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땅 정복”, 하나님의 명령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신 남자와 여자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에게 결혼하여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한 것은 명령이었습니다(창 1:27-28). 그런데 복 주신 인간에게 땅을 정복하라는 용어는 조금 특이합니다. ‘정복’하다는 의미의 히브리어 ‘카바쉬’(כיבוש)는 군사 용어이기 때문이지요.
전쟁은 잔인합니다. 따라서 이 정복하다는 의미에는 짓밟다, 약탈하다, 굴복시키다 등 강한 의미가 있습니다. 성경은 다윗이 아람과 모압과 암몬 그리고 블레셋 사람과 아말렉을 정복한 사실을 기록하며 이 단어를 사용합니다. 그만큼 “카바쉬”는 강하게 복종 시키는 정복을 말합니다. 다윗은 이 정복한 나라들에게서 노략한 은금을 여호와께 드렸습니다(삼하 8:11).
그런데 이 ‘정복하다’에는 ‘발로 밟는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발로 밟는다’에는 직접 발로 밟아 삶의 터전으로 삼는다는 의미도 있으나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원수를 삼키며 물매돌을 밟는 상징적 의미도 있습니다(참조 슥 9:15). 주님은 인간의 죄악도 발로 밟아 깊은 바다에 던지실 것입니다(미 7:19). 즉 이 “카바쉬”도 역사 속 그리스도 십자가 구속 계시와 관련된 중요 용어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성경은 ‘땅’에 대해 문자적 의미와 상징적 의미의 다중적 메타포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2. “땅 정복” 명령을 왜 하필 창세기 1장에
문제는 인격적 존재도 아닌 땅을 정복하는 데 왜 굳이 이 강한 전쟁 용어를 창세기 1장부터 사용했는가하는 점입니다. 창세기 1장은 창조주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피조물인 우리 인류에게 주시는 창조 주간에 대한 계시로 세상과 생물들은 모두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습니다. 그리고 첫 사람 아담과 하와는 아직 범죄하지도 않았던 시기였습니다.
따라서 아직 땅은 저주 받지 않았으며 아담과 하와는 땀 흘려 땅을 경작할 필요도 없었고 사람은 육식을 하지 않았으며 아담과 하와는 땅의 짐승들을 잔인하게 해칠 필요도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왜 창조를 계시하신 창세기 1장에 굳이 이 단어를 사용하신 걸까요?
3. 땅에 인격성을 부여하지 말 것
‘땅을 정복하라’는 이 용어는 땅과의 전쟁 선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세상의 모든 것들이 의지하고 있는 땅에 인격성을 부여하려는 어떠한 시도도 용납지 않으시려는 하나님의 섭리와 의지가 반영된 구절로 보입니다.
넓게 보면 땅은 흙과 돌 문화를 일구는 터전으로 인류 문명의 모든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성과 궁전과 도자기·보석·장신구 같은 모든 유물·유적과 현대의 아파트, 도로, 운반 수단 등 토목·건설 문화가 모두 흙과 돌 문화인 것이지요. 심지어 현대의 디지털 문화를 일구는 화폐와 반도체조차 그 근본은 돌 문화인 것이지요. 예수는 뜨인돌로 오셔서 이 모든 것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 역사는 늘 땅과 함께 했고 지금도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심지어 우리 한민족 문화는 성경이 경계하는 제사·장례 문화, 산신(山神), 지신(地神), 천지신명(天地神明) 등 땅에 온갖 인격성을 부여하여 심판을 자초한 측면이 있습니다. 우리 민족처럼 부동산(땅) 맹신과 자랑(?)에 익숙한 민족도 없습니다.
4. 바른 성경 해석의 문제
땅은 단지 인간이 정복할 대상일 뿐입니다. 다만 인격성을 부여할 수 없는 땅을 정복할 때에 우리 인간이 창조의 질서를 무분별하게 파괴할 권한까지 부여받은 것은 아닙니다.
역사학자였던 린 화이트(Lynn White Jr.)는 “우리의 생태학적 위기의 역사적 근거”(The Historical roots of our ecological crisis)라는 논문에서 생태학적 위기의 원인을 역사적 기독교에 뒤집어씌우고 있습니다. 목사였던 그의 주장은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고 봅니다. 다만 성경 말씀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창세기 1장 28절 말씀에 대한 일부 기독교인들의 그릇된 해석과 오해가 땅에 대한 마구잡이식 지나친 개발과 그에 따른 공해와 생태계 파괴로 나타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즉 미숙한 성경 해석의 문제였습니다.
5. 인간의 책무
무생물인 땅에 대해 군사 용어인 ‘정복’하라는 강한 어휘를 사용하여 명령을 내릴 만큼 하나님은 인간에게 땅에 대한 많은 권리와 소유권을 주셨습니다. 즉 인간은 그것을 복종시키고 관리할 많은 권한과 책임을 동시에 부여받았습니다. 인류는 땅의 청지기가 된 것이지요.
따라서 인간은 땅에 대한 이 문화 명령(Cultural Mandate)을 군인처럼 철저히 수행해야 할 책무가 있습니다. 바울은 먹든지 마시든지 믿음으로 하지 아니하면 언제나 죄를 짓는 것이라 했습니다(롬 14:23). 이것은 땅을 다루는 데 있어서도 당연히 적용됩니다. 인간은 하나님이 주신 땅을 군사와 같은 무거운 사명감을 가지고 믿음과 선한 양심과 지혜로 가꾸어야 할 것입니다.
조덕영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