것입니다.  

5. 필로주의
  또 다른 사람들은 요한복음이 필로주의의 영향을 받아 기록되었다고 주장합니다. 알렉산드리아의 필로는 헬라적 유대주의자의 대표로서, 그들 중에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일부 학자들은 요한복음의 서문이 필로주의의 영향을 받아 기록되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요한복음의 서문은 필로의 논법에 의해 해석되어야 하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의 영향력은 최근 로고스 사상의 기원을 히브리 사상에서 찾으려는 시도로 인해 줄어들었습니다. 그러나 필로는 헬라적 유대주의자로 기독교 역사에 많은 영향력을 미쳤기 때문에, 그의 교훈 방법이 요한복음의 형성에 미친 영향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필로와 요한은 모두 확실한 상징주의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예) 하나님을 빛으로, 샘물로 목자로 기술하고 있는 점 등). 그러나 이러한 유사성은 주변적인 것에 불과하며, 사실상 요한의 로고스 사상은 필로의 로고스 사상과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요한의 로고스 사상은 필로의 로고스 사상과 전혀 다른 것입니다. 
6. 영지주의 
  학자들은 요한복음이 영지주의(Gnosticism)에 영향을 입었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그러나 최근의 연구로 인해 후기에 발전된 영지주의는 초기 단계의 영지주의와 다른 것이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만일 영지주의가 요한복음에 영향을 주었다고 가정한다면, 요한복음이 영향을 입은 것은 초기의 영지주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영지주의 문학은 후기 단계에 속한 것이며, 초기 영지주의 사상이 무엇이었는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요한복음이 기록된 때는 영지주의가 아시아에서 이방인들과 기독교인들에게 나타났을 때였던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특히 학자들은 요한이 영지주의의 한 형태인 도세티즘에 대해 기독교를 변호하기 위해 그의 책을 기록했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후기 영지주의가 요한복음에 영향을 미쳤다는 증거를 찾을수는 없습니다.
7. 맨다이즘(Mandaism)
  불트만과 바우어는 맨다이즘(Mandaism)이 요한복음의 기록에 영향을 주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라에젠스타인은 맨다이즘이 발생한 시기가 매우 늦기 때문에 요한복음이 이에 영향을 입었을 리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만데아(Mandea) 문헌이 요한복음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사실로 받아들이기가 어렵습니다. 만일 요한복음 안에 만데아 문헌과 병행되는 구절이 있다면, 그것은 오히려 만데아 문헌이 보다 일찍 기록된 요한복음의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불트만과 바우어 외에는 이 견해를 좋게 평가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1. 요한복음이 초대 기독교의 영향을 입었다는 견해에 대해 설명해보고 이 견해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히라.

2. 바울주의와 유대주의가 요한복음 기록의 배경이 된다는 주장에 대해 설명해보자.

3. 헤르메틱, 필로주의, 영지주의, 맨다이즘이 요한복음 기록에 영향을 주었다는 견해들에 대해 말하고, 나름대로 그 견해들을 평가해 보자.

 

 

 요한복음의 역사성

 

  요한복음은 그 내용의 구성과 배열에 있어서 공관복음과 많이 다릅니다. 이것은 요한복음의 저자가 자신의 목적과 신학을 따라 내용을 재구성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일로 인해서 그 동안 많은 학자들은 요한복음의 내용이 역사성이 없다(실제로 일어난 일이 아니라)고 주장해왔습니다. 만일 그들의 주장이 맞다면 요한복음의 내용은 대부분 역사적인 사실이 아니라, 신화나 소설과 같이 꾸며낸 말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요한복음의 내용은 역사성이 없을까요? 오늘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 요한복음서의 역사성

1. 19세기에 
스트라우스(D. Strauss)는 "요한복음의 내용이 믿을만한 것인가?" 에 대해서 연구했습니다. 그는 그 연구의 결과로 요한복음 안에는 역사보다는 신화가 기초를 이루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연구가 발표된 이후로 많은 학자들은 요한복음에서 역사적인 예수의 모습을 찾을 수 없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이러한 일로 인해 학자들은 공관복음과 요한복음이 서로 조화시킬 수 없는 것으로 생각해왔습니다. 그들이 이렇게 생각한 것은 요한복음이 역사적인 사실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지 않고, 자신의 신학에 의해 그 사실을 재구성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요한이 독자들에게 믿음과 구원을 얻게 하려고 그가 가진 자료들을 자기의 의도대로 편집했다는 것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한 가지 주의해야 할 것은 한 책이 저자의 신학에 의해 재구성되었다고 해서 그 내용이 모두 비역사적인 것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실제로 일어난 역사적인 사건을 가지고도 얼마든지 저자의 신학에 따라 진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2. 또한 슈미델(P. Schmidel)이란 학자도 요한복음에 기록된 내용이 역사적인 사건이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한 가지 예를 들면 그는 요한복음 2장에 기록된 가나 혼인 잔치 사건은 실제로 일어난 일이 아니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이 사건을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상징적으로 해석했습니다. 그는 주님이 물을 채웠던 6개의 돌 항아리를 율법의 기간(6주간)을 상징한다고 했습니다. 그는 6개의 통에 부었던 물은 복음 이전의 율법을 상징하고, 주님이 만든 포도주는 복음을 상징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와 같이 슈미델은 요한복음의 내용이 실제적으로 일어난 일이 아니라, 상징과 비유로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3. 그리고 일부 학자들은 요한복음이 역사이긴 하지만, 그것은 있는 그대로의 역사가 아니라 요한의 입장에서 역사를 해석한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들은 요한이 사건을 기술할 때에 있는 그대로 인용하지 않고, 그 역사를 자신의 신학적인 입장에서 해석을 덧붙였다고 말했습니다. 공관복음에는 성전 정화 사건이 한번 나타나는 반면, 요한복음에는 두 번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입장에 서 있는 사람들은 요한이 성전 정화 사건을 있는 그대로 쓴 것이 아니라, 그 사건이 지닌 의미가 무엇인지 해설하는 입장에서 그 사건을 기록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요한복음이 해석된 역사라고 해도 요한복음의 내용이 모두 비역사적이라고 단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역사적인 특성을 해치지 않으면서 그 사건을 해설할 가능성은 충분히 있기 때문입니다.

4. 근대 학자인 마틴(J. L. Martin)은 요한복음서에 기록된 역사는 재평가된 역사라는 주장을 했습니다. 그는 요한이 주님 당시의 역사적인 상황을 기록할 때에, 그것을 그대로 기록하기보다는 자기 시대의 독자들의 상황과 요구에 적용해서 그 사건을 기록했다고 말합니다. 한 가지 예를 들면 마틴은 (요 9장)에 나오는 소경 이야기를 이렇게 해석하고 있습니다. 그는 9장에 나오는 소경이 일차적으로 주님 당시에 고침을 받았던 소경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는 이 소경은 주님 당시의 소경일 뿐 아니라, 요한이 그의 복음서를 기록할 당시의 기독교인들을 상징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는 요한이 이러한 기록을 통해서 자기 당시의 기독교인들이 영적으로 눈먼 사람들이었으나, 복음을 통해 눈을 뜨게 되었다는 것을 가르쳐 주려고 했다고 주장했습니다.

5. 결론: 요한복음의 역사성에 대한 우리의 입장 
  이러한 다양한 학자들의 주장으로 인해서 요한 복음의 내용이 얼마나 역사성이 있는 것인가? 에 대해서 많은 논란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학자들은 이로 인해 요한이 자기 목적과 신학적인 입장에서 사건을 기록하기 위해서 얼마나 역사적인 사실을 변경하고 조작했는가? 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서 무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이 문제에 대한 해결은 요한이 "왜 이 책을 기록했는가?" 에 대해서 그가 밝힌 기록을 생각해 보면 다소 해결이 될 수 있습니다. 그는 요한복음이 "예수께서 메시아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임을 믿고 구원을 얻게 하기 위해 기록했다"고 말했습니다. 만일 요한이 사람들에게 정말로 주님이 메시아요 하나님의 아들임을 믿고 구원을 얻게 하려고 했다면, 그는 만들어 낸 신화나 허구가 아니라 역사적으로 일어난 실제 사건들을 증거로 제시해야 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신화나 꾸며낸 말로 주님이 메시아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었다고 믿게 하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요한이 꾸며낸 말이 아니라, 자신이 실제로 목격했거나 목격자를 통해 들은 일 중에서 주님이 메시아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사건들을 선택해서 기록했다고 보는 것이 더 자연스럽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는 요한복음의 내용이 역사성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 더 타당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요한복음의 내용이 비역사적인 것이라는 명백한 증거가 제시되기 전까지는 그 동안 교회가 받아들여 왔던 것처럼 요한복음의 내용을 역사적인 것으로 간주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는 요한복음의 내용을 비역사적인 것으로 가정해 온 양식 비평가들의 견해에 대해서 매우 조심성 있게 취급할 필요가 있습니다. 실제로 최근에 행해진 일단의 연구결과로 인해 이러한 양식 비평가들의 견해들은 계속해서 도전을 받고 있습니다.

  또 한 가지 우리가 요한 복음의 역사성에 대해 생각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요한 복음 안에 저자가 기록한 내용이 분명한 사실이었다고 증언하고 있는 점입니다. 저자는 분명히 자신이 직접 목격한 내용을 기록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19:35, 20:30-31, 21:24). 이러한 증언은 요한복음에 기록된 내용이 실제로 목격한 역사적 사실이었다는 강력한 증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동안 합리주의자들이 주장해 온 것처럼 요한복음의 내용이 비역사적인 것이었다고 생각하는 일이 매우 위험한 주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요한복음의 내용이 요한이 직접 목격했거나, 목격자들을 통해 들은 역사적인 사실들을 기록한 것이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더 자연스러워 보입니다.


 

1. 왜 요한 복음에 있어서 역사성에 대한 문제가 중요하게 대두되어 왔는지 나름대로 설명해보자.  

2. 요한복음의 역사성에 대한 네 가지 학자들의 주장을 말해보고, 그 견해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밝혀보자.

3. 왜 우리는 요한복음의 내용이 역사적인 사실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 자신의 입장에서 말해보자.

 

 

요한복음의 내용

 

1. 요한복음의 지리와 시간적인 묘사
  요한은 공관복음의 저자들과는 시간적, 지리적인 면에서 다른 형태로 요한복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공관복음서는 대체로 주님이 지리적으로 이동하신 경로를 요단강(세례)-갈릴리(가버나움)와 그 주변, 그리고 예루살렘을 행해 가는 길과 예루살렘의 순서로 비교적 간단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한 공관복음서는 주님이 예루살렘을 한 번 방문하여 유월절을 한 번 지킨 것처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요한복음은 주님의 지리적인 이동을 매우 복잡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1) 주님은 세례 요한이 일하던 곳(사해 복쪽 부근)에서 시작해서(1:28), 갈릴리로 가셨다가(1:43), 가나(2:1)와 가버나움을 거쳐서(2:12), 첫 번째 예루살렘(2:13)과 유대를 방문하셨다(3:22). 2) 그 후에 사마리아를 거쳐서(4:5) 갈릴리로 가셨다가(4:43), 가나와 가버나움에서 전도하신 후에 두 번째로 예루살렘을 방문하셨다(5:1). 3) 그리고 다시 갈릴리 바다(6:1)와, 가버나움(6:59), 갈릴리에서 사역하신 후에(7:1), 다시 세 번째로 예루살렘을 방문하셨다(7:10). 이때에 주님은 성전을 방문하셨으며(7:14, 10:23), 요단강 동편으로 가셨다(10:40). 그리고 베다니(11:1)-에브라임(예루살렘의 북쪽 24km)-베다니(12:1)를 거쳐서 예루살렘으로 가셔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 4) 그후에 주님은 부활하셔서 갈릴리 바다로 가서 제자들을 만나셨다(21장).

  이와 같이 공관복음이 주님의 예루살렘 방문을 한 번만 기록하고 있지만, 요한복음은 주님의 예루살렘 방문을 세 번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요한은 주님이 예루살렘에서 유월절을 지킨 것을 세 번 기록하고 있습니다(14:1,12,14,16 과 요 2:13-23, 6:4, 11:55, 12:1, 13:1 비교). 우리가 주님의 공생애 기간을 3년 반 정도로 계산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요한 복음의 기록에 근거한 것입니다. 이와같이 요한복음은 지리적인 이동과 시간에 대해서 공관복음과 많은 차이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2. 요한복음의 내용 분해

 

 1) 준비(1장)
 가. 서론(1:1-18)
  * 말씀과 하나님(1-2)
  * 말씀과 창조(3-5)
  * 말씀과 세례 요한(6-8)
  * 성육신 하신 말씀(9-14)
  * 모든 것 위에 뛰어 나신 말씀(15-18)
 
나. 공생애 시작(1:19-51) 
  * 세례 요한의 증거(19-34): 요한과 바리새인(19-28)-요한과 예수(29-34)
  * 첫째 제자들(35-51): 안드레와 베드로(35-51), 빌립과 나다나엘(43-51)

 

 2) 7대 표적과 공적(7대) 논쟁들(2:1-12:50)
 
가. 첫 번째 표적: 가나에서 물을 포도주로(2:1-11)
  * 성전 청결(2:13-25)
  a) 첫 번째 논쟁: 니고데모-새로운 탄생(중생)에 대하여(3:1-36)
  * 예수와 세례 요한(3:22-36)
  b) 두 번째 논쟁: 수가 성 여인-생명의 물(4:1-42)
 
나. 두 번째 표적: 왕의 신하의 아들을 고침(4:46-54)
 다. 세 번째 표적: 앉은뱅이를 고침(5:1-18)

  c) 세 번째 논쟁: 하나님의 아들(5:19-47)

 라. 네 번째 표적: 5병2어(6:1-15)
 마. 다섯 번째 표적: 바다 위를 걸으심(6:16-21)
 
 d) 네 번째 논쟁: 생명의 떡(6:22-66)
  * 베드로의 고백(6:67-71)
  e) 다섯 번째 논쟁: 생명을 주는 영(7:1-52)
  f) 여섯 번째 논쟁: 세상의 빛(8:12-59)

 바. 여섯 번째 표적: 소경을 고치심(9:1-42)
  g) 일곱 번째 논쟁: 선한 목자(10:1-42)
 
사. 일곱 번째 표적: 나사로의 부활 (11:1-57)
  * 공생애 종막(12:1-50): 베다니에서, 예루살렘 입성, 마지막 증언

 

 3) 고별 설교와 대제사장 기도(13-17장)
 가. 두 가지 중요한 모범 행위

  * 제자들의 발을 씻기심(13:1-30)
  * 섬김(13;12-20)
  * 배신에 대한 예고(13:21-30)
 
나. 제자들의 질문과 대답(13;31-14:31)
  * 새 계명(13:31-35)
  * 거부 당하실 일에 대한 예고(13:36-38)
  * 길, 진리, 생명이신 그리스도(14:1-7)
  * 아버지와 아들(14:8-14)
  * 성령이 오셔서 하실 일(14:15-17)
  * 그리스도이심을 나타내심(14:18-31)
 
다. 참 포도나무(15:1-16)
 라. 박해 예고(15:17-25)
 마. 보혜사 성령의 사역(15:26-16:15)
 바. 제자들이 당할 어려움과 위로(16:16-33)
 사. 예수께서 하신 대제사장의 기도(17: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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