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4-03-29 07:33
예수님의 부활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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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웹섬김이
조회 : 1,258  

예수님께서 부활할 때에 왜 또 다시 인간의 몸을 입으셨을까? 그리고 우리가 부활 시에 뵙게 될 예수님의 모습에서 ‘정녕 죽음’의 흔적에 가슴이 저미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아십니까?

1) 하나님의 형상의 보존과 회복으로서 부활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친히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인간의 모든 고통(출생, 성장, 그리고 죽음)을 체휼하신 것은 놀라운 사건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놀랍고 의미 있는 사건은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하신 것이며, 그 부활체의 모습이 '사람의 모습'으로 부활하셨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부활체는 영원한 생명을 갖게 되는데, 범죄하여 하나님이 '정녕 죽게 하신 바로 그 인간의 모습'으로 예수님이 다시 부활하셨다는 것은 그 의미가 매우 크다. 이는 인간의 '처음 모습'이 하나님께서 매우 의미 있게 만드신 형상이라는 뜻이다. 바로 그 형상이 하나님의 형상이기 때문이다(창 1:27).

인간의 모습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왔기 때문에 그리스도가 인간의 모습으로 오셨으며, 부활하신 예수님도 인간의 모습을 입으신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체야말로 진정한 하나님 형상의 회복이라고 말할 수 있다(골 1:15, 3:10, 히 1:3). 범죄하여서 정녕 죽는 죽음 아래 있게 된 아담에게 생육하고 번성하는 복을 거두지 아니하시고, 자신(아담)의 형상을 닮은 자녀를 낳게 하시고(창 5:2~3), 그들을 통해서 태어난 생명의 귀중함을 말씀하신 것은 바로 아담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것 때문이다(창 9:6).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니"(골 1:15).

2) 예수님의 부활로 인한 영생과 영벌 구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영향은 모든 인류에게 미친다. 그러나 이 부활이 누구에게나 좋은 것은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인 죽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인간은 육적인 부활체를 입게 된다(행 24:15). 그러나 부활에는 '생명의 부활'과 '심판의 부활'이 있는데,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롭게 된 의인은 생명 되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부활에 참여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영으로 거듭나지 않은 악인은 사단과 함께 심판을 받고 영원히 지옥에 거하게 된다(요 5:29, 행 24:15).

심판의 부활을 입게 되는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진노를 피해서 죽기를 원해도 영생하는 부활체이기 때문에 죽지 못하고 고통 중에 거하게 된다(계 9:6, 6:15~16). 그들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인 죽음이 오히려 저주스러운 사건이 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도 그들에게는 차라리 없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과 부활은 불변의 하나님 뜻이기 때문에 심판의 부활에 참여하게 되는 자들은 예수님께서 가룟 유다에게 하신 표현처럼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다면 그들에게 더 좋았을 뻔한 사람들이다(막 14:21).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은 인간으로 태어나서 이 세상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반드시 알아야 할 내용이다. 아담에게 속한 모든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존재와 그 의미를 깨달아야 하며, 개인의 의지와 관계없이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세상에 관한 일들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모든 인간들은 출생과 죽음에 관한 필연적인 사실을 알아야 하며,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하신 의미를 깨닫고 살아가야 한다. 그래서 살아있는 동안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고 자신의 종말과 세상의 종말에 대한 준비를 해야 한다.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어떤 존재인지를 알게 된 사람은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정녕 죽을 인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며, 자신이 죄인인 것을 깨닫게 된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이 '기쁜 소식(복음)'인 것을 믿게 된다. 이런 하나님의 뜻을 바로 깨달은 사람은 ‘복음’에 대해서 들을 귀를 가진 사람이며,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고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생명의 부활에 참여하게 된다(롬 1:17). 그러나 바로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가 다시 오시는 날에 자신이 심판의 부활로 가게 되는 것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땅의 임금들과 왕족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강한 자들과 각 종과 자주자가 굴과 산 바위 틈에 숨어 산과 바위에게 이르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낯에서와 어린 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우라"(계 6:15~16). "그날에는 사람들이 죽기를 구하여도 얻지 못하고 죽고 싶으나 죽음이 저희를 피하리로다"(계 9:6).

3) 부활은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사명이 있음을 알려  

예수님이 십자가상에서 "다 이루었다"(요 19:30)고 말씀하심은 모든 것의 완성을 말씀하신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이 땅에서의 사명을 완수하셨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의 부활로 말미암은 인류의 부활이 있다는 것은 새로운 세상과 새로운 세상에서의 사명이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종말이란 이 세상의 끝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새로운 세상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다(벧후 3:13, 계 21:1~2).

중요한 사실은 새 하늘과 새 땅에서의 삶이 이 세상에서의 삶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첫째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기 때문에 생명의 부활을 하게 되고, 믿지 않는 악한 자는 심판의 부활을 하게 된다(요 5:25~29, 행 24:15)는 사실이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 5:24).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요 5:29).

둘째는 생명의 부활을 하여서 천국에 거하게 되는 하나님의 백성에게도 이 세상에서의 행위에 맞는 상을 주신다는 사실이다(마 5:12, 6:1, 10:41~42, 막 9:41, 눅 6:23, 35, 고전 3:8, 14, 요이 1:8, 계 11:18, 계 22:12). 여기서 말하는 상(미스도스; reward, wage)은 '임금, 삯, 보상'의 의미를 지닌 것으로서 이 세상에서 행한 일에 따라 주시는 상이다. 이 상은 천국에서의 또 다른 차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 상은 천국에 가는 사람은 누구나 받게 되기 때문이다(계 11:18, 22:12, cf.마 20:1~16). 그러나 분명히 구별은 있다. 이 구별은 아마도 천국에서의 직임과 관계가 있을 것이다(마 10:41~42, 고전 3:8, 계 22:12). 천국에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찬송하는 것이 곧 인간의 기쁨이 되는 삶을 살기 때문에 어떤 직임을 맡게 되어도 기쁨이 넘치는 곳이다(계 5:12~13, 7:12, 19:5~8).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 주리라"(계 22:12).

4) 부활체에 있는 흔적

예수님의 대속적인 고난과 죽음의 고통이 얼마나 큰지는 예수님의 사역을 통해서 조금은 깨달을 수가 있다. 첫째로 우리의 질고를 지시는 예수님을 알 때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계시는 동안 병자들을 고치신 것이 세상의 사람들이 능력이나 기술로 고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세상 사람들이 병을 고치는 것은 병자들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능력이나 기술을 가지고, 그들에게 베푸는 심정으로 고치지만 예수님은 그 병자의 아픔과 고통을 대신 지심으로 고치셨다는 것이다. 곧 우리의 연약함과 질병을 친히 담당하셨다는 것이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죄만 담당하신 것이 아니라, 죄로 인한 모든 질고와 고통까지도 담당하심으로 해결해 주시는 분이라는 것이다.

"친히 우리의 연약함을 담당하시고, 질병을 짊어지셨다"(마 8:17, cf.사 53:4).

둘째로는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모든 인류를 대속하기 위한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이다. 이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설명이 있었기 때문에 간략하게만 성경 구절로 대신한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며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 53:5~6).

마지막으로 부활체에도 존재하는 예수님의 고난의 흔적을 볼 때 그 고난이 얼마나 큰가를 깨달을 수가 있다. 예수님의 부활을 의심하는 도마에게 예수님께서 친히 부활체를 보이시면서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보라. 그리하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요 20:27)고 하셨다. 신령한 몸이신 부활체에까지도 그 십자가의 고난의 흔적이 있다는 사실은 우리를 가슴 아프게 한다. 아마도 우리가 천국에 가서 예수님을 뵈올 때에 눈물을 주체할 수 없을 것 같다. 왜냐하면 부활하신 예수님을 뵈올 때에 그 몸에 있는 고난의 흔적 때문에.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어린 양이 섰는데 일찍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계 5:6상).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인간들이 신령한 몸과 새로운 삶을 살게 되는 천국! 모든 것이 새로워지고 온전해진 하나님 나라! 그러나 유일하게 남아있는 옛 모습이 예수님의 몸에 있는 고난의 흔적일 것이다. 예수님의 고난의 흔적을 보는 순간 우리가 당했어야 할 고난과 죽음을 대신하신 그 고통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는 가슴이 미어지는 감동으로 말미암아 흘리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으리라.
 
그러나 우리의 죄로 인한 고통과 슬픔의 눈물을 씻어 주실(계 7:17, 21:3~4) 하나님께서 그 감동의 눈물도 씻어주실 것이다. 왜냐하면 천국에는 더 이상 눈물이나 슬픔이 없기 때문이다.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계 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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